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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엘로 올라가자 1 (35: 1-8)
오늘 본문은 야곱이 큰 시험을 당한 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장면입니다. 우리들도 평소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만 시험을 당한 후에는 그 음성이 더욱 똑똑히 들려옵니다. 1절에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일어나 - 올라가서”에 대해서 성경의 용법을 보면 “일어나”란 흔히 결단을 촉구하실 때 쓰이는 용어입니다. 그리고 “올라가서” 역시 단순한 지정학적인 의미를 넘어 영적으로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육신만 먹이는 세겜이 아니라 하늘이 열리는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통의 벧엘생활을 원하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도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늘이 열리는 벧엘의 깊은 영적 축복을 사모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가 복을 가지고 오리락 내리락하시던 그 축복의 벧엘은 어떻게 받을까요?
1. 이미 이루신 하나님의 그 복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1절에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벧엘에서 있었던 지난날을 회고케 하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원리를 보면 참 흥미롭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먼저 벧엘의 체험을 주시고 아래까지 낮추신 다음에 연단을 통해 다시 벧엘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저도 그런 경험을 했어요. 하나님께서 먼저 하나님의 임재를 크게 경험하게 하시고는 그 체험을 철회시키시고 신앙의 초보에서 시작하여 무수한 연단을 거치게 하신 후 복음을 깨닫게 하셔서 다시 그 축복으로 돌아오도록 섭리하셨습니다.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처음 그 경험이 저의 일생에 귀한 푯대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품안이 얼마나 좋은지 저는 압니다. 보통으로는 누리기 힘든 임재의 극치를 상당 기간 경험케 하셨으니까요.
그런데 이 그리스도와 하나 된 은총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이루신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복음으로 볼 때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살고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속한 영광스러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롬8:30에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하셨느니라” 하신 그대로입니다. 이 영광의 복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을 믿을 때 이 축복된 경험이 우리에게 적용되기 시작됩니다. 2,000년 전에 이루신 이 귀한 복음을 늘 회상하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아름다운 그 품안이 그리우신 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2. 그리고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2절에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그랬는데 야곱이 그들에게 이른 것은 그들의 동의와 합심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야곱의 집안이 세겜을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아내들이 언급되었는데 이들의 동의가 필요했습니다. 야곱이 세겜에서 땅도 샀고 오래 있어 상당한 기반을 잡았다는 점에서 이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란 자기 열 한명의 아들들과 심지어 세겜에서 잡아온 포로들까지 가리킵니다. 이들 역시 세겜을 떠나기 싫은 사람들입니다. 자식들은 세겜에서 목축으로 상당한 재미를 보고 있었습니다. 세겜은 초원이 많아 그곳을 떠나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세겜의 포로들 역시 비록 포로 신세지만 자기 고향까지 떠나 포로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떠나게 만든 사건이 바로 디나 사건입니다. 이제는 떠나지 않으면 그들에게 잡혀서 죽습니다. 그러므로 디나 사건으로 더 이상 세겜에 머물러 살기가 두렵게 된 것은 신앙적으로는 퍽 다행한 일입니다.
이처럼 하늘이 열리는 벧엘의 복을 받으려면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신6:4-5). 대하16:9을 보면 하나님은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에게 능력을 베푸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집안 구성원이 단순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 마음 역시 단순하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은 원이로되 자행자지하려하여 잘 드려지지 않으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으면 사랑의 징계가 따른다는 디나의 사건으로 경계를 삼을 때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3. 벧엘의 축복을 받으려면 버려야 할 것을 버려야 합니다.
2절에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했습니다.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이 세 가지가 나타납니다.
먼저 이방 신상입니다. 가령 라헬이 친정에서 가져온 드라빔을 비롯해 세겜 포로들이 지니고 있을지 모르는 우상들입니다. 우리 성도들 중에 아직도 세상 신을 섬기거나 길흉화복을 위해 점치는 습관이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탐욕이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 자신과 가족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도 우상이 됩니다.
그리고 더러움을 버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보혈공로를 믿어 양심을 씻어야 합니다. 우리 양심이 거리낌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의복을 바꾸라”했는데 신약에서 의복은 행실입니다. 이 행실을 씻는다는 것은 죄악을 회개함을 가리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을 통해서 잘못된 것을 깨달아 고치고 기도로서 마음속의 악성을 제거해야 합니다(딤전4:5). 그래서 행실이 달라져야 합니다.
사람들이 하늘 문이 열리듯 신령해 지기 위해서 금식하는데 그 금식의 의미가 회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사 58장을 보면 내가 고통을 주는 일이 있다면 그 고통을 풀어주고 돌아보아 불쌍한 사람들을 찾아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참된 금식의 정신이라 하셨습니다.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사58:8-9)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금식 기도한다고 신령해지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회개하여 사랑으로 변화될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하늘 문이 열립니다.
4. 그런데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항상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4절에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고”
여기 상수리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징입니다. 우리의 죄악을 그 아래에 묻어야 합니다. 달리 표현하면 성령으로 죽이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예수님께서 이루신 것들을 그대로 이루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귀한 금덩이로 만든 각종 우상을 버리기가 쉬운 일이었을까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내 힘으로 죽이는 것은 절대 십자가 아래 매장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엎디어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날마다 죄악을 십자가에 매장시키고 말씀 안에서 예수님의 마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5. 그리고 제단 쌓는 생활을 잘해야 합니다.
3절에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 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벧엘에 단을 쌓고 엘벧엘이라 불렀습니다. 엘벧엘이란 ‘벧엘의 하나님’이라는 뜻인데 야곱의 신앙고백이기도 합니다. 제단은 오늘날로 치면 예배생활입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생활을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교통의 문이 열리고 벧엘의 축복이 옵니다.
6. 이 회개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에는 어떤 핑계도 있을 수 없습니다.
5절에 “그들이 발행하였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 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했습니다.
세겜 사람들이 히위족속입니다. 세겜 사건으로 온 가나안 땅의 히위족속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히위족속은 전 가나안에 퍼져서 큰 세력을 이루며 살고 있었기에 잘못을 저지른 야곱에게 가장 두려운 족속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으로서는 한 발짝도 꼼짝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핑계 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이 순종은 죽으면 죽으리라의 순종이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두려움을 보내셔서 온전히 지켜주셨습니다. 이처럼 어떤 일에도 핑계하지 말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하나님 섬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7. 그 때 우리 심령은 참된 평안을 얻습니다.
8절에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여기 알론바굿이란 ‘애곡의 상수리나무’라 는 뜻입니다. 유모 드보라는 리브가가 시집올 때 같이 온 여종입니다. 그런데 당시 개념으로 일개 여종의 죽음일 뿐인데 그녀의 죽음에 이런 큰 의미를 부여할까요? 우리는 그녀가 무슨 특별한 역할을 담당한 종이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역할이란 리브가의 여종이라는 점에서 리브가의 일을 계승했음을 봅니다. 그러니까 여종 드보라의 죽음은 곧 야곱을 향한 리브가의 임무가 끝났음을 뜻합니다. 즉 리브가의 기도 응답이 이루어져 야곱이 완전한 축복의 사람이 되고 완전한 구속사를 이어간 족장이 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하면 이제 예수 안에서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림을 뜻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더 이상 세상에서 지체하지 말고 벧엘로 올라갑시다. 아무 것도 핑계하지 맙시다. 진실로 엎드려 회개하고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십시다. 그래서 야곱에게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을 만난 것처럼 참된 안식과 은혜와 복을 누리시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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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엘로 올라가자 2 (35: 1-5)
이 시간에 “벧엘로 올라가자”라는 제목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둘로 나눈다면 세상에서 승리하는 자와 실패하는 자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혹은 행복한 사람과 행복하지 못한 사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어떤 성도는 예수 믿고 세상에 나가서 죄와 저주를 몰아내고 축복의 동산을 이루며 사는가 하면 어떤 성도는 날마다 넘어지고 쓰러지며 복이 무엇인지 조차 알지 못합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그 원인을 오늘 읽은 본문이 잘 가르쳐 줍니다.
한 마디로 벧엘의 삶이 없거나 적었기 때문입니다. 벧엘의 삶은 무엇일까요?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도망하던 때 자기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 벧엘에 단을 쌓겠다고 약속했듯 지금으로 말하면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하는 삶을 가리킵니다. 예배하는 생활이 부족하면 세상에서 100%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제단 쌓는 일을 잘해야 합니다.
야곱을 보세요. 야곱이가 하나님께 제단 쌓겠다고 한 약속을 어기고 세겜에 머물 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는 수치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아들들이 무수한 살인을 저지르고 그래서 보복의 두려움 등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데 왜 이런 어려움을 당할까? 고민하는 야곱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1절에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이 말씀을 듣고서야 깨닫습니다. 형 에서를 피해 도망하던 때 나타나신 하나님께 벧엘에 단을 쌓겠다고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들도 이 말씀으로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벧엘에 올라가기 위해 극복해야 할 몇 가지가 있습니다.
1. 세겜을 떠나는 일입니다.
1절에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벧엘로 올라가려면 머물던 곳을 떠나야 합니다. 머물던 세겜은 바로 세상입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런데 야곱에게 세겜은 정말 비전과 매력 있는 곳으로 지남철보다 더 강하게 끌어 떠날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양을 먹일 초지가 얼마나 좋은지 아무 생각 없이 거기 꾹 눌러 앉고 싶은 생각밖엔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집을 짓고 우릿간을 짓고 또 지으며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이 생각 나는 때면 “하나님 조금만 더요. 조금만 더요.” 하면서 떠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재미있어도 떠나 하나님의 집으로 가야 합니다. 아무리 연속극이 재미있고 축구 야구 경기가 좋아도 떠나야 합니다. 세상이 바빠도 떠나 하나님 앞에 나아와야 합니다. 세상 일이 바쁩니까?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섬길 시간이 없다면 잘못입니다. 그렇게 시간 관리해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께 드릴 시간입니다. 이것만 제대로 되면 은혜 받지 않을 수 없고 복 받지 못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시간이지만 특별히 하나님 앞에 드릴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보장합니다. 예배와 기도시간만이라도 제대로 해보세요. 복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은 은혜의 보좌로서 때를 따라 돕는 온갖 은혜와 복으로 충만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84:11에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했습니다. 세상이 나를 끌어당겨도 거기에 사는 길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유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교회에 믿음 없는 어느 집사가 입만 열면 “목사님, 제가 너무 바빠서요.”라는 핑계를 대며 요령만 피우다가 죽어서 지옥으로 떨어졌답니다. 그는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하나님! 저는 세상에서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을 믿었는데 대체 하나님은 뭐하고 계셨길래 제가 지옥에 왔단 말입니까?”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래, 너만 바빴냐? 나도 바빴다.”고 대답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정곡을 찌르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일에 바쁘다고 핑계 대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혹시 하나님을 믿어 주시기 위해서 나오셨나요? 어느 농촌에 가축 장사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부인의 생명이 위독하다고 목사에게 달려왔습니다. 가보니 맹장염이 쇠하여 복막염 상태라 속히 병원에 가도록 해서 목숨을 건졌습니다. 부인은 은혜를 잊을 수 없다며 교회를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두어 달 교회에 나오더니 예배에 불참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왜 빠지십니까?” 그러자 “목사님의 은혜를 잊을 수 있나요? 그런데 요즈음 너무 바빠서요. 염소장사는 요즈음이 한철이거든요. 목사님 한가하면 열심히 믿어 드릴께요.” 이처럼 믿어 주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 일 그만하셔도 좋으니 이제는 하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바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애굽의 바로를 보세요. 이스라엘을 놓아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세상이 나를 놓아주려고 하지 않아도 나와야 합니다. 성도들은 직업도 하나님 섬기기 위해서 분주하지 않는 직업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돈벌이가 많아도 하나님 섬길 수 없다면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우리는 최소한 첫 시간은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정말 행복한 삶을 위해서라면 시간의 십일조는 드려야 합니다. 24시간이면 2시간 24분입니다. 약 2시간 반은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새벽에 한 시간, 저녁에 한 시간, 낮에 30분 이렇게 하나님께 드리면 그 삶은 놀라운 풍성함이 있을 것입니다. 복을 받으려면 놓지 않으려는 세겜에서 떠나야 합니다.
2. 버릴 것을 버리는 일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은 야곱은 자기 식솔들을 준비시킵니다. 2절 “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데 우상이 있으면 되겠습니까? 그런데 야곱의 가족들은 아직 이방의 냄새가 물씬 나는 삶이었습니다. 드라빔이라는 우상도 있었고 신상이나 주문을 새긴 부적 같은 귀걸이도 있었습니다.
자기 식솔들이 갖고 있는 드라빔과 귀걸이는 고향으로 돌아가면 아버지의 거대한 유산과 바꿀 수 있는 보물이었습니다. 얼마나 귀한 것이었으면 라반이 그것을 잃고 군사를 이끌고 야곱을 추격해 왔겠습니까? 그리고 그것을 발견한 자는 살지 못한다고 했으나 라헬이 얼마나 귀하게 여겼으면 끝까지 목숨 걸고 감추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걸 버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세겜에서 수치를 당할 대로 당하고 고통을 당할 대로 당한 후에야 이게 다 뭐냐 하면서 그것을 다 상수리나무 아래다 묻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버려야 할 것들 다 십자가 아래 묻으시기 바랍니다. 그것들이 행복을 가져다 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걸 가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고통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그것 때문에 임합니다. 버리기 어려운 마음의 탐욕과 죄악, 세상 생각들 있다면 다 버리세요. 그게 행복의 길입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거룩함과 화평함이 없이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3. 옷을 바꾸어 입는 일입니다.
다시 2절 "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그리고 그들은 야곱의 말대로 의복을 바꾸어 입었습니다. 이방의 유행하는 자유롭고 요란한 패션이 아니라 성도의 거룩한 옷을 입었습니다. 아무렇게나 터져 시원하게 입고 뒹굴면 좋은데 하나님 앞에서 입는 옷이니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더구나 열대 지방 아닙니까? 여름에 우리 목사들 까운 입어 봐서 압니다. 그러나 세겜에서 당한 고통에 비하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니었기에 군소리가 없었습니다.
옷은 영적으로 행실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새 마음을 가지라는 교훈입니다. 내 맘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니 내 뜻대로 살며 자유분방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만 그래도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삽니다.
김익두 목사가 부흥회에 참석하려고 산길을 걷다가 더워서 웃옷을 벗고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맞은편에서 술 취한 사람이 오더니 "너 왜 나보다 먼저 올라온 거야?" 라고 말한 후 다짜고짜 김익두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김익두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 매를 맞았습니다. 그리고는 술취 한 사람에게 "형님, 다 때렸습니까?" 라고 묻자 "그래 다 때렸다. 어쩔래?" 그러자 김 목사는 "예수는 내가 믿고 복은 형님이 받으셨군요. 내가 바로 익두요." 그러자 깜짝 놀라 살려달라고 빌더랍니다. 이처럼 이제는 때리면 맞아야 합니다. 거짓말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얼마나 불편합니까? 그래도 죄짓고 사는 것보다는 백배 천 배나 낫습니다.
그리고 옷은 준비입니다. 항상 준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배를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면 놀라운 은혜를 주십니다. 모든 삶이 예배이지만 특별히 드리는 예배가 있는데 준비해야 합니다. 어느 은혜 많이 받은 성도가 영안이 열려 보니 교회 일찍 나와서 예배를 위해 준비기도하는 성도들이 있는데 천사가 그들에게서 기도의 향을 취하여 강단에 붓더랍니다. 기도의 향을 붓자 하나님의 영광이 안개처럼 자욱하게 되는데 그래도 좀 부족하더랍니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니 뒤에 성도들이 교회에 왔지만 난로를 쐬며 잡담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 성도들의 기도만 합해지면 되는데 하면서 마음이 그렇게 안타까울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준비한다면 하나님이 크게 받으실 예배가 될 것이고 큰 임재하심으로 복 내려 주실 것입니다.
4. 다 맡기고 전진하는 일입니다.
5절 “그들이 발행하였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 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야곱의 최고의 두려움은 주변 족속들의 보복이었습니다. 방비가 가장 취약할 때가 이동할 때입니다. 그의 아들들이 세겜성 사람을 다 죽였으니 주변 족속들이 가만있겠습니까? 특히 세겜 사람들이 히위족속입니다. 히위족속은 전 가나안에 퍼져서 큰 세력을 이루며 살고 있었고 이 사건으로 히위족속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러므로 벧엘로 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두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셔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예배하는 생활을 하려고 하면 왜 두려운 것이 많은지요. 야곱의 아들들의 잘못 때문에 추격자들이 두려웠듯이 율법과 양심이 나를 쫓아옵니다. “너 죄인이잖아? 오늘도 다투었고 양심을 속였다. 탐욕도 부렸고 하나님을 망각하며 살았다.” 하면서 우리 심령을 찌르고 갈기갈기 찢어놓습니다. 사단의 참소입니다. 이 추격이 얼마나 집요한지 하나님께 나갈 수가 없고 기도해도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습 그대로 나오는 것을 기뻐하시지 외식으로 가리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 이 대로 받으신다는 믿음 가지고 나가면 아무도 추격할 자가 없습니다. 죄도 허물도 맡겨야 합니다.
사업도 가족도 책임지실 것을 믿고 맡겨야 합니다. 내가 주일을 드려도 하나님이 책임지시겠지. 내가 하루 한 두 시간 하나님께 드려도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시겠지, 자녀들이 안 풀린다고 말해도 천대에 복을 주신다 하셨으니 기다려라 조금만 더 기다려라 이렇게 맡기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셔서 가난도 염려도 추격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어려울 때마다 기도했습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기도합니까? 기도 말고 더 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야곱처럼 낭패와 실망 가운데 계십니까? 속히 깨닫고 벧엘로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세겜에 거하는 한 평안할 날이 없습니다. 살려면 평안하려면 벧엘로 올라가세요.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 잘 믿고 하나님 잘 공경하여 예배하는 삶이 더 많아지고 말씀과 기도의 시간도 더 많아져 하나님이 은혜 주심으로 모든 방황과 고통은 끝나고 온전히 승리하고 복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