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사부모님께옵서 33세에 (개도 33년 1906년)에 득도하신 이후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에서 계룡산 백암동으로 남천포덕하시어 도덕을 설파하시며 제자를 얻으시고 금강대도를 창도하시는 과정에서 보여주신 영험(靈驗)하신 말씀을 수집 편집하여 성훈통고로 출간하여 인류중생 구제의 깨우침을 주신 글을 게재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5-118 보림 임병기
임병기(호 보림)가 성재에 참여하고자 하여 정해년(개도74년 1947년) 9월 이후로부터 12월까지 무릇 7번 금천에 들어왔으나 본부 방침으로 능히 성재에 참여하지 못하고 이듬해 무자년(개도75년 1948년) 정월 2일에 또 들어오니 충주로부터 금천까지 무릇 300리 거리에 3~4개월 이내에 8번 내왕한 것이 가히 성의가 없다 이르지 못할지라. 정법사님을 배알 하고 물러 나와 조인구에게 말하기를 “진실로 한탄할 일이로다.
내가 성재에 참여할 뜻으로 8번 들어왔으되 마침내 이것이 헛수고가 되니 성의가 부족하여 그러한가, 삼생의 인연이 박해서 그러한가? 침울함을 이기지 못하겠노라” 하니라.
인구가 말하기를 “이것은 자네의 성의를 시험할 때요, 또 본부 방침이 5개월 동안 계속 총회에 참석한 사람으로서 성재에 들어갈 자격을 정한 연고이니 모름지기 너무 염려하지 말고 시종이 여일하면 소원을 가히 이루리라” 하니라.
병기가 사례하고 선화부에 나와서 잠을 자는데, 꿈에 성사께옵서 현성 하시어 말씀하시기를 “너에게 성재에 들어오게 함이 정월 5일에 있었거늘 어찌 인연 박한 것을 탄식하여 그 마음을 동요하느냐?
내가 네 집에 간 것이 세 번이었으나 어육의 냄새가 코를 찔러 들어가서 앉지도 못하고 돌아왔노라” 하시거늘, 병기가 황공함을 이기지 못하여 꿈을 깨니 땀이 나서 옷을 적시였는지라.
과연 정월 5일에 성재에 들어가서 15일간 만에 수료하고 집에 돌아가서 가족들을 모아 사부님의 영감 하심과 성문의 가르치심이 엄한 것을 말하여 하나같이 어육을 금하고 가화낙도 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