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토 고헤이의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를 읽고있다.
현 자본주의체제가 붕괴되어야만 기후 위기를 멈출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글로벌 사우스(주로 남반구에 거주하는 개발도상국들)에서 일어나는 노동력착취와 자원수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논리를 펼쳐나가고 있다.
현재 자본주의 체제는 글로벌 시장에 기반해서 움직이고 있는데 선진국 국민들의 제국적 생활방식은 개발도상국에 사는 가난한 이들의 희생 위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인재가 평상시 상태가 되어있는 것이 자본주의라고 한다.
제국적 생활양식이란 글로벌 노스의 대량 생산, 대량 소비사회를 말한다.
자동차의 철, 가솔린, 옷의 섬유, 저녁식탁의 소고기 등 많은 것들이 지구 반대편에서 공급된다. 글로벌 사우스에서 노동력과 자원을 수탈하지 않으면 우리의 풍요로운 생활은 불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현대의 자본주의인데 풍요로운 삶의 대가를 글로벌 사우스에 떠넘기는 구조를 전제로 한다.
글로벌 사우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 조건이 악화되는 것이 자본주의의 기초이며 이런 남북 사이의 지배종속 관계가 당연시되고 있다.
오늘날의 풍요로운 자본주의는 보이지 않는 어떤 이들의 희생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책 뒷부분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오늘날 삼각무역을 하던 시대와 같은 노예제도는 없어졌지만 그와 비슷한 맥락의 불의는 여전히 남아있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주는 풍요에 모순이 있는 줄도 모르고 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옹호한다. 그리고 내 손으로 일해서 정직하게 번 돈이면 깨끗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모순과 죄는 훨씬 더 큰 구조 속에 있다. 글로벌 사우스에서 살아가는 노동자들은 우리보다 힘든 정도의 노동을 하고도 하루 세끼 밥을 먹기가 어려운 경우도 많다. 세상은 원천적으로 공정하지 않은 곳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풍요와 물질을 숭상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죄가 되고 우리를 거짓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 진실해지려면 돈을 정직하게 벌고 써야할 뿐 아니라 자본주의의 그늘에서 곤고하게 살아가는 지구촌의 이웃을 위해 지갑을 열고 헌신하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자본주의라는 지구적이고 오래된 체제를 사회주의로 바꾼다는 것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많은 사람이 저자의 생각에 동의한다고 해도 어려울 것이다. 그전에 우리가 처한 환경과 있는 자리에서 지구촌의 이웃들, 개발도상국의 형제자매들을 생각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나는 이런 책을 읽으며 약자와 소수를 진실되게 생각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존경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들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가진다면 그들이 꿈꾸는 평등세상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