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書算, 삶을 새기는 망치질
금우동
어릴 적, 아버지는 서당 훈장이셨다. 나는 그 곁에서 글을 배웠고, 서산을 손에 쥐었다. 서산은 단순한 문구류가 아니었다. 종이를 겹겹이 붙이고 초를 먹여 단단하게 만든 그것은 책갈피이자 암송의 도구였고, 반복을 통해 글을 체득하는 지혜였다.
그때 나는 서산의 눈 대를 접었다 폈다 하며 아버지의 말씀을 들었다.
"백 번을 읽고 써라. 그러면 저절로 뜻을 알게 된다."
그때는 몰랐다. 그 말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왜 백 번이나 읽어야 하는지. 하지만 아버지는 단 한 번도 그 말을 거두지 않으셨다.
매일 새벽,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아버지 앞에 앉았다. 서산대를 따라 한 글자씩 짚어 나갔다. 처음에는 글자의 모양만 눈에 들어왔다. 뜻은커녕 제대로 읽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게 글을 알려주시지 않았다. 대신 서산의 눈 대를 접으며 반복하게 하셨다. 열 번, 스무 번, 서른 번. 문장이 입에 익숙해지고, 반복 속에서 어느 순간, 마치 안개가 걷히는듯한 느낌으로 문장이 내 것이 되는 시간이 찾아왔다. 아버지는 그걸 ‘문리가 트인다’고 하셨다.
"아무리 어려운 공부라도 백 번을 읽고 쓰면 깨닫게 된다."
어릴 적, 그 말이 너무 지겹게 들렸다. 서산의 눈 대를 접고 펼치는 것이 고역이었고, 반복되는 글귀가 따분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공부의 본질임을 깨닫게 되었다.
어떤 석공이 바윗돌을 향해 망치질을 백 번 넘게 해도 처음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러나 이윽고 마지막 망치를 내려칠 때, 바위는 쩍 하고 갈라진다. 우리는 그 마지막 망치질이 바윗돌을 쪼갰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이전의 수백 번의 망치질이 이미 바위를 쪼갠 것이다. 아버지가 강조하시던 반복의 힘이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가 백 번째에 깨닫지만, 그 깨달음은 처음부터 차곡차곡 쌓여온 것이라는 사실을.
아버지는 전쟁과 격변의 시기를 지나며, 빨치산 대원들에게서 총살을 당할 위기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아버지에게서 글을 배운 제자 중 한 명이 나서서 자신을 대신 처형하라고 말하며 아버지를 구해주었다. 그 제자의 결단 덕분에 아버지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사건은 우리 가족에게 커다란 교훈을 남겼다. 어머니는 그 제자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지 못한 것이 평생 마음에 걸렸다고 하셨다. 그때의 미안함과 고마움은 마치 백 번을 읽고 쓰는 것처럼, 어머니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각인되었다.
아버지는 시력 장애를 겪으면서도 서당 훈장으로, 처사 선비로의 삶을 사셨다. 안동 지방은 과거시험을 통한 출세보다는 향리에 남아 학문을 탐구하고 가난을 미덕으로 후학을 양성하는 처사 선비 문화가 뿌리내린 곳이었다. 아버지는 그 길을 평생 걸어가셨다. 그러나 그 길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언제까지 유효할 수 있을지를, 누구보다 깊이 고민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내게 이렇게 말씀 하셨다.
"너는 글공부를 열심히 하지 말고, 기술을 익혀라."
그 말이 처음에는 아버지의 삶을 부정하는 듯해 의아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 뜻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금융업과 재개발 정비사업에서, 또 염색과 도금 공장의 생산현장에서 나는 점점 더 아버지의 말을 곱씹게 되었다.
“글공부로 쌓아 올린 학문이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과 맞닿지 않으면, 현실 속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다.” 기술을 익힌다는 것은 단순한 손기술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아는 것이며, 변화를 읽고 적응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임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처사 선비로서의 길을 걸으셨지만, 그 길이 전부는 아님을 내게 전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책 한 권을 다 배우고 나면, 마을 사람들과 함께 책거리 떡을 나누었다. 그것은 작은 축제였다. 속이 꽉 찬 송편은 배움의 결실을 의미했고, 속이 빈 바람떡은 아직 채워야 할 배움을 뜻했다. 나는 떡을 손에 쥐고, 아버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아버지의 눈빛은 언제나 단호하면서도 따뜻했다. 나는 그 시선을 받으며 스스로 다짐했다. 더 읽고, 더 쓰고, 더 배워야 한다고.
세상은 내 다짐만큼 쉬운 곳이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서산을 펼쳐야 할 때를 놓친다. 공부도, 삶도, 백 번을 읽고 쓰는 인내를 견디지 못하고 포기할 때가 많다. 김득신은 독서를 일만 번 이상 하며 둔재에서 천하의 명문장가가 되었지만, 나는 과연 무엇을 남겼을까. 세상을 헤매며, 배움의 길에서 수없이 흔들린다.
어느 날 문득, 나는 다시 서산을 만들었다. 아버지와 함께 앉아 서산을 접고 초를 먹이던 그때처럼. 손끝에 닿는 그 감촉이 생생하다. 이제 아버지는 곁에 없다. 서산을 손에 쥐고, 아버지의 음성을 떠올린다.
"백 번을 읽고 써라. 그러면 저절로 뜻을 알게 된다."
나는 다시 서산의 눈 대를 접고 펼친다. 이제야 아버지의 말씀이 온전히 마음에 스며든다. 비로소, 나는 삶을 새기는 망치질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