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염부주지(南閻浮州志)
김광한
매월당 김시습이 쓴 금오신화 속에 남염부주지(南閻浮州志)란 이야기가 있습니다.쉬운말로 해석하면 사철 뜨거운 둥둥 떠있는 섬에 대한 기록인데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저승에 대한 이야기입니다.저승을 관장하는 염라왕이 어느날 경주 사는 최선비를 꿈에 찾아옵니다.염라왕이 하는 말이 최선비는 행실이 곧고 남에게 해끼친 일이 없으니 내가 다스리고 있는 염부에 와서 임금 노릇을 하라는 것입니다. 즉 역할 교대를 청한 것이지요.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지난 천년동안 이곳을 다스렸는데 몸이 피곤해서 좀 쉬어야겠다는 것입니다.
최선비는 처음에는 완강히 거절했지만 어차피 생을 떠나면 어디론가 가야할판에 염라왕이 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이를 수락합니다.염부국은 남쪽의 바닷가 가운데 있었는데 이 나라는 항상 유황연기가 하늘높이 솟아 오르고 무덥기가 적도의 아프리카 보다 훨씬 더한 곳이라서 하루도 견디기 힘든 곳이었습니다.최선비는 이렇게 해서 염부국에 부임을 했는데 사람들, 즉 백성들이란 모두가 전생에 살인 강도 기 협작질과 배신,불효, 그리고 파렴치한 짓을 한 자들이었습니다.이들은 지난 수천년 동안 이곳에서 중노동을 하고 있는데 모두가 한결같이 저 세상에서 못된짓을 한것을 후회하고 있었습니다.사람들의 식사는 잘게 썬 구리 가루였는데 이것도 너무 뜨거워 씹다가 뱉고 토하고 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염라왕은 최선비에게 "저 자들에게 조금도 동정심을 베풀지 마시오. 저놈들은 지난 삶을 아주 못되게 행했기에 그 벌을 받아도 싼 것이오."
하면서 최선비의 자비심을 원천봉쇄했습니다.
최선비가 배를 타고 이 섬에 도착하자 여기서도 옛날 버릇을 못 고쳤는지 사기와 협잡질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염부국의 대신들을 소집해서 회의를 했는데 결과는 감옥을 더 짓자는 것이었습니다. 백성들을 감옥짓는데 부역을 시키니 자비심이 많은 최선비는 눈물이 흘러 이곳에 온것을 후회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저 세상에서 정승 판서 한자들이 거의 대부분 끌려와서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새벽부터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오고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그 참상은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 였습니다.저 세상에서 점을 친다고 혹세무민한 자들과 종교인이라 칭한 사기꾼들이 모두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그런데 이웃에서 착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평화스럽게 살고 있었습니다. 거기가 시쳇말로 천당이었습니다.
최선비는 이 염부국에 자유의 물결을 주고 싶어서 여러가지 궁리를 했습니다.그래서 사람 들의 죄질에 따라서 등급을 매겨서 천년동안 고생한 사람 가운데 회개를 깊숙하게 한 사람들을 선별해서 대기소에 넣고 노동일을 덜하게 만들었습니다.최선비는 천년동안 약속한 대로 이 염부국의 임금 노릇을 했는데 마침내 떠날날이 되자 그동안 정들었던 백성들이 손을 잡고 가지 말라면서 애원하는 것을 끝으로 그만 잠을 깼습니다.깨보니 아직도 동창이 밝지를 않았습니다.이승에서 죄를 지면 저승에서 고통을 받는 다는 인과응보, 즉 불교의 인과설을 강조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