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5- 26(수)QT■
(사도행전 21장)
17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18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19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
20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21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22 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
23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24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25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26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 기간이 만기된 것을 신고하니라
(묵상/행 21:17-26)
◆ 예루살렘에 도착하다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19)
바울 전도팀이 마침내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이들은 형제들에게 기꺼이 영접을 받았다. '기꺼이'라는 말은 '은근히 마음 속으로 기쁘게'라는 의미다. 교회가 이렇게 형제들을 기꺼이 영접함은 은 아름다운 일이다. 이런 환영의 전통을 유지해야 한다.
전도팀은 다음날 야고보를 만났는데, 거기에는 장로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당시에 예루살렘 교회의 수석장로는 베드로가 아니라 야고보였다. 베드로가 전 교회가 인정하는 그리스도의 사도라면,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담임목사와 같은 장로였다. 야고보는 기도를 너무 많이 해서 그의 무릎이 낙타 무릎처럼 되었다 하며 의인 야고보로 말해지기도 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야고보는 AD 62년경에 대제사장 안나스에 의해서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한다.
바울은 야고보를 비롯한 장로들에게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해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낱낱이 말하였다. '낱낱이'라는 말한 것은 바울이 자랑하고자 함도 아니고 바울 자신의 영광을 추구함도 아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어떻게 받으셨는지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확증하기 위함이다. 이런 이유로 바울이 다른 사람을 보낼 수 없고 자신이 직접 예루살렘에 와야 했다.
◆ 바울에 대한 오해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21)
바울을 향한 이 소문은 과연 진실인가, 오해인가?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받지 말 것을 요구했다. 할례를 받는 것은 곧 율법 전체를 지킬 의무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것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는 일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갈 5:3,4) 그리고 날과 달과 절기를 지키는 것을 금했다(갈 4:10). 이런 것을 보면 바울에 대한 소문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이방인들을 유대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것이다(행 26:28). 당시에 많은 이방 성도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유대인이 되는 것으로 오해했다. 바울은 이것을 단호하게 반대했으며, 베드로가 잠깐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인 것조차 모든 사람 앞에서 책망했다(갈 2:14).
우리가 복음을 전파함은 사람들을 유대인으로 만들고자 함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고자 함이다. 유대인으로 만들고 싶으면 예수를 믿을 것이 아니라 할례를 받게 해야 한다.
바울은 이방인에게 유대인들의 관습을 따르지 말 것을 가르쳤지만, 결코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전통과 관습을 버리라고 말하지 않았다. 당시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율법을 그 민족의 법으로 하는 종교 국가였다. 유대인들이 할례를 받고 날과 달과 절기를 지키는 것은 그들 국가의 법이자, 관습이며 전통이었다. 이것은 존중되어야 한다.
국가의 법을 지키는 것은 이방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방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 시민이면서 동시에 세속국가 시민이다. 양쪽에 속한 자로서 양쪽의 법을 모두 충실하게 지켜야 한다. 단, 하나님 나라와 세속국가가 충돌한다면 두말할 것 없이 하나님 나라가 우선이다.
바울은 이것을 아주 잘 이해한 사람이었고 사람들에게 세속 국가의 법을 존중할 것을 가르친 사람이다(롬 13:7). 그런 바울이 율법이 국가의 법인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했겠는가? 그럴 수 없다.
따라서 유대인들 사이에 퍼진 바울에 대한 소문은 오해다!
◆ 복음과 화평을 위한 양보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24)
장로들은 유대인들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 지혜를 냈다.
바울이 결례를 행하도록 하고 함께 결례를 행하는 자들이 머리를 깎게 하기 위해 비용을 내도록 했다. 머리를 깎는 것은 하나님 앞에 서원했을 경우에 시행하는 행위다. 당시에 결례 의식과 서원을 위해 머리를 깎는 비용은 희생제물을 포함하기 때문에 꽤 비쌌으며, 가난한 자를 위해 대신 내주는 것은 매우 경건한 행위로 간주하였다고 한다.
사실 바울은 결례 의식을 행하는 것이 내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함을 받은 자에게 결례 의식은 그림자요 껍데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히 9:13,14). 그러나 바울은 복음 전파와 교회의 화평을 위해서 최대한 양보하고 자신의 마음을 비웠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율법 아래 있는 자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않지만,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다"(고전 9:20)
우리는 이것을 꼼수나 남을 속이는 것으로 보면 안 된다. 머리를 깎는 행위가 신앙에 위배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미 겐그리아에서 자원해서 머리를 깎은 적이 있다(행 18:18).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복음 전파를 하기 위한 양보일 뿐이다. 이것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하여 소위 복음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이루어지는 협잡, 거짓말 등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주님, 여러 복잡한 상황 속에서 형태는 바뀔지언정, 주님과 복음 전파를 위하는 중심만은 일관되었던 바울의 모습을 본받기를 원합니다. 이 악한 세상에서 지혜로우면서도 순결함을 잃지 않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