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문통 언니들
이설야
수문통시장 언니들
단발머리 쥐가 파먹은 듯
잘리고 뒷골목에 모여
도루코 면도날을 씹다가 뱉었다
학교 가는 아이들 돈 빼앗다가
창고에 갇혀 울었다
입속에서 부서진 집들
언니들 머리채 잡고
시궁창 속으로 미끄러지던 손
찢어진 치마 속으로 들어가던 두꺼운 손
못 박힌 별들이 하나둘 켜지면 언니들
달처럼 몰래 광 속에서 빠져나와
깡시장 오빠들과 자유공원에 올라갔다
피 한방을 흘리지 않고
면도날을 나눠 씹었다
아직 뱉지 못하는 말들
언니들 조금 더 자라자
볼록한 배를 광목천으로 꽁꽁 감고
해바라기 검은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던
톱밥 가루 날리던 목공소를 지나
굴다리 밑을 또각또각 지나
동인천 일번지다방에 나갔다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공가(空家)
함부로 꽃이 피고 있었다
낡은 철문에 붉은 글씨,
공가(空家)
버리고 간 집들이 도시를 이룬
가정오거리 재개발지구 루원씨티
어서 오십시오 장터할인마트 팻말에도
위험 접근 금지 써 붙인 낚시집 썬팅에도
목련왕대폿집과 정아호프 부서진 문에도
책임 중개 새시대부동산 건물에도, 있었다
꽃나라유치원 구름다리 앞
개나리 이마 으깨어진 노란 줄이 쳐졌다
안전망에 갇힌 빌딩
깨진 유리창 안에서 굶주린 개들이 서로를 물어뜯고
비전축복교회 뒷마당에서는 부서진 의자가 못을 버렸다
드림빌라 사람들 모두 사라졌는데
붉은 글씨, 전체공가(全體空家)
방범 초소도 불을 끄고 웅크린 채 벌벌 떨고 있는데
뾰족구두가 허물어진 집을 찾아 다급하게 걸어간다
담쟁이들 손 꼭 잡고
녹슨 철탑 십자가 위로
버림받기 위해
올라가고 있었다
겨울의 감정
당신이 오기로 한 골목마다
폭설로 길이 가로막혔다
딱 한번 당신에게
반짝이는 눈의 영혼을 주고 싶었다
가슴 찔리는 얼음의 영혼도 함께 주고 싶었다
그 얼음의 뾰족한 끝으로 내가 먼저 찔리고 싶었다
눈물도 얼어버리게 할 수 있는
웃음도 얼어버리게 할 수 있는
겨울이라는 감정
당신이라는 기묘한 감정
눈이 내린다
당신의 눈 속으로
눈이 내리다 사라진다
당신 속으로 들어간 눈
그 눈을 사랑했다
한때 열렬히
사랑하다 부서져 흰 가루가 될 때까지
당신 속의 나를 사랑했다
그러나 오늘 다시 첫눈이 내리고
눈처럼 사라진
당신의 심장
내 속에서 다시 뛰기 시작한다
[출처] 시집 592. 이설야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작성자 느티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