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서점 위트 앤 시니컬에서 [문정희]
홍수 속에 마실 물이 없어요?
한탄과 감상의 곰팡이, 하수구에서 올라 온
흙탕물에서 헤엄쳐요
갑옷을 입고 비를 피해 서있는 겁쟁이들이
언어를 방귀처럼 내 질러요
대형 마트에 시를 납품한 후 기득상권 속에 서있는
을씨년스런 어깨들이
동네 장마당에서도 좀 팔려야 한다며
위로와 교훈의 호흡으로 응석을 떨어요
장사꾼의 내비게이션을 장착한 날개들이
이 나무에서 저 나무 가지로 날라 다녀요
어떤 것은 과장된 가치와 역할을 강조하고
어떤 것은 난장에서 나온 민예품처럼 낡아가요
"이거 무슨 물건이죠?"
"그걸 모르시다니...꼰대...?"
블랙리스트 보다 블랙홀이 더 두려워요
독특하지 않으면 백지가 더 빛나요
활자를 겁내지 말고 날카로운 못으로 파세요
시는 충동이자 충돌
사랑이 그렇듯이 완벽할 수 없어요
이슬보다 땀이 더 뜨거워요
퇴폐 혹은 멸망, 여기는 상처 박물관
자 쏠 테면 쏴라! 홀딱 벗으세요
어떤 언어의 범람도 나체를 뚫지 못 하죠
제발 마실 물 좀 주세요
침묵과 보석을 꿰뚫는 눈알로
위트 앤 시니컬을 쓰세요
- 시와편견, 2021 겨울호
* 이천십육년, 늦가을에 신촌에 있는 서점, 위트앤시니컬을 간 적이 있다.
카페회원들과 그나마 가장 많이 앉을 수 있는 탁자를 차지하고 시낭송을 했었다.
유희경시인이 운영한다고 해서 누가 주인장일까 했지만
유희경시인은 지방으로 강연을 가고 없었다.
회원중에 누가 오은시인의 시를 낭송했는데 헐! 뒤에서 귀기울여 듣는 종업원(?)이
나중에 자기가 오은시인이라는 거였다.
서점 주인장을 대신해서 하루 근무해주는 거란다.
지금도 시집을 파는 서점으로 존재하고 있어 다행이다 싶다.
교보나 영풍문고를 가면 많은 시집을 접할 수 있지만
요즘은 알라딘중고서점에 더 자주 간다.
몇년전까지는 중고시집이 그다지 없었지만 요즘은 점점 양이 늘어나고 있다.
골라보는 재미와 사고 싶었던 시집을 살 수 있어 좋다.
그런데 가끔 어느 시인이 어느 분에게 시집 표지 뒷장에 누구누구 선생님께,라고 친필 사인을 한 걸 보게 된다.
어느 분인지는 모르지만 침묵과 보석중에 침묵을 선택하신 분이었다는......
나야 시인의 필체를 볼 수 있어 좋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