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부엌안에서 그들이 본것은 옛날식 구조의 부엌 곳곳에 있는 쥐의 무리와
들짐승의 시체,들끓는 구더기떼 그리고 저녁으로 먹을때 보았던 밥상이었다.
특히 자신들이 먹었던 밥상은 구더기들의 천국이라 해도 좋을만큼 그릇안과
밖으로 누르스름한 빛을 띈 흰색의 크고작은 그것들이 떼를 지어 점령하고
있었다. 쌍둥이들이 무엇을 먹은건지는 굳이 말을 안해도 상상가능한 일이
기도 했다. 다정하게(?) 번갈아가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토하고 있는 두
소년, 소녀를 딱하다는 듯이 쳐다보던 선궁이 말을 걸었다.
“복숭아.......더 먹을래요?”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토하고는 정신을 못차리는 쌍둥이들은 선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먹은 복숭아의 향기와 맛이 왠지 자신들이 먹었던
‘그것’들을 싹 쓸어 내려 가버릴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린과 마린은 선궁이
건네주는 복숭아 조각을 받아 입안에 넣고는 그 향기와 맛을 오래도록 간직
하려고 사탕처럼 입안에서 굴리며 조금씩 깨물어 먹었다.
“.......그런데 오빠.....혹시 이 복숭아 조각도 이상한거 아닐까?”
“..........알수없는 짐승의 뇌 골수 ......이런거...?”
“........죽을래...........”
“너가 먼저 물어 봤잖아 .........”
“확ㅡ그냥!”
“히이익......”
투닥거리는 둘을 보며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던 선궁은 무언가 생각이
난듯 아린에게 물었다.
“설화호님의 아이............저 백호를 발견한것은 어느쪽인가요?”
“........우물우물............저쪽 방에 보면 방안에 또다른 문이 하나 있어요. 그
안에 있었어요.“
남은 복숭아 조각을 마저 씹으며 아린은 선궁에게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방에 들어간 선궁은 방안을 살펴보며 그 문을 찾으려했다. 하지만 아린이
말했던 또다른 문의 모습이 선궁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조그마한 방이고 복잡한
구조가 아니라서 못찾을리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문은 보이지 않았다.
[...........]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선궁이 다시 거실로 나왔을때 쌍둥이들은 마당으로
내려가려던 참이였다. 그리고 마당에서는 비형과 커다란 아기(?)호랑이 호야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아....정말 이 호랑이 새끼가 !! 너 엄마는 따로 있다니까 !! 그 엄마한테 가야
한단 말이야 !!!“
“...................”
백호앞에서 과장된 몸짓으로 손을 위아래로 흔들면서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호랑이를 어르고 달래려는 사내와는 달리 백호는 그저 앉아서 시큰둥한 표정으로
옆만 쳐다보고 있었다.
“아휴ㅡ 진짜, 이렇게 커지기전에 아까 들고 튀었어야 했는데.
이게 다 너네 때문이야 ㅡㅡㅡㅡㅡㅡㅡ!!!!!!!!!!!!"
갑자기 비형의 손가락이 쌍둥이들을 가르키자 마당으로 걸어오던 아린이 입을
삐죽대며 호야 옆으로 가서는 호야의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예쁜 호야한테 저 아저씨는 옆에서 소리만 지르고... 이 아이의 진짜 엄마가
알면............어찌될까.......?“
“ㅡㅡㅡㅡㅡ!!!”
뒷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사내의 얼굴표정에는 아랑곳없이 아린은 호야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이왕 이렇게 된거 호야 내가 너 키울까?”
“.......저녀석 먹이 주려면 동물원 한개도 며칠 못갈것 같은데...."
아직 호야의 덩치 때문에 가까이가지 못하는 마린이 아린의 뒤편에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빠, 얘는 희귀종이잖아. 스폰서같은게 많이 붙지 않을까?”
“경찰이 먼저 붙을것 같은데....호랑이 키우는거 불법 아닌가...?....?”
“하여튼 오빠는 너무 비관적인 생각만 먼저해 ㅡㅡ 그치, 호야~?”
“갸르르르릉 ........”
“.......................”
누가 뭐라던 호야에게는 아린이 엄마인듯 아린에게 계속 비비적거리며 갸르릉
거렸다. 마린은 아린이 진짜로 저 거대한 백 호랑이를 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들자 엄마 아빠의 허락여부를 상상해 보았으나 잠시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깡패......하고는 비교도 안돼.......진짜로 기절하실거야...........]
생각이 그에 미치자 아린과 호야를 보는 느낌이 착잡해졌다.
“장난은 거기까지야, 인간 꼬마들.”
쌍둥이들이 옆을보니 비형이 팔짱을 끼고 둘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이 아이는 너희가 키울수있는 애완동물 정도의 것이 아니야. 이 세상의 다섯
방위를 수호하는 방위신 중에서 서쪽을 수호하는 백호족 “설화호”의 아들이라고.
이 아이는 설화호의 뒤를 이어서 방위신이 되어야 한단 말이다..“
“.....................”
“......................”
얘가 뭐래니 하는 표정으로 쌍둥이들이 비형을 쳐다보자 비형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을 이었다.
“이거이거........인간들의 교육이 갈수록 엉망이구만. 기본적인 것도 알고있지를
않으니....... 이러니 세상이 죄다 지들 것인냥 안하무인해서 싸움질만 하고있지.
어쨌든, 간단히 핵심만 이야기하면 이 아이는 너희들이 키울수 없다.
엄마에게 돌려 보내야 해.“
“호야가 안간다잖아요~! 그리고, 엄마면 직접 찾으러 올것이지 왜 다른사람을
시킨데? 키울생각 없는거 아냐?“
아린은 호야의 목 (.....의 일부)을 두팔로 끌어 안으며 비형을 향해 톡 쏘았다.
“..........인간 꼬마......방위신이라는 존재의 특성을 모르는 무식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만......... 자자, 너희들이랑은 더 이야기 못하겠다. 강제로라도.......“
샤아아아아아아아아..............................
사내가 품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려는 그 때, 갑자기 일행이 있는 곳 주변의
다른집들 사이에서 바람소리 같은것이 들리더니 한밤중임에도 불구하고 시야가
밝아졌다.
“불입니다.”
선궁이 비형과 호야, 쌍둥이가 있는쪽으로 급히 걸어오더니 주변을 돌아다보며
말했다.
“그것도.....우리를 둘러싼 불이군요.”
이들이 현재 있는 마을은 원형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 집은 마을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불을 낸건 확실한데 일행중 아무도 눈치 못챘을
정도의 기민함과 술수로 이 집을 둘러싼 마을 전체를 불질러 버린 것이었다.
“불길이 중심을 향해 오고 있습니다. 마을 밖에서 누군가가 바람을 일으켜
불길을 조정하고 있어요. 빨리 피해야 합니다.“
선궁은 말을 마치자마자 아까처럼 쌍둥이의 허리를 잡고 위로 날아오르려 했다.
그러나 호야가 아린의 옷을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날수가 없었다. 여기서
헤어지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것 같았다.
“선녀님, 호랑이는 같이 못 날아요?”
호야와 선궁을 번갈아 쳐다보며 아린은 당황해서 말했다.
“제가......저 아이를 잡으면 되지만 그렇게 되면 두 사람중 하나를 놓아야 합니다.
넷은 안되요. 그건 어쩔수 없는 일입니다.“
“선녀님이 호랑이를 잡고 오빠가 호야등에 타면요?”
“.......미안해요. 같이하는 숫자가 넷이되면 날아갈수가 없습니다. 저까지
포함해서 셋, 그 이상은 저도 어찌 할수 없어요... 누구를 선택할건가요?“
“으............”
아린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마린은 속으로 겁이 덜컥 났다.
[호야를 데려간다고 하면 나는 어찌되는 거지? 저기 있는 저 비형이라는
사람과 남는데......저 사람이 날 구해줄것 같은 성격은..........]
그 사람은 아린을 잡고있는 호야를 쳐다보고는 성질이 머리끝까지 난듯 무섭게
아린과 마린을 번갈아가며 째려보고 있었다.
[아....안돼.....난 죽을거야......제발....아린아........
17년간의 가족애를 생각해서라도..]
슈아아아아아아아~
마린이 아린의 선택을 기다리며 떨고 있을때 일행을 둘러싼 불길이 갑자기 위로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설마........”
선궁이 주변의 솟아오르는 불길을 보고는 비형에게 말했다.
“비형, 혹시 설화호가 자신의 거처로 바로 올수있는 길을 알려주지 않았나요?”
“확실히 선녀 선궁은 아는것이 많군, 나이가 많아서 그런가~”
“나이는 당신이 더 많잖아요, 일단, 말다툼은 나중에 하고 길을 여세요. 그
아이가 이 인간 아가씨를 놓지 않으니 다 같이 가는 수 밖에 없어요.“
“네네~~ 선궁님, 쳇, 어쩔수없군, 이상한 것들을 끌고가면 설화호가 잔소리를
할지도 모르는데, 아~~귀찮아~~~~~~~“
비형은 굉장히 귀찮은 표정으로 품안에서 작은 직사각형의 거울 하나를 꺼내고
땅에 내려 놓았다.
“설화호의 거처를 허가 받은 자, 그대에게 이야기 한다. 길을 열어라....”
비형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거울이 반짝하더니 일행이 있는 곳 옆, 계단 서너개
올라간 높이쯤의 허공에 복잡한 문양이 새겨진 둥근 빛의인을 띄워 올렸다.
“자~ 뛰어 들어 가라고 ~!”
말을 마치자마자 선궁이 쌍둥이들을 안고 뛰어들었고 그 뒤를 호야, 비형이
따랐다.일행이 다 들어가자 빛의 인이 사라지며 밑에있던 작은 거울도 자취를
감추었다.그와 동시에 집주변을 둘러싸고 하늘 높이 솟아오르던 불길이 일행이
있던 집을 향하여 내려 꽂혔고 순식간에 그곳은 불바다가 되었다. 엄청난 불길이
그 마을을 태웠지만 그 마을 밖으로는 불길이 번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한정된
공간에서만 사용할수 있는 주술인듯 했다.
“.........................”
마을 밖 숲속에서 계속 입으로 무엇인가를 중얼거리며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그림자는 솟아오른 불길이 중심을 향해 덮치는 것을 본 후 몸을 돌려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리고 사라진 그 그림자의 뒤편으로 불타고 있는 마을 고개 너머에
사람 하나가 작은 수레를 끌고 마을쪽으로 오고 있었다. 작은 키, 꽃무늬 바지에
허름한 운동화를 신고 하얀색 여름 웃옷을 입은 그 사람은 왼쪽 다리를 절면서
오다가 수레가 무거운 듯 잠깐잠깐 내려놓고 숨을 고른 뒤 다시 걸어가고는 했다.
마을의 입구에 다가올수록 불기운이 돌아 보통의 사람 같으면 이미 벌써 도망가
버렸을 법한데 이 사람은 아랑곳 없이 마을의 입구쪽으로 계속 걸어갔다.
입구를 지나서도 파도처럼 일렁이는 불길은 전혀 상관없다는 듯 멍한 얼굴로
마을안으로 걸어들어갔고 결국,곁에서 덤벼드는 불길이 바지자락에 붙어 옷을
타고 올라가 그 사람의 찢어진 왼쪽 웃옷사이로 보이는 뼈까지 그을려 버렸다.
휘오오오오오오.................................
불길이 잠시 머물었던 그 사람의 신체는 순식간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끌고가던 수레의 쇠 손잡이만 좀 더 오래 불길을 버텼을 뿐이었다...
모든 것을 태울것 같던 불길이 점차 수그러 들면서 마을 안에 있던 모든 것들은
사라지고 이후 마지막 불꽃이 다하자 그곳은 마른땅과 돌 몇 개만 나뒹구는
빈터가 되었다. 마을이 있었던 흔적도 발견할수 없었고 불이났던 흔적은
더더욱이 발견할수 없었다. 단지, 깊은 산중에 연못과 벼락맞은 고목을 이웃한
공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세월이 흐르면 초목과 나무가 자랄수는
있겠으나 현재는, 그러했다.
첫댓글 흠... 무협 다 쓰고 나면... 판타지에도 도전을 해봐야겠네요 ㅋㅋㅋ
와..루카스님 오셨어요~ 제 글에서 뵈니 더 반갑네요.ㅎㅎ
저는 무협은 쓸생각도 못해요.^^;; 좋아는 하는데...주로 김용 선생님의 책을 많이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