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漢詩를 영화로 읊다] 거울 속 나에게
|거울속 늙은 얼굴 보며,
| 쉰살 넘어 얻은 깨달음…
| 마음 편히 살아가리니
영화 ‘분노의 주먹’에서 제이크 라모타는 거울 속 자신을 보며 지난 삶에 대한 회한을 드러낸다. MGM/UA 제공
영화학자 자크 오몽(Jacques Aumont)은 영화 속에서 얼굴이 가장 민감한 이미지의 영역이라고 설명한다(‘영화 속의 얼굴’). 한시에서도 얼굴은 민감한 소재로 그림, 거울, 물 등 얼굴을 응시할 수 있는 매개물을 통해 ‘나 자신이기도 한 타자’를 주목했다. 당나라 백거이도 자신의 얼굴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시인이다.
✺ 自詠(자영 - 나 자신에 대해 읊다)
夜鏡隱白髮(야경은백발) 밤 거울에 얼굴을 비추니 백발이 숨어있고,
朝酒發紅顔(조주발홍안) 아침술에 술 마시니 젊을 적 홍안이 된다.
可憐假年*少(가련가년소) 가련하게도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自笑須臾*間(자소수유간) 인생 잠깐임이 혼자 웃노라.
朱砂*賤如土(주사천여토) 주사를 흙처럼 천하게 여겨,
不解燒爲丹(부해소위단) 태우면 단약이 됨을 알지 못한다.
玄鬢化爲雪(현빈화위설) 검은 머리 백발이 되어도,
未聞*休得官(미문휴득관) 아직 벼슬을 그만 두지 못하네.
咄哉*箇丈夫*(돌재개장부) 한심하여라 못난 한 사내여,
心性何墮頑*(심성하타완) 심성이 얼마나 게으르고 어리석은가.
但遇詩與酒(단우시여주) 시와 술만 만나면,
便忘寢與飧(편망침여손) 잠자고 먹는 일도 잊어버린다.
高聲發一吟(고성발일음) 소리 높여 한번 읊으면,
似得詩中仙(사득시중선) 마치 시 속의 신선이라도 된 것 같다.
引滿飮一琖(인만음일잔) 가득 채워 술 한 잔 마시면,
盡忘身外緣(진망신외연) 세상일은 모두를 잊어버린다.
昔有醉先生*(석유취선생) 그 옛날 취선생은,
席地而幕天(석지이막천) 땅을 자리로 삼고 하늘을 장막으로 삼았다.
于今居處在(우금거처재) 지금 거처할 곳이 있어,
許我當中眠(허아당중면) 나는 그 속에서 잠을 잘 수가 있다.
眠罷又一酌(면파우일작) 잠에서 깨면 또 술 한 잔 마시고,
酌罷又一篇(작파우일편) 마시고 나서 또 한 편의 시를 읊는다.
回面顧妻子(회면고처자) 고개 돌려 처자식을 보니,
生計方落然*(생계방낙연) 생계는 이제 막막하다.
誠知此事非(성지차사비) 진실로 이런 삶이 잘못인 줄 알고,
又過知非年*(우과지비년) 내 나이 쉰 살도 또 훌쩍 넘었네.
豈不欲自改(개부욕자개) 어찌 스스로 고치려 하지 않았으랴마는,
改卽心不安(개즉심부안) 고치자니 마음이 편치 못하구나.
且向安處去(차향안처거) 우선 마음 편히 살아가리니,
其餘皆老閑*(기여개노한) 나머지는 모두 늙어 한가로울 터이니.
-醉吟先生 白居易(취음선생 백거이, 772~846·中唐의 詩人)
* 假年(가년) ; 하늘이 내려준 수명.
* 須臾(수유) ; 아주 짧은 시간.
* 朱砂(주사) ; 붉은 빛이 나는 광물질. 천연적(天然的)으로 나는 유화수은(硫化水銀). 짙은 붉은빛의 광택(光澤)이 있는 육방정계(六方晶系)에 딸린 덩어리로 된 광물(鑛物), 한방약재로 쓰이며 도가에서는 신선의 장생불, 사약인 단약의 재료가 된다고 함.
* 未聞(미문) ; ~할 줄 모르다.
* 咄哉(돌재) ; 감탄사. 아아.
* 箇丈夫(개장부) ; 한 남자. 이 남자.
* 墮頑(타완) ; 墮는 惰. 게으르고 고집이 셈. 어리석음.
* 飧(손) ; 저녁식사. 여기서는 먹는 끼니.
* 醉先生(취선생) ; 죽림칠현 가운데 한 사람인 劉怜.
* 落然(낙연) ; 처량함, 적막함, 황폐함.
* 知非年(지비년) ; 잘못을 아는 나이. 50세.
* 老閑(노한) ; 老는 진부하게 여기는 것. 閑은 대수롭다.
거울과 그림 속 자신을 읊은 작품 중 한 수다. 유달리 시간의 흐름에 민감했던 시인은 자신의 얼굴과 함께 나이를 언급하는 시를 지속적으로 남겼다. 세상의 불의를 지적하다가 모함을 받았을 때는 초상화와 현재 자신의 얼굴을 비교하며 현실적 고뇌를 드러내기도 했다(‘題舊寫眞圖’). 이 시에서도 나이를 언급하며 생계 때문에 자신의 본성을 거스른 채 관직에 매여 있는 비애를 내비쳤다.
마틴 스코세이지(Martin Scorsese, 1942- ) 감독의 ‘분노의 주먹(Raging Bull)’(1980년)에도 주인공이 거울을 보며 독백하는 유명한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제이크 라모타는 왕년의 챔피언이었지만 승부 조작과 동생과의 의절 등 자신의 잘못으로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나이를 먹어 머리가 벗겨지고 배가 나온 주인공은 먹고살기 위해 밤무대의 사회자로 산다. 주인공은 대기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영화 ‘워터프런트(On the Waterfront)’(1954년)의 대사를 외운다. 자신의 과거를 연상시키는 영화 대사를 통해 자신의 지난 잘못을 질타하며 반성한다.
"이해를 못하는 군!
나도 어엿한 권투선수가 될 수 있었어.
건달이 아닌 뭔가가 될 수도 있었단 말이야.
You don't understand! I could a had class.
I coulda been a contender. I could've been somebody,
instead of a bum, which is what I am."
-‘워터프런트(On the Waterfront)’(1954년) 명대사 중
시인은 잘못을 깨닫고 변화해야 한다는 ‘지비(知非·50세)’도 지났다. 하지만 지난 잘못을 억지로 바로잡기보다 세상사를 편안히 받아들이고 살아보겠다고 다짐해 본다. 영화 속 주인공은 마지막에 섀도복싱을 하며 거울 속 자신에게 챔피언이라고 부르며 “나는 최고야”라는 말을 반복한다. 실수투성이 삶을 응시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자조보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여전히 필요하다. 시인이 거울 속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영조 (재위 1724~1776) 글·김두량(1696~1763) 그림 , ‘삽살개’,
1743년, 35.0×45.0cm, 개인 소장,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국립중앙박물관.
털이 복슬복슬한 삽살개가 고개를 치켜들고 사납게 짖고 있다. 영조(재위 1724~1776)가 각별히 총애하던 화원 화가 김두량(1696~1763)의 그림이다. 삽살개가 유독 사납게 표현된 이유는 그림 위 영조가 직접 쓴 시에서 알 수 있다. “사립문을 밤에 지키는 것이 네가 맡은 임무이거늘 어찌하여 길에서 대낮에 이렇게 짖고 있느냐(柴門夜直 是爾之任 如何途上 晝亦若此).” 영조가 탕평책을 반대하는 신하들의 모습을 아무 때나 짖는 삽살개에 비유하며 꾸짖는 그림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내년 영조 즉위 300주년을 맞아 8일 개막하는 특별전 ‘탕탕평평蕩蕩平平-글과 그림의 힘’에서 전시 중.
[출처 및 참고문헌: < 동아일보 2023년 12월 07일(목)|문화 [한시를 영화로 읊다] 〈71〉 (거울 속 나에게),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Daum · Naver 지식백과]
첫댓글 촉촉하게 대지(大地)를 적시는 겨울비가 내리는 아침입니다.
밤새 편히 주무셨는지요?
요즘 사회의 모순을
표현한 올해의
학자분들이 뽑은
사자성어 뜻을 새깁니다. '견리망의(見利忘義) : 눈 앞에 보이는 자기의 사익을 위해 사람의 도리는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잘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의 이 시간은 다시는 오지도 않고 되돌릴 수 없듯이 바꿀 수도 없고 어제보다,
기대할 수 없는 내일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오늘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이란 시간은 평생 한번 뿐인데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하시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의 주어진 시간을 보내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