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 [정한용]
기차를 기다린다.
여덟 식구가 짐 보따리 위에 앉아 있다.
모두 말이 없다.
딱딱거리던 군인도 지금은 딴청을 부린다.
담배 파는 아이가 지나간다.
노인이 아이를 불러 반지를 빼주고 캐러멜을 산다.
면도칼을 꺼내 여덟 조각으로 나눈다.
가족 모두 하나씩 먹는다.
기적이 울린다.
아우슈비츠.
- 천년 동안 내리는 비, 여우난골, 2021
* 영화 '피아니스트'에 나오는 한 장면을 묘사한 거다.
유태인이라는 죄로 기차역에 끌려온 사람들은 죽음의 길로 가는 길목에서
주인공의 아버지는 마지막 행위를 한다.
죽는 사람에게 반지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물론 반지에 어떤 사연이 배어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죽을 것을 예감하는데 캬라멜 한 조각이라도 등분해서 식구들과 사랑을 나누고 싶어했다.
캬라멜을 여덟 등분을 하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훗날 영화 주인공인 피아니스트 스필만은 살아남아 이 영화처럼 피아니스트로 살았다.
식구들은 작고 작은 캬라멜 조각을 혀끝으로 음미하며
사랑이 얼마나 달콤하고 크낙한 가족의 의미였는지를 깨달았을 테다.
재밌는 건 잡화를 파는 소년도 필시 유태인일 텐데 죽음을 앞에 두고 상행위를 통해 큰 이익을 얻으며
좋아하는 모습이다. 역시 유태인다운 생각일 텐데 궁금한 건 이 아이는 살았을까,이다.
큰 이익을 갖다바치고 살아남았을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