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산문집을 뒤지다 짜릿한 감흥을 주는 글 한 편을 발견했습니다. 글쓴이의 감정이 고스란히 나에게 이입되었다고나 할까. 젊은이들 표현대로라면 필이 꽂혔다고나 할까. 한국문인협회 회원인 조헌 씨의 수필 ‘구름 속에 머문 기억’이란 작품입니다.
# 知空
“공(空)에 대해 많이 알아서 법명이 지공(知空)인가요?” “아는 바가 너무 없어 지공이에요.” 샘가에 앉아 저녁 설거지를 하던 스무 살 남짓의 비구니 스님은 미소 띤 얼굴을 붉히며 들릴 듯 말 듯 작게 말했다.
반듯한 이마에 그린 듯 고운 눈썹은 정갈했고 파랗게 깎은 머리 와 맑은 눈, 그리고 단정한 입 매무새는 수행자의 모습이 역력했 지만 발그레한 두 뺨은 아직도 앳된 소녀의 모습 그대로였다.
대학 시절 여름방학, 도서관에서 여행 계획을 세우던 조 씨가 우연히 집어 든 낡은 잡지에서 찾아낸 곳은 화순 운주사(雲住寺). <천 불, 천 탑의 가람ㅡ 구름 속에 머문 절> 특집 기사에 매료된 그는 바로 다음 날 첫 기차로 서울을 떠났습니다.
광주(光州)에서 서너 시간을 기다린 끝에, 하루 두 번 다니는 완행버스를 타고 흙먼지 뽀얗게 이는 시골길을 달리고도 오리를 넘게 걸어 다다른 운주사. 석불은 대부분 머리가 없어졌고 요사채마저 기울어진 30여 년 전의 운주사는 쇠락하고 적막한 절이었습니다.
“앞선 사람들이 절 땅을 다 팔아먹어 부처님이 쓰러지고 탑이 무너진들 손을 쓸 방도가 있어야지.” “땅을 되사 절을 복원해 보려고 서울과 광주를 수없이 오가며 구걸하다시피 애를 썼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주지스님의 한숨 섞인 말에 조 씨는 절 식구들보다 더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여행 중이라 여윳돈이 많지 않네요. 겨우 땅 세 평 값이에요. 하지만 개울이 모여 큰 강이 되잖아요. 부디 스님께서 맘먹은 일 꼭 이루시길 바랄게요.“ 조 씨는 서울 갈 여비만 남기고 가진 돈 전부를 시주했습니다.
산속인데도 여름밤은 무더웠다. 난 꽤 늦도록 마당에 놓인 평상 에서 더위를 식혔다. “달빛이 대낮 같네요. 주지 스님께서 무척 고마워하세요.” 과일쟁반을 들고 나온 지공 스님은 푸른 달빛에 젖은 듯 눈부셨고 은은한 솔잎향이 풍겼다,
깊은 산 풀숲에 핀 초롱꽃이 저리 아름다울까? 평상 끝에 앉아 다소곳이 과일을 깎는 스님의 모습은 잘 빚은 조각 같았다. 대체 어떤 연유로 저 고운 모습에 잿빛 승복을 입었을까? 속된 내 궁 금증은 꼬리를 무는데 산사의 밤은 마냥 깊어 가고 별들은 쏟아져 내릴 듯 무수히 반짝였다.
이튿날 아침 길 떠날 채비를 하다 조 씨는 송광사 큰절에서 구산(九山) 스님의 법어집을 가지고 왔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평소 구산 스님을 잘 알고 있는 터라 반가운 마음에 한 권 얻을 수 있느냐고 조심스레 물었으나, 주지스님은 여유분이 없다며 미안해했습니다. 무안한 마음을 달래며 그는 땡볕 오리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이 책을 드리고 싶어요. 제 몫이에요.” 오리 길을 쫓아와 아직도 숨을 고르지 못한 스님의 얼굴은 진홍빛 이었다. 책을 건넨 스님은 작은 손을 모아 합장을 하곤 말없이 돌 아서 절을 향해 걸었다. 무슨 일인지 한 번 돌아보지도 않은 채···. 불현듯 내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조 씨는 운주사 비구니 지공 스님이 건네 준 구산 스님의 법어집 ‘석사자(石獅子)’를 30년이 지난 요즘도 종종 소중한 보물처럼 꺼내 본다고 합니다. 읽어도 읽어도 돌사자는 아무 말이 없지만, 언제나 그 책에서 결 고운 지공의 애틋한 마음씨와 자신의 무망(無望)한 그리움을 더듬으며.
옳아! 떡 본 김에 제사라고, 이참에 내 아호(雅號)를 하나 더 만들자. ‘지공(知空)’으로. 친구들과 어울린 자리에서 그 결심을 얘기했더니 왠지 뜨악한 표정들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지공(地空) 거사들인데, 그걸 호라고 짓나?” “차라리 지공(知孔)으로 해라. 나이도 찰 만큼 찼으니.” 공(空)을 안다기보다 아는 것이 없다는 나의 겸손은 뜻밖에 공(孔)으로 반전해버렸습니다.
# 知孔
평택에 있는 국제병원 이상언 원장은 자신의 전공과목(정형외과)을 수필 제목과 같은 ‘뼈대 있는 학문’이라고 은근히 자랑했습니다.
자신이 뼈대 있는 가문 출신이라고 자랑삼아 말하는 사람을 가끔 본다. 대단한 집안, 좋은 가문을 상징하는 데 우리 일상 생활에서 뼈에 관련된 표현들은 참 많다. 기골이 장대한, 피 골이 상접한, 말 속에 뼈가 있는, 골수에 사무친, 등골이 휘도 록, 뼈 빠지게, 백골이 진토 되어, 뼈를 깎는 아픔, 무골호인 등.
뼈는 우리 몸에서 기둥 역할을 한다. 근육이 힘을 쓸 수 있도 록 하는 지렛대 역할과 함께 심장과 폐 등 중요 장기를 보호 한다. 또 혈액을 생성하고 칼슘을 저장하는 창고 역할을 한다. 이렇듯 중요한 뼈를 다루는 학문이니 정형외과는 말 그대로 뼈대 있는 학문이다.
그러면서 이 원장은 나이 들면서 발생하는 골다공증(骨多孔症)을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뼈 속에 구멍이 많이 생기는 골다공증이 심하면 뼈가 쉽게 부러져 곤욕을 치르기 십상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뼈대 있는 학문이라도 부러지고 부서진 뼈를 완벽하게 원상회복시키기는 어려우니까요,
구멍 이야기가 나오니 의사들 간의 유머 한 토막이 생각납니다. 의료계에서도 정형외과 일반외과 산부인과 등 야근이 잦고 피를 보아야 하는 과목을 기피하던 시절, 같은 의과대학 동기생들이 모임을 가졌습니다. 자연스레 자신들의 일에 대한 자랑과 불평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당시 인기 과목으로 각광받던 이비인후과 의사가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요즘 우린 참 좋아. 감기환자들도 이비인후과로 몰리지, 밤중에 불려 나갈 일 없지~~~. 이 전공을 택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은근히 3D 전공과목을 택한 친구들의 속을 긁었습니다.
그때 말없이 술잔만 기울이던 산부인과 의사가 불쑥 한마디 뱉었습니다. “그래봤자 오공(五孔)이 불여일공(不如一孔)이여.” 이비인후과 소관인 다섯 구멍보다 한 구멍만 파는 산부인과가 낫다는 반격입니다.
그 덥고 지루한 여름, 혹 아는 것도 없으면서 비움의 도를 터득한 것처럼 촐싹대지나 않았는지. 허점투성이면서 오만 구멍을 다 파 보려고 바동거리지나 않았는지 스스로를 곱씹어 보며 남의 글로 잠시 더위를 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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