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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8월 03일 (월)
제목 : 아합의 실수
오늘의 말씀 : 열왕기상 20:31-43 찬송가: 276장(구 334장)
31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되 우리가 들은즉 이스라엘 집의 왕들은 인자한 왕이라 하니 만일 우리가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이스라엘의 왕에게로 나아가면 그가 혹시 왕의 생명을 살리리이다 하고
32 그들이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이스라엘의 왕에게 이르러 이르되 왕의 종 벤하닷이 청하기를 내 생명을 살려 주옵소서 하더이다 아합이 이르되 그가 아직도 살아 있느냐 그는 내 형제이니라
33 그 사람들이 좋은 징조로 여기고 그 말을 얼른 받아 대답하여 이르되 벤하닷은 왕의 형제니이다 왕이 이르되 너희는 가서 그를 인도하여 오라 벤하닷이 이에 왕에게 나아오니 왕이 그를 병거에 올린지라
34 벤하닷이 왕께 아뢰되 내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버지에게서 빼앗은 모든 성읍을 내가 돌려보내리이다 또 내 아버지께서 사마리아에서 만든 것 같이 당신도 다메섹에서 당신을 위하여 거리를 만드소서 아합이 이르되 내가 이 조약으로 인해 당신을 놓으리라 하고 이에 더불어 조약을 맺고 그를 놓았더라
35 선지자의 무리 중 한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그의 친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였더니 그 사람이 치기를 싫어하는지라
36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나를 떠나갈 때에 사자가 너를 죽이리라 그 사람이 그의 곁을 떠나가더니 사자가 그를 만나 죽였더라
37 그가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매 그 사람이 그를 치되 상하도록 친지라
38 선지자가 가서 수건으로 자기의 눈을 가리어 변장하고 길 가에서 왕을 기다리다가
39 왕이 지나갈 때에 그가 소리 질러 왕을 불러 이르되 종이 전장 가운데에 나갔더니 한 사람이 돌이켜 어떤 사람을 끌고 내게로 와서 말하기를 이 사람을 지키라 만일 그를 잃어 버리면 네 생명으로 그의 생명을 대신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은 한 달란트를 내어야 하리라 하였거늘
40 종이 이리 저리 일을 볼 동안에 그가 없어졌나이다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
41 그가 급히 자기의 눈을 가린 수건을 벗으니 이스라엘 왕이 그는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인 줄을 알아본지라
42 그가 왕께 아뢰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
43 이스라엘 왕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의 왕궁으로 돌아가려고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중심 단어: 벤하닷, 생명, 아합, 조약, 선지자, 여호와의 말씀, 대신하다
주제별 목록 작성
아합
32절: 생명을 구하는 벤하닷의 요청에 그를 자신의 형제라고 함
33절: 벤하닷을 자신의 병거에 태움
34절: 벤하닷과 조약을 맺고 그를 놓아줌
38-39절: 변장을 한 선지자를 만나 꾸며낸 이야기를 들음
40절: 그 이야기가 자신을 빗댄 것인지 모르고 스스로 판결함
41절: 변장한 사람이 선지자인 줄 알게 됨
42-43절: 하나님의 형벌 내용을 전해 듣고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감
도움말
1. 그는 내 형제이니라(32절): 벤하닷의 항복과 화해 의사를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말씀묵상
적에겐 자유를
교만이 하늘을 찌를 듯하던 벤하닷이 전쟁에서 완패하자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아합을 조롱하던 그가 이제는 아합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아합은 그에게 필요 이상의 관대를 베풀고 맙니다. 벤하닷에게 “그는 나의 형제”(32절)라고 하는가 하면 그를 자기 병거에 태우기까지 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합은 전쟁터에 나가 아람 군대를 향해 칼을 휘둘렀습니다. 그런데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화평의 얼굴을 내민 것입니다. 아합은 벤하닷이 약조로 제시한 몇몇 성읍들의 반환에 눈이 멀어 그를 놓아줬습니다(34절). 눈앞의 이익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를 저버린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자신에겐 심판을
벤하닷은 당연히 하나님의 포로였지 아합의 포로가 아니었습니다. 승리는 하나님의 것이었기 때문에, 아합에게는 벤하닷을 마음대로 놓아줄 권리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멸하도록 하신 족속에게 자비를 베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바로 율법의 가르침이었습니다(신 7:2). 하나님은 한 선지자를 통해 아합의 잘못을 간접적으로 지적하셨습니다. 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그에게는 대놓고 잘못을 지적하기보다 자신의 입으로 잘못을 시인하게 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아합은 선지자의 변장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의 유도 질문에 빠져 “네가…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40절)는 말을 내뱉었습니다. 그는 이 말이 자신을 향한 유죄 선고가 되어 심판이 집행되는 결과를 낳을 줄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도움질문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아합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아합이 벤하닷을 살려준 이유는 무엇입니까(34절)?
3. 본문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깊은 묵상
1. 여러분은 눈앞의 이익보다 하나님의 공의를 우선하기 위해 무엇을 실천하고 있습니까?
2.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실수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3. 오늘 여러분에게 주시는 특별한 말씀(깨달은 점, 느낀 점, 적용점 등)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묵상)
침례식의 은혜를 뒤로 하고 무더운 8월의 첫 주를 시작한다. 다음 주는 쉬면서 내면의 상태를 점검하고 하반기를 달려가기 위해 충전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선지자를 통해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를 말씀대로 벤하닷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하게 하신다.
겨우 목숨을 건진 벤하닷과 신하들은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아합 왕 앞에서 목숨을 구걸하게 된다.
“우리가 들은즉 이스라엘 집의 왕들은 인자한 왕이라 하니 만일 우리가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이스라엘의 왕에게로 나아가면 그가 혹시 왕의 생명을 살리리이다”
그런데 아합 왕의 반응이 예상 외로 그들을 환영한다. “아직도 살아 있느냐 그는 내 형제이니라”
조금전까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왕인데 어떻게 벤하닷이 형제가 될 수 있을까?
“그들의 신은 산의 신이므로 그들이 우리보다 강하였거니와 우리가 만일 평지에서 그들과 싸우면 반드시 그들보다 강할지라”라고 했던 교만한 자들이 어떻게 형제가 될 수 있을까?
아합 왕은 이것을 좋은 징조로여겼다. 왜 아합 왕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이 판단하기에 좋은 상황이 되자 ‘좋은 징조’로 판단하고 벤하닷을 형제로 또 그를 자신의 병거를 태워왔을까?
약삭빠른 벤하닷이 아합 왕에게 귀가 솔깃한 제안을 한다.
“내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버지에게서 빼앗은 모든 성읍을 내가 돌려보내리이다 또 내 아버지께서 사마리아에서 만든 것 같이 당신도 다메섹에서 당신을 위하여 거리를 만드소서”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아합은 벤하닷과 조약을 맺고 풀어준다.
예전에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묻지 않고 기브온 족속과 화친하는 모습과도 같고, 아멜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자기가 보기에 좋은 것을 구별하고 아각 왕을 살려둔 사울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선지자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친구에게 전하며 자신을 치라고 한다. 하지만 그 친구가 자신을 치기를 싫어하자 “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나를 떠나갈 때에 사자가 너를 죽이리라”라고 말했고 그 선지자가 말한대고 친구는 사자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 장면을 보면 “하나님 참 너무하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 그 선지자도 그렇지 미리 경고해서 그 사람이 죽지 않도록 해야지 어떻게 친구를 사자에게 물려 죽이게 할 수 있을까?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자신을 치라고 하자 그 사람은 상하도록 친다. 선지자는 그 상한 모습으로 아합 왕을 기다리다가 왕을 만나 소리질러 부른다.
“종이 전장 가운데에 나갔더니 한 사람이 돌이켜 어떤 사람을 끌고 내게로 와서 말하기를 이 사람을 지키라 만일 그를 잃어 버리면 네 생명으로 그의 생명을 대신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은 한 달란트를 내어야 하리라 하였거늘 종이 이리 저리 일을 볼 동안에 그가 없어졌나이다”
아합 왕이 변장한 선지자에게 자신이 말한대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말한다.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
선지자가 수건을 벗자 아합이 선지자인 줄 알아본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
아합 왕은 그의 말을 듣고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가려고 사마리아에 이르게 된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치지 못한 자를 왜 죽여서까지 선지자는 상한 모습으로 아합 왕 앞에 나가도록 하셨을까? 나단 선지자가 다윗 왕 앞에 나아가 비유로 그의 죄를 드러내셨던 것처럼 하시면 안 되었을까?
후에 엘리사는 자신을 죽이려고 왔단 아람 군대를 왕이 어떻게 할지 물을 때 먹을 것을 주고 주인에게 돌려보내라고 하지 않았던가? (왕하6:22)
“36 네가 나를 떠나갈 때에 사자가 너를 죽이리라!”
“40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
“42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이런 상황을 만날 때 갈등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친구 사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먼저다.
스스로 결정했으니 그가 그 결정에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하나님이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아합 왕이 풀어주기로 결정했으리 그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은 사람의 관계속에서 인정에 이끌려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공의를 지키는 것이 곧 하나님의 자비, 사랑, 은혜라는 것이다.
마치 하나님은 사랑이 없으시 분, 죄 앞에 냉정하게 용서없이 심판하시는 분, 특별히 진멸전쟁에서 하나님을 그렇게 오해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 자비보다 마치 우리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더 정의, 공의롭고 사랑이 많은 것처럼 보여진다면 그 결정은 분명 잘못된 결정이다.
아합은 하나님께서 심판하도록 맡기신 사람을 자신의 이익 때문에 살려줌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린 것이다. 아람 왕 벤하닷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만하게 이스라엘을 압제하던 자였다. 하나님은 아합에게 승리를 주신 이유가 인간적인 외교나 실속을 챙기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공의를 집행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아합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심판을 자신의 정치적 이익과 땅을 확장하는 기회로 삼았고 마치 자비로운 사람처럼 벤하닷을 형제로 여긴 것이다.
선지자를 치기를 거부한 친구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선지자의 권위보다 친구 간의 정을 먼저 생각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적인 순종의 대상이지 인간의 생각, 감정, 관계로 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선지자가 상한 몸으로 수건으로 눈을 가린 채 비참한 모습으로 왕 앞에 나타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이익을 취한 아합의 판단이 얼마나 비참하고 처참한 심판 아래 놓여 있는지를 시각적이고 충격적인 시청각 교육으로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8월을 시작하면서, 이제 하반기를 준비하는 시점에 주님은 나의 약점을 드러내신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인간적인 정에 이끌려 중요한 결정을 미적거리며 갈등할 때가 있는데 주님은 오늘 이런 모습을 버리라고 말씀하신다.
사랑의 주님. 8월을 시작하면서 하나님 말씀보다 인간적인 정에 이끌려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미적거리고 고민하고 갈등하는 종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사람들 앞에서 마치 사랑이 많은 목사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절대로 용서없고 타협하지 않는 자들을 냉정한 인간으로 비난하는 비열한 종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인간적인 정이나, 유익보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꼭 그렇게까지 해야 돼?”라는 말을 자주 했던 종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그 뜻을 따를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열심, 열정을 가진 목회자들에게 배우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 이 하루도 두 가지 사역속에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라가기 위해 준비하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ttps://youtu.be/tHOMeIU20_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