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선진국 가는 필수 관문 노동개혁,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것
조선일보
입력 2022.12.14 03:14
https://www.chosun.com/opinion/editorial/2022/12/14/QCTOKN3S3ZARDJXZBZAWLZ2Z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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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과보호에 따른 노동시장 이중구조 탓에 대기업 생산직 고령 근로자들은 정년 보장과 고액 연봉을 누리는 반면 하청 근로자 등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만성적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월 대우조선해양 1도크에서 하청 근로자들이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점거 농성을 하는 모습./연합뉴스
정부 위탁을 받은 전문가 기구가 ‘노동시장 개혁 권고안’을 발표했다. 사실상 정부안으로, 주52시간제를 월·연간 단위로 확장해 유연 적용, 호봉제를 직무급으로 전환, 파견 근로자 업종·기간 확대, 파업 기간 중 대체 근로 허용, 주휴수당 폐지 등 후진적 노동 제도를 수술하는 개혁 방안이 대거 담겨 있다. 옳은 방향이나 문제는 실행력이다. 고용부 장관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지만 안이한 생각이다. 노조와 무조건 노조 편을 드는 민주당의 반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를 제외한 역대 정권도 여러 차례 노동개혁을 추진했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노동계 반발을 돌파할 정권 차원의 의지가 약해 정치적 미봉으로 끝나곤 했기 때문이다. 노동계를 설득하기 위해 임금 체계 개편을 전제로 한 60세 이상 정년 연장, 사회 안전망 확충 등 다양한 협상 카드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산업화, 정보화 단계를 거치며 선진국 문턱을 넘어섰다. 하지만, 근로 관행과 임금 체계는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에 그대로 묶여 있다. 호봉제 탓에 30년 이상 근속자의 평균 임금은 1년 미만 근속자의 4.4배에 이른다. 호봉제 원조 국가 일본(2.4배)보다 훨씬 높고, 유럽연합 평균치의 3배에 달한다. 전체 산업의 시간당 임금 상승 폭이 지난 20년간 154%로, 미국·독일의 2~3배에 달하는 반면 노동 생산성은 미국·독일의 50~60% 수준에 불과하다. 경쟁국의 연구실은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데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경직적인 주52시간제 탓에 연구소조차 밤이 되면 불을 끄고 퇴근해야 하는 나라가 됐다.
낡은 노동 관행과 제도는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 양극화, 정규직 과보호에 따른 청년 일자리 감소, 고임금·저효율에 따른 기업 경쟁력 약화 등을 초래해 국가 경쟁력을 좀먹고 있다. 한국의 GDP 순위는 세계 9위지만 세계경제포럼이 매기는 국가 경쟁력 순위에서 노사협력(130위), 정리해고 비용(116위), 고용·해고 관행(102위) 등 노사 관계 경쟁력은 세계 꼴찌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동 제도와 관행을 고치지 않고서는 경쟁을 이길 수 없고 선진국도 될 수 없다. “(과격 투쟁만 일삼는) 노조가 죽어야 청년이 산다”고 했던 어느 전직 의원의 호소처럼 노동 개혁 없이는 미래 세대에 희망을 줄 수도 없다. 4차 산업혁명의 대전환기 속에서 경제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고 있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