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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쇼!“
1932년 6월 15일. 소파에 앉아 조간신문을 읽던 남자, 시로사키 리히토는 욕설과 함께 신문을 구겨 던졌다. 신문에는 조선에서의 최근 원산의 한 공장에서 있었던 발포사건 때문에 소요사태가 유혈사태로 비화되었다는 소식이 들어있었다.
”도대체 누가 다시 불을 붙인거지?“
리히토는 자신이 겨우 진화한 불길이 다시 활활 타오르는 것이 당혹스러웠다. 지난번 총독의 도움 요청을 받은 리히토는 자신의 비밀 친위조직인 백영(白影, 하얀 그림자)를 지휘해 파업과 노동쟁의를 일으키던 농민조직, 노동조합 등에 프락치를 심어 거짓정보를 뿌리고 내부분열을 획책해 저항이 힘을 잃도록 만들었고, 이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리히토가 진정시켰던 필드에 다시 불이 붙었다. 곳곳에서 경찰 및 조선군과 시위대가 맞붙었고 결국 조선은 준전시와 다름없는 상황에 빠졌다.
”무언가 배후가 있는 거 같은데..."
리히토는 소파 앞 협탁 위 재떨이에 놓아둔 브뤼에르 나무로 만든 고급 파이프에 연초를 넣고 뻑뻑 피기 시작했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공들여 이뤄낸 것이 일선통합인데. 리히토는 이를 이뤄내고 이를 지키기 위해 온갖 더러운 일을 꺼리지 않았다.
국채보상운동을 흐지부지 종결하게끔 만들고, 주요 독립운동 단체에 거짓정보를 뿌려 내부분열을 획책하고, 가정부를 분열시키고, 좌익과 우익이 협력하지 못하게 만들고, 해외 조선인 단체를 대립하게 만들고, 김좌진과 같은 독립군 인사들을 암살하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일본에 저항하는 이들은 조선 곳곳에 암약하고 있었다.
”가정부(임시정부)의 소행인가 아님 김원봉 놈의 소행인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파이프를 입에 물고 뻑뻑 담배를 피워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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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8월 15일에 도쿄에서 어전회의가 열렸다. 이날의 주제는 조선 문제였다. 2주 전 원산에서 있었던 노동쟁의에서 경찰이 시위대에 발포를 하는 바람에 일이 커지고 말았다. 처음엔 평화적으로 시위를 하던 이들은 점점 과격해지고 조선 전역으로 번지고 있었다.
일부 지역에선 분노한 조선인들이 주재소와 경찰서를 습격해 무기를 얻어 경찰 및 조선군과 교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물론 화력이나 질 면에선 조선군이 우세해 저항군이 밀리고 있었다. 하지만 문화통치 시절에 이뤄놓은 것들이 샤르르 녹아 없어지기 시작했다.
”당장 조선에 군을 추가로 파병해야 합니다. 그래서 불령선인들을 전부 싸그리 쓸어 조선을 평정해야 합니다!“
육군대신 아라키 사다오는 군을 추가로 파병해 조선의 소요사태를 진압하자는 강경파의 주장을 대변했다.
”그래선 아니되오!“
하지만 전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는 아라키의 주장에 반대했다. 문화통치로 풀어주고 개선해줬음에도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데. 영국이 아일랜드 독립전쟁을 진압한 것 같이 강경하게 진압하면 상황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이참에 조선인 총독 임명도 고려해야 합니다. 조선을 달래기 위해 자치의회도 개설해야...“
”아 이보쇼. 당신 용공 좌익들과 같은 소리를 하고 있네? 당신이 총독 시절 풀어줬더니 이꼴 난거 아니오. 군으로 전부 밀어버려야 한다고!“
온건파를 대표하는 사이토는 무려 ’조선인 총독 임명‘(물론 친일 조선귀족이나 자치론자)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들은 아라키는 더욱 날뛰었다.
”그렇게 군으로 밀었다 1919년이 재현되면 어쩔거요? 무력으로 때려잡는 데에는 한계가 있소. 대화로 풀어나가야 합니다.“
“한 조센징 10만 정도 죽여 본보기를 보이면 될거 아뇨!”
“영국이 인도에서 그렇게 했다가 대영제국에 충성하던 충성파, 자치령 정도로 만족할 수 있었던 온건파들도 전부 인도 독립파로 입장 바꾼거 못봤소? 무력만으론 한계가 있는 법이오!”
온건파를 대표하는 사이토와 강경파를 대표하는 아라키는 단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시작했다. 다른 참석자들은 별 다른 말을 하지도 못했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사이토의 편을 들어주냐, 아님 아라키의 편을 들어주느냐 두개 밖에 없었다.
장장 24시간. 즉 하루라는 기나긴 입씨름 끝에 마침내 결론이 났다. 결과는 사이토의 승리였다. 하지만 완전한 승리는 아니었다. 그가 주장한 조선인 총독 임명은 급진적이라는 이유로 반려되었다.
”선언합니다. 위급상황에선 선장을 바꾸지 않는 법이니 우가키 총독을 유임합니다. 조선인을 총독으로 임명하는 것은 너무나 급진적이니 일단 보류하되 정무총감에 조선인을 임명하고, 동시에 자치의회를 개설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사태 진압을 위해-“
“에라이 ㅆㅂ. 내가 지금 도쿄에 있는건지 모스크바에 있는건지 모르겠군!”
아라키 대신은 사이토의 온건안이 가결되자 격분해 자리를 박차고 회의장을 나갔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급진적 사고를 가진 육군의 청년장교들은 황도파, 통제파 가릴 것 없이 한몸이 되어 사이토가 용공좌익 빨갱이라는 내용이 적힌 공공연하게 삐라를 살포하기에 이르렀다.
태양이 점차 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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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9월 1일 오전 9시. 이미 조선에 가 있던 김필중과 부숙경을 제외한 타마히코, 가네다, 호소카와, 후네스키, 김상덕, 나쓰메, 이시와라는 경성행 기차에 몸을 실은 상태였다. 기시와 아마카스는 일이 바빠 참가하지 못했다.
8월에 있던 어전회의에서 조선인으로 이루어진 자치의회를 개설하고 조선인 정무총감을 임명하며, 동시에 소요사태 진압을 위해 관동군에게 출동 명령을 내리는 온건책이 통과됨에 따라 경성으로 향한 것이다.
이들의 뒤에는 관동군 3개 사단과 만주군 2개 사단이 탄 열차. 그리고 자폴렛 그룹 용병 6,000명과 만철 경비대 4,000명이 탄 열차가 뒤따라 오고 있었다. 관동군, 만주군이야 출동 명령을 받고 오는 것이지만 자폴렛 그룹과 만철 경비대는 왜 오냐고?
만철 경비대는 조선 내 철도 보호를 목적으로, 자폴렛 그룹은 이전에 타마히코가 총독부에 ’돈만 주면 도와줄 수 있는데 도와줄까요?‘라며 살짝 언질을 넣어봤는데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닌 총독부가 냉큼 받았기 때문이다.
기차 안, 일행들은 각자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동상이몽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관동군 3개 사단에 만주군 2개 사단. 자폴렛 그룹 6천에 만철 4천이면... 사실상 소련과 중국에 대한 견제는 포기했다고 봐도 괜찮을 수준인데.. 그렇다면 조선에게 대가로 뭘 얻을 수 있을까.."
가네다는 벌써부터 조선 측에게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계산하고 있었고.
’“잘 도망쳤겠지? 똑똑한 친구니 내 말을 잘 알아먹을거야...“
한편 타마히코는 오른쪽 다리를 덜덜 떨며 시가를 피우고 있었다. 생각에 빠져 있던 타마히코는 엄지와 검지로 시가를 잡고 입에서 시가를 빼어냈다. 그리고 후우 하며 연기를 밷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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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 정오. 기차는 경성역에 도착했다. 총독부와 조선군 측에서 보낸 인사가 이들을 맞이했다.
“만주에서 온 지원군입니까?”
김상덕이 나서 말을 받았다.
“그렇습니다.”
그 말에 조선(독립운동이 아닌 총독부) 인사들은 안심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쉬곤 웃는 얼굴로 이들을 맞이했다. 몇시간 후 자신들에게 일어날 일을 예상하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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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9시. 낮에는 내지의 지령을 충실하게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어 총독부 측의 경계를 완화시킨 일행들은 이제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 이시와라의 방에 모였다. 이미 경성에 도착해 밑작업을 하던 김필중과 부숙경도 합류한 상태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는 최종적으로 총독부와 그 주변부서를 장악하고 독립국이자 대동아혁명의 첨병 조선국 수립에 기여해야 하오. 허나 내지에서 우리의 계획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거사는 은밀하고도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하오.
메이지 원년(1868년) 1월 3일 밤. 도쿠가와 막부가 죽고 대일본제국이 세워진 것처럼... 오늘 밤은 새로운 아시아가 세워지는 중요한 시간이 될 것이오.”
이시와라는 몇 번이고 당부했지만 일행들이 혹시라도 잊어먹지 않도록 모두에게 다시 한번 당부했다.
“그럼 이제 작전을 실행토록 합시다.”
이시와라의 말을 시작으로. 경성 장악 작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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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저게 뭐지?”
화물차 기사 박병철은 화물을 실고 부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차를 운전해서 경성 밖으로 나가려던 그때. 갑자기 군인들이 길을 막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정지! 정지!”
군인들은 손을 위로 올려 차를 멈춰세웠다. 의아해하는 박병철에게 한 병사가 다가왔다. 조선인이었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부산으로 화물을 옮기는 중입니다.”
“지금 계엄령 내려진거 모르십니까? 밤 9시 이후론 통행 금지입니다.”
“전 그런 소식 못 들었는데요?”
“방금 전 총독이 계엄령을 내렸습니다.”
병사는 그렇게 말하곤 품 속에서 조선어로 적힌 공고문을 보여주었다. 우가키 총독 명의의 직인이 찍혀있었다.
“아니 부장놈 이런 소식을 안 알려주면 어쩌자는거야? 실례 많았습니다.”
박병철은 불평하며 차를 돌려 경성으로 돌아갔다. 군인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사실 길을 막고 있는 병사들은 조선군이 아닌 만주군이고 그 공고문은 가짜였다. 공고문은 부숙경이 위조한 가짜 문서였다. 계획에 따라 만주군은 경성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모든 도로와 철도를 봉쇄하고 통신국을 장악해 경성 외부로 연결되는 전선을 끊었다.
만주군은 성공적으로 외부와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을 장악했고. 도시는 봉쇄되었다. 이제 경성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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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조선군 사령부. 조선군 병사들이 하품을 하며 경비를 서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다가왔다.
“누구냐!”
병사들은 총을 들어 그들에게 겨눴다.
“쏘지 마! 우리야! 관동군이라고!”
한 병사가 등을 들어 비춰보니 관동군의 표식이 맞았다.
“미안하네. 요즘 경계가 삼엄해져서 말이야.”
“그럴 수 있지. 이해하네.”
관동군 병사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해해줘서 고맙네.”
조선군 병사들은 미안하다는 투로 말했다. 관동군 병사들이 말했다.
“자네들 졸립지 않나? 가서 눈좀 붙이지 그래.”
“하지만 우리는 경비를 서야 하네.”
관동군 병사들은 자신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우리에게 맏기게.”
“그러기에는 영 미안한데... 자네들이 온 것도 우리를 돕기 위해서 온거 아닌가.”
우물쭈물대는 조선군 병사들에게 관동군 병사들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같은 황군끼리 돕고 살아야지. 전우애라는게 있잖나?”
“그렇지만...”
“잘 자고. 내일 열심히 일하면 되지.”
“그럼... 부탁하지. 미안하네.”
조선군 병사들은 관동군에게 경비를 맏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들의 리더로 보이는 한 병사는 왼쪽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59, 58, 57, 56, 55, 54, 53....”
그는 시간을 세기 시작했다.
“10, 9, 8, 7, 6, 5, 4, 3, 2, 1, 0.”
그는 시계에서 눈을 때더니 병사들에게 무언가 손짓으로 몇 가지 명령을 내리곤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군무원 몇 명과 조선군 장교들이 업무를 보고 있었다. 관동군은 그들에게 총을 겨눴다.
“손들어! 모든 무기를 내놔!”
아군이라고 생각한 관동군이 자신들을 공격하니 이들은 매우 놀라웠다. 한 장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들 지금 뭐하는건가? 같은 편을 공....”
장교는 말을 다 끝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의 가슴에 관동군의 총알이 박혔기 때문에. 장교의 몸은 힘을 잃고 픽 쓰러졌다.
“꺄악!”
“다시 한번 말한다. 손들고 무기를 버려!”
겁먹은 이들은 무기를 버리고 손을 위로 들었다. 이들을 감시할 병력을 남겨둔 채 리더는 조선군 장병들의 숙소로 들어갔다.
“이게 뭐야?”
아래에서 들린 총소리에 잠이 깬 조선군 병사들이 방에서 나왔다. 그런 그들을 향해 관동군이 총을 겨눴다.
“다들 손들고 나와!”
자느라 비무장 상태였던 조선군은 그대로 저항 한번 못하고 항복했다. 그리고 침대에서 신나게 꿈나라 여행을 하던 하야시 센주로 조선군 사령관 및 지휘부도 전부 포로로 잡혔다.
사령부만 그런 것이 아닌. 경성 전역에 있는 조선군 부대들이 모두 관동군에게 제압되었다. 용산 무기고도 관동군이 장악했다. 이제 총독이 지휘할 수 있는 유의미한 병력은 없었다.
같은 시각. 자폴렛 그룹과 만철 경비대 역시 동양척식주식회사 본사, 종로경찰서, 경성부청, 서대문형무소 등 주요 시설을 성공적으로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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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일행들은 모두 심각한 표정으로 보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일 하나라도 삐끗하는 순간 모든게 어그러지니 말이다.
20분경부터 보고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도시 봉쇄 완료했습니다.”
“조선군 제압에 성공했습니다.”
“종로경찰서를 장악했습니다.”
뒤이어 서대문형무소, 경성부청, 동양척식주식회사 본사, 용산 무기고, 중추원 등 주요 시설들을 장악하는데 성공했다는 보고가 도착했다.
모든 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모든 것이 잘 끝났다는 보고를 들은 일행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긴장을 풀었다. 긴장이 풀리니 어쩐지 졸음이 밀려오는 기분이었다.
다른 기차편을 통해 오후 6시에 따로 도착했던 만주군 국방상이자 전 관동군 참모장이며 협화회 의원인 이타가키 세이시로는 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말을 듣자 모두에게 말했다.
“이런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내다니, 수고했네 이시와라 대좌.
제군들은 진정한 동아의 우국지사들이오. 내가 앞장설테니, 총독부로 가서 우가키 각하를 좀 만납시다.”
일행들은 이제 숙소에서 나와 총독부로 향했다. 관동군이 준비해놓은 차량 수 대가 이들을 태우고 총독부로 향할 것이었다.
숙소에서 나오는 중 타마히코와 김필중이 열에서 이탈해 총독부가 아닌 다른 곳으로 향했지만 이들은 그걸 알아채지 못했다.
첫 번째 차에는 김상덕과 후네스키, 두 번째 차에는 부숙경과 이타가키, 세 번째 차에는 이시와라와 호소카와, 네 번째 차에는 나쓰메와 가네다가 탑승했다.
"우가키 각하는 정확히 어떤 분이십니까?“
부숙경이 같은 차에 탄 이타가키에게 물었다.
“도조, 나가타 등 통제파의 지도자들의 뒤를 봐주는 인물이고... 머리가 나름 돌아가는 사람이네. 허튼 짓을 하지는 않을 거야.”
"다행이군요...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걸 보고 어떤 선택을 할지 잠깐 걱정했습니다.“
부숙경과 이타가키의 대화는 끝났다. 차는 총독부를 향해 계속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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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사이토의 입에서 나오는 인도 학살은 1919년에 있었던 암리차르 학살을 뜻합니다. 영국이 인도 독립운동을 탄압하는 롤레트 법을 제정하자 인도 전역에선 폐지를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습니다. 이 중 암리차르에서 평화적으로 시위를 하던 수천명의 시위대를 향해 영국군이 발포하면서 379명에서 1,500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사망자와 1,2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아시아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는 이 사건의 충격으로 영국 기사 작위를 포기하였습니다.
1905년의 피의 일요일이 입헌주의자, 차르 충성파 등 제정 지지자 상당수를 반제정주의자로 만든 것 처럼 암리차르 학살 역시 인도내 친영 충성파, 온건 자치론자들이 대거 인도 독립파로 선회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첫댓글 ...이번엔 딱히 할말이 생각 안나네요...
왜요? 타마히코가 나대는(...) 장면이 안 나와서?
@돈이 곧 진리 차라리 그게 나아요...자꾸 겉으론 멀쩡해보이는 그작자가 타마히코일거라는 생각이 뿌리 박혀서...
그냥 무난무난하게 조선 접수하는 얘기라서 그런것 같고...
제 최후가 점점 다가오는듯
@931117 김상덕은 죽을 수도 있고 안 죽을 수도 있습니다(?)
@돈이 곧 진리 안죽어도 걍 추방이나 공직 영구 금지될게 자명하다 보고 있으니까요.
돈님이 타마히코라면 확실하게 친소에 공산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고 군부 내에서도 그런 성향이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있는 김상덕을 살려주겠습니까 아님 살려주더라도 공직에 둘수가 있겠습니까.
토지개혁,국유화,노동자의 경영 참여등을 빨갱이들이나 할법한 소리라고 쌍욕을 퍼붓고 노동자,농민들을 아무렇지않게 비하할수 있는 타마히코가 말입니다.
+ 가만 생각해보니 제가 타마히코라도 자신이 정점에 올랐다 싶으면 최대한 빨리 죽이는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릴것 같네요.공직 영구 추방에서 끝난다 한들 군부내 어느정도 기반이 있는지라 군 숙청이 불가피할터.
그런다면 결국 사이고 다카모리처럼 반란을 일으킬수도 있겠죠.본인이 원하든 아님 주변에서 떠넘겨서 그리되든.
그렇다고 김상덕을 추방시키지 않고 남겨둔다?만에하나 공산주의자 내지 친소성향에 대한 탄압이나 철저하게 친기업 정책을 펼치며 고통받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내전까지 각오해야 할수도 있으니 그것도 안되니.남은 방법이라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