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춤의 환희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양반과 상민 고기를 사러 푸줏간에 갔습니다. 주인은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양반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여봐라, 고기 한 근만 다오.”, “예, 그러지요.” 주인은 얼른 한 근을 잘라 건넸습니다. 이번에는 함께 온 상민이 말했습니다. “여보게, 나도 고기 한 근 주게나.”, “예, 그러지요.” 그러더니 조금 전보다 더 크게 잘랐습니다. 먼저 말한 양반이 얼굴을 찡그리며 따졌습니다. “이 사람아, 같은 근인데 어째서 내 것보다 크게 자른단 말인가?” 주인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별 것 아닙니다. 손님 고기는 ‘여봐라’가 잘랐고 이분 고기는 ‘여보게’가 잘랐을 뿐입니다.”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곱다고 했습니다. 어찌 말뿐이겠습니까? 작은 배려가 큰 배려로 되돌아오는 예는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도 살면서 자주 잊어버립니다. 낮추면 높아지고 숙이면 존경받는 진리를 잊어버립니다. 그러기에 겸손은 덕이라 했습니다. 쉽게 도달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자신을 낮추려면 덕을 닦는 심정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겸손은 마음먹는다고 가능해지는 처신이 아닙니다. 주위에는 목소리 큰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별스런 자리 아닌데도 함부로 판단하고 단죄합니다. 하늘의 도움 없이는 낮춤의 신비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주는 실망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마리아 자매는 보험회사에 근무합니다. 어느 해 연말정산에서 천만 원이 사라졌습니다. 하루 종일 장부를 뒤져도 돈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생돈으로 막자니 억울했습니다. 회사에 알리자니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마음을 달래러 9일기도를 결심했습니다. 그러면서 돈을 찾으면 한 달간 주일마다 성당 화장실을 청소하리라 다짐했습니다.
삼 일째 죄는 날 직원의 계산 착오였음이 밝혀졌습니다. 9일기도는 감사기도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시작한 화장실 청소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처음 얼마간은 의무감으로 했는데 이제는 기쁨이라 합니다. 주일미사 후 화장실에서 걸레질을 시작하면 그렇게 마음이 편해질 수 없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던 이들도 지금은 웃음으로 대한다고 합니다. 어떤 신부님이 주일마다 청소하는 보속을 줬냐며 동정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웃기만 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느낌을 드러낼 수 없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그 느낌은 자신을 돌아보는 마음이었을 겁니다. 청소를 통해 마리아 자매는 ‘낮춤의 환희’를 체험한 것이 분명합니다.
쉽게 자신을 낮출 수 없습니다. 나이 들고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어려워집니다. 자리가 올라가고 명성이 높아지면 더욱 어려워집니다. 하지만 따뜻한 삶을 위해서도 낮은 자세는 필요합니다. 자신을 낮추면 심판할 일이 없어집니다. 모든 것이 자기 탓으로 보입니다. 그리하여 편안한 삶을 살게 됩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는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