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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 상식 역사상 기병의 역할의 변화 - 제2차 포에니전쟁
이재헌 추천 0 조회 168 03.12.23 03:45 댓글 1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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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3.12.23 08:19

    첫댓글 팔랑크스의 개념도 그리스와 로마는 구분이 됩니다. 그리스는 모든 구성원들이 정면을 주시한 채 창도 정면으로 세우는 형태이지만 로마군은 보병들이 아예 방패로 사방과 위까지 막게 되었죠. 로마의 팔랑크스는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없어졌다던데 아우렐리우스 원기둥에 나오는걸 봐서는 존재한듯 하더군요.

  • 03.12.23 08:21

    그리고 방진도 고대와 근현대가 다른데 고대 방진은 병사들의 시선이 정면으로만 갔던 탓에 측면이나 후미 공격에 약했지만 근대 방진은 사방에 병사들을 배치해서 공격을 막게 되었죠.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때 맘룩 군대를 상대로 펼친 사각대형(방진)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 03.12.23 12:15

    코끼리가 효력을 발휘한건 1차포에니전쟁때 뿐이죠. 그이후에는 거의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자마전투에서도 코끼리에게 기대를 걸었지만. 무참히 배신해버렸죠.

  • 03.12.23 12:17

    아참 그리고 기병이 부족했던이유는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을 탄다는것 자체가 어려서 부터 말을 탄사람이 아니면 말을 다루기가 불가능했기때문에 그랬던겁니다. 뭔소리냐면. 지금이야 등자가 있어서 말을타는걸 어느정도는 금방배울수있지만. 등자가 나오기전에는 아니었거든요.

  • 03.12.23 12:19

    로마시대에는 등자가 존재하지 않았기때문에 기사가 될수있었던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말을 타는 훈련을 받은사람들 뿐이었습니다. 그레서 귀족들이 기병을 한거죠. 유럽에서 기사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건. 등자가 개발된이후 그러니까 투르푸아티에 전투 이후의 일입니다.

  • 03.12.23 13:37

    동양에서 등자는 이미 기원을 전후해서 나타났죠. 물론 유목 민족이 먼저 개발한 것이고요. 서양 등자는 중세에 가서야 전파된 것.

  • 03.12.23 14:07

    중국에서 최초의 등자는 서진말엽에 최초로 유물로 나옵니다 그 이전에는 등장하지 않죠 그리고 처음 등자는 외등자였습니다 그게 지금의 등자 양식이 된건 동진무렵인 5세기경입니다

  • 03.12.23 20:42

    좀더 고대 전쟁사와 중세 전쟁사를 공부하시다보면 기병 병력을 도륙한 중장보병대 예가 무수히 많은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그리고 단순히 팔랑크스 예만 드셨는데 팔랑크스 이전에 호플라이트 라는 그리스 특유의 중장보병대 얘기가 나와줘야죠. 호플라이트 전술이 발전해서 팔랑크스가 출현하게 되고

  • 03.12.23 20:45

    이러한 계보가 결국엔 유럽의 전장 문화의 기간이 되는 겁니다. 게르만족의 영향을 받은 후기 제정 로마군의 특징이 매우 변질되기도 합니다만, 비잔틴 제국에서 역시 중장보병의 개념은 쭉 이어집니다. 중세시간동안 벌어진 전투가 기사들이 말타고 전투 벌인것이 다라고 생각하면 매우 큰 오산이구요...

  • 03.12.23 20:47

    서젼트 계급을 포함한 전문적인 직업군인 집단으로 구성된 중장보병대가 역시 전장의 공수의 핵을 담당합니다. 고대의 방진 개념을 재 도입해서 엄정한 규율로 강한 전투력을 보인 스위스 파이크병과 할버드병 등장 이전에 이미 화약 무기의 발전으로 인해서 기형적인 전쟁문화 양식을 전장에서 사라집니다.

  • 03.12.23 21:00

    중세에 기사들만이 전쟁의 주인공은 아니였지만 대부분 기병이외 병과는 천시 받았습니다 보병은 가난한 평민들이 자원한 비정규적인 성격이 강한 부대였고 또한 그 무기또한 빈약하기에 이를데 없었습니다

  • 03.12.23 21:02

    고대로마의 중무장보병 처럼 보병이 대우받는 시기는 화약무기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된 이후로 에스파냐 소총병이 등장이후입니다 또한 스위스의 파이크병들은 완전 용병적 성격이 강하였고 전술의 발전없이 그냥 집단돌격양상이여서 정규병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 03.12.23 21:04

    보병이 중세에 없었던건 아니지만 중세전투의 꽃은 역시 기병중심의 전쟁이였고 보병은 보조적인 병력에 불과하였습니다 전쟁의 개념이 고대와 중세가 달랐다고 할수 있죠

  • 03.12.23 22:56

    중세 보병들이 들으면 섭하겠는데요. 스코틀랜드 하이랜더, 프랑스 민병대, 아일랜드 갤로우글라스 등 강력한 보병도 존재했으니까요.

  • 작성자 03.12.23 23:14

    여러가지 태클!들에 대한 트러블슈팅입니다. 먼저 청천님 말씀도 맞습니다만 여전히 방진의 약점이 측면이라는 점에는 다름이 없었습니다. vonmusel 말씀의 경우 "고대"편에서 한 말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고요, (물론 절대적으로 동감합니다). 등자에 관해서는 나중에 다시 다르겠습니다. sorgol님의 말슴에 대해서는

  • 작성자 03.12.23 23:17

    ~ 경보병 (Peltast)과는 달리 중보병(Hoplite)들이 가장 자주 쓰던 전술이 방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덧붙여 중세는 아직 다루지도 않았습니다만... (아직 로마시대 얘기중) 장창도 개발 이전이었습니다. 카를 12세(나보다 어리군 --; 썰렁~)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보병도 장검 내지는 그보다 좋은 무기 (양손검, 기타 등등

  • 작성자 03.12.23 23:18

    ~ 를 사용하는 보병들은 어느정도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강조드립니다만 중세는 아직 다루지도 않았습니다 ㅠ.ㅠ;;

  • 03.12.23 23:34

    ㅎㅎ제닉은 제가 12살이아니라 스웨덴 국왕이름이라는;;; 그리고 제가 마지막에 썼듯이 중세는 고대와 전쟁을 다루는 개념 자체가 달랐습니다 기병이 전력의 주가 됐죠 그리고 보병이 약하다고 한게 아니라 보병이 대접을 못받았다는거죠 물론 강한 보병집단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급전력은 기병이라는게 다수죠

  • 03.12.23 23:37

    기병의 몰락은 아젱쿠르드 전투에서 그 실효성이 의문시 됐지만 주전력상 배제된건 한참뒤의 일입니다 보병이 본격적으로 활약한것도 기병이 보병과의 맞짱에서 여러차례 깨지면서 그 유효성이 입증되면서 서서히 전력으로 계산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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