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달 [김순옥]
내 안의 날씨가 너무 어려워
중얼거리는 말을 모아 쌓으면 기다란 목이 되는
목에 쌓아 올린 새 봄을 읽느라 기린은
오늘도 지각이다
빵집 출입문에 喪中이라고 쓰인 흰 종이가 붙었다
우유를 따르던 기린이
어제는 구름을 마시고 싶다고 했는데
벚나무와 목련 사이
불쑥 밀려든 파도가 흩어져
처음부터 다시,
오늘 빵집 앞을 서성이다가
喪中이라고 쓰인 나를 꺼내 술잔에 담아두고
헐거운 신발을 고쳐 신는데
끈이 손에 닿지 않는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기린
아프리카 사바나 어딘가에서 만날 법한
체크무늬 남방을 입은 기린
세상에 없는 노래를 부를 때
매번 겪는 시계 방향인데
죽어 본 적 없는 나는 꽃집 앞을 지나는 기린을 본다
목이 넘치거나 다리가 긴 봄이지
내가 눈치 채지 못하는 부분이야
- 2021년 리토피아 여름호
* 윤일이나 윤달에 태어난 사람들은 생일을 어찌 찾아먹을까.
2월이 어느 해는 28일까지, 어느 해는 29일까지 있으니 29일이 생일인 사람은 몇년은 하루 죽어지내야 한다.
윤달이 낀 해에 태어나도 몇년은 죽어지내고 마침내 찾아온 한달은 생일처럼 기쁘게 살겠다.
꽁거가 생긴 듯, 한 달은 새로운 세상을 살지도 모른다.
윤달이 낀 봄은 길게 느껴져서 뭐든지 초록초록 봄처럼 느끼며 잘 살겠다.
(윤달에는 뭘 해도 욕하지 않는다. 이 때, 수의를 지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