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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양 학살>
208년의 가을. 그 해 가을엔 비가 정말 많이 왔다. 싸우기엔 불편한 날씨였다. 하지만 어느 한쪽을 멸하기 위한 싸움은 끝없는 장마 속에서도 계속되었다. 항량은 자신의 조카 항우에게 유방과 함께 별동대를 이끌고 옛 위나라 땅을 평정하라고 명령하였다. 두 사람은 그 명령에 따라 근처의 성양을 먼저 공격하였다. 유방이 적극적으로 싸워서인지(1) 성양성은 금방 초나라 별동대에게 함락되었다. 항우와 유방이 이끄는 별동대는 성양성 사람들을 학살한 후(2) 정도(지금의 산동성 허쩌시 딩타오현)를 공격했다.
- 초한전기에서 묘사된 성양 학살극 -
하지만 정도는 성양성처럼 도륙되고 싶지 않았는지 거세게 저항했다. 항우와 유방의 군대는 정도성을 점령하지 못하고 고생했다. 마침 본대를 이끌고 복양쪽으로 간 항량의 군대가 복양 동쪽에서 진나라 군대를 대파하자 항우와 유방은 삼천군으로 이동하기로 하고 항량이 대신 정도성을 공격하기로 했다. 항량의 군대는 곧 정도성을 포위했고, 얼마 안 가서 정도성을 점령했다.
<이유의 죽음>
당시 삼천군수는 이유란 자였다. 그는 진나라 승상 이사의 아들이었다. 그는 분명 아버지의 후광으로 군수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곧 아버지나 가문의 위신을 생각해서라도 적을 코앞에 두고 내뺄 수는 없다는 뜻이었으며, 동시에 반란군에게 투항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당장 항우 등 진나라라면 이빨을 가는 초나라 사람들이 진나라 승상의 아들인 그를 살려둘리가 없었다.
당연히 이유는 필사적으로 항우와 유방의 군대에 맞서 싸웠다. 사기 고조본기나 항우본기에선 간략하게 묘사되어있지만 조상국세가나 기타 다른 부하들의 열전을 보면 이유는 삼천군내에 속한 여러 지역에서 항우와 유방의 별동대에 맞서 싸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싸우는 족족 이유의 군대는 그들에게 대패하였다.
유방의 부하 근흡은 제양에서 이유의 군대를 격파했다. 조참은 주발과 함께 위나라가 부활한 후 도읍으로 정했다가 장한에게 함락당했던 임제를 야습해 탈환했다. 주발은 이후 장현과 권현까지 공격해 점령하였다. 번쾌는 하후영과 함께 호유항을 공격해 점령했는데 이 때 16명의 적을 목베어 그 공으로 벼슬을 받았다. 사기에 기록된 전과만 이정도이니 미처 기록되지 않은 유방이나 항우의 부하들이 거둔 전과는 더했을 것이다. 이유는 몰릴대로 몰려서 옹구(지금의 허난성 카이펑시 치현)로 도주했다. 하지만 항우나 유방이나 이유를 그대로 놔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 "이유의 목을 따러 가즈아!" -
두 사람의 군대는 바로 옹구로 몰려가 이유를 쳤다. 전투의 경과는 자세히 기록되지 않았지만 하후영이 전차를 몰고 이리저리 좌충우돌하며 공을 세웠다는 기록을 볼때 상당히 치열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미 하늘은 진나라, 아니... 더 정확히는 이유의 편이 아니었다. 옹구 전투에서 항우와 유방은 승리를 거두었고 이유를 죽이고 그 목을 베었다.
이유가 죽고 옹구를 함락시킨 항우와 유방은 곧 옹구를 떠나 외황(지금의 허난성 지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유를 공격할 때와 달리 외황은 쉽게 함락되지 않았다.
<이사 -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한 명의 초나라 사람.>
이사. 그는 원래 초나라 사람이었다. 본래 군의 하급관리였는데 변소의 쥐는 오물을 먹으면서 사람이 오면 놀라서 달아나고, 곳간의 쥐는 곡식을 먹으면서 사람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보고 '사람이 잘나고 못나는 것은 쥐처럼 자기 처지에 달려있다.'는 깨달음을 얻고 순자의 제자가 되었다. 배움을 다 마친 뒤에는 6국이 약한 것을 보고 가장 강성한 진나라로 갔다. 어떻게 보면 배신행위로 보이겠지만 외국인이 다른 나라에서 벼슬을 구하는 것이 흔하디 흔했던 춘추전국시대였으므로 배신이라기 보단 구직활동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 "나 이사. 그리 만만한 사람이 아니니라!" -
여튼 그렇게 진나라로 간 그는 여불위의 식객이 되고 이후 진왕 영정의 눈에 들어 벼슬을 하게 되었다. 한때 진나라 내에서 외국인 축출 움직임이 불어 자리가 위태했지만 '황하는 한줄기 시냇물도 거부하지 않는다'는 문구로 유명한 상소문으로 외국인 축출 움직임을 저지시켰다. 이후 영정은 그의 계책과 제안을 받아들여 천하통일을 이룩했다. 당연히 그 공로로 이사의 지위는 높아져 승상에 이르렀고 그의 일족은 진나라에서 번영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진시황 영정이 죽자 그의 권세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비록 그 진위가 굉장히 의심되긴 하지만 사구에서 조고가 이사에게 말했던 "진에서 2대 이상 간 승상이 없다."는 말처럼 말이다.
- 이쯤해서 다시 보는 장초의 최대 영역. 일개 군수따위가 저지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님을 알 수 있다. -
시작은 진승,번쾌의 난때부터였다. 진승과 오광의 반군이 천하를 뒤흔들고 함곡관까지 돌파당하는 지경에 이르자 이사는 필호해에게 여러차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호해에게 간언을 했지만 호해는 그의 간언을 귀찮게 여기고 귀담아듣지 않을뿐더러 되려 이사를 문책했다.(3) 거기다 반란군이 지나가는 길목인 삼천군의 군수인 이유가 반란군을 저지하지 못 하고 형양성에서 오광의 군대를 막는데만 급급했던 것이 화근이 되었다. 장한이 진승의 목을 벨 무렵부터 호해는 이를 가지고 이사를 의심하며 질책하였다. 반란군의 기세가 워낙 강렬해 지방군으로 막지 못 하고 농성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호해는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사는 경악했다. 사기에선 호해가 질책하자 이사가 그동안 자신이 고생고생해서 쌓아올린 지위가 무너질까 두려워했다고 묘사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호해에게 '즐거움의 극치를 알아야 현명한 군주이며 신하들을 독촉하고 질책하면서 엄히 다스려야 합니다.'란 요지의 상소문을 바치며 호해의 비위를 맞추었다. 호해는 기뻐하며 일단 이사에 대한 질책을 거두었다. 대신 다른 신하들을 더 엄히 질책하고 법을 더 엄격하게 집행하고 세금을 더 과중하게 거두며 기뻐했다.
- "으음... 내 주변에 적이 너무 많아~" -
이 때 낭중령에 임명됬던 조고는 신하들이 자신을 공격할까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호해에게 '궁궐 깊숙한 곳에 있으면서 법에 익숙한 신하와 정사를 의논하라'고 하였다. 조고 자신이 호해에게 법을 가르쳤고, 법에 익숙한 자였다는 걸 감안하면 사실상 정사를 자기하고만 의논하는게 어떻냐고 말한 것이다. 호해는 그 말을 받아들여 신하들을 잘 보지 않고 구중궁궐 안에서 조고하고만 정사를 봤다. 반란이 들꿇는 이 와중에 말이다.
이러는 와중에 반란은 점점 더 심해졌다. 이사는 애가 타기 시작했다. 자신이 이룩하는데 일조했던 통일제국이 무너지게 생긴 판국인데 황제는 궁궐 깊숙한 곳에 틀어박혀있고 반란은 더 심해지니 당연한 일이었다. 점점 욕심이 많아져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까지 노리기 시작하던 조고는 그걸 보고 꾀를 냈다. 그는 이사에게 호해가 한가할 때에 황제를 만나 간언할 수 있게 해주겠다 해놓고는 호해가 연회 중일 때 이사에게 호해가 한가하다고 말했다. 이사는 그 말을 믿고 호해에게 간언을 하려고 했지만 연회 중인 호해는 당연히 그의 알현을 거부하였다. 그리고는 이사가 자기를 우습게 보는 것 같다며 꽤심하게 여겼다. 조고는 이런 호해의 오해를 부채질하며 이유가 도적떼와 내통하여 반군을 저지하지 않는다고 모함하였다.
- "나라는 위급한데 환관놈은 중간에서 장난질이나 치고 황제는 놀고 앉아있고... 아이고야." -
이 상황을 알게 된 이사는 조고가 중간에서 장난질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우승상 풍거질, 장군 풍겁과 함께 조고를 탄핵하면서 아방궁 축조 및 각종 노역을 중단해달라는 상소를 올렸다.(4) 그러자 호해는 저 셋을 잡아가두라고 지시하였다. 풍거질과 풍겁은 치욕을 당할 수 없다며 자결했으나 이사는 자기가 공로가 있고 황제에게 상소를 올리면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자살하지 않고 일족들과 함께 옥에 갇혔다. 이사는 일단 조고에게 천여번이나 매질당하며 혹독하게 고문받자 일단 반역혐의를 시인했지만 그는 옥중에서 자신의 공을 나열한 상소를 황제에게 올리며 자신의 무죄를 강변했다. 하지만 조고는 그 상소를 폐기하였다.
조고의 계략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식객들을 시중, 알자 등 황제의 측근으로 위장해 옥으로 들여보냈다. 그들은 이사가 자신의 반역 혐의를 번복하고 무죄를 주장하면 이사를 심하게 고문하였다. 나름 이사의 혐의가 미심쩍다고 느껴졌던 황제가 진짜로 자신의 측근을 옥에 보내 이사를 심문하게 했을 때는 이미 조고가 이런 장난질을 10여번이나 한 뒤였다. 이사는 진짜로 황제가 보낸 어사마저도 조고의 부하가 보낸 가짜 어사라고 여겨서인지 진짜 어사 앞에서 자신의 반역혐의를 시인했다.
그러자 호해는 자신이 이사에게 속을 뻔 했다면서 이사와 그의 일족들을 처형하라고 명령하였다. 이사는 감옥을 나가면서 자신의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 "내가 너와 함게 누런 개를 데리고 상채 동쪽 변두리에서 토끼 사냥을 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게 되었구나." -
그는 이런 말을 남기면서 오형(5)을 당한 후 함양 저자거리에서 허리가 베어지는 요참형으로 처형되었다. 호해는 어사를 보내 삼천군수 이유도 잡아오라고 명령했지만 이때는 이미 항우와 유방이 이미 이유의 목을 벤 뒤였다. 이사가 죽자 호해는 조고를 중승상으로 앉혔다. 208년 8월의 일이었다.
<항량 - 망국을 되살리려 노력한 다른 한명의 초나라 사람>
- "초나라는 다시 부활할 것이다. 내 손에 의해서!" -
항량. 그는 원래 초나라의 군부에서 명망가라고 할 수 있던 집안 출신이었다. 그의 아버지 항연은 초나라의 명장으로 진나라 이신의 군대를 대파했던 적도 있었다. 비록 왕전이 이끄는 후속 병력에게 패배하고 전사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초나라가 망하고 그는 관중으로 강제이주됬던 것으로 추측되지만 어느 시점에서 양쯔강 남쪽 회계현으로 이주해 그곳에 터를 잡고 그 곳의 유지가 됬다.
그러다 진승과 오광이 난을 일으키자 그는 군수 은통을 죽이고 조카 항우와 함께 거병했다. 마침 그를 찾아온 진승의 부하 소평을 통해 진승의 명령을 받든다는 명분을 가지고 북상한 그는 진승의 죽음을 확인하자 초회왕을 옹립하고 스스로 무신군이라고 칭한 뒤 항보에서 장한의 군대를 대파했다. 그리고 그 진나라 군대를 복양 동쪽에서 다시 한 번 격파했다.
- 기원전 208년 8~9월 무렵의 정세 -
거기다 별동대를 이끌고 있던 조카 항우는 이사의 아들 이유를 죽이고 삼천군을 취하였다. 이로써 옛 위나라 땅은 이제 거의 다 초나라 땅이 된 셈이었다. 거기다 이미 초나라는 진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부활한 여러 나라들 중 가장 강한 나라가 되어있었다. 항량은 슬슬 자만심이 들기 시작했다.
마침 이 때 과거 초나라가 아직 진나라에 망하기 전 영윤 벼슬을 지냈던 송의가 항량 진영에 나타났다. 그는 회왕의 측근이었다. 그는 항량의 모습에 찝찝함을 느낀 모양인지 그에게 충고를 하였다.
“전투에서 이겼다고 장수는 교만해지고 병졸이 나태해지면 패합니다. 지금 병졸들이 다소 나태해진데다 진의 군대는 날이 갈수록 늘고 있으니 당신을 위하는 마음에서 신은 두렵습니다”
- "장군. 너무 자만하시는 것 같은데요." "자만? 누가 여기까지 끌고 왔는데 갑툭튀해선 갑자기 간섭질이냐?" -
하지만 항량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단순히 자만해져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송의의 이후 행적을 고려해볼 때 항량은 송의의 행동이 자신의 권한을 침범한 것이라고 여겼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왕이 송의를 통해 자신의 지휘권에 개입하려고 하는 것으로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사실상 초나라를 자기와 조카 손으로 다시 일궈냈던 무신군 항량 입장에선 자신의 일족도 아니고 딱히 전쟁터에서 공을 세운 적도 없던 자가 군사 문제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이 귀찮거나 불쾌하게 여겨졌을 수도 있다. 그래서일까 항량은 송의를 제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사신으로 보낸 이유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정황상 명목상으로는 다시 한 번 제나라에 군대를 파병해달라고 청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항량에게 사실상 쫓겨나 제나라로 터덜터덜 가고 있던 송의는 가는 길에 제나라가 초나라로 보내던 사신인 고릉군 현을 만났다. 그는 초나라의 실권자 항량을 만나보러 가는 길이었다. 송의는 고릉군에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무신군에게 가는 것이 고릉군이 살 길이라고 일러주었다.
- "오래 기다렸지? 이 장한님의 활약을 시작해볼까!" -
한편 항량은 송의가 자기 눈 앞에서 사라지자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이래라저래라 할 자가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송의의 말이 맞았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장한을 두차례 크게 격파했고, 정도성까지 함락시키기는 했지만 아직 장한의 주력군은 건재했기 때문이다.
- 항량의 최후. 초한전기에선 심의문제인지 시체가 교수형당한 것처럼 묘사되어있다. -
장한은 은밀히 숨을 죽이며 때를 기다렸다. 마침 장한에게 대규모 지원군까지 당도하였다.(6) 2 8년 9월의 어느 날. 장한은 자신의 특기인 기습을 발휘할 때가 됬음을 알고 임제성에서 했던 것처럼 자신의 병사들에게 하무를 물린 뒤 밤중에 정도를 습격했다. 밤중에 갑자기 습격을 당한 항량의 군대는 대패했고, 전투 와중에 항량마저 전사하고 말았다.
<제 자리를 찾아서>
이 무렵 항우와 유방은 외황 공략은 포기하고 진류를 공격하고 있었다. 한창 진류를 공격하던 와중에 항량이 전사했단 소식을 들은 항우와 유방은 병사들이 사기를 잃어 더 이상 진류를 공격할 수 없게 됬다는 것을 깨닫고 여신과 함께 서둘러 동쪽으로 철수했다.
우이에 있던 초나라 조정도 항량의 죽음에 경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초 회왕은 바로 수도를 우이에서 좀 더 후방인 팽성으로 천도하였다. 마침 팽성에는 항우가 팽성 서쪽, 여신이 팽성 동쪽에 주둔한 상태였고, 유방이 탕현에 주둔한 상태였다.
- "가만. 생각해보니까 항량이 죽은 지금이 어쩌면 기회일지도." -
팽성으로 천도한 회왕은 이쯤 되자 슬슬 공포에서 벗어나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초나라는 미심 본인이 왕이긴 했지만 사실상 무신군 항량이 이끌던 나라였다. 그럴만도 한 것이 초나라를 다시 부활시킨 건 온전히 항량 덕이었기 때문이다. 그 자신도 항량에게 옹립된 처지였다.
그런데 그 항량이 죽었다. 그 말인즉슨 자신의 권력을 확보할 기회가 왔다는 것이었다. 회왕은 바로 왕명으로 항우와 여신의 군권을 거두어버렸다. 물론 이들을 달래기 위해 여신의 아버지 여청을 영윤(초나라에서 재상을 일컫던 관직명)에 봉하고, 여신 역시 사도에 임명한 후 항우는 장안후에 봉하고 노땅을 영지로 준 후 노공에 임명했다. 또한 유방을 탕현의 군장으로 삼고 무안후에 봉하였다.
항우로썬 아연실색할 상황이었다. 삼촌이 죽자마자 왕이 자신의 권력을 찾겠다면서 군권을 회수해버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일단 자신을 노공에 봉하여 달래는데다가 일단 왕명이라 따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항우가 화가 안 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일이 곧 터지고 만다.
(1) 번쾌열전에 의하면 성양성 성벽에 제일 먼저 오른 사람이 번쾌라고 한다.
(2) 학살을 주도한게 항우인지 유방인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이후의 행적과 항량의 조카란 항우의 입지를 고려할 시 항우가 주도자일 가능성이 크다.
(3) 이 때 이사를 문책하면서 한 말이 가관이었다. 대강 요약하자면 요임금이나 우임금이 천하를 다스린다며 누추하게 살고 온갖 고생은 다 했지만 그건 다 몸이 수고롭기만 하고 못난 사람이나 하는 것이며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존귀한 것이며 현명한 사람은 천하가 자기에게 맞추게 한다는 말이었다. 사실상 자긴 고생 안 하고 놀고 먹으면서 다스리겠다는 선언이었다.
(4) 진시황본기에선 풍거질과 풍겁, 이사가 노역 중단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하고, 이사열전에서는 이사가 조고를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고 기록되어있다.
(5) 고대 중국에서 오형이란 묵형,의형,월형 혹은 비형,궁형,대벽을 일컫는 말이다. 묵형은 죄명을 이마에 새기는 것. 의형은 코를 베는 것, 월형 혹은 비형은 발뒤꿈치를 자르는 것, 궁형은 거세, 대벽은 사형이었다.
(6) 항우본기와 고조본기에 진나라가 장한을 지원해줬다는 문구가 나온다. 정황상 왕리가 이끌던 북방군이 장한에게 합류한 것으로 보인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