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학생운동 진상규명 위원회‘ 설치를 제안하며
유세환
왜 오늘날 대한민국의 사회적, 정치적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는가? 왜 1,500여명의 전직 총리와 장관, 국회의원, 예비역 장성들이 대한민국이 건국이후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고 시국선언을 하고 거리로 나오고 있는가? 왜 많은 사람들이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고 말하기 시작하는가? 이는 과거 군부에 의해 헌정질서가 무너지던 때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위기감이다. 대한민국 국가체제의 존립 자체에 대한 불안이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대한민국이 공산화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소련과 동구 공산주의가 다 망한지 15년이 넘은 이 시점에서 왜 이렇게 두려워하는가? 바로 대한민국의 행정권과 입법권을 장악한 현 집권세력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많은 사람들이 현 집권세력인 386 세력이 과거 80년대에 공산주의 운동을 하였고, 이들이 아직까지도 그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주도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절대 다수의 국민들은 80년대 학생운동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믿고 있다. 386 정치인들에 대해서 이런 저런 말들도 많지만 그들이 80년대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고 고생했다는 점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아직까지 확고하다. 이를 근거로 지난 4.15 총선에서 386 정치인들이 대거 국회에 들어가 국회를 장악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90년대 이래 조선 동아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신문에서 80년대 학생운동이 PD와 NL이라는 두 가지 흐름으로 전개되어 왔고, 그중 NL이 주류였다고 보도해 왔다는 것이다. 신문들은 친절하게 PD는 People‘s Democratic Revolution(PDR)의 약자로 민중민주혁명파이며 정통 막스레닌주의를 주장하는 세력이고, NL은 National Liberation People's Democratic Revolution(NLPDR)의 약자로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혁명파이며 주체사상을 옹호하는 세력이라고 설명하여 왔다.
복잡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단적으로 말해 80년대 학생운동이 공산주의 혁명운동이었고, 그중 정통 막스레닌주의를 주장하는 민중민주파는 소수였으며,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주사파가 학생운동의 주류였다는 얘기였다.
이 얘기는 양동안 교수나 박홍 신부 등 몇몇 사람들이 간헐적으로 주장하던 것이 아니라 90년대 이후 거의 언론계의 정설로 인정받아 온 얘기다. 인터넷 검색창에 PD와 NL이라고 쓰고 엔터키를 누르면 관련 자료가 쏟아져 나온다. 80년대 중반 주사파의 대부였던 강철서신의 주인공 김영환씨가 90년대 후반 공식적으로 전향하면서 80년대 주사파 학생운동의 진상은 더욱 확연하게 드러났다.
PD와 NL 모두 궁극적으로 공산주의 혁명을 추구하지만, PD계열은 대한민국을 자본주의가 어느 정도 성숙한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로 보고 직접 자본으로부터의 혁명을 꾀했다면, NL계열은 대한민국을 식민지 반자본주의(半資本主義)사회로 보고 미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을 선결과제로 삼았다는데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NL계의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론(NLPDR)은 북한의 대남적화통일 노선인 민족해방 인민민주주론(NLPDR)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인민과 민중이라는 용어상의 차이에 불과한데 영문표기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의미는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핵심적인 내용은 대한민국은 미국의 식민지이기 때문에 사회주의 혁명의 첫 단계는 민족해방투쟁이고, 이를 성취한 다음에 남한 내에서 용공정권을 세운 후, 북한과 연방제 통일을 통해 완전한 사회주의 혁명을 달성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2000년 16대 총선에 임종석씨를 비롯한 386 출신 정치인들이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 대부분의 언론뿐만 아니라 조선, 동아일보조차도 이젠 좁은 이념의 틀에서 벗어나 폭넓게 세상을 보라고 386 정치인들에게 젊잖게 충고하는데 그쳤다는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보수 세력 전반에 걸쳐 공산주의는 이제 망했다는 낙관주의가 퍼져 있었다. 이 때문에 과거 공산주의 운동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몇 명 쯤 국회로 들어오는 것은 대세에 큰 문제가 없고, 이념적 다양성을 넓힐 수 있다는 차원에서 상당히 관용적으로 생각했다. 당시에 김대중의 민주당은 이들이 자신들이 추진하고 있는 햇볕정책의 충실한 옹호자가 될 것으로 보고 대거 영입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간 학생운동을 좌경용공이라고 비난해왔던 한나라당에서도 시류에 떨어지지 않으려는 목적이었는지 386 정치인들을 상당수 영입했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식자층에서는 80년대 학생운동이 공산주의 운동이었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내용이었지만, 일반 국민들은 그 진상을 더 더욱 인식할 수 없었다.
그런데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을 계기로 대한민국의 이념적 지형이 급격하게 왼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당시 햇볕정책이란 이름의 반인권적 남북화해협력 정책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시대적 대세가 되면서, 보수 세력은 이념적 기반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386 정치인들이 오히려 대한민국의 이념적 주류행세를 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북한에 대해 비판적인 보수 세력은 오히려 그들에게 수구냉전, 반통일 세력이라는 역색깔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과거 학생 운동권을 좌경용공으로 비판하던 보수 세력이 이제 그들에게 수구냉전, 반통일 세력, 다시 말해 반동세력으로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이념적 역전을 바탕으로 김대중 정권은 당시 국회를 장악하고 있던 한나라당 등 보수 세력을 압박하여 의문사진상규명법안, 국가인권위원회법안, 민주화운동보상법안, 4.3사건 진상규명법안 등 일련의 ‘개혁’입법안을 통과시켜 대한민국의 법적 체계 내에 반체적 요소를 합법화 시켰다. 특히, 민주화운동보상법안의 통과를 계기로 386 세력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를 대한민국의 법으로 확고하게 인정받고 금전적으로도 보상을 받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386 세력의 정체는 물론, 이념적 문제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는 ‘시대착오적 색깔론’으로 매도되고 극우적 행태로 규정되기에 이르렀다. 2002년 대선 당시 이인제 민주당 대선 후보는 노무현 후보를 상대로 이념적 논쟁을 시도하였으나, 예의 시대착오적 색깔론이라는 십자포화를 맞고 후보를 중도에 사퇴해야 했다. 이에 압도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제대로 된 이념논쟁은 커녕 반미시위에 기웃거리면서 시류에 동참했다. 국민들은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386세력이 누구인지 전혀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채 투표장으로 가야 했다.
결국 386의 도구이기를 자처하는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386 세력은 그를 따라 대거 청와대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들은 일찌감치 행정부의 장악만으로는 그들이 말하는 ‘개혁’을 주도하기가 곤란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또한 당시까지만 해도 동교동계 보수 정치세력이 지배하던 민주당으로서는 의회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그들은 민주당내에 신당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이른바 구태정치의 탈피라는 ‘정치개혁’을 화두로 그들만의 ‘개혁신당’을 창당했다.
지난 4.15 총선은 386 세력에게 행정권에 이어 입법권을 주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6.15 공동선언에 따른 연방제로 갈 것인가가 핵심적인 본질이었다. 그러나 386 세력은 국가보안법 폐지, 언론법 개정, 6.15 공동선언 이행 등 그들의 핵심의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이를 철저하게 숨긴 채 ‘정치개혁’과 ‘지역주의 극복’, ‘부패, 탄핵세력 청산’이라는 슬로건만을 전면에 내세웠다. 386 세력의 진상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총선 결과에 따라 대한민국이 북한과의 연방제로 갈 수 있음을 알려야 할 책임이 있는 한나라당은 이념적 논쟁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패배주의적인 ‘견제론’에 매몰되었다. 이에 따라 국민들은 총선의 의미를 전혀 모른 채 투표를 했고, 결국 386을 비롯한 범좌파 세력이 국회의 2/3를 장악하여 개헌선에 육박했다.
이제 80년대 대한민국을 미제의 식민지로 보고 미군철수와 국가보안법 폐지를 외치며 거리에서 화염병을 던지던 이들이 명실상부하게 대한민국의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한 것이다. 이제 그들은 과거사법 제정을 통해 대한민국이 과거 얼마나 잔인하게 공산주의자들을 학살하였는가를 밝힐 수 있게 되었고, 사학법을 개정하여 전교조로 하여금 명실상부하게 교육계를 장악하게 하고, 언론법을 개정하여 그나마 현 정권과 북한에 대해 비판적인 조선, 동아일보의 고삐를 바짝 죌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지난 80년대 그들을 감옥으로 보냈던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여 그들의 한총련 후배들이 이적단체의 굴레에서 벗어나 마음껏 김정일을 찬양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장차 김정일이 개선장군처럼 서울을 방문할 기반을 닦는 일이며, 결국 6.15 공동선언에 따른 연방제 실현의 마지막 장애물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최근 386 출신중에서 80년대 학생운동이 공산주의 운동이었다는 것을 증언하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터져 나고 있다. 연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한나라당 이성헌 의원이 “80년대 민주화운동은 변혁의 운동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할 정도로 반체제 사회주의 운동이었다”며 “친북주의를 주장하는 주체사상파가 운동권내 확고한 세력으로 자리 잡았는데, 이런 주사파 출신들이 지금 권력 핵심을 장악해 국보법 폐지 주장을 하고 있다.”라고 증언했다.
서울대 총학생회 사무국장과 범민련 간사 등을 지낸 홍진표씨는 “80년대 대학가와 노동현장을 중심으로 전개된 민주화 운동은 본질적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지향하는 좌파운동이었다.”며 “주사파는 80년대 중반 이후 전대협, 한총련 등을 조직해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잡았고 이들은 소위 김일성 원전을 읽고 한민전을 청취하며 북한 주도의 통일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는 “ 주사파는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친지김동(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이라는 호칭을 써가며 김일성과 김정일을 진심으로 추앙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한총련 중앙집행위원장 출신인 북한인권 정보센터 허현중씨는 동아일보 칼럼을 통해 ‘80~90년대 대학가 운동권은 김일성파에 의해 장악돼있었다.“고 증언했다. 역시 386 출신인 서강대 신지호 겸임교수 역시 똑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이 전혀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90년대 중반 이후 언론이 보도해온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대법원이 ‘92년 당시 학생운동권의 중심이었던 전대협을 북한 김정일을 이롭게 하는 이적단체로 판결하고, ’98년 이래 작년까지 내리 6년을 전대협의 후신인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판결해왔다. 대한민국의 최고사법기관이 인정한 내용인 것이다.
대법원은 ‘92년 전대협에 대해 “전대협의 노선을 결정하는 ’정책위원회‘는 북한이 주장해온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NLPDR)에 따라 우리 사회를 미제국주의 식민지로, 우리 정권을 친미 예속파쇼 정권으로 규정하는 전제하에 미군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현 정권타도, 고려연방제에 의한 통일 등을 주장하는 이적단체임”을 밝혔다.
나 역시 85학번으로, 비록 운동권은 아니어서 그들의 내밀한 사정은 몰랐지만, 당시 내가 접했던 학보, 대자보, 유인물 등을 통해 대한민국을 미국의 식민지로 보고, 국가보안법 폐지와 주한미군 철수,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던 그들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개혁세력이 아니라, 대한민국과 자본주의의 소멸, 북한과의 연방제를 통한 사회주의 통일을 추구하는 공산주의 혁명세력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제 국민들에게 진실을 말해야 한다. 이해찬 총리는 현 정권을 친북좌파로 규정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지만 이제는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려야 한다. 386 정권에 의해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고 대한민국에서 김정일 독재를 찬양하고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세력이 활개 치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60만 국군이 무슨 소용이며, 미군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먼저 한나라당이 책임지고 이 문제를 국가의 중심의제로 만들어야 한다. 한나라당 내에는 이성헌 의원 이외에 원희룡 의원, 고진화 의원 등 386 출신 정치인들과 김문수 의원, 이재오 의원 등 재야운동권 출신의 의원들이 다수가 있다. 이들은 80년대 당시 운동권의 핵심에 있었다. 이들이 주사파 공산주의 운동의 존재 여부를 몰랐을 리 없다. 이들이 먼저 자신들의 과거와 당시 학생운동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런데 이들을 중심으로 지금 한나라당에서 국가참칭 및 반국가단체 조항도 양보가능하다는 국가보안법 개정 얘기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는 것은 기가 막힌 일이다.
한나라당은 국가보안법의 개폐논의에 앞서 이것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386 정치인들이 과연 순수하게 인권확대 차원에서 이를 주장하는 것인지, 아니면 과거 그들의 민족해방운동 의 연장선상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인지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 특히, 과거사법 제정에 앞서서 가장 먼저 80년대 학생운동의 진상이 규명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한나라당 등 야당은 가칭 ‘80년대 학생운동 진상규명 위원회“를 국회에 설치하고 80년대 학생운동에 대한 진상을 객관적으로 규명하여야 한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도 이 문제에 있어서 보다 분명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한총련이 지난 6년간 대법원에 의해 이적단체로 판결을 받을 정도로 대한민국에 김정일 추종세력이 넘쳐나고 있음에도, 아직도 많은 국민들이 요즘 세상에 빨갱이가 어디 있는가라고 믿고 있는 데에는, 조선, 동아일보의 책임이 가장 크다. 조선, 동아일보는 누군가가 386 세력은 공산주의 세력이었다라고 말하는 것을 기다려 받아 적기에 앞서, 그 많은 기자들을 동원하여 당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지금도 대학 총학생회에서, 이른바 진보단체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진상을 PD니 NL이니 하는 암호로서가 아니라 쉽고 분명한 용어로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열우당도 386 정치인들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 제기에 대해 시대착오적 색깔론이라고 매도하고 엄벌하겠다고 국민들을 협박할 것이 아니라, 만약 자신이 있다면 당당하게 진상규명위원회의 구성에 동의하고 객관적 진상을 밝혀, 80년대 학생운동이 공산화 운동이었다는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을 잠재워야 한다.
특히, 386 정치인들은 이 문제에 있어서 정말 자신들이 민주화 운동을 했다면 그들이 공산주의자였다라고 말하고 있는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하든지, 아니면 진상규명 위원회에 구성에 동의하고, 자신들이 당시 어떤 입장에 있었고 지금은 어떤 입장에 있는지 정치적 공인으로서 분명한 입장을 취하여야 할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국가정보원은 특히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국가정보원은 과거 8,90년대에 걸쳐 학생운동을 좌경 용공을 넘어 좌익 주사파 운동으로 분명히 규정하여 왔다. 그렇다면 국가정보원은 그 당시 학생운동이 순수한 민주화 운동임을 알고도 공산주의 운동으로 매도한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분명히 공산주의자들이었는지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와 함께 검찰과 경찰, 기무사 등 수사, 정보기관들도 자신들이 과거 주장해왔던 학생운동에 대한 친북좌익 주장이 거짓이었는지 밝혀야 한다.
애국운동세력도 국민들에게 보다 직접적이고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언제까지 친북좌파니 하는 애매하고 국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를 하지 말고, 자신들이 알고 믿고 있는 바를 쉬운 말로 분명히 얘기해야 한다.
지금 이 문제가 매듭지어지지 않고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가? 386 정치인들이 공산주의자였다는 것을 넘어 북한의 간첩이었다는 것이 밝혀져도 대한민국에는 이들을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어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 국민들이 김정일의 노예가 되든지, 아니면 법을 초월한 유혈폭력 사태가 벌어지든지 둘 중에 하나를 피하기 어렵게 된다. 지금 80년대 학생운동의 진상이 밝혀져야 하는 근본적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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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찬성합니다.. 유시민 같은 넘이 또잇을줄알아요..? 그리고 주사파들이 이나라를 좌지우지하는건 절대 반대입니다. 민주화 운동을 빌미로 또 다른 권력을 누려온 그들을 재조사해야합니다.
딱이37님 어려운 글 읽어 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열심히 게시판에 참여해 주시는 딱이님게 늘 감사를 드립니다. 잘 쉬시고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