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백여년 동안 합스부르그 왕조의 수도로 번성했던 비엔나는, 20세기 초 새롭게 등장한 자유주의 세력과 신흥 부르조아 계급에 의해 기존 왕권이 위협받는 불안한 공기로 흔들거렸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68년 동안 통치했던 프란츠 요제프 1세(1830-1916)는 비엔나의 성벽을 허물고 그 자리를 도시 외곽을 원형으로 연결하는 순환도로로 만들었다. 그리고 도로를 따라 극장, 의사당, 시청, 대학 등의 건물을 지었고 숲과 공원을 조성했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가 된 비엔나에는 20세기 초 철학의 비트겐슈타인 등 많은 예술가들이 머물고 있었다. 특히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 이론에 대항하여, 전통적인 형이상학에 의존하지 않고 인식이론에 의해 과학적 개념들로 결론을 도출하려는 신실증주의의 비엔나 학파는, 비엔나를 무대로 활동하던 다른 예술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또 20세기의 거의 모든 문화예술에 깊은 영향을 끼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드도 당시 비엔나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비엔나를 근거지로 작품 발표를 하던 클림트, 코코슈카, 에공 쉴레 등의 화가들도 이런 영향을 받아서 세기말의 허무와 퇴폐적 분위기를 감각적 본능으로 포획하여 표현해냈다. 특히 클림트는 비엔나 분리파를 만들었고 아르누보라는 새로운 그림 운동을 시작했다. 비엔나 학파는 좁게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대항하는 철학의 한 유파를 지칭하는 것이지만 넓게는 음악의 쇤베르그, 건축의 오토 바그너, 그리고 무엇보다 20세기 지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정신분석 심리학의 프로이드 등 비엔나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예술가들을 아우르기도 한다.
라울 줄리아 감독의 영화 [클림트]는 황금빛 색조로 본능의 황홀한 세계를 감각적으로 표현한 화가 클림트의 삶을 화면에 옮겼다. 그러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등을 만든 라울 줄리아 감독은 단순히 연대기적 접근으로 다가가지는 않는다. 따라서 [클림트]는 단순한 전기영화는 아니다.
1918년 병원 침대에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죽기 직전의 클림트(존 말코비치 분)는 그의 후배이며 분리파의 동료인 에공 쉴레(니콜라스 킨스키 분)가 병문안을 오자 [꽃들 flowers]이라는 단어를 중얼거린다. 그리고 화면은 19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라울 줄리아 감독은 대중들이 이해하기 쉬운 연대기적 구성을 택하는 대신, 클림트의 그림처럼 [전체보다는 세부에 집중하고 전체적인 표현보다는 장식을 중요하게] 표현한다. 그것은 클림트의 정신세계를 영화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것이다.
비엔나에서는 퇴폐로 낙인찍혔지만 1900년 파리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에서 클림트는 [철학]이라는 작품으로 금메달을 수여 받는다. 그는 축하 파티에서 프랑스의 무희이자 여배우인 레아(새프런 버로우즈 분)라는 관능적인 여인을 소개받는다. 재미있는 것은 클림트에게 레아를 소개시켜 주는 사람이, 영화 발생 초창기에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뤼미에르 형제에 맞서 독특한 표현주의 스타일을 창조했던 감독 멜리어스라는 것이다.
라울 줄리아 감독은 1900년부터 그가 죽음을 맞이한 1918년까지 클림트의 예술세계를 독특한 스타일로 표현한다. 매독에 의해 환상을 보면서 의식이 흔들거리는 클림트의 투병과, 그의 그림 속에 [키스]에 등장하는 클림트의 평생의 연인이었던 에밀리 플뢰게(베로니카 페로스 분)를 비롯하여 누드모델 등 수많은 여인들과의 관계(클림트는 실제로 각각 다른 여인들에게서 10명의 자식을 두었다), 그리고 그의 예술적 영감을 자극하는 레아를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존 말코비치는 클림트의 관능적 세계보다는 현실에서 일탈하여 감각적 본능의 세계에 집착하면서 점차 환상을 보며 죽음의 문으로 들어가는 클림트를 연기하고 있다. 현실과 화해하지 못하고 보수적인 세력들로부터 공격을 받지만, 전투적인 클림트를 창조하는 데 존 말코비치는 관심이 없다. 죽음의 문으로 들어가는 클림트의 불안하고 흔들리는 내면을 표현하는데 주력한다.
그러나 [클림트]는 뛰어난 배우들이 화음하고는 있지만 감독의 영화다. 클림트의 내면을 구축하는데 있어서 그의 그림들을 직접적으로 연관시키지 않은 것은 매우 불만이다. [키스][물뱀][무희]같은 클림트의 대표작들이 보이고, 실제로 클림트가 활동했던 비엔나의 공간에서 촬영되었지만, 예술가의 삶을 소재로 한 영화는 결국 그의 정신적 분신인 예술 작품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클림트의 그림들을 직접적 연결고리로 선택하지 않고 배경에 머물게 한 연출은 창조적이라는 평가는 받을 수 있을지 몰라도 클림트의 그림을 좋아하는 관객들에게는 충분한 만족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