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리사이틀 갖는 미샤 마이스키, 제자와 연인만큼 애틋한 만남
첼로의 뜨거운 '사제(師弟) 대결'이 이달 한국에서 펼쳐진다. 명(名)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Mischa Maisky·60)와, 10세 때부터 그를 사사했던 장한나(27)가 한국에서 같은 기간 리사이틀을 각각 펼치는 것이다. 스승 마이스키와 제자 장한나는 18일 구미와 의정부를 시작으로 전국에서 8차례씩 연주회를 갖는다.
장한나는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1·2번으로 동료 피아니스트 피닌 콜린스와 호흡을 맞추고, 마이스키는 딸인 피아니스트 릴리와 함께 드뷔시·쇼스타코비치의 첼로 소나타 등을 들려준 뒤 하이든 필하모닉(지휘 아담 피셔)과도 협연한다. 장한나는 17일 리허설을 마치기 무섭게 그날 입국한 마이스키를 찾아가 밤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들 사제의 따뜻한 만남에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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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첼로의 사제가 헤어지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17일 저녁 서울 한 호텔에서 만난 스승 미샤 마이스키(왼쪽)는 지난해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초연한 협주곡 실황 음반을 건네주었고, 제자 장한나는 그런 스승을 조용히 포옹했다./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마이스키=1992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연주를 마친 뒤 사인회를 열고 있었다. 당시 한 신사분께서 아홉 살 여자 아이가 연주한 하이든 첼로 협주곡 C장조의 비디오테이프를 건네주셨다. 장한나의 아버지셨다. 처음엔 가볍게 여겼는데, 대만으로 가면서 테이프를 본 뒤 깜짝 놀라 '한번 가르쳐보고 싶다'는 편지를 곧바로 보냈다.
▲장한나=로스트로포비치 국제 첼로 콩쿠르가 열렸던 1994년 이탈리아 시에나에서 마이스키 선생님께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그때 용기를 내어 꺼내 들었던 곡이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였다. 음악에서 작곡가의 존재가 무엇보다 중요하며, 작곡가가 어떤 생각으로 음표를 적어 내려갔는지 이해해야 한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서 음악적으로 가장 소중한 1시간을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그 순간을 들겠다.
▲마이스키=평생 남을 가르치기보다 연주와 녹음을 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나에게 제자는 없다. 하지만 제자를 꼽으라면 장한나뿐이다. 장한나의 연주를 듣고 있던 내 조교가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벤저민 브리튼의 곡을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보다 더 잘 연주해요!"라고 외쳤던 것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날 저녁 이어 열린 연주회에서도 장한나는 무대 바로 앞 바닥에 앉아서 커다랗게 눈을 뜨고 경청했다. 너무 바짝 다가와서 첼로를 바닥에 고정시키는 엔드핀(endpin)에 찔리면 어쩌나 걱정도 했다.(웃음)
▲장한나=마이스키 선생님은 어떤 작품이든 뚜렷하고 개성적인 해석을 보여주기 때문에, 단번에 그의 음악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다. 마치 연주하는 모든 작품마다 뚜렷한 지문을 남겨놓는 것만 같다.
▲마이스키=장한나를 만난 뒤부터 '화신(化身)'이 있다는 걸 믿기 시작했다. 그는 음악적인 꽃을 피워가면서 서서히 만개하고 있는 한 송이 꽃과 같다. 다섯 살 난 내 아들 막심도 매일 밤 장한나가 연주한 '백조' 음반을 들으면서 잠이 든다.(웃음)
▲장한나=지금도 음악회를 앞두고는 매일 7시간 정도 연습한다. 연주 당일에도 무대에서 3시간 정도는 리허설 시간을 갖기 위해 애쓴다.
▲마이스키=연습은 물리적인 시간 외에도 정신을 다스리는 것 역시 소중하다. 마음이 무작정 몸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몸이 자연스럽게 마음을 따라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장한나=음악만큼은 거짓말이 통할 수 없는 것 같다. 작곡가의 뜻을 소리로 번역해주는 사람이 연주자라면, 연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심인 듯하다.
▲마이스키=바흐와 모차르트, 베토벤과 브람스는 당대보다 한발 앞서가려고 했던 작곡가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시 사람들이 지니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뜨리려고 처절하게 몸부림친 것이다. 연주자는 이 점을 이해하고 전달하려고 언제나 애써야 한다.
▶미샤 마이스키 리사이틀, 20일 오후 8시, 하이든 필하모닉 협연 26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02)599-5743
▶장한나 리사이틀, 21일 오후 8시, 12월 5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예술의전당, (02)749-1300
ㅡ조선일보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