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클로(Cyclo)
대도시에서 시클로는 다른 대중교통에 밀려 그 입지가 퇴색되고 있지만 영화 제목으로 유명세를 탄 덕에 현재는 여행자들이 잠깐 타는 경험을 맛보곤 한다. 그러나 지방에서는 손님을 태우는 것 이외에도 무거운 짐을 운반하는 등 아직도 유용한 수단 중의 하나이다. 우리 일행은 왕궁 근처 식당에서부터 도심을 지나 티엔무 사원까지 상당한 거리를 달렸다.
◈ 티엔무 사원(Thien Mu Pagoda) 베트남어(Chùa Thiên Mụ)
1601년에 건축된 티엔무 사원(Chua Thien Mu)은 베트남의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건축물 중 하나이다. 사원에 위치한 7층 21m 높이의 팔각형 탑에는 각 층마다 불상이 배치되어 있으며, 탑의 뒷면에 한자로 이 사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적혀 있다.
탑을 돌아 안으로 더 들어가면 절의 본당이 나온다. 본당 내부에는 폴란드 사람인 클로이스가 제작한 청동 불상이 있다. 본당 뒤편에는 자동차가 전시되어 있는데, 이 자동차에 얽힌 역사가 있다. 과거 베트남 전쟁 때 이 절에 살았던 틱 꽝 득(Thich Quang Duc) 스님이 있었는데 이 스님은 남베트남 정부의 불교 탄압 정책에 항의하고자, 사이공 (현 호치민)까지 차를 타고 이동한 후에 남베트남의 미국 대사관 앞에서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분신 자살을 하였다.
이 사건은 베트남을 넘어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으로써, 미국에 항전하는 ’베트남의 의지’를 보여주게 된 사건이었다.
◈ 카이딘 황릉
대남국 응우옌 왕조의 무덤 중 가장 마지막에 만들어진 카이딘 황제의 무덤은 앞서 방문했던 '민망 황제릉', '뜨득 황제릉' 에 비해 규모는 가장 작았지만, 다른 황제릉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화려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느낌의 양식의 건축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카이딘 황제릉 입구의 넓은 계단을 오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비석'이 놓여져 있는 '비각'과 광장 좌우로 놓여져 있는 무인, 문인, 병사, 코끼리, 말의 석상이었다. 무인2, 문인2, 코끼리1, 말1의 구성은 다른 황제릉과 같았지만, 카이딘 황제릉에는 병사로 생각되는 석상이 6개 더 있었다.
1920년부터 1931년까지 11년에 걸쳐 만들어진 카이딘 황제의 무덤은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로 편입되어 있던 시기에 지어졌다. 프랑스의 지배하에 아무런 힘도 권세도 없던 카이딘 황제의 무덤이라기에는 굉장히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모습이다. 이렇게 화려한 무덤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많은 예산이 필요했는데, 그는 부족한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고역에 시달리던 농민들의 세금 30%를 올려 받았다고 한다. 프랑스 식민 통치 아래 '꼭두각시 군주'나 다름없었던 그의 업적 중 하나는 '베트남어의 표기 방식을 바꾸고 '베트남어'를 공식 언어로 지정한 것'. 원래는 한자로 표기되었던 베트남어를 지금의 영어식 표기로 바꾼 것이 바로 카이딘 황제라고 한다. 카이딘 황제에게는 병약한 외동아들 '바오다이'가 있었다. 이 무덤은 카이딘 황제의 아들이자 마지막 황제였던 13대 군주 바오다이가 완성시켰는데, 정작 바오다이 황제 자신은 훗날 프랑스로 추방되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여 끝내 베트남에 묻힐 수 없었다. 이것이 카이딘 황제의 무덤이 대남국 황제릉 중 가장 마지막 무덤인 이유이다. 143년 간 지속되었던 베트남 최초의 통일왕국 '대남국'은 1945년 카이딘 황제의 아들인 13대 황제 바오다이를 끝으로 그 막이 내려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