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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에서 진리를 찾기까지
나의 소개
저는 삼대째 내려오는 카톨릭 신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작고하신 저의 할머니는 80이 넘은 고령에 카톨릭 신자가 되어 92세에 종부성사까지 보시고 잠드셨습니다. 생전에 할머니는 하루에 세 번 삼종기도를 올리셨고 그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기 위해 식사시간도 거르면서 매일 시계만 쳐다보며 사셨던 것이 기억에 납니다. 부모님 역시 할머니 장례식을 카톨릭 의식으로 치르면서 자연스럽게 카톨릭 신자가 되었습니다. 저 역시 자연스럽게 천주교가 최고의 교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가장 신자 수가 많은 큰 교단이었기에 믿을 수 있는 교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카톨릭에 입문하기 이전, 좀 더 젊은 시절에는 참 신앙 참 종교를 찾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교회 저 교회 기웃거리며 방황도 하였고 이단이라 일컫는 몰몬교에서 침례식까지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교회가 옳다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방황하다 삼대째 내려오는 카톨릭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아무런 생각 없이 조상 대대로 믿어왔던 카톨릭에서 영세를 받게 되었고, 카톨릭 의식에 따라 혼배성사로 결혼식도 하였고, 태어난 아이들에게 유아세례까지 주면서 신앙생활을 하였지만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신앙을 갖고 거의 25년이 넘도록 성당 문턱을 넘나들게 되었습니다.
카톨릭 신앙 생활
종교의 자유가 없는 사우디아라비아 현장 재직 시에는 직원 Camp 한구석에서 비밀리에 행하는 공소(신부 없이 행하는 미사 예절)에도 열심히 참석하였고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로사리오(묵주) 기도를 드릴 때면 똑같은 기도문을 반복하는 것이 지루하기도 했지만, 정성만은 주님께서 받아주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분심 없이 기도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저의 신앙은 자라지 못하고 매일 같은 생활의 반복이었습니다. 매주 미사에 참석하고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제 탓입니다.” 가슴 치며 회개하고,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바치고, 찬송가 몇 곡 부르고, 마치 교양강좌 같은 짧은 신부님 강론을 듣고 성체를 모시는 미사의식은 십 년이 넘도록 거듭되었지만, 크리스천으로 달라진 나 자신의 변화는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같은 교회 내에서도 서로 경쟁하고 술 마시고 주정하며 서로 험담하며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사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사치스러움을 자랑하는 그 모임은 교회라기보다는 사회의 어느 친교단체 모임과 다름이 없어 보일 때가 많았습니다. 그저 일주일에 한 번 나가서 미사 올리고 예수님의 몸과 피라고 칭하는 성체를 받아먹으면, 나는 그리스도 교인이 되었고 구원도 받게 될 것으로 막연히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한때는 레지오(성모 마리아의 군대)활동으로 나름대로 봉사도 했으니까 남보다 조금은 더 독실하다 자평하면서 신앙생활은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오래 다녀도 나의 신앙은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쳇바퀴 도는듯한 생활은 계속되었습니다.
교회에선 선하고 거룩한 척 미소 짓고 있었지만 속마음은 깨끗하지 못했고 적당히 음행하고 법을 어기지 않을 정도의 죄는 항상 지으면서도 인간은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나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었습니다. 물론 카톨릭 안에서도 독실한 신앙으로 절제하고 교양 있는 분들을 보았지만 정작 나에게는 아무런 변화 없이 일반 사람과 똑같은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덧 인생은 노년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진리에 대한 갈급함
시간의 속도는 자기 나이만큼 빠르다는 말처럼 세월의 속도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더 빨리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이젠 몸과 영혼이 건강한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초조함을 느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마다 “주님의 충실한 종이 되고 싶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시어 남은 인생은 당신의 종으로 헌신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리고 또 드렸습니다. 인생의 허무함이 느껴질수록 더욱더 열심히 기도 드렸습니다.
먼지만 뽀얗게 쌓여있던 성경책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고 천주교 창세기반에 등록하여 처음으로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쌓여왔던 궁금증을 해소하기엔 너무 느리고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침례교 목사님이 저의 갈급함을 이해하시고 매주 한 번 별도로 성경에 대해 개인지도를 해 주셨습니다. 일주일에 하루는 개신교회에서 다른 하루는 카톨릭에서 공부했지만, 그것만으로 하나님에 대한 궁금증이 쉽게 풀리지 않았습니다. 집에 와서는 유튜브를 검색해서 가리지 않고 많은 목사님들의 강의를 듣기 시작하였습니다. 많은 목사님이나 신부님이 강의하는 인터넷 강좌는 언제든지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공부할 수 있어서 아주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저것 듣다 보니 혼돈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진리를 찾아서
몇 달 동안 유튜브를 통하여 교단/교파를 떠나 말씀을 가리지 않고 들으면서 나름대로 새로운 참 교회를 찾기에 몰두하였습니다. 카톨릭을 십 년 이상 다녔지만 정말 성경 말씀에 너무나 무지했고 교회가 가르치는 대로 그리고 시키는 대로 하면 그것이 바로 신앙인 줄 알고 믿어왔던 나 자신의 어리석음이 참으로 후회스러웠습니다. 작은 물건 하나 살 때도 이 가게 저 가게 찾아다니며 숙고하면서 나의 영혼을 맡기는 중요한 문제는 왜 그렇게 단순하고 쉽게 교회를 결정했는지 저는 참 경솔했습니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게 되면 사랑하는 사람에 관해 모든 것이 알고 싶어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말로는 하나님을 찾고 “예수님 사랑합니다” 를 외치면서 성경책 한번 들추지 않았으니 전 지금까지 거짓으로 주님을 사랑한 것이었습니다. 회개와 번민 속에 하나님께서 저를 당신의 종으로 선택하신다면 제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손계문 목사님의 “성경의 예언들”이라는 시리즈 강의를 유튜브에서 듣게 되었습니다. 난생처음으로 다니엘서 요한계시록 등 예언서를 접하는 저로서는 설교의 내용이 신선하기도 했지만, 인류의 미래에 관한 예언의 말씀은 들으면 들을수록 궁금증이 샘 솟아오르듯이 솟구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는 이단도 많고 거짓 종교도 많으니 처음에는 의심을 품고 접근하였습니다. 인터넷에서 “생애의 빛” 혹은 ”강병국 목사/손계문 목사”를 입력하면 제일 먼저 등장하는 단어가 “이단”, “안식교에서 파직당한 목사” 등등… 수많은 비판의 글들이 제일 먼저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그 목사님의 열정적인 강의에서 영적인 순수함과 진솔함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지금껏 가슴속에 품어왔던 신앙에 대한 정의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기 시작했습니다. 한편으론 의심도 가고 망설임도 있었지만, 성경에 맞는 말씀이었고 전해지는 감동과 감화에 눈물 흘려 본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매일 밤 강의를 들으면서 잠이 들었고, 자다 깨면 또 들었고 잠에서 깨면 또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후 저의 가슴속은 온통 하나님에 대한 생각으로 달구어져 있었습니다. 잠자고 있던 저의 양심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으며 마음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게 됨을 느꼈습니다. 교회는 가지 못하고 인터넷을 통하여 혼자 예배 드려야 했지만, 지금까지 살아왔던 남 보기 위한 그리스도인이 아니었고 마음속에 살아 움직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에게 생명 주신 하나님, 나에게 올바른 선택을 하게 도와주신 하나님, 그 거룩하고 자비로우신 이름을 떠올리기만 해도 저도 모르게 감사의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진리가 살아 있는 교회는 신자가 많고 화려한 대형 건물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실천하는 바로 그곳이 진정 참 교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탄의 계략을 깨우침
인쇄술의 발달로 많은 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정작 성경은 보급될 수가 없었습니다. 카톨릭은 성경보다 교회의 권위를 더 높이기 위해 성경의 번역이나 보급을 금지했습니다. 성경을 읽거나 소유한 죄만으로 5천만 명 이상의 사람을 종교재판으로 처형했다는 믿기지 않는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카톨릭의 횡포로 말미암아 성경을 공부하고 연구하기는커녕 소유조차 할 수 없었고 본격적인 성경에 대한 보급과 연구가 시작된 것은 2~300여 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성경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근대에 와서 성경대로 믿고 말씀대로 따르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데 기존 교회는 이러한 운동을 이단이라고 정죄하려 합니다. 이러한 진리 회복운동을 이단으로 몰아붙이려 한다면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를 이단으로 몰아 핍박했던 카톨릭의 범죄를 또 다시 재현하는 것과 다름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10억이 넘는 카톨릭 신자들은 일요일을 안식일로 오해하고, 고해성사하고, 로사리오 기도를 하면서 사탄이 보여주는 이적을 성령님의 임재로 착각하며 속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일이 개신교회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탄이 장난치는 헛것을 보고 혹은 신들림 같은 빙의 현상을 보고 성령님으로 오해한다면 작두 타는 무당이야말로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아니냐고 반문하고 싶었습니다.
진실한 교회
이왕이면 큰 배가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고 안전하겠지라는 마음으로 저 역시 카톨릭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모이는 교회가 올바른 교회일 거라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엄청나게 크고 화려한 성당에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압도당하는 기분으로 저절로 기도를 드리게 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젠 웅장하고 화려한 대성당을 보면 감동에 앞서 전쟁과 수탈, 면죄부 판매 등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 엄청난 규모의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교회의 부정과 핍박당한 개혁자들의 피와 눈물이 가슴으로 느껴져서 애통할 따름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바로 교회라고(고전 3:16), 그래서 항상 성령이 임재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강건하게 하라고 가르칩니다. 아무리 명성 높고 큰 교회에서 자신의 높은 헌금고를 자랑하고 남을 위해 봉사하고 거룩한 척 흉내 내어 사람들 눈에는 존경스럽게 보일 수 있을지 몰라도 심판 하시는 하나님의 기준은 다를 수 있습니다. 성경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그럼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한 14:15)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바로 교회입니다. 사탄의 속임수에 빠지지 않고 계명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내가 바로 교회임을 이젠 압니다. 항상 성령께서 내 몸과 함께 거할 수 있도록 내 몸과 영혼을 강건하게 하여야 하며 취하지 말고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머지않아 주어진 생을 마치고 이 땅을 떠날 때 장례식도 없이, 신부님이나 목사님의 기도도 없이 쓸쓸히 땅에 묻힌다 해도 이제 그것은 중요하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적어도 남은 생애만큼은 의롭게 살았다는 주님의 한 말씀이면 언제 죽어도 행복하고 가장 은혜로운 삶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찾는 개신교인들과 천주교 신자분이 있다면 성경과 유튜브를 통해서 진실과 거짓을 확인하고 잘못된 역사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말세에는 모든 거짓된 것들이 드러납니다. 성경은 그때가 되면 인간의 왕래가 빨라지고 지식이 늘어난다고 말씀합니다(다니엘 12:4). 모든 것이 초고속화되어 있고, 아주 쉽게 인터넷을 통하여 모든 정보와 지식이 공유되고 있는 바로 이때가 성경에서 말씀하는 바로 그 마지막 때입니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이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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