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황봉(天皇峰, △810.7m) 월출산의 하이라이트는 구정봉에서 천황봉을 오가는 주릉이다. 걸음걸음 또는 계단마다 전후좌우 경점이다. 기암괴석의 전시장에 들어선 느낌이다. 혹은 날카롭고 혹은 무딘 암봉들을 사열한다. 향로봉 남동릉의 바위들도월출산 일원으로서 당당히 한 몫 한다. 그중 암반에 오뚝이마냥 서 있는 바위는 중국 황산의 비래석과 판박이이다. 바람재삼거리에서 뒤돌아보는 구정봉의 동벽을 ‘큰바위얼굴’이라며 영락없는 그 사진을 안내판에 붙였다.지금 그 얼굴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마 눈썹 아래 저녁 햇살 그늘이 없어서다.
구정치에서 바닥 치고 긴 오르막이 이어진다. 한 발 한 발 오를 때마다 뒤돌아보는 경치가 달라진다. 산행 순로는 천황봉에서 구정봉 쪽으로 가는 것인가 보다. 남근바위만 해도 그렇다. 좁은 바윗길에 별다른 느낌이 없이 그저 두툼한 문설주를 지났는가 했는데 그게 남근바위라는 안내판이 보고 알았다.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다. 돼지바위 는 등로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 바라보니 그럴 듯하다. 데크계단과 돌길을 번갈아 올라 천왕봉이다. 일단 사방 둘러 경치 먼저 카메라에 담고, 바람 피하고 햇볕 따스한 바위벽 골라 자리 편다. 음주를 금지한다고 곳곳에 플래카드 걸어놓았지만 몰래 탁주 독작한다. 더 맛있다. 안주는 눈에 가득한 주변의 가경이다. 한 병만 가져온 게 큰 잘못이다. 정관재 이단상(靜觀齋 李端相, 1628~1669)은 21세인 1648년(인조 26) 가을에 월출산을 올랐다. “천지 간에 술잔을 머금자 시름이 사라지네(含杯天地罷窮愁)”라 하였으니, 그도 천왕봉에 올라 술을 마셨 다. 그의 시 「월출산에 오르다(登月出山)」이다.
月出橫臨六十州 월출산이라 가로로 예순 고을에 임하였으니 崢嶸靑壓漢挐浮 우뚝하니 짙푸르게 한라산을 누르고 있도다 層雲不辨中原色 층층 구름은 들판의 색과 분간하기 힘들고 落日遙懸大海流 지는 해는 대해의 파도에 아스라이 걸렸도다 拂袖煙霞生睥睨 연하 속에 소매를 떨치자 거드름이 생기고 含杯天地罷窮愁 천지 간에 술잔을 머금자 시름이 사라지네 堂堂落雁峯頭語 당당해라 낙안봉에 올라 탄식한 말이여 媿殺千秋謝脁休 천추에 빛나는 사조의 시에 몹시 부끄럽도다
시구 중 ‘낙안봉(落雁峯)’은 중국 화산(華山)에 있는 봉우리 이름이라고 한다. 이백(李白)이 일찍이 화산 낙안봉에 올라 “이 산이 가장 높으니, 호흡하는 기운이 천제의 자리와 통할 정도인데, 사조의 사람을 놀라게 하는 시구를 끌 어와 머리를 긁적이며 청천에 묻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도다.(此山最高, 呼吸之氣想通天帝座矣. 恨不攜謝眺驚人 詩來, 搔首問靑天耳.)”라고 하며 사조(謝脁, 464~499)처럼 훌륭한 산수시(山水詩)를 짓지 못하는 것을 탄식한 일이 있다고 한다. 이백이 탄식한 사조의 산수시는 「저물녘에 삼산에 올라 경읍을 돌아보다(晩登三山, 還望京邑)」라는 시라고 한다. 이 시는 사조 산수시의 대표작으로, 천고의 절창으로 일컬어진다고 한다. “서글퍼라 언제나 고향으로 돌아갈꼬/ 눈물이 떨어져 싸락눈처럼 흐르는구나(佳期悵何許 淚下如流霰)”라는 구절이 절창이어서 일까? 그 전문을 들어본다.
灞涘望長安 파수 가에서 장안을 바라보고 河陽視京縣 하양 땅에서 경성을 돌아보니 白日麗飛甍 햇살이 높은 용마루에 곱게 비춰 參差皆可見 들쑥날쑥 모두가 볼 만하도다 餘霞散成綺 남은 노을은 흩어져서 깁을 이루고 澄江靜如練 맑은 강은 고요하기 명주 같아라 喧鳥覆春洲 시끄러운 새는 봄 모래섬을 뒤덮었고 雜英滿芳甸 온갖 꽃은 향기로운 들판에 가득하네 去矣方滯滛 떠나가 장차 오래 머물 터이니 懐哉罷歡宴 끝나버린 즐거운 연회가 그립도다 佳期悵何許 서글퍼라 언제나 고향으로 돌아갈꼬 淚下如流霰 눈물이 떨어져 싸락눈처럼 흐르는구나 有情知望鄕 인정은 누구나 고향을 그리는 법 誰能鬒不變 뉘라서 머리가 세지 않으리오
ⓒ 고려대학교 한자한문연구소 | 최병준 (역) | 2018
20. 바람골 주변
22. 천황봉 남동릉
23. 향로봉과 구정봉
24. 뒤는 노적봉
25. 천황봉과 구정봉 사이 주릉 왼쪽 사면
26. 바람골 주변
27. 천황봉 남동릉
29. 앞 오른쪽은 사자봉
30. 바람골 주변
31. 장군봉
32. 바람골 주변
33. 멀리 가운데는 천황봉이다
34. 멀리 왼쪽이 천황봉이다
35. 바람골 주변
36. 구름다리. 다리 바닥을 투명하게 하여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었으면 했다. 37. 천황사에서 바라본 사자봉
38. 천황주차장에서 찾아낸 산수유 꽃봉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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