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와 놀기
제주 여행 둘째 날이다. 이날 해 질 무렵 숙소로 돌아왔다.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카페로 갔다. 영업하는 가게가 아니라 숙소의 고객을 위해 마련한 공용 공간이다. 벽면에 매달린 풍선이 눈길을 끈다. 나의 팔순을 축하하기 위해 딸이 마련한 것이다. 케잌을 놓고 축하 노래를 하는 등 축하 행사를 간단하게 마쳤다.
카페 한쪽에 축구공이 하나 있다. 바람이 살짝 빠진 공이다. 두 개의 배드민턴 라켓이 있고 셔틀콕도 하나 있다. 고객을 위한 주인의 배려일 것이다.
“루아야, 축구하자.”
루아가 태어난 2018년은 코로나 시국이었다. 생후 20일이 되어서야 만났다. 신생아실에 있는 손녀에게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로 만들어준 것이 고마워 그랬다
이후 손녀를 여러 번 만났었지만, 마당에서 축구를 하기는 처음이다. 마당에는 잔디가 깔려 있는데, 징검다리용 디딤돌이 놓여 있다. 숙소 입구에서 카페로 이어지는 디딤돌이 있고, 카페의 좌우에 마주 보는 숙소로 이어지는 디딤돌이 있다. 마치 바람개비 모양으로 깔려 있다. 그 디딤돌의 높이가 잔디와 같아 공놀이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처음에는 공을 땅바닥에 놓고 찼다. 그 공이 내게로 굴러온다. ‘와, 잘했다.’ 칭찬해 주니 손뼉을 치고 깡충깡충 뛰며 좋아한다.
이번에는 난도를 높여 글러오는 공을 차게 했다. 글러오는 공차기는 초등학교 1~2학년 아이들에게도 어렵다. 헛발질하는 아이들이 흔하다. 그보다 더 어린 루아가 헛발질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공이 굴러간다. 달려들면서 공을 찼다. 힘차게 찼다. 그런데 공은 그대로 데굴데굴 굴러가고, 루아의 신발이 공중으로 휙 날아올랐다. 그것을 본 루아가 깔깔깔 웃는다. 제 엄마도 웃고 고모와 고모부도 웃고 할머니도 웃는다.
루아가 찬 공이 꼭 나에개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엉뚱한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 글러오는 공을 차면 더욱 그러하다.
루아에게 공을 굴려 보내며 차게 했다. 처음에는 루아 앞쪽으로 똑바로 보냈다. 몇 번 연습한 후에 좌측으로 보내기도 하고 우측으로 보내기도 했다. 한 발짝 쫓아가서 공을 차게 했다. 그 공이 엉뚱하게도 할머니에게로 갔다.
그 순간 할머니도 공놀이에 끼어들었다. 할머니와 루아가 주고받으며 찬다. 그러던 중 할머니가 찬 공이 루아의 얼굴에 정통으로 맞았다. 루아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었다. 할머니는 민망하여 어쩔 줄 모른다. 그 사이 엄마가 와서 달랬다. 평정심을 되찾은 루아는 다시 공놀이에 몰두한다.
이번에는 작은 의자 둘로 골문을 만들었다. 나는 문지기 루아는 공격수다. 루아가 찬 공이 골 안으로 들어오면 ‘합격’이다. 루아는 ‘합격’하기 위해 공차기에 집중한다.
루아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솟았다. 목덜미에도 방울방울 솟아있다. ‘그만해라’ 할머니가 말린다. 땀이 많이 난다고 하며 그만하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너무 재미있는데 그런다.
놀이를 배드민턴으로 바꾸었다. 셔틀콕을 던져 주었다. 라켓을 어깨 위로 휘둘렀다. 그러나 맞지 않는다. 라켓을 어깨 위에서 휘둘러 셔틀콕을 맞추기는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에게도 어렵다.
루아에게는 라켓을 무릎 아래 놓고 올려치게 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셔틀콕을 라켓의 수직선 위의 위에서 떨어뜨려야 한다. 그러면 라켓을 들어 올려서 셔틀콕을 맞힐 수 있다. 그것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라켓을 움직이려 하는 그 순간에 맞추어 셔틀콕을 떨어뜨려 주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기술이다.
루아가 오른발을 살짝 앞으로 내딛고 라켓은 무릎 아래로 들었다. 그 위로 셔틀콕을 떨어뜨렸다. 라켓을 위로 올렸다. 라켓에 맞은 셔틀콕이 솟구친다. 그 순간 팔짝팔짝 뛰며 좋아한다. 성취감을 맛보게 된다. 그렇게 몇 번 했더니 금세 적응한다.
루아가 맞힌 셔틀콕이 위로 올라간다. 꼭 그렇게만 날아가는 것은 아니다. 좌측으로 날아가기도 하고 우측으로 날아가기도 한다. 심지어 자기 머리 뒤로 날아가기도 한다. 그래도 재미있다.
이제는 셔틀콕이 날아가는 방향을 의식해야 한다. 그래서 규칙을 정했다. 징검다리 디딤돌을 경계로 하여 마주 보고 섰다. 그 거리는 1m 정도 된다. 셔틀콕이 디딤돌을 넘어 앞쪽으로 날아가게 해야 한다.
내가 셔틀콕을 던져 주면 루아가 받아친다. 그 셔틀콕이 디딤돌 경계선을 넘어오면 ‘합격’이다. ‘합격!’이란 말을 들으면 성취감을 맛보게 된다. 10번 치면 4~5번 정도 합격이다. 그러다가 내 키를 훌쩍 넘긴 적이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란 척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혀를 쭈욱 내밀었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는 것도 루아에게는 즐거움이요, 재미다.
루아는 이미 피아노 대회에 나가 상을 받은 바 있다. 발레를 배우기도 하고, 한문을 배워서 9급 급수 시험에 합격했다. 루아는 엄마를 따라 호주에 가서 몇 개월 동안 어린이집에 다닌 일이 있다. 그래서 영어도 한국말을 하듯 능숙하게 한다. 그림대회에 출품하여 상도 몇 번 받았다. 지금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에서 주산을 가르치는데 루아의 실력에 강사는 혀를 내두른다.
이런 아이였지만 루아가 잔디가 있는 마당에서 노는 일은 처음이다. 축구를 하고 배드민턴을 치는 대근육 운동이 즐거웠을 것이다. 좋아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그 시간이 네게 행복이었다. 그런 시간이 또 있기를 기대한다. 그때는 내 실력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 그래도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