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발(托鉢, piṇḍapāta)의 의미 >
탁발은 도를 닦는 승려가 경문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동냥하는 일을 말한다.
탁발(托鉢)은 맡길 탁(托)+ 바리때 발(鉢)의 뜻으로 한문을 직역하면
‘발우를 내민다.’ ‘발우(바리때)를 받쳐 든다.’는 뜻이다.
승려들이 밥그릇을 들고 집 앞으로 찾아가 그릇을 내밀어 밥을 얻는 행위를 의미한다.
따라서 ‘탁발(托鉢)’은 승려가 발우(鉢)를 들고 마을을 돌며 신도에게
공양을 받아먹는 수행법으로, 걸식(乞食)⋅걸행(乞行)⋅행걸(行乞)이라고도 하며,
아집(我執)과 아만(我慢)을 버리고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탁발하러 돌아다니는 승려들을 운수승(雲水僧), 혹은 운수납자(雲水衲子)라고도 하며,
행각승(行脚僧)이란 말도 쓰인다.
탁발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수행법을 이어받은 수천 년 전통의 불교 수행 방식으로,
승려들이 매일 새벽 마을을 돌며 신자들에게 공양 받는 의식이며,
이는 무욕(無慾)⋅무소유(無所有)의 삶을 실천하고 공동체와 나눔을 이루는
중요한 문화적, 정신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탁발의 어원은 아래와 같다.
삔다빠아따(pindapata) = piṇḍa(덩어리, 특히 음식 덩어리) + pata(그릇, 발우)의 결합으로
그릇에 맡긴다는 뜻이다. 발음은 같은데 의미는 다소 차이가 난다.
특히 한문으로 번역한 탁발(托鉢)은 맡길 탁(托)+ 바리때 발(鉢, pata)의 결합이다.
여기서 빠아따(pata)는 바따(그릇)로 음사됐다가 ‘따’가 떨어져나가서 발(鉢)이라는 외자가 됐고,
맡길 탁(托)과 결합해서 탁발(托鉢)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발(鉢)이라는 외자에 그릇 우(盂) 자를 붙인 것이 발우(鉢盂)다.
동령(動鈴)을 울리며 걸식을 하기도 해서 이런 불교의식에서 파생된
‘동냥’이라는 말도 탁발과 같은 뿌리를 갖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릇이라는 의미를 취해 탁발(托鉢)이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승려는 ‘자신의 목숨을 그릇에 맡긴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생산 활동을 하지 않는 출가자는 항상 남의 손에 자신의 생명을 의지하는 행위가 탁발이다.
탁발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가장 간단한 생활태도다.
한편 보시하는 재가자의 입장에서는 수행자에게 보시하고 수행자를 공경해
복덕(福德) 내지는 공덕(功德)을 쌓는다는 의미가 있다.
가장 간단한 생활을 표방하는 동시에 아집(我執)과 아만(我慢)을 없애고,
보시하는 이의 복덕을 길러 주는 공덕이 있다고 해서 부처님 당시부터 수행차원에서 행해졌다.
부처님께서는 출가한 지 얼마 안 되는 새로운 비구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설했다.
“비구들이여, 그대들 출가자는 머리를 깎고, 발우(鉢盂)를 들고,
집집마다 다니며 걸식(乞食)을 해서 살아간다. 걸식이란 세상살이의
여러 방법 중 가장 낮은 것이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우수한 여러 사람들이 그런 생활을 하는 것은
의로운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왕이 강요해서도 아니고, 도적에게 쫓겨서도 아니고,
빚 때문도 아니고, 생활이 궁핍해서도 아니다. 우리는 고(苦)에 빠지고 고에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고의 집적(集積)을 없애기 위해 여기에 이른 것이다.”라고 하셨다.
우리나라에서도 전통적으로 승려의 탁발을 널리 시행했으나,
현대에 이르러 탁발로써 생계를 삼는 사이비 승려가 많이 등장하게 됨에 따라
대한불교조계종 등에서는 품위 유지를 위해 모든 승려의 탁발행위를 일체 금하고 있다.
한국 불교에서는 탁발보다는 울력을 통한 생계유지를 권장한다.
이는 한국 불교의 역사와 연관이 있다. 한국 불교는 중국 선종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선종에서는 가톨릭의 수도자들처럼 노동 또한 수행의 일종이라고 보고
탁발보다 승려가 스스로 일해서 먹을 것을 마련하는 것을 더 중요한 행위라고 봤다.
이에 대한 선종의 유명한 문구가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이다.
또한 조선 말기부터 사회가 혼란해지면서 불교 조직도 그 체계가 많이 흐트러졌고,
이 과정에서 사이비 승려들이 멋대로 속인들에게 시주를 받아서 재물을 챙기는 행위가 빈번해져서,
말이 승려들의 탁발이지 사실상 걸인들의 구걸과 다를 바 없게 됐다.
이 때문에 탁발 행위와 불교 승려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나빠지자,
대한불교 조계종 종단에서는 1962년에 아예 탁발 자체를 폐지하고
신도들의 자발적인 시주만 받도록 했다. 때문에 조계종 승려들은 탁발 행위를 하지 않는다.
대한불교 천태종, 태고종 등 다른 제도권 종파에서도 조계종의 선례에 따라
암묵적으로 탁발을 금하고 있기 때문에, 길거리 등에서 목탁을 치면서 탁발을 하는 승려는
승복만 입은 가짜 승려일 수 있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목탁을 치며 시주를 기다리는
가짜 승과 이를 못하게 하는 진짜 승려와의 승강이를 더러 볼 수 있었다.
― 외국의 탁발 사례 ―
불교 외에도 ‘탁발’은 자선(慈善)에 의존해 생활을 꾸리는 행위를 가리키는
일반적인 동냥⋅구걸 의미로 쓰인다. 영어 ‘mendicancy’와 동등하게 사용되며
가톨릭⋅수피파(이슬람교) 등 다른 종교의 금욕적 구걸 행위도 포함된다.
• 라오스의 경우,
옛 수도였던 루앙프라방은 불교문화의 중심지로, 매일 새벽 북소리에 맞춰
수백 명의 승려들이 오렌지색 가사를 입고 탁발 행렬을 이룬다.
이는 18세기 후반 완성된 왓마이 사원 등 역사적인 사원들 앞에서 볼 수 있다.
라오스에서는 탁발이 구걸이 아닌, 승려들의 수행이자 생활 방식이며,
신자들의 믿음과 존경을 표현하는 행위이다. 밥과 과자 등을 바치는 행위를 통해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겸손과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며,
이는 라오스인들의 삶에 깊이 배어 있다. 뿐만 아니라 남방 불교국가의 공통된 모습이다.
수행자(승려)가 남에게서 음식을 빌어먹는 행위로서, 시주(施主)와 비교하면 방향이 반대다.
시주는 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식량이나 재물을 수행자에게 기부하는 행위,
그러한 행위를 하는 자를 지칭하는 것이며, 탁발은 이 시주를 받기 위해 행하는 수행자의 행동을 말한다.
• 태국 미얀마의 탁발승.
탁발의 의미는 수행자의 자만과 아집을 버리게 하고 무소유의 원칙에 따라
끼니를 해결하는 것조차 남의 자비에 의존하는 수행 방식이다.
본래 탁발은 인도 지역의 수행자들이 행하던 전통적인 행위였으며, 불교에도 이 영향을 받게 됐다.
석가모니가 불교를 창시한 이후 승려들이 생활을 유지하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이었으며,
태국이나 미얀마 등지의 상좌부 불교에서는 여전히 승려들이 탁발 행위를 많이 하고 있다.
특히 태국에서는 일부 신자들이 승려들에게 고칼로리 음식을 공양하곤 한다.
태국의 가난한 불교 신자들은 값싸고 구입과 보관이 편리한
라면, 과자, 사탕, 가당주스 등 가공식품들을 주로 공양하는데,
이러한 식품들은 당분과 지방 함량이 높다.
때문에 고칼로리 음식을 많이 받아먹게 된 승려들이 비만과 당뇨 같은
성인병에 시달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태국인들 90% 이상이 불자들이라 탁발을 하면 음식을 공양받기 쉽지만,
문제는 빈부격차가 극심해 가공식품으로 끼니를 때우는 신자들이 많다.
태국에서 승려들의 비만 및 성인병 문제는 극심한 빈부격차가 해소되지 않는 한 해결되기 어려워 보인다.
초기 불교에서는 승려들도 종파를 불문하고, 육식을 했는데, 그 이유가 이 탁발 때문이었다.
승려들이 식사는 탁발로 100% 해결했으므로 얻어먹는 입장에서
사람들이 주는 대로 남기지 않고 먹어야지,
거기서 따로 고기를 빼거나 하는 식으로 가려서 먹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탁발은 단순 음식 구걸이 아니라 수행자에게 음식을 나눠줌으로써
기증자에게 ‘나눔의 공덕’을 수행할 기회를 제공하는 측면도 있다.
생업에 종사하느라 승려들처럼 수행할 여력이 없는 대신 시주를 행함으로써
‘선행을 적립할’ 절호의 기회인데, 승려가 탁발 받은 음식을 거부하거나 먹더라도
남기는 순간 승려는 기증자의 성의를 무시하는 행위가 되고
기증자도 시주를 잘못해 선행 기회가 날아가는 셈이 되기 때문에,
결국 승려는 탁발로 시주받은 음식은 종류 불문하고 그냥 남김없이 다 먹게 돼
비만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탁발을 금지한 한국 불교계에서도 이 관점만큼은 동의해 공양은
쌀 한 톨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먹어치운다.
불교에서 채식을 강조하게 된 건 중국의 양무제 시기 이후이다.
물론 현재도 다치거나 병에 걸린 승려들은 육식이 가능하며,
타인이 공양해준 경우엔 육식이 가능하고, 동자승들은 끼니마다 고기가 식단에 들어간다.
• 일본의 경우,
일본은 현대 대승불교권에서 유일하게 탁발 행위를 긍정적으로 보는 나라이다.
물론 메이지 유신 이후 신⋅불 분리 정책의 일환으로 일본 불교에서는 탁발 허가제를 도입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후인 1947년 폐지했다.
단, 새벽이나 아침 일찍 본인이 소속된 절에 다니는 신도의 집만을 방문해서
일종의 모금 형태로 돈을 걷어가는 형태가 일반적이고,
속칭 ‘츠지타치(辻立ち)’라 해서 길거리에 하루 종일 서 있는 승려들은
한국처럼 가짜 승려일 확률이 높다.
일본에서는 코무소(虚無僧, 허무승)라는 특이한 탁발승을 만날 수 있다.
바구니같이 생긴 삿갓을 뒤집어쓰고 샤쿠하치(대나무로 만든 세로형 피리)를 불며 탁발하는 승려들이다.
• 글을 마치면서
탁발은 한국의 전통적인 불교문화에서 유래된 관습으로,
보통 스님들이 여러 사람이나 지역사회로부터 음식을 받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를 통해 사회적인 연대감을 느끼고 공동체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의미가 있었다.
예를 들어, 과거 어느 마을에서 스님이 탁발을 하면 주민들이 서로 음식을 나누어 주고,
그 과정에서 소통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면에서 탁발은 단순한 음식 나눔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음식을 준비해 스님에게 나누어주면서,
이와 같은 자발적인 나눔의 과정은 참여하는 이들에게 기쁨을 주기도 했다.
탁발은 단순히 음식 나누기만이 아니라, 마음의 나눔이기도 하다.
여러 사람이 모여 한 자리에서 음식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우정을 쌓을 수 있다.
이때 생기는 대화는 사람들 간의 유대감을 깊게 만들어 준다.
또 탁발을 통해 쌓인 인맥은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안타깝게도 탁발 문화가 거의 사라졌다.
현대 도시생활에서 사람들은 바쁘고,
개인주의적 경향이 강해져 나눔의 가치가 사라지고 차가운 공간만 남았다.
동네 이웃과 함께 작은 나눔을 행하면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줄 것인데,
언제 쯤 훈훈한 인심이 되살아날 수 있을까, 기다려진다.
탁발은 어떤 특정 장소나 상황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연결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시골 사찰을 중심으로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점심 나누기라도 하면서
웃음꽃을 피워 나누고, 그 안에서 진솔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다정한 모습이 기대된다.
탁발을 통해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보고, 서로의 삶을 가꾸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이 메마른 사회에 오아시스와 같은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출처] 블로그 아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