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한 극단에 서 본 자의 진술 같은 시편들로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시인, 1991년 「황야의 정거장」으로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시인의 길에 접어든 서규정 시인을 모시고, 2004년도에 새로 상재한 시집 『겨울수선화』(고요아침, 2004)로 시 낭송회를 가집니다.
그 동안 시하늘 카페에 올려진 그의 시편들을 통하여 익히 알고 계실 것으로 압니다만 고단한 삶에도 굴하지 않고 시편들을 쏟아내시는 그 열정에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시하늘을 사랑하는 회원님, 바쁘시더라도 시 낭송회에 참석하셔서 서규정 시인의 시세계에 몰두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2005년 2월 18일(금요일) 오후 7시 30분 -대구MBC방송국 맞은편 삼성화재빌딩 지하1층 카페 스타지오 -회비는 10,000원이며 , 식사, 음료, 다과및 작은 시집이 제공됩니다. -주차는 3시간 무료입니다. -시집『겨울수선화』는 당일 스타지오에서 판매하겠습니다.
*시인 서규정 -1949년 전북 완주 출생 -199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황야의 정거장」당선 -시집 『겨울수선화』외 3권 -현재 부산에 거주함
*시편들을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내 안의 블루 -서규정
낙석 하나가 분화를 꿈꾸는 지층을 깨우듯 내 몸을 흔드는 정체불명의 힘, 블루라는 낯선 말이 간간이 극장 포스터나 술집 이름으로 등장할 때에도 뭐 현대인의 색다른 기호나 유희성이겠거니 하다가 자갈치 물양장에서 은하호를 보는 순간 온몸이 후끈 달아올랐어
전선과 전선이 담쟁이 넝쿨처럼 우거진 교각 밑에선 노약자 노숙자들은 노을과 놀고 관리들은 꼬리 잘린 도마뱀과 놀고 공적자금은 밑 터진 독과 놀고 우울이 껌처럼 늘어붙는 거리 평생을 구두 발자국만 새긴 어느 판화가의 생애를 위해서라도 어디로 떠나가 줄까 더 이상 발자국을 뜯어 먹히기 싫어....그러니까 얼마나 이 땅의 기다림과 그리움들이 다했으면 덧문을 닫아 걸 이 나이에 나를 끌어내는 정염의 덩어리를 찾아 맨발로 99톤 은하호에 오르기 전에
가방에 담았던 면도기 치약 몇 권의 노트를 꺼내고 내 그림자와 백병전을 벌이던 몸통을 쑤셔 박았지 자크를 열고 나오려는 팔다리를 우둑우둑 분질러 다져 넣으며 나도 모르게 죽어서 다시 살아! 손에 묻은 분진을 털며 외쳤어
안개 -서규정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으리라 내 타는 갈증 적셔준 신불산 산정에서 이빨이 부러지게 깨물었던 한 알의 오렌지와도 같이.... 성난 파도에게 와작와작 씹히는 안강망을 타고 어디만큼 왔을까 더듬더듬 화장실을 찾아 고물* 쪽으로 가다 문짝도 다 떨어진 기관실 흐린 알전구 밑에서 기름범벅으로 푸드득 뛰쳐나오는 한 마리 괭이갈매기에 놀라 그물을 잡고 주저앉고 싶었어 그 옛날 어느 거센 영혼이었을까 자물통 같은 시대를 향해 무엇인가를 떨그럭떨그럭 외치다 닫았다 또 외치다 닫았다 통닭가게도 아닌 천막촌에서 약간의 미소를 입가에 발라 스스로를 알맞게 구워놓고 간 그 써늘한 이념의 주변
한 걸음이 줄달음에게 소리친다 뛰지 마 뛰지 마 뛰어 달아나는 쪽은 청춘이야 돌아와 붉은 양탄자는 아니더라도 군가에 맞춰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젊음의 껍질만 벗겨 마른 나를 둘둘 말아와
최루가스를 맡으며 늙으면서 와, 차단이란 지독한 교류다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가랑이 사이로 쏟아지는 오줌줄기처럼 깊은 것은 양다리를 걸친다 참답게 말을 해라 귀머거리에게도 들리는 말을 해라 삐라처럼 따라붙는 기억들을 수장시킬 이 순백의 해역에 갈매기 제 똥 위에 앉아 있어도 부장품은 없다 우린 같이 상처의 속도로 살아왔다 살아간다 사라진다
다시 타는 목마름이다 바다는 물보다 왜 하얀 불을 먹이는 것이냐 차라리 열락의 솜꽃이 피는 목화의 城으로 가자 바람은 키를 낮춰 미풍으로 따라 오라 별빛도 깨끗이 지워진 위도에서 뿌우 뿌우 짙은 주황의 눈깔을 굴리며 항로를 찾는 어선 한 척 토악질을 하는 현창으로 누가 날 밀어 넣었지 이 따듯한 안개 속에 분간 없이 묻어두면 되는가 묻어두기만 하면 끝나는 것인가
*고물- 배 뒷부분
정박등 가까이 -서규정
인류에 봉사할 그 무엇으로만 살아가야 한다면 벌써 끝났다는 이야기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기로 그 이전에 소리들은 어디서 설명하셨다더냐 삶이 삶 같지 않고 이벤트식 집회만 같아서 무극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니 바다에 넘쳐나는 고기 잡아와라 겁주지 마라 난 고기 풀어주러 간다 그러지 않아도 갑판에 쌓인 그물망을 바라보면 올올이 죄의 구멍만 같아서, 그 구멍으로 아가미를 들이밀고 누가 가쁜 숨소리를 먼저 내지를지 몰라 아무리 기억을 더듬고 추억을 뒤적거려 보아도 난 국가보다 여잘 더 사랑했으며 나라는 찢어져도 여자는 다치지 말아라 외쳤으나 정작 어느 누굴 얼싸안고 풀밭을 뒹굴다 은근 살짝 아이 하나 심어 두질 못하고 철선을 타러 나왔으니 출격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오늘 하루도 바다 속으로 접혀져간 넓고 넓은 어둠 속에선 무조건 돌격밖엔 길이 따로 없었다 멀리 보이는 선단의 불 검은 바다에 정박등 불빛이 살아 계셨다 무극에서 항상 빛은 나셨다 그 빛을 따라 가까이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니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하여 -서규정
사공들은 날 신참이라 불러주지 않고 상전이라 불렀다 선탑 위에 올라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게 오히려 도와주는 일이라며, 어떤 주파수로 시를 쓴다는 진 몰라도 시는 본래 아린 것이지 시인이란 현실이란 이치에 물구나무로 서거나 아예 不具나무들 아닌가 다이야를* 감으며 자기네들끼리 키들키들 웃는 질책의 오후를 고기상자에 못질을 하다 망치로 손톱을 내려치고 보니 생각난다 털빛 곱던 시절 하필이면 군부를 만나 대부분 젊음들은 고난과 고행의 길을 찾아 불 속으로 뛰어들길 마다하지 않았으나 공사판이나 공장을 전전하는 돌부처로 세월을 보냈을까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눈꺼풀과 두 귀는 땅에 닿을 만큼 늘어져선 칫솔로 이빨만 차돌처럼 닦고 있었으니 창파 위에서 사공들에게 듣는다 시란 본래 쓰리고 아린 것이지.... 백내장 수술을 한 환자의 눈에 맨 처음 희뿌윰하게 빛나는 물체가 하늘같은 장막이라더니 새로운 허공에 기대어, 눈알이 폭발한 텅 빈 그 자리에 용암이 다 마르거든 아리고 아린 것들아 이제 올 테면 한 방울의 이슬로 오라
* 다이야- 밧줄리 짠물에 쉬 상하지 않게 감아주는 화학섬유
바다의 집 -서규정
브릿지는, 아무도 못 말리는 높은 파도를 비켜간다기보다 같이 솟아올라야 하리 욕망 하는 것이되, 온몸이 구멍인 그물을 바라보며 우린 막 중국해에 들어섰다 삶이란 원래 항해와 벼랑의 장르여서 삼각파도에 몸을 맡겨도 일순간에 타올라야 할 것 배가 가끔 가랑잎을 따라 도는 표류의 이유가 그렇고 선창가 선술집에 잡혀먹은 선원수첩의 임자부터 순순히 손들고 기록*을 찾아 나섰음을 고백해야할 이 장엄한 빛의 둘레 뭉게구름이 하늘 꽃으로 피어오를 때 엣쎄라 쎄라 누가
보합금 봉투 끝을 문 동전의 무게를 아느냐 아무리 족보를 따져보아도 귀족이 없는 우리나라 만 만세를 부르며 대양으로 나선 우리에겐 어족이 귀족일 수밖에 없다 어황은 무사한가! 온몸이 구멍인 그물 으흣 뻥 뚫린 듯한 백치의 미소를 아느냐구? 저긴 헬기까지 싣고 위풍도 당당하게 깃발 날리며 남지나로 진격하는 선단들 전쟁인가, 초록 색소를 풀어 어군의 시야를 가리고 스피드보트로 몰아 혼을 빼 포획하는 참치 선망은 바다를 초토화시키는 게 급선무라면 우리는 밭을 갈 듯 바다를 가꾸겠다 송이송이 목화송이를 따듯 그물의 비늘을 따고 너를 따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다 보면 문득 우리가 바다의 집이라 부르는 그 붉은 눈자위는, 시장 좌판 위에 막 올라 간 생선을 보고 철렁철렁 또 금속성의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을까 수평이여 그대 먼 곳에
*기록-모니터에 나타난 어군, 이를테면 바다 노다지
솜틀공주 -서규정
대체 몇 개의 수평선을 넘는다는 것이냐 어서 들어오세요 잘 나가세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면도칼로 수없이 잘라도 고무줄 다시 묶어 돌리며 놀던 여자아이들의 눈물에선 산토닌*의 노을이 묻어났던가 그랬던가 돌 한 점 놓은 적 없이, 바둑판의 초읽기처럼 세월은 가고 이마에 주름살로 선실바닥을 문지르다 신기루처럼 어른거리는 모습의 실체를 찾아서 선장에게 맞아 죽어도, 어렵사리 탄 배가 파도에 무너진다면 나는 그냥 널빤지를 타고 하염없이 떠밀려선 어느 멀고 먼 해안선을 붙잡다 고깔모자 눌러 쓴 병사들에 둘러싸여 은모래 채찍을 맞으랴 가슴속에 울컥거리는 푸른 응어리가 보이지 않게 아귀의 형상으로도 솜을 입에 물 테니 성문 앞에 목화 몇 송이는 남겨두세요 줄넘기로 일깨우던 저 바다도 잠들어 파릇한 수평선이 해안선으로 이동하는 열리고 열려서 더 열릴 게 없는 높디높은 성루에서 그대 긴 머리칼을 날리며 솜틀을 타기만 하세요 산토닌에 물든 노을이 내릴 때까지
*산토닌 - 복용하면 온 세상이 노랗게 보이던 옛날 구충약
치킨 치타 -서규정
조금만 낮게 끌어가소서 바닥을 훑을 수 있어야 배도 뜨고 바닷새도 덩달아 날던 것을 늙어 산토끼처럼 하얗게 쇤 어머니 홀로 남겨둔 산동네 하루에 두 번 가는 검은 태양이 연탄집게에 찍혀선, 지랄 세상에서 제일로 넓은 직장을 얻어 나간다고!? 퓨리턴의 초상들이 군웅할거 하는 곳이 바다라니까요! 그려 미국본토로 공 던지러 간 영웅들은 더러 보았다만 그 나이에 갈치 잡으러 가는 군상들은 보들 못했다 농담 끝에 매달린 그 눈물이 하도 선해선, 가고 오고 오고 가는 바닷길이 내겐 새로 난 신작로일 것임에, 저 바다에 가로수도 심고 뭇 생명을 노래하며 나를 찾아야 합니다 남들은 잃어버린 애도 찾는데 너는 아직 너도 못 찾았단 말이냐 찾지 못할 너를 이제 그만 풀어주고 고등어나 두어 마리 사들고 와 보일러나 놓고 살자 어머니의 한숨이 동중국해까지 뭉게구름으로 따라올 것 같고, 천마산이 자꾸만 냉동창고 뒤로 숨던 자갈치에서 나 떠나던 배에서 내려 붕어빵 한 봉지 사들고 산동네를 올라가다 켄터키 후라이드치킨 진열장 앞에 일렬로 늘어서 닭처럼 졸고 있는 노인네들 틈으로 다가가 어머니! 하고 불렀더니
옛!
가장 높이 나는 배 -서규정
진달래가 아름다운 건 순전히 벼랑 때문이라는 것과 이 작은 어선이 빛나는 것은 파도 때문이란 걸 동시에 알았습니다 가파른 것이라야 살맛이 나겠지요 도시 변두리를 전전하던 내 삶이 하도 밋밋하고 팍팍하여서 바다로 나가기로 결심했을 땐 한번도 내린 적 없는 눈이 산동네 언덕배기에 소복소복 내려 쌓여선,
나 어디까지나 비듬을 터는 비듬주의자로써 오늘 아침 파고 6-7 너무 심심하고 잔잔해 차라리 해일로 불어오렴 내 몸을 걸레처럼 쥐어짜서라도 푸른빛이 다 터져 나오도록 폭풍우로 갈겨다오 이 바다에서 제일로 큰 배보다 가장 높이 뜬 배를 타고 벼랑벼랑 울고 싶으니
山驛 -서규정
나무야 내 대가리는 온통 빗물이란다 어서 밟아다오 줄기차게 내리던 소나기는 그치고 막차로 온 사람들은 막차로 가는가 막장에서 나온 사내들은 윤이 날대로 나 갈아입을 어둠도 마땅치 않은 山驛 어디론가 이동하는 무리들은 다짜고짜 욕설로 피어나선 세상이 넓다는 건, 몸 하나 똥으로 박을 자리를 찾아서 똥터 곁엔 틀림없이 샘터도 있을 것이니 모두모두 서둘러도 기차는 아직 오지 않는다 돌아보면 채탄과 매몰 그리움으로 캘 그 무엇이 남아 있어서 석탄처럼 시커먼 눈동자를 후비며 어디로 가는가 막장에서 나와 막장으로 흐르는 길고 긴 갱도 삼 만리 절망 쪽으로 가는 슬픔은 장화를 신고 희망 쪽으로 가는 기쁨은 슬리퍼를 신고라도 어서 가 기차는 레일을 신고 나는 초승달을 신다가 똥터를 찾아가는 몸들은 신발가게엔 다시 들리지 않으리란 걸 이 첩첩산중 태백의 하늘에 뜨는 별들은 거의 다 맨발이다
적천사 가는 길 -서규정
수경아 산천은 온통 푸르름이다 淸道에 내려 소싸움 터를 혼자 어슬렁거리다 묻고 물어 적천사 가는 길 수도 없이 기차를 잡아먹는 뱀굴 같은 터널을 옆구리에 끼고, 사천왕의 입술보다 붉은 표지판을 따라가면 직각이었다 뱀굴에서 설익어 나온 기차가 악을 쓰며 벌겋게 벗겨져 가는 건널목에 서서 우리 삶이 빛나는 건 누구에겐가 제대로 먹혔을 때가 아닐까 생각했다 직각의 모퉁이에 기댄 어깨야 언젠가는 돌고 돌아 둥그런 마을도 만들 테지만 산다는 것의 배려란 가령 이런 것이리 내 몸은 불볕에 타도 옆 사람 타지 않게 양산을 바쳐주 듯 내 몸을 그림자에게 주고 훌훌히 떠나는 모습을, 이 땅에 누가 다시 복사하는가 뜨겁다, 저 이발소 그늘 밑에 모여 노는 노인들의 쭈글쭈글한 껍질이 몸에서 제일로 멀 듯, 헐렁한 껍질은 아득타 질기고 질긴 가죽에 대한 예의 같은 예리한 면도솜씨와 땀과 피와 눈물 맨 나중엔 다 방울의 것인, 방울 속을 들켜서 살아간다 우린 모두 들켜야 산다 다음 세상을 기약하는 모퉁이의 지혜와 땡볕을 지탱해주던 그림자의 서슬에 기대어 어느 각도에 서건 마음 편편한 자리 한곳을 버섯처럼 돌고 돌 수 있다면 물 그친 적천사 계곡을 따라 푸른 산 빛을 조금만 들추면 비로소 생의 발원을 다시 잡을 것 같다, 이슬 수경아 우리는 서로를 흐르고 있다
첫댓글 일시가 잘못 표기된것인지요
2월 18일 금요일이 맞답니다. 박달재님 그 날 오세요. 기다립니다
가우 님, 2005년인데 2004년으로 되어 있구요, 우가희 님 말씀처럼 2월18일인데 12월17일로 소개되어 있네요^^
서규정 선생님 편 시낭송이라면 하던일을 팽개치고라도 참석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수정했습니다. 한 눈 팔았나 보네요.
약 몇분 정도 참석 하시나유
부산서 서규정 시인 외 10분 정도 오실 예정이고, 평소엔 40 명~ 50명 정도. 초청시인에 따라 더 많을 수도 있답니다
저도 불가피한 경우만 생기지 않는다면 참석하겠습니다^^*
저도 참석해서 서규정시인의 뜨거운 피를 수혈 받아야겠습니다
오늘은 시 낭송회가 있는 날입니다. 함께 하고 싶습니다. 서규정 시인도 만나 보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