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 노화 ‘9988234’ 가능할까?
[어떤 사람은 고통스럽게 골골 앓다가 죽고, 어떤 사람은 자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는다]
박정원 객원논설위원/최보식 언론
DW Documentary 캡처
나이 든 사람들은 누구나 말한다. ‘9988234(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앓다가 죽는 것)’처럼 자다가
그냥 슬며시 갔으면 좋겠다고. 실제로 간혹 자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영원히 간 사람 얘기가 들린다.
이런 노인을 예로 들면서 “매우 복 받은 사람”이라며 부러워하는 노인들을 많이 봤다.
실제로 어떤 사람은 고통스럽게 골골 앓다가 죽고, 어떤 사람은 자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는다. 그 근본적인 차이는 뭘까?
평소에 건강관리를 잘하고, 안 하고의 차이일까? 아니면 정말 전생에 복을 많이 지어서 그런 결과를 맞이했을까.
이를 의학적으로는 몸의 기능이 유지되다가 한 번에 무너졌는지, 아니면 서서히 소모되었는지의 차이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많은 노인들이 원하는 정상적인 기능이 유지되다가 한 번에 무너지는 구조는 과연 어떤 구조일까?
정확히 보면, 살 만큼 산 뒤 쥐도 새도 모르게 한순간에 가는 삶을 건강하게 유지한 수명이라 할 수 있다.
기대수명과 건강수명이 거의 차이가 없는 삶을 모두가 부러워하고,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들어 WHO도 '건강 노화'를 노화의 주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위에 언급한 자다가 가는 경우와 수년 혹은 10여 년 이상 골골 앓다가 가는 두 경우의 차이는 정확히 ‘죽음의 원인이 아니라
죽음에 도달하는 경로의 차이’이다. 같은 노화라도 몸이 어떻게 무너졌는가가 다르게 나타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보통 자다가 사망하는 경우엔 다음과 같은 특징을 띈다.
▲일상 기능이 상대적으로 잘 유지된다 ▲큰 장애 없이 생활한다 ▲치명적 사건이 갑자기 발생해서 급격히 사망한다.
즉, 기능이 잘 유지되다가 한 번의 시스템 붕괴로 상황이 종료된다.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 원인으로는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심장 부정맥 ▲심근경색 ▲뇌졸중 ▲폐색전 등이다.
이를 노화이론에서는 ‘임계점(critical threshold) 초과’ 형태라고 말한다.
노화 생물학적 관점에서 ‘임계점 초과 모델’은 장기 기능은 일정 수준까지 유지되다가 어느 순간 한계 이하로 떨어지면서
시스템 전체가 붕괴하는 경우이다. 조금 과도한 추론일 수 있지만 나이 들어서 임계점까지 기능이 잘 유지되도록 평소에 관리를
잘했다고 볼 수 있다.
수년 또는 수십 년 동안 장기간 쇠약 후 사망하는 경우는 위와는 전혀 다른 패턴이다.
기능이 서서히 감소한다. → 질병과 노쇠가 누적된다. → 회복력이 감소하고 작은 스트레스에도 악화한다. → 결국 붕괴하는
상황을 맞이한다.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 질병으로는 ▲치매 ▲심부전 ▲만성 폐질환 ▲근감소증 및 노쇠 등이다. 이는 기능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다가
바닥에 도달하는 경우 상황이 끝난다. 노화 생물학 관점에서는 ‘누적 손상 모델’이라 부른다.
노인학(gerontology)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만든 노화학의 창시자 엘리 메치니코프(Elie Metchnikoff)는 “인간은 내부적으로
조화롭게 설계된 존재가 아니라 진화 과정에서 임시로 맞춰진 불완전한 시스템이며, 이 구조적 불균형이 결국 노화와 죽음을 만든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걸 ‘인간 본성의 내재적 부조화(disharmony of human nature)’라고 지칭했다.
매치니코프는 우리가 유산균과 프로바이오틱스를 통해 익히 알고 있는 바로 그 인물이다.
매치니코프의 관점에서 보면, 자다가 사망하는 경우는 부조화가 존재하지만 그래도 균형을 유지하다가 한 번에 붕괴하는 것이고,
오래 앓는 경우는 부조화가 점진적으로 누적되어 기능을 지속적으로 파괴시켜 사망에 이르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어떤 사람은 갑자기 죽고, 어떤 사람은 오래 앓다가 죽는 차이가 나타나나. 그것은 3가지 관점으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질병의 종류이다.
심장이나 혈관 질환은 급사 가능성이 높다. 반면 신경이나 대사 질환은 만성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신체의 회복력에 달렸다.
근육량이나 면역 기능, 심폐 기능, 영양상태에 따라서 같은 병이라도 결과는 달라진다.
평소에 운동을 통해 근육과 심폐 기능을 키워 놓고, 좋은 식습관과 함께 잘 먹으면 회복력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다.
셋째, 노쇠(frailty) 여부이다.
쇠약한 부분이 있으면 오래 앓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반면 노쇠가 없으면 장기 쇠약 경로의 위험이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두 사람의 차이는 몸의 기능이 유지되다가 한 번에 무너졌는지, 아니면 서서히 소모됐는지로 나뉜다.
그 차이를 만드는 건 평소 운동이나 좋은 식습관, 원활한 사회적 네트워크 등을 통해서이다.
서두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서, 모든 사람이 바라고 원하는 오랜 기간 기능을 잘 유지하다가 마지막에 급격히 떨어지게 의도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노년의학에서는 이를 ‘질병‧장애 기간의 압축(compression of morbidity)’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 개념은 노화가 진행되더라도 중증 질환이나 장애가 시작되는 시점을 가능한 뒤로 미루려고 시도한다.
그 이후 병의 악화 속도가 비교적 짧아져서 전체 질병 기간이 압축된다는 논리이다. 예를 들어, 80세부터 10년간 아픈 사람보다,
90세까지 건강하게 지내다가 마지막 1~2년 만에 급격히 약해지게 압축한다는 것이다.
질병‧장애 기간의 압축을 가능하게 하려면 만성질환의 발생을 늦추고 진행을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금연, 규칙적인 신체활동,
적절한 체중 유지, 균형 잡힌 식사, 혈당‧혈압‧지질 관리 같은 예방이 중요하다. 또 조기 진단과 꾸준한 치료, 재활, 낙상 예방,
사회적 고립 감소도 기능 저하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늙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질병과 장애가 완전히 뒤로 밀리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수명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질병의 발생이 더 빨리 늘어나면 오히려 유병 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다.
결국 건강수명의 확대인 셈이다.
이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제 급격한 붕괴는 두 가지 변수의 결합된 결과이다.
첫째는 근육이나 심폐, 인지 기능을 비교적 정상적으로 기능이 유지되어 있고,
둘째로, 심장 전기계 이상, 즉 부정맥이나 혈관 파열 위험, 암이나 혈전 등과 같이 특정 시스템의 취약점을 지닌
사람이 있다고 치자. 이 사람은 전체는 멀쩡하지만 특정 취약 부위 하나가 터지면서 사망한다. 여기서 물리적으로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건 첫째이고, 둘째는 통제나 관찰 대상일 뿐이다. 다시 말해 둘째는 의학적으로 명확히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둘째 부분의 기능 예비력을 끝까지 잘 유지해 나가는 게 ‘9988234’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 최소 주 2~3회 근육운동을 하고, 심폐 기능을 튼튼히 키우고, 체중 관리를 통해 대사 안정성을 유지하고,
충분한 수면과 영양 보충으로 면역이나 염증을 조절하면서, 인지 자극이나 사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방법뿐이다.
이 방법을 원활히 실천하면 오랜 기간 기능을 유지하면서 쇠약 기간을 최소화하는 9988234를 달성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9988234는 의학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목표는 아니지만 노쇠를 늦추고 기능 예비력을 유지하면 장기간 의존‧장애 상태를
줄일 가능성은 높일 수 있다. 결국 본인 의지에 달린 것이다.
박정원 객원논설위원/최보식 언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