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일고의 스타계보는 40년대 '광주야구의 대부' 김양중에서 비롯됐다. 김양중은 1949년 팀을 청룡기 정상에 올리며 광주일고를 전국에 알렸다. 스타계보의 명맥은 70년대 중반 강만식·차영화·김윤환에 의해 26년 만에 다시 이어졌다.
78년 선동열의 입학은 광주일고 전성기의 물꼬를 열었다. 고3 때인 80년 팀을 대통령기 정상에 올린 선동열은 이후 고려대→해태→주니치를 거치면서 최고투수로 자리잡았다.
83년 전국대회 3관왕에 오르는 동안 문희수·박준태 등의 스타가 배출됐고, 84년 2관왕에 오를 때는 이강철·이호성 등이 일등공신이었다.
이종범은 성영재와 함께 88년 청룡기와 전국체전 우승으로 '바람'을 몰고 왔다. "충장중 시절 엘리트코스인 광주일고에 들어가려고 밤낮으로 훈련했다"는 이종범은 "88년 청룡기에서 우승한 뒤 광주 시내에서 카퍼레이드를 했을 때는 하늘을 날아가는 듯했다"며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또한 이종범은 "지금도 광주일고 출신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덧붙였다.
80년대까지는 주로 국내파와 일본파가 득세했다면 90년에는 메이저리거들이 출현, 학교이름을 드높였다. 93년 서재응, 94년 김병현, 95년 최희섭이 입학하면서 명문으로 거듭난 광주일고는 현재까지 해외파들을 가장 많이 배출한 학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