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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8월 20일 목요일
[(백)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베르나르도 성인은 1090년 프랑스 디종 근교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그는 시토회에 입회하였다. 나중에 클레르보 수도원의 아빠스(대수도원장)가 되어, 몸소 모범을 보이며 수도자들을 덕행의 길로 이끌었다. 또한 그는 교회의 분열을 막고자 유럽 각지를 두루 다니며 평화와 일치를 회복하고자 노력하였고, 신학과 영성 생활에 관한 많은 저서를 남겼다. 1153년 선종한 베르나르도 아빠스를 1174년 알렉산데르 3세 교황이 시성하였고, 1830년 비오 8세 교황이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다.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자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정결하게 하여 새 마음을 주고 새 영을 넣어 주겠다고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 비길 수 있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영을 넣어 주겠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6,23-28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23 “나는 민족들 사이에서 더럽혀진,
곧 너희가 그들 사이에서 더럽힌 내 큰 이름의 거룩함을 드러내겠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너희에게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면,
그제야 그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24 나는 너희를 민족들에게서 데려오고 모든 나라에서 모아다가,
너희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겠다.
25 그리고 너희에게 정결한 물을 뿌려,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너희의 모든 부정과 모든 우상에게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26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27 나는 또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가 나의 규정들을 따르고 나의 법규들을 준수하여 지키게 하겠다.
28 그리하여 너희는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1-1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비유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1 말씀하셨다.
2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3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4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 ′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 하고 말하여라.’
5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6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7 임금은 진노하였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
8 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9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10 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11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12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13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14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집회 15,1-6)와 복음(요한 17,20-26)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우리는 자주 선택의 갈림길에 섭니다. 그래서 때로는 결정하는 것 자체를 피곤해하기도 합니다. 하느님을 따르는 길과 그렇지 않은 길 사이에서 갈등하기도 하고, 하느님을 따르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가 후회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 잔치에 초대받아 하늘 나라 잔치를 지상에서 미리 맛보고 있습니다. 이 잔치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습니다. “아무나 만나는 대로”(마태 22,9) 초대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초대받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잔치에 참석하려면 그에 맞는 옷을 준비해야 합니다.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았다는(22,11 참조) 표현에서 다른 사람들은 예복을 준비하여 입고 왔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신앙인은 하느님 잔치에 초대받아 여기에 참석하고자 예복을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잔치에 맞는 예복으로 갈아입는다는 것은 잔치를 마련하신 하느님의 뜻에 맞게 내 삶의 모습을 바꾸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 예복은 어떤 것일까요? 저는 한 처음 우리 모습, 곧 에덴 동산에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 먹지 않았을 때의 아담과 같이 하느님 앞에서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그분께 아무것도 숨기지 않을 때 저절로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주인 앞에서 알맞은 예복을 입고 있을 때 지상에서 열리는 하늘 나라 혼인 잔치인 미사에 기쁘게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회복하는 미사 전 고해성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겨 봅니다.(유청 안셀모 신부)
인생을 잘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요?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요즘 계속 봉독되는 에제키엘 예언자의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이 거듭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에게 전해지는 예언의 말씀은 예제키엘 예언서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동시에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명문장입니다.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에제 36,26)
얼마나 감사하고 은혜로운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돌로 된 마을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는 주님의 말씀이.
돌로 된 마음! 우리가 자주 지니게 되는 마음입니다. 도저히 용서하거나 용납할 수 없다며 꽉 마음의 문을 꽉 닫습니다. 더이상 대화할 가치조차 없다며 마음의 벽을 높이 쌓습니다. 육중한 문으로 꽉 닫힌 마음입니다.
그런 마음을 지닐 때 함께 표정도 따라갑니다. 찬 바람이 쌩하니 불어가듯 냉랭합니다. 퉁명스럽고 과격합니다. 불친절하며 완고합니다. 이런 마음으로는 그 무엇도 할수 없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강단이나 강론대에 선다면 백퍼센트 실패입니다. 그 무엇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서 이런 마음을 치우시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선물로 주시겠답니다. 딱딱하고 차가운 돌과는 달리 살은 따스하고 말랑말랑하고 부드럽습니다.
살로 된 마음의 또 다른 이름은 측은지심이요 연민의 마음입니다. 한없이 너그럽고 관대한 마음입니다. 호의적이고 온화한 마음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활짝 열어 보여주신 당신의 거룩한 마음, 예수 성심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바로 이런 마음,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이 필요합니다. 빈부격차, 남녀노소, 국적 등등 그 무엇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기쁘게 환대하는 마음 말입니다. 그런 마음이 허물어져 가는 우리 교회의 벽을 재건할 것입니다.
온화한 미소, 사랑스러운 시선, 따뜻한 손길만이 너무 외롭고 고통스러워 죽어가는 이웃들을 살릴 것입니다.
요즘 들어 인생을 잘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자주 묵상합니다. 우여곡절투성이인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쓰디쓴 현실조차 기꺼이 수용하는 너그러운 마음을 지니는 것이 아닐까요? 달라도 너무 다른 그,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라 할지라도, 한걸음 크게 뒤로 물러나 그의 쓸쓸한 뒷모습을 측은하게 봐주려는 관대한 마음을 지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마음은 바로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지닐 때 가능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돌처럼 차갑고 단단한 마음을 지닌 채, 사방으로 높은 벽을 쌓고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를 찾아오시길 고대합니다. 한없이 부드러우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돌처럼 단단한 마음을 가져가시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불어넣어주시길 기다립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2024년 6월에 시작한 27기 사목회가 임기를 마치고, 28기 사목회가 지난 7월부터 새롭게 출범하였습니다. 본당 설립 50주년을 준비하면서 저는 사목회장님에게 연임을 부탁드렸습니다. 사목회장님은 두 달 동안 기도하며 고민하였고, 감사하게도 연임을 결정해 주셨습니다. 몇몇 사목 위원들은 사정이 있어서 사임하였지만, 대부분의 사목 위원도 다시 봉사하기로 마음을 모아 주셨습니다. 본당을 위해서 무거운 짐을 기꺼이 지고 가겠다고 응답해 주신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목 위원 임명장 수여식이 있던 주일의 복음은 마태오 복음 11장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저는 이 말씀이 새롭게 출범하는 사목 위원들에게 주시는 위로와 격려처럼 들렸습니다. 본당 공동체를 위해 봉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로는 마음의 짐도 있고, 책임의 무게도 있고,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겪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의탁하면 그 짐이 단순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절망 중에 희망을 보게 되고,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게 되며, 두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얻게 됩니다.
그날 제2독서는 로마서 8장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육에 따라 살도록 육에 빚을 진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육에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2000년 전 로마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이었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로마는 정치, 군사, 경제, 문화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그런 로마 사람들에게 육의 욕망을 따라 살지 말고,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살라고 권고하였습니다. 강력했던 로마 제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살았던 신앙인들의 믿음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무덤 위에는 베드로 대성전이 세워졌고, 교회는 2000년 넘게 성령의 이끄심 안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도 바로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살았던 분입니다. 그는 뛰어난 학자였지만 지식만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수도원의 아빠스였지만 권위를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는 교회와 세상을 향해 큰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었지만, 그 힘을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였습니다. 성 베르나르도는 특별히 겸손과 사랑, 기도와 관상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혼인 잔치의 예복도 바로 이런 마음일 것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옷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겸손한 마음, 이웃을 섬기는 사랑,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봉사의 마음이 참된 예복입니다.
신앙도 선택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기준만을 따르지 않고 주님을 따르기로 선택하였습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현실의 삶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입니다. 주님과 함께 간다는 것은 때로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길입니다. 주님을 섬긴다는 것은 섬김을 받는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먼저 섬기는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선택은 우리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화와 기쁨과 자유를 줍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의 삶을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듯이, 우리도 주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28기 사목회도 이런 신앙의 선택에서 출발하였습니다. 본당 설립 50주년을 준비하는 일은 단순한 행사가 아닙니다. 지난 50년의 은총을 기억하고, 앞으로의 50년을 희망으로 준비하는 믿음의 여정입니다. 우리가 육의 욕망이 아니라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간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와 봉사가 주님의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예복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겸손과 사랑이 본당 공동체를 더 아름답게 만들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당신의 잔치에 초대하십니다. 그러나 그 초대에 합당한 마음으로 응답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겸손하게 주님을 사랑하고,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며, 우리들 또한 주님의 잔치에 어울리는 예복을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새롭게 출범하는 28기 사목 위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축복이 늘 함께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하늘나라인 우리>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마태 22,2)
하늘나라인 우리
믿음으로 서로 품어요
하늘나라인 우리
희망으로 서로 품어요
하늘나라인 우리
사랑으로 서로 품어요
하늘나라인 우리
기쁨으로 서로 품어요
하늘나라인 우리
고움으로 서로 품어요
하늘나라인 우리
맑음으로 서로 품어요
하늘나라인 우리
따뜻함으로 서로 품어요
하늘나라인 우리
부드러움으로 서로 품어요
하늘나라인 우리
어울림으로 서로 품어요
하늘나라인 우리
베풂으로 서로 품어요
하늘나라인 우리
섬김으로 서로 품어요
하늘나라인 우리
살림으로 서로 품어요
오늘의 성인
성 베르나르도(Bernard)
신분 : 수도원장, 교회학자, 신학자
활동지역 : 클레르보(Clairvaux)
활동연도 : 1090-1153년
같은이름 : 버나드, 베르나르두스
테셸랭 소렐(Tescelin Sorrel)과 몽바르(Montbard) 영주의 딸인 복녀 알레타(Aletha, 4월 4일)의 아들인 성 베르나르두스(Bernarduㅣs, 또는 베르나르도)는 부르고뉴(Bourgogne) 디종(Dijon) 근교의 가족 성(城)인 퐁텐(Fontaine)에서 일곱 아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그는 샤티용(Chatillon)에 가서 공부하면서 청운의 꿈을 펼치고 있었으나, 1107년 어머니의 죽음으로 많은 충격을 받고서 수도생활을 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원래 시토회의 설립자 3명 가운데 한 명은 아니었지만 흔히들 그를 시토회의 설립자로 부른다. 그가 새로운 수도회인 시토회에 입회한 해는 1112년 4월인데, 그 때 그는 자기 형제 4명을 비롯하여 모두 30명의 친척, 친구들과 함께 베네딕토회 규칙의 엄격한 해석을 따르기 위하여 1098년에 설립된 시토회에 들어갔다. 그들은 원장이던 성 스테파누스 하딩(Stephanus Harding, 4월 17일)으로부터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1115년에 성 베르나르두스는 성 스테파누스 하딩의 지시에 따라 12명의 수도자와 함께 부르고뉴와 샹파뉴(Champagne)의 경계지역에 있는 클레르보라는 고립된 계곡에 수도원을 세우기 위해 파견되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엄격한 규율 때문에 약간의 어려움에 봉착하였으나, 그의 높은 성덕으로 수많은 제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이때 그 수도원의 이름을 발레 답신트에서 클레르보로 바꾸었고, 당시 68개의 시토회 수도원의 모원으로 만들었다.
그 후 성 베르나르두스는 자신의 학덕과 지덕을 활용하여 수도원의 외부 일을 처리하게 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유럽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 중의 하나가 되어 통치자와 교황의 자문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그는 대립교황인 아나클레투스 2세의 요구에 대항하여 1130년의 교황 인노켄티우스 2세(Innocentius II) 선출의 합법성을 지지하였다. 또한 그는 로테르 2세를 황제로 인정하도록 롬바르디아(Lombardia)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1140년부터 그는 공적으로 설교하는 일을 시작하여 놀라운 명성을 얻었다.
1145년에는 전에 클레르보 수도원의 수도자였던 에우게니우스 3세(Eugenius III)가 교황으로 선출되자, 그는 교황직의 의무에 대한 글을 교황 앞으로 보내어 로마(Roma) 교황청의 남용을 자제하고, 교황이 항상 목전에 두어야 할 종교적 신비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였다. 교황 에우게니우스는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랑그도크(Languedoc)에 파견하여 알비파(Albigenses) 이단을 대항하여 설교토록 하였고, 프랑스와 독일에 제2차 십자군 원정의 열기를 북돋우는 특사로 임명하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활동과 심각한 건강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왕성한 저술가로도 유명하다. 그의 서한과 "아마(Armagh)의 성 말라키아의 생애" 그리고 "신애론"이 영어로 번역되었고, 자신의 수도자들에게 행한 강론은 "아가"로 묶었다. 그는 자신의 저술과 설교에서 성서를 광범위하게 인용하는 이유를 "말씀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박아 주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그의 저서와 신심은 오늘의 신자들에게도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 그는 다양한 기질과 믿음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으며, '꿀처럼 단 박사'(Doctor Mellifluus)란 칭호를 얻었다. 1153년 8월 20일 클레르보에서 선종한 그는 1170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Alexander III)에 의해 시성되었고, 교황 비오 8세(Pius VIII)는 1830년에 그를 교회학자로 선포하였다. 그는 스콜라 학파 이전의 신학자이며, 때로는 '마지막 교부'로 불리기도 한다. 그의 문장은 꿀벌통이고 양봉업(자)의 수호성인이다.
성녀 마리아 데 마티아스(Maria de Mattias)
신분 : 설립자, 수녀원장
활동연도 : 1805-1866년
같은이름 : 마띠아스, 메리, 미리암
성녀 마리아 데 마티아스(Maria de Mattias)는 1805년 2월 4일 지리적으로 이탈리아의 프로시노네(Frosinone) 지방에 위치한 교황령의 최남단 마을인 발레코르사(Vallecorsa)에서 태어나 그날로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신심 깊은 가정에서 아버지 조반니 데 마티아스(Giovanni de Mattias)와 어머니 오타비아 데 안젤리스(Ottavia de Angelis)의 네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녀는 매우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읽어주는 성경 이야기를 듣고 인류 구원을 위해 희생양이 되신 예수님께 대한 위대한 사랑을 키워갔다. 비록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여성이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그녀는 스스로 읽고 쓰는 법을 배웠다. 신앙의 진리뿐만 아니라 성경의 일화와 인물들에 대해 배우고 내면화시킨 이 모든 일들은 발레코르사와 그 주변 지역이 무질서와 혼란에 빠져 고통 받던 시기(1810-1825년)에 이루어졌다. 그러면서 마리아의 정신 안에서는 증오와 복수를 야기하는 인간의 피와 사랑과 구원을 가져다 준 그리스도의 피의 존재가 대비되었다.
10대 초반까지 세상과 접촉하지 못하고 집안에 박혀 지내던 그녀는 한때 종교보다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에 더 큰 관심을 두기도 했지만, 16-17세에 이르러 인생의 의미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고 무한한 사랑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내면의 어두움을 걷어내던 그녀는 신비로운 환시를 경험하고 하느님의 아름다운 사랑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 사랑은 모든 이를 위해 당신의 피를 내어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고 명백해졌다. 또한 이 체험은 마리아가 앞으로 만나게 될 모든 사람들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사랑과 천상 아버지의 감미로운 사랑을 깨닫도록 하는 원천이요 힘이자 동기가 되었다. 예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당신의 피를 어떻게 주셨는지를 알고, 하느님의 눈으로 자신의 가치를 이해하기 시작할 때 사람들의 마음과 사회는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이러한 체험이 남녀노소 모든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그녀가 17살이 된 1822년 보혈 선교회를 설립한 성 가스파르 델 부팔로(Gaspar del Bufalo, 1월 2일)가 그녀의 마을을 방문했다. 자기희생의 모범으로써 그리스도의 보혈(보배로운 피)의 신비를 제시한 성인의 설교에 마을 사람들이 변화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은 마리아는 자신의 가슴 속에 간직했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하느님께 헌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결국 가스파르 성인의 동료 중 하나인 가경자 조반니 메를리니(Giovanni Merlini) 신부의 지도 아래 그녀는 1834년 3월 4일, 그녀의 나이 29살에 프로시오네의 아쿠토(Acuto)라는 작은 마을에서 학교를 시작하며 그리스도의 성혈 흠숭 수녀회를 설립하였다.
성녀 마리아 데 마티아스 원장은 30년을 넘게 이탈리아 전역을 여행하며 여러 곳에 소녀들을 위한 학교와 수녀원 공동체를 설립하였다. 당시 여자 아이들이 교육의 혜택을 받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또한 가정생활의 성화를 위해 기혼 여성을 위한 강좌를 여는 등 여성 교육에 헌신하였다. 그녀는 당나귀에 짐을 싣고 먼 길을 걸어서 여행하는 힘겨운 여정이었지만 자신이 가는 곳이면 어느 마을에서든지 예수님께서 당신의 피를 흘림으로써 구속의 사랑을 이루신 성혈의 신비를 선포하길 원했다. 그래서 이탈리아 중부 지역에서 그녀는 ‘설교하는 여성’으로 알려졌다. 그녀가 설립한 공동체는 매우 가난했고 종종 먹을 것이 떨어질 때도 있었지만 항상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과 무엇이든 나누기를 원했다. 그녀가 살아 있는 동안 그녀가 설립한 수도 공동체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 이미 70개를 넘어섰다.
그녀는 1866년 8월 20일 로마(Roma)에서 선종하여 로마의 캄포 베라노(Campo Verano) 묘지에 묻혔다. 그녀의 성덕에 대한 명성은 선종 이후에 더욱 널리 퍼져 30년이 지난 1896년 그녀에 대한 시복시성 절차가 시작되었고, 그 열기는 1950년 10월 1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그녀의 시복이 선포되었을 때 최고점에 올랐다. 그 후 그녀의 유해는 로마에 있는 수녀원 총원의 보혈 경당 내로 옮겨 모셨다. 그녀는 2003년 5월 18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녀의 축일은 예전부터 기념해 오던 2월 4일 또는 선종일인 8월 20일에 기념한다.
성 사무엘 (Samuel)
활동년도 : +11세기BC
신분 : 구약인물, 예언자
지역 :
같은 이름 : 사뮈엘, 새무얼, 싸무엘
히비르인들이 판관 시대의 느슨한 동맹 체제에서 중앙집권적 왕정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이가 기원전 11세기에 활약한 성 사무엘('하느님의 이름' 또는 '그의 이름은 하느님이다'라는 의미)이다. 그는 구약성서에서 당시 유대인 남자가 맡을 수 있는 지도자 역할, 즉 제사장 · 판관 · 예언자 · 군대 지휘관 등을 모두 맡은 인물이었다.
사무엘 상권 1-16장에 나타난 사무엘의 활동은 주로 사울 왕의 활동과 관련되어 있다. 에브라임 산악지대에 사는 라마다임 출신의 수브 사람 엘카나와 그의 아내 한나는 야훼께 빌어서 아기를 얻었는데(1,1; 1,20), 이렇게 태어난 아기를 한나는 나지르인의 서원으로 실로 성소에서 봉헌하였다(1,11. 28; 2,11; 3,1). 엘리 사제 밑에서 야훼를 섬기던 소년 사무엘은 어느 날 밤 하느님의 계시를 받았는데, 그것은 불경한 아들들을 둔 엘리의 집안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이었다(3장). 이 계시는 사무엘이 ‘야훼의 예언자’로서 활동하는 최초의 계기가 되었다.
4-6장은 히브리인들이 블레셋군에게 패하여 계약의 궤를 빼앗기고, 엘리의 가문이 멸망하고, 실로 성소가 파괴된 내용이다. 블레셋에게서 계약의 궤를 돌려받은 후에 사무엘은 판관이 되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하라고 경고하였고, 블레셋의 침략으로부터 백성들을 구하였다(7장). 그는 이스라엘의 판관으로서 죽는 날까지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해마다 베델과 길갈과 미스바를 순회한 후 자신의 집이 있는 라마(Ramah)로 돌아오곤 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을 두루 다스리며 야훼께 제사드릴 제단도 쌓았다(7,16-17). 사무엘은 나이가 많아지자 자신의 두 아들 요엘과 아비야를 판관으로 임명하고 브엘세바(Beer-Sheba)를 다스리게 하였다(8,1-2).
이어 서로 다른 왕정 설립 설화들이 언급되어 있는데, 사무엘은 시대의 피할 수 없는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웠다는 것이 그중 하나(9,1-10. 16)이다. 한편 또 다른 성서 구절(7,3-8,22; 10,17-19; 12,1-25)에서는 백성들이 직접 투표로 사울을 왕으로 선택하였다고 나온다. 하지만 사무엘은 왕정 설립 요청이 이스라엘의 유일한 구원자요 왕인 야훼를 변절하는 행동이라고 비난하면서 마지못해 왕정 설립에 동의하였다. 사무엘은 특히 고별사에서 백성들에게 야훼의 명령을 거역하지 말라고 경고하였다(12장).
15장에 보면 사무엘과 사울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이 갈라진다. 사무엘은 죽는 날까지 사울을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았고, 야훼가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던 것을 후회한 일을 생각하며 통곡하였다(15,34-35). 이러한 내용은 앞선 성서 구절(13,13-14)에 이미 나와 있다. 다윗과 함께 나욧으로 내려가 있던 사무엘을 찾아간 사울이 그 앞에서 예언 황홀경에 빠져 버린 이야기(19,18-20)를 비롯하여, 사무엘은 죽은 후(25,1; 28장)에도 혼백으로서 계속해서 사울의 왕정사에 등장하고 있다.
성 베르나르도 톨로메이 (Bernard Tolomei)
활동년도 : 1272-1348년
신분 : 설립자,수도원장
지역 :
같은 이름 : 똘로메오, 똘로메우스, 똘로메이, 버나드, 베르나르두스, 톨로메오, 톨로메우스, 벨라도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 지방의 시에나(Siena)에서 귀족 가문의 일원으로 태어난 성 베르나르두스 톨로메이(Bernardus Tolomei, 또는 베르나르도 톨로메이)는 요한(Joannes)이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어려서부터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두스(8월 20일)를 흠모한 그는 자신의 이름마저도 베르나르두스로 바꿀 정도였다. 그의 아버지는 성인이 수도생활에 입문하는 것을 방해하였고, 결국 그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여 행정관이자 황제의 기사가 되었다. 신심이 매우 깊었던 그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거의 시력을 잃은 뒤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간구하여 시력을 회복한 후에는 모든 것을 뿌리치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은둔소로 피신하였다.
그는 1313년 두 명의 다른 시에나 출신 동료들과 함께 시에나 남쪽에 있는 아코나(Accona) 광야에 들어가 은수생활을 시작했는데, 암브로지오 디 니노 피콜로미니(Ambrogio di Nino Piccolomini)와 파트리치오 디 프란체스코 파트리치(Patrizio di Francesco Patrizi)가 그들이다. 그들은 초기 수도승들처럼 침묵과 단순한 생활로 관상생활에 전념하였다. 그 후 그들의 거룩한 생활이 알려져 제자들이 모이자 성 베르나르두스 톨로메이는 몬테 올리베토(Monte Oliveto)에 수도원을 세우고 1319년 수도회로 인가를 받았다. 그는 이때 자신의 수도명으로 베르나르두스를 정하였다.
그는 페스트에 걸린 형제들을 돌보다가 1348년 8월 20일 그 자신도 페스트로 선종할 때까지 수도회 형제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으며 원장으로 봉사했다. 그가 설립한 ‘베네딕토회 몬테 올리베토의 성모 마리아 연합회’는 관상생활을 지향하지만, 시대와 환경의 요구에 따라 활동적인 사도직에도 참여하고 있다. 1634년(또는 1644년) 교황 우르바노 8세(Urbanus VIII)에 의해 복자품에 오른 그는 2009년 4월 26일 교황 베네딕토 16세(Benedictus XVI)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는 클레르보(Clairvaux)의 성 베르나르두스(8월 20일)와 함께 시에나의 수호성인으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