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을 봉헌하게 하셔
에스라 6장 12절-18절 2024년 6월 30일 주일 오후 말씀지
하나님의 아들들로 보내셨건만 세상에 속해 살다가 우상 숭배로 인하여 무너졌던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이제 불쌍히 여기사 돌아와 다시 성전을 짓게 도우신 역사를 나타내주신 양식이 에스라서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에스라서를 바로 알지 못하고 에스라의 신앙개혁, 보이는 예배당 다시 크게 짓는 우상 주의로 빠져 있습니다. 이때에 복음으로 살리사 내 몸을 성전 삼고 견고하게 지어나가게 하시려 계속해서 주십니다. 복음의 아비와 같은 앞선 자를 만나게 하신 자들은 다시 무너지지 않으나 자칫 깨어있지 않거나 영적 양식을 놓치면 역시 1.원죄에 지고 2.세상 유혹에 빠지고 3.거짓에 속아 살게 포로 생활과 같이 답답한 징계에 떨어져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하는 기도가 나오게 하시고 그때 앞선 자들을 만나게 하시고 그분들을 통해서 다시 짓게 하시는 것입니다. 스5:2-
타락했다가 다시 성전 삼고 살아가려 할 때에 과거의 습관들과 세상에서 잘 지냈던 자들이 방해 역활을 하는데 이때 그런 자들을 미워하거나 원망하면 성전 역사는 중지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을 통해서는 형제를 미워하면 그 안에 영생이 없다고 하셨는데 영적 성장이 멈추었다는 것이지 지옥 간다는 것이 아닙니다. 요1서3:15-
오직 에스라서에 11명과 장로들과 같이 여태까지 받은 말씀과 선지자들을 통해서 때마다 주시는 말씀을 받고 주시는 힘으로 다시 지어나갈 수 있는 것을 나타내주셨습니다. 이제 올라오게 하신 후 20년 만에 완공되어 기쁨의 봉헌식을 하게 되는데 기복신앙에 빠진 오래된 예배당들마다 언제 봉헌식을 했는지 머릿돌에 새겨 자기들의 공로를 기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사울 왕과 (삼상15:12) 다윗의 아들 압살롬처럼 (삼하18:18) 자기 기념관까지 지어서 대대로 추앙받으려 하는 자들도 많은 것입니다. 다 화 받는 바리새인들이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마23:29-
12절 만일 열왕이나 백성이 이 조서를 변개하고 손을 들어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을 헐찐대
고레스 왕과 다리오 왕은 자기를 통해서 세운 이 성전을 누구든 헐지 말라고 명을 내리는데 사실 성령 시대에 내 몸이 성전 된 것을 알게 하시려 짓게 하셨던 성전이기에 솔로몬 성전도 무너졌고 스룹바벨 성전과 헤롯 성전 모두 무너진 것입니다. 앞으로 대 환난 때에는 음녀와 바벨론 성처럼 눈에 보이는 화려한 건물을 지어놓고 성전이라 하는 자들도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계18:2-
그곳에 이름을 두신 하나님이 저희를 멸하시기를 원하노라 다리오 왕도 성전에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거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줄 압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큰 성당과 큰 예배당을 지어놓고 성전이라 하며 거기에 하나님을 가두고 있나요? 우주를 지으신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인데 어디엔들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할까요? 스데반 집사를 통해서 성전을 우상시하는 자들을 강하게 책망케 하셨습니다. 행7:48-
멸하신다는 것을 글자로 보는 자들이 많은데 내 몸을 성전 삼고 거룩 생활을 하지 않으니 원죄에 져서 자기 몸을 더럽히는 죄만 짓는 자리에 떨어진 것이니 이제부터 이것 저것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잃게 하사 괴롭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로도 피로 값주고 사신 성전인 내 몸을 더럽히면 멸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고전3:16-
나 다리오가 조서를 내렸노니 신속히 행할찌어다 하였더라 다리오 왕은 자기 권세로 내린 조서가 어디든 전달되어 아무도 예루살렘 성전 짓는 것 방해 말고 지은 성전이 영원하기를 바란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성전 짓는 일을 하지 않거나 게을리 하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방해하거나 핍박하거나 심지어 악하여 죽이는 일을 하는 자들은 화가 있을 뿐입니다.
13절 다리오 왕의 조서가 내리매 강 서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 동료들이 신속히 준행한지라 당시에 왕의 명령을 어기면 살 수가 없습니다. 그와같이 지금도 영광의 왕이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어찌 살 수 있을까요? 그 위에 진노가 항상 머물러 있습니다. 시24:8-
14절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함으로 인하여 장로들은 그 속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신 말씀들이 양식으로 채워져 있기에 기쁨으로 힘있게 강하게 나갈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장로들이 교권에 빠져 권위만 내세우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선지자 학개(쾌락)와 스가랴(여호와는 기억하신다)와 같은 복음의 아비로 살리심 받지 못하고 내가 예수 믿어 구원받은 줄 알기 때문입니다.
전 건축할 일이 형통한지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선지자들을 통해서 때에 양식의 말씀으로 채워져 나감으로 성전 건축이 형통하게 되었는데 영적 신앙생활을 마음껏 왕같이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환도뼈가 부러져 오늘도 겸손히 나온 자들에게 성전을 짓게 하시는 양식의 말씀이요 바사 왕 고레스 왕과 다리오 왕의 그 마음을 감동하사 성전을 짓도록 모든 물품까지 주게 하신 왕으로 우리에게 주신 좋은 환경입니다. 스6:4-
아직도 예배당 건물을 성전이라고 하는 자들은 복받기 위해 천국가기 위해 열심하고 충성하는데 하면 할수록 힘들다고 합니다. 그러나 복음이 믿어진 자들은 늘 성령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성전을 짓는 일이 얼마나 쉬운지 기쁨과 감사만 나오는 것입니다. 마11:28-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 전을 건축하며 필역하되 아닥사스다 왕은 대적자들이 올린 고소장을 살펴보지도 않고 그들의 주장대로 유다가 반역을 꾀할까 봐 중지를 시켰던 왕입니다.
15절 다리오왕 육년 아달월 삼일에 전을 필역하니라 포로 생활 50년 만에 올라오게 하시고 이제 성전을 완공하게 되기까지 모두 20년 걸렸는데 예레미야 선지로 예언하신대로 70년만에 이뤄지게 하셔서 이제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하게 하신 것입니다. 렘29:10-
16절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기타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유다 백성을 이스라엘 자손이라 하신 것은 포로로 잡혀가게 하신 것은 모두 환도뼈가 부러진 야곱처럼 자기 의는 다 꺽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 감사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성전 봉사에 전 생애를 드리게 하신 자들입니다.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바로 유다 지파 사람들입니다.
즐거이 하나님의 전 봉헌식을 행하니 이제 자기 의(義)는 다 버리고 하나님의 의(義)를 세우는 것이 봉헌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배당들 마다 크게 지어놓고 은혜로 지었다고 하면서도 땅을 바치거나 건축 연보를 많이 낸 사람들의 이름을 교인 앞에서 높이고 심지어 머릿돌에 기록함으로 자손 대대로 자기들의 공로를 우려먹고 있는 것은 아직도 가죽옷 구원이 믿어지지 않은 야곱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리 많은 일을 하여도 험악한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창47:9-
지금도 나이 들어갈수록 야곱처럼 요셉을 잃고 베냐민까지 잃을까봐 슬퍼하며 두려워하는 자들이 많은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아직도 환도뼈가 부러진 이스라엘의 자리에 있지 못하고 환도뼈가 부러지지 않은 야곱의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17절 하나님의 전 봉헌식을 행할 때에 수소 일백과 수양 이백과 어린 양 사백을 드리고
봉헌식에 제물의 영적 뜻을 새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또 내가 무엇을 많이 바쳤다고 바리새인들처럼 사람 앞에 칭찬 듣는 것을 좋아하게 됩니다. 그러면 상을 잃게 되는 음부의 권세에 진 것입니다. 아직도 음부의 권세를 잘못 말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올바른 신앙고백을 하게 하사 음부의 권세를 이기게 하시는 것은 일한대로 온전한 상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마16:18-
수소는 죽기까지 충성을, 수양은 죽기까지 순종을 어린 양은 가죽옷 구원과 십자가 구원을 뜻합니다. 창4:4,
요1:29-
소와 양은 풀을 먹음으로 충성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기쁨으로 순종만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처럼 영적 양식을 받아먹게 하시고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어린양이 사백이니 가장 많이 감사할 것이 가죽옷 구원과 십자가 구원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 지파의 수를 따라 수 염소 열 둘로 이스라엘 전체를 위하여 속죄제를 드리고
이스라엘의 지파의 수는 12이요 각 지파마다 믿음이 다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열두제자를 택하셨는데 모두 그 믿음이 다릅니다. 사도 요한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사도바울로는 영적 성장을 베드로 사도로는 영광의 산 소망을 야고보 장로로는 믿음과 행함을 유다 장로로는 거짓된 자들을 이기게 하시려 성경을 기록하게 하사 양식으로 받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나눠주는 자가 적으니 좁은 길이요 받아먹고 늘 깨어 나가야 하니 좁은 문인 것입니다. 영광성에도 열두 문이 있는데 그 영광이 각기 다르다는 것입니다. 계21:12-
분명 이 땅에서 영광에 합당한 생활을 얼마나 했느냐? 에 따라서 영광이 달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참으로 많은 것입니다. 가장 힘이 센 수 염소는 앞서가며 다른 염소들을 뒤따르게 합니다. 속죄제를 드리게 하신 것은 앞서가야 할 족장들이 부끄럽게 살은 것을 회개케 하시는 것입니다. 렘50:8-
18절 제사장을 그 분반대로, 레위 사람을 그 반차대로 세워 성전 봉헌식을 했으니 이제 계속해서 제사를 해야 함으로 제사장들이 많이 필요하고 레위 사람도 필요했습니다.
분반(分班)을 한 것은 혼자서 감당할수 없음으로 나눠서 한 것이요 반차를 세워 한 것도 독불장군들이 나오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지금도 예배 때 기도하는 자들 심지어는 연보를 관리하는 것도 혼자서 하지 않고 순번제로 반차(班次)대로 하는 것입니다. 민3:6,8:15-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되 모세의 책에 기록된 대로 하게 하니라 시대가 지나갔으니 시대에 맞게 한 것이 아니라 이미 모세 때에 말씀하신 대로 하게 하신 것입니다. 갈수록 구약은 지나간 이스라엘의 역사이니 구원파처럼 율법을 저버리는 자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한 구약에 갇혀 성령 시대가 온 줄도 모르고 있는 안식교, 하나님의 교회 같은 자들이 많은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성으로 먼저는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요 이제는 옆에 있는 모든 자들과 평화의 관계를 이루어 가는 것인데 바로 십자가입니다.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이 십자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마22:36-42
아직도 율법을 지켜서 복받고 오래 살다가 평안히 죽어 천국에 간다고 하는 자들이 율법주의 자들입니다. 그들 속에는 사랑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어 믿지 않으면 다 지옥 간다. 계명을 범하면 지옥간다 하면서 지옥 자식들만 계속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로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않는 가운데 두어 가죽옷 구원으로 구원하신 것을 롬11:32-
성령 시대 전 모든 사람을 율법 아래 가두어 두사 십자가로 구원하신 것을 알지 못한 탓인 것입니다. 갈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