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불사(佛事)의 목적은 ‘참 부처’ 이루기 위한 것”
서울 전등사 회주 동명스님
2016-07-19 정리=이성수 기자
불법의 현실 구현이 ‘불사’
마음에 등불 밝히는 정진
본래 뜻 잊고 대가 바라면
사도와 미신 빠질 수 있어
서울 전등사 회주 동명스님이 지난 13일 신도들의 수행과 정진을 당부하는 소참법문을 했다.
서울 전등사 회주 동명스님이 지난 13일 신도들의 수행과 정진을 당부하는 소참법문을 했다.
30도를 넘는 무더위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불법(佛法)의 대의를 배우고, 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신도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드립니다. 세간이나 출세간을 가리지 않고 부처님이 계시지 않은 곳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절에 와서 기도하고 정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분들이 머물고 있는 바로 그 자리, 즉 생활에서 불교의 가르침을 배우고 따르는 것 역시 소중한 일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전해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불사(佛事)’에 대한 것입니다. 잘 알다시피 불사는 법당이나 불상, 불화 등을 조성하는 일 또는 스님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을 표현한 용어입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불사의 종류는 가사불사(袈裟佛事), 생전예수(生前預修), 인경불사(印經佛事), 탑사건립(塔寺建立), 수륙재(水陸齋) 등 다양합니다.
그러나 불사의 뜻은 여기에서 더 확대되어 불교의 가르침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모든 일이란 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대로 시방삼세(十方三世)에 부처님이 계시니, 사찰이든 회사든 가정이든 그 어느 곳에서나 부처님을 모시고 있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즉 여러분이 하고 계신 바로 지금의 일이 곧 불사(佛事)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전하고 싶습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마주한 이 순간도 곧 불사이며, 친구들을 만나거나 가족들과 함께하는 순간, 그리고 회사에서 가게에서 동료와 손님을 만나는 그 순간도 바로 불사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불사는 어떠한 목적을 갖고 해야 될까요? 우리가 불사를 하면서 기복(祈福)이나 공덕을 바란다면 올바른 불사라고 할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금강경(金剛經)>에는 “보살은 복덕을 받지 않는다”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보살은 어째서 복덕을 받지 않는다고 했을까요? 보살이 여러분보다 무엇이 부족하여 복덕을 받지 않는다고 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그렇습니다. 보살은 복덕을 바라는 마음으로 불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보살은 불사를 하면서 자기의 공덕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복덕을 짓되 그 복덕에 탐착하지 않기에 보살은 복덕을 받지 않는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범부 중생들은 어떠한가요? 불사를 하면서 대가를 바라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고 점검해야 합니다. 불사에 동참하면서 그 공덕을 인정받고 싶어 하고, 자기가 원하는 바가 성취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불사의 본래 뜻을 잊어버리고 대가를 바라는 마음과 욕심이 앞선다면 사도(邪道)와 미신(迷信)에 빠질 수 있습니다. 수승한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따르는 제자인 불자들이 사도와 미신에 빠져서야 되겠습니까?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되겠지요. 수 많은 강과 하천이 흐르고 흘러 결국엔 바다에 도달하듯이 우리가 불사를 하고 불사에 동참하는 뜻은 구경(究竟), 즉 깨달음을 성취하는 대원(大願)에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고구정녕(苦口丁寧)한 부처님의 팔만사천 법문이 곧 중생을 견성성불(見性成佛)로 유도하는 가르침임을 마음 깊이 새기고 정진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가련한 중생들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바라보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의 은사이신 해안(海眼) 대종사께서도 생전에 불사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하셨습니다. 큰스님은 “나무를 심는 사람은 그 뿌리를 북돋아줘야 하는 것이지 가지나 잎새를 아무리 만지고 보호하여도 소용이 없다”면서 불교의 대의(大義)를 정확히 알고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드린 말씀도 제가 해안 큰스님 회상에서 배운 가르침의 일부를 전한 것입니다. 비록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은사 스님의 말씀이 곧 법어(法語)이고 설법(說法)이었음을 다시 한 번 절감합니다. 지금부터 46년 전인 1970년 4월 불교전등회 첫 정기총회에서 은사 스님은 “모든 불사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하기 위함인가를 성찰해야 한다”면서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참 부처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역설하셨습니다.
여름 무더위가 한창입니다. 매년 더위가 더 기승을 부리는 것 같습니다. 지구온난화로 기상이변이 발생한 것으로 과학자들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계절이 뚜렷했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봄 가을은 짧아지고, 여름 겨울이 길어지는 ‘이계절 국가’로 바뀌고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 또한 인류가 자연을 잘 보호하지 못한 과보를 받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든 존재에 불성(佛性)이 있음을 강조한 부처님 가르침을 상기할 때, 자연을 부처님으로 여기고 잘 보존 보호했으면 지금과 같은 이상 기후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연을 부처님으로 대하는 일, 즉 불사(佛事)를 소홀히 한 결과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제부터라도 환경을 잘 보존하고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불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환경이 나빠졌다고 넋을 놓고 앉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비록 예전에 비해 뜨겁고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 여름을 건강하게 지내는 것은 역시 중요한 일입니다. 몸을 망치고서, 어찌 불법(佛法)을 온전하게 배울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건강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불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더위를 핑계 삼아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건강을 잘 지키면서, 틈틈이 자신의 처지에 맞는 수행과 정진을 해야 합니다. 시원한 에어컨을 틀어놓고 낮잠만 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옛 말씀에 ‘사람 몸 받기 어렵고, 부처님 법 만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사람 몸을 받아 공부는 하지 않고 낮잠만 잔다면 한심한 인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존재가 불성이 있으니, 이 몸 받은 나 또한 부처님이 될 조건을 갖추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사람 몸을 받아 불교와 인연을 맺었는데, 수행과 정진을 하지 않는다면 삶을 허비하는 것입니다. 즉 불사를 소홀히 하는 것이죠. 그러니 이번 여름에는 육체의 건강을 지키면서, 부처님 가르침을 한 자라도 더 읽거나 염송하는 수행을 하기 바랍니다. 또한 흐트러지고 산란한 마음을 잘 가라앉혀 평안한 마음, 즉 안심(安心)을 이루는 참선 수행도 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것이 곧 불사를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
해안 대종사께서는 “등불을 밝혀 어두운 사바세계를 밝은 극락세계로 만들고자 하면 모든 사람이 각자의 마음 속에 부처님의 등불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여러 가지 수행이 있지만, ‘마음에 부처님 등불을 밝히는 참선’이 수승한 수행방법입니다. 절에 올 시간이 없다면, 여러분 집에서 매일 아침 저녁 등 그 어느 때나 짧게라도 시간을 내어 참선을 해보길 권해드립니다. 처음에는 집중이 잘 안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5분만 참고 앉아 마음을 정돈해 보세요. 어려움을 참는 것도 공부입니다. 그리하여 시간을 점차 늘려가면서 마음 공부를 꾸준히 하게 되면 그 어느 시간보다 행복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 또한 부처님 일, 즉 불사입니다.
제가 시골에 내려가 있으면서 신도분들을 자주 뵙지 못했는데, 이렇게 조촐한 자리에서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니 저도 기쁩니다. 늘 부처님 가르침을 잘 받들고 배우며 익히는 불사(佛事)에 최선을 다해주길 당부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해안대종사께서 생전에 자주 말씀하신 가르침을 전해드리며 오늘 자리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누가 있어 나에게/ 무엇이 불법이냐고 물으면/ 나는 무엇이 불법이냐고 대답하리/ 불법은 뜻이 없나니 뜻을 묻지 마소 … 불법(佛法)은 가장 친한 데 있으니/ 의심 말고 차 마시소/ 딴 생각을 내게 되면/ 불법과는 멀어지네.”
동명스님 발자취
1950년 전북 부안 출생. 1964년 부안 내소사에서 해안(海眼)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출가. 내소사에서 사미계를, 통도사에서 구족계를 수지. 1975년 해인사 강원을 졸업. 이후 해인사, 송광사, 백양사 등 제방선원에서 정진. 동국대 불교대학원 졸업. 부안 내소사 주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서울 개운사 주지 역임. 현재는 서울 전등사 회주와 해인승가대동문회장 소임을 보고 있다.
소참법문
시간 장소 얽매지 않고
수시로 가르침을 설함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수시로 법을 설하는 것을 소참법문(小參法門)이라고 한다. 참선 수행에 집중하는 안거철에 선원에서는 조실 등 선지식들의 법문을 듣고 공부를 점검하는 기회를 갖는다. 법당의 법좌(法座)에 올라 설하는 상당(上堂) 법문이 대표적이고 전통적이다. 매월 초하루나 보름에 봉행하는 단망상당(旦望上堂), 매월 5, 10, 20, 25일에 거행하는 오참상당(五參上堂), 3일에 한번씩 갖는 구참상당(九參上堂)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결제와 해제에만 상당법문이 행해지고 있다. 이에 비해 소참법문은 시간, 장소, 형식 등에 제한을 두지 않고 이뤄진다. 선원에서는 조참(朝參)과 만참(晩參)이라고 해서 아침 저녁으로 소참법문이 진행된다.
[불교신문3219호/2016년7월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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