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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13일 목요일 [(자) 성주간 목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성유 축성 미사 (백) 주교는 관습에 따라, 오늘 아침에 거행하는 고유 미사에서 병자 성유와 예비 신자 성유를 축복하고 축성 성유(크리스마)를 축성한다. 이날 성직자와 교우가 주교와 함께 모이기 어려우면 이 축성은 미리 앞당겨 거행할 수 있다. 다만 파스카와 가까운 날에 이 고유 미사를 거행한다. 이 미사는 주교가 자기 교구 사제단과 공동으로 집전함으로써 주교와 사제들의 일치를 드러낸다. 그러므로 모든 사제는 공동 집전을 하지 않더라도 되도록 이 미사에 참여하여 양형 영성체를 하도록 한다. 또한 교구 사제단의 일치를 드러내고자 주교와 공동 집전하는 사제들은 교구의 여러 지역을 대표하는 사제이어야 한다. 주교는 강론 때에 자기 사제들에게 사제 직무에 충실하도록 촉구하고, 또한 사제품을 받을 때 한 서약을 공적으로 새롭게 하도록 한다. 라틴 전례의 관습대로 병자 성유는 감사 기도를 마치기 바로 전에 축복하고, 예비 신자 성유의 축복과 축성 성유의 축성은 영성체 후 기도 다음에 한다. 그러나 사목의 이유가 있다면 모든 성유 축성 예식을 말씀 전례 다음에 곧바로 할 수도 있다. 물론 그 순서는 아래에 설명한 대로 지켜야 한다. 이사야 예언자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한다. 주님께서 자신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고 영을 내리시어 파견하셨다고 선언한다. 주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시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게 하신다(제1독서). 요한 묵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전한다. 그분께서는 구름을 타고 오시며, 모든 사람이 그분을 보게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알파요 오메가'이시라고 말씀하신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나자렛의 회당에서 이사야서의 말씀을 읽으시며 희년을 선포하신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 말씀이 바로 그들이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고 하신다(복음).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고,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61,1-3ㄹ.6ㄱㄴ.8ㄷ-9 1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2 주님의 은혜의 해, 우리 하느님의 응보의 날을 선포하고, 슬퍼하는 이들을 모두 위로하게 하셨다. 3 시온에서 슬퍼하는 이들에게 재 대신 화관을, 슬픔 대신 기쁨의 기름을, 맥 풀린 넋 대신 축제의 옷을 주게 하셨다. 6 너희는 '주님의 사제들'이라 불리고, '우리 하느님의 시종들'이라 일컬어지리라. 8 나는 그들에게 성실히 보상해 주고, 그들과 영원한 계약을 맺어 주리라. 9 그들의 후손은 민족들 사이에, 그들의 자손은 겨레들 가운데에 널리 알려져, 그들을 보는 자들은 모두, 그들이 주님께 복 받은 종족임을 알게 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셨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1,5-8 5 성실한 증인이시고 죽은 이들의 맏이이시며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피로 우리를 죄에서 풀어 주셨고, 6 우리가 한 나라를 이루어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사제가 되게 하신 그분께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7 보십시오, 그분께서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모든 눈이 그분을 볼 것입니다.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이고, 땅의 모든 민족들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입니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 8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16-21 그때에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구약의 예언자와 사제와 임금은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직분에 맞는 하느님의 능력을 받도록 축성되었습니다. 기름부음으로 ‘하느님의 영’이 그들에게 머무르기에 그들은 세속적인 것과 구별되며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예언자직과 사제직과 왕직을 완성시키는 메시아의 시대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교회는 성유를 축성하며 그리스도인이 받을 세 가지 직무를 수행하도록 권고합니다. 신앙인은 전례에 참여하여 하느님을 예배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며 이웃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오늘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또 다른 그리스도’(Alter Christus)가 되어야 할 사제들은 ‘기름으로 도유되어 축성되었던 은총’을 기억하며 ‘서약 갱신’을 합니다. 신자들은 사제들이 예수님을 닮은 거룩한 사제가 되도록 기도하는 날입니다. 물질주의가 팽배한 이 시대에 사제들은 자신들의 고귀한 직분을 수행하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사제들을 위한 신자들의 기도는 사제 생활의 버팀이며 위로입니다. 성 에프렘 부제는 이렇게 말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의 인장은 세례를 받아 표징을 얻은 사람의 몸에 표시를 남깁니다.” 사제들은 성품을 통하여, 신자들은 세례와 견진을 통하여 성령의 인호를 받음으로써 고귀한 신분이 됩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께 선택되어 뽑힌 품위를 잘 간직합시다. 이러한 하느님의 은총에 깊이 감사하는 기도를 올립시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백) 주님 만찬 성 목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교회는 오늘 '주님 만찬 미사'로 '파스카 성삼일'을 시작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당신의 몸과 피를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하셨다. 이 만찬에서 예수님께서는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며 그들에 대한 크나큰 사랑을 드러내셨다. 제자들과 그 후계자들은 예수님의 당부에 따라 이 만찬을 미사로 재현한다. 주님 만찬 저녁 미사 교회의 오랜 전통에 따라 이날은 교우가 참석하지 않는 미사를 드릴 수 없다. 적당한 저녁 시간에, 사제와 봉사자들을 포함한 지역 공동체 전체가 참석한 가운데 주님 만찬 저녁 미사를 드린다. 성유 축성 미사를 공동으로 집전하였거나 교우들의 형편 때문에 이미 미사를 집전한 사제들도 이 저녁 미사를 다시 공동으로 집전할 수 있다. 사목의 이유로 필요하면 교구장은 성당이나 경당에서 저녁때에 미사를 또 한 번 드리도록 허락할 수 있다. 저녁 미사에 참여할 수 없는 신자들만을 위하여 아침 미사 집전도 허락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특수 미사는 어떤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드릴 수 없으며 주님 만찬 저녁 미사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 신자들은 미사 중에만 영성체를 할 수 있고, 병자들은 아무 때라도 할 수 있다. 주님께서는 이집트를 치실 때 당신 백성의 집은 거르고 지나가시어 구원하신 날을 기념하여 파스카 축제를 지내라며 그 규칙을 명하신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고 주 예수님께서 명하신 대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빵을 먹고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만찬 때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며,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하시며 본을 보여 주신다(복음). <파스카 만찬에 관한 규칙>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12,1-8.11-14 그 무렵 1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2 "너희는 이달을 첫째 달로 삼아, 한 해를 시작하는 달로 하여라. 3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에게 이렇게 일러라. 4 11 그것을 먹을 때는, 허리에 띠를 매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서둘러 먹어야 한다. 이것이 주님을 위한 파스카 축제다. 12 이날 밤 나는 이집트 땅을 지나면서, 사람에서 짐승에 이르기까지 이집트 땅의 맏아들과 맏배를 모조리 치겠다. 그리고 이집트 신들을 모조리 벌하겠다. 나는 주님이다. 13 너희가 있는 집에 발린 피는 너희를 위한 표지가 될 것이다. 내가 이집트를 칠 때, 그 피를 보고 너희만은 거르고 지나가겠다. 그러면 어떤 재앙도 너희를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14 이날이야말로 너희의 기념일이니, 이날 주님을 위하여 축제를 지내라. 이를 영원한 규칙으로 삼아 대대로 축제일로 지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먹고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1,23-26 형제 여러분, 23 나는 주님에게서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해 주었습니다. 곧 주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24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5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6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15 1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2 만찬 때의 일이다. 악마가 이미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3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내주셨다는 것을, 또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4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셨다. 5 그리고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 6 그렇게 하여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자 베드로가, "주님, 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하고 말하였다. 7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8 그래도 베드로가 예수님께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9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제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십시오." 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목욕을 한 이는 온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된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다." 11 예수님께서는 이미 당신을 팔아넘길 자를 알고 계셨다. 그래서 "너희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1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겉옷을 입으시고 다시 식탁에 앉으셔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13 너희가 나를 '스승님', 또 '주님' 하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나는 사실 그러하다. 14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15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느낍니다. “참사랑이 있는 곳에 주님 계시네!” 하고 외치게 됩니다. 우리 자신을 낮추며 이웃의 부족한 점을 감싸 주려는 마음이 우러나옵니다. 사랑과 용서의 삶을 살려고 다짐하게 됩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최후 만찬의 애절한 사랑과 성체성사의 정신을 깨닫게 됩니다. 당신 제자들 하나하나의 발을 씻어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섬기는 삶이 무엇이지 알게 합니다. 당신의 신성을 감추시며 ‘종’으로서 섬기는 장면은, 십자가의 죽음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찬 희생 제사임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 몸의 가장 비천한 발을 씻어 주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 영혼의 가장 더러운 죄악도 깨끗이 씻어 주십니다. 죄를 용서받은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많이 용서받은 사람은 많이 사랑하게 됩니다. 죄의 용서를 체험한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합니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으며,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을 예수님처럼 섬길 수 있습니다. 스승이시며 주인이신 분께서 우리의 발을 씻어 주시는데, 우리는 얼마나 자주 섬김을 받으려고 안달을 부렸습니까? 부끄러운 일입니다. “주님, 저희에게 당신을 본받을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날마다 자신의 부끄러움을 고백하고 용서받는 신앙인이 됩시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
배신자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로부터 철저하게도 배신을 당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배신이라고 하니 너무 거창한 표현 같습니다만 이 한 세상 살아가면서 우리는 가끔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기도 합니다.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제대로 한방 뒤통수를 맞을 때도 있습니다. 상대방이 보여준 호의와 친절이 철저하게도 준비된 계략이자 올가미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치를 떱니다. 교회 역사 안에도 다양한 유형의 배신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시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는 공공연한 배신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민족의 반역자로 여겨지던 세리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스승 예수님을 적대자들에게 팔아넘기고 배신한 나머지 이제는 인류역사 안에서 배신자들의 아이콘으로 뚜렷하게 자리 잡은 유다 이스카리옷입니다. 그의 배신은 다른 배신과는 큰 차이가 납니다. 친구를 배신한다든지 동족을 배신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그는 하늘처럼 모시던 스승을, 아니 자신의 주인이자 구원자 하느님을 배신했습니다. 배신자라고 해서 다 똑같은 배신자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어떤 면에서 바오로 사도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 보면 유다 전통 신앙을 저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선 배신자였습니다. 베드로 사도 역시 예수님께서 곤경에 처해있을 때 ‘당신도 저 사람과 한패가 아니냐?’는 한 여인의 거듭된 물음에 ‘아니다. 그렇다면 천벌이라도 받겠다.’고 맹세까지 하며 스승님을 거듭 배반했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다도 예수님을 배신했지만, 가톨릭교회의 기둥이자 반석이신 두 사도 역시 한때 배신자라는 오명을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배신 이후 보여준 태도 여하에 따라 그들의 삶은 180도 뒤바뀌었습니다. 배신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게 아니로구나!’하는 마음에 즉시 가슴을 치며 통곡하던 베드로에게 주님께서는 새 출발의 기회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인간 존재라는 것 참으로 묘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만하면 내 인생이 잘 나간다!’ 싶었는데, ‘스승님 품안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안심했었는데, 잠깐 방심하는 순간 순식간에 배신자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지속적인 자기성찰이요 끝도 없는 회심입니다. 그리고 일상적인 겸손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 살아가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배신자로 전락할 때가 있습니다. 각자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를 거부할 때입니다. 고통을 외면할 때입니다. 달콤한 신앙만을 추구할 때입니다. 복음을 멀리할 때입니다.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우쭐할 때입니다. 배신자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이미 당신을 팔아넘기고자 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유다 이스카리옷의 회개를 기다리는 예수님, 끝까지 그를 존중하며 최후의 만찬석상에 앉히시는 예수님의 애끓는 사랑이 돋보이는 성목요일입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버림과 받아들임, 그리고 새로운 관계
이번 병원 봉성체를 하다가 욕을 들어먹었습니다. 손발이 묶여 침상에 누워있는 치매 환자 자매인데 이렇게 말하면 좀 뭐하지만 악이 받친 눈빛으로 약간은 무서운 얼굴을 하고 모든 것을 거부하는 분입니다. 전에 머리에 안수를 해 주었더니 싫어해서 이번에는 머리에 손도 대지 않고 안수를 주는데도 저에게 욕을 하며 나오지도 않는 침까지 뱉었습니다. 축복을 해 주려고 하는데 마치 자신을 아프게 하는 줄 알고 몸을 비틀며 욕을 해 대는 것이었습니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하나도 하지를 않는 분인데도 욕을 하는 발음은 너무도 정확해서 조금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봉성체를 면 치매환자들 중 그런 분들은 100명 중에 한 분은 그런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치매 환자들은 받아들이고 거부하는 표현이 너무 적나라합니다. 물론 환자라 그러겠지만 그 안에 무엇이 있기에 좋은 것을 주려는 데도 거부하는 것일까요?
인터넷에서 자신의 딸에 관해 쓴 사연입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언니와 유치원 다니는 동생이 아빠에게 성탄카드를 선물했습니다. 그래서 아빠도 둘째 딸(구름공주)에게 뭔가 줘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빠 : "우리 구름공주, 크리스마스 때 뭘 갖고 싶어?"
구름공주 : (단호하게) "응~ 난 산타 할아버지 선물 안 받아도 돼!"
어리둥절해 진 아빠가 다시 딸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 "왜? 그러면 언니(초등학생인 해님공주)만 산타할아버지께 선물 받을 텐데... 그러면 어쩌지?"
구름공주 : "그래도 괜찮아... (산타에게) 선물 안 받아도 돼."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내게 아이들 엄마가 힌트를 줍니다. 며칠 전부터 둘째 구름공주를 엄마 아빠와 따로 재우기 위한 시도(잠자리 홀로서기)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을 앞둔 겨울부터 혼자 잠자는 언니를 따라 같이 재우려는 엄마의 당근책이 바로 '크리스마스 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선물'이었던 것입니다.
엄마는 딸아이에게 "엄마 아빠와 같이 자는 아이는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지 못하고 그냥 가신다"는 아주 무시무시(?)한 말을 전한 것. 이에 둘째는 이틀 동안 언니와 따라 잠을 잘 잤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부터는 새벽에 둘째가 엄마 아빠 방으로 건너왔습니다. 그러더니 요 며칠 전부터는 아예 "언니랑 안자!"하고 선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 다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둘째 구름공주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아빠 : "언니만 산타 할아버지에게 선물 받으면, 구름공주 너는 속상하지 않겠어?"
구름공주 : "괜찮아~ 언니 학교 갔을 때 언니 선물 갖고 놀면 되니까!"
아빠 : "헐......"
구름공주의 결심은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구름공주 : "근데, 아빠... 산타 할아버지가 언니(에게) 선물, 두 개짜리 가져다 줬으면 좋겠다~"
아빠 : "..................."
[출처: OhmyNews블로그, 쫄쫄이 스타킹과 장딴지, 5살 딸이 산타의 선물을 거부한 이유]
참 귀여운 아이입니다. 선물을 받으면 부모님과 떨어져 자야하기 때문에 산타의 선물을 거부한 것입니다. 한 여자가 한 남자와 사귀고 있는데 자꾸 다른 남자가 선물을 준다면 그것을 계속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선물은 곧 관계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좋은 것인지 안 좋은 것인지 구별하지도 않고 무조건 거부한다는 것은 그것을 주는 사람과의 관계를 원치 않는다는 말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십니다. 발을 씻어준다는 것은 당시 노예들이나 하는 일이었는데 주님이며 스승이신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의 발을 직접 씻어주시는 것입니다. 이는 겸손이고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랑을 보여주실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아버지께로부터 그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내주셨다는 것을 아시고...”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만약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모든 것’을 주셨다면 정말 당신 이름을 제외하고는 하느님으로서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주신 것입니다. 즉, 사랑 자체인 성령님을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께는 사랑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사랑을 거부하려고 합니다. 즉, 그의 발을 씻으려하는 예수님의 호의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겸손해보이지만 실상은 사랑을 받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주는 것이 어려운 것 같지만 사실은 사랑을 받는 것도 부담스러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이 받은 사랑을 나누어주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가는 더 엄청난 관계 속으로 빠져들어야 하는데 그것이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사랑을 거부하셨다면, 성모님이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하셨다면 아무 것도 이루어 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베드로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주 조금의 거부도 없이 받아들여야 완전한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보좌 신부를 할 때 대축일 미사 복사 서느라고 고생한 복사들에게 맛있는 것 사먹으라고 돈을 좀 듬뿍 주었습니다. 다음 날 미사에 그들이 저에게 다가오더니 그 돈을 다시 내미는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돈을 받아서는 안 되겠다고 자기들끼리 상의하고 다시 가져온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편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은 호의에 대해 마음이 상하기도 하였습니다.
받아들이지 않는 것 이면에는 나도 주기 싫다는 마음이 들어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길거리에서 천만 원을 아무 이유 없이 준다고 생각해 봅시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그 큰돈을 받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받으면 줘야 하는 것이 삶이 이치인데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받고 또 무언가를 주어야 하는 관계는 매우 불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판공성사를 듣다보면 기도생활을 잘 못 했다는 말을 매우 많이 듣게 됩니다. 그러면 저는 “식사는 제 때에 하시지요?”라고 물어봅니다. 대부분이 기도는 걸러도 식사는 거르는 일은 없습니다. 하느님이 주시려는 은총을 받아들일 시간을 내기 위해서는 식사를 거를 줄도 알아야합니다.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지만 아직은 그분과의 관계를 갖는 것이 세상의 것을 포기하는 것보다는 가치 있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세상과의 관계를 위해 하느님과의 관계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무언가를 잃기 싫어서 그분의 축복을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부모님과의 관계를 위해 산타의 선물을 거부한 아이처럼 관계에서 오는 더 큰 복을 위해 무언가는 포기할 줄 아는 우리들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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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