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가트 머피의 <일본의 굴레>를 읽고 있다.
3장. 메이지유신에서 미군정기까지
3장에서 내게 중요했던건 일본이 메이지유신을 통해 동아시아 강국으로 떠올랐지만 너무 빠른 속도로 너무 소수 지배층에 의해 주도되다보니 겉보기와는 달리 내적 어려움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즉 서구열강들의 근대화와 비교, 우선 자본을 뒷받침해줄 자본가 그룹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고 정치적으로도 서로를 견제할 민주주의 토대없이 허겁지겁 서구열강의 침략에서 자국을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메이지 유신을 이루다보니 결국 일본이 속도감있게 일본인들을 하나로 모아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군국주의>였다고.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전까지는 문화적 혹은 종교적 상징이었던 천황에게 이젠 군대의 정점이라는 또 하나의 역활이 주어지며 전 일본인들을 하나로 묶어내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천황에게 이런 역활까지 부여하면 일본인들에게 국가의 명을 거부하는 것은 곧 천황의 명, 즉 신의 뜻을 거부하는 것이 되는 참으로 벗어나기 어려운 굴레가 되는것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본은 서구 열강, 그 중에서도 서구에서 후발주자로 출발하여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비스마르크의 독일을 벤치마킹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두 나라가 이후 전범국이 되는것은 우연이 아닌 셈이다). 특히 천황을 군사의 정점으로 삼고 전 일본인들에게 민족주의를 투사하는 것이 가장 빨리 제국주의화할 수 있다고 충고한것이 비스마르크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역시 급히 먹는 밥은 체한다는 말이 참으로 틀리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물론 당시 일본에겐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기도 했겠지만). 그리하여 결국 일본은 서구열강의 식민지가 되지않기위해 벌였던 속도감있는 메이지유신과 먹지않으면 먹힌다는 강박증에 보다 큰 전쟁까지 일으키다 결국 패전국으로 전락하여 미군 점령시기를 맞이하게되었다고 한다. 진정 역사의 아이러니란 생각이다.
첫댓글 현재에서 역사는 그 과거를 다시 보게도 만들고 더 중요한 건 현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미래에 대한 대비를 또한 어떻게 하느냐를 볼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도 최소한 방향성을 찾고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부분이 된다는 생각이 점점 굳건해진다.
서양의 침략에서 일본을 지키기 위한다는 목적은 이해가 가지만, 서구열강들의 근대화의 역사와 비교하면 무척 짧은 시간에 힘을 키웠던 것, 이를 위해 군국주의 체제로 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결과적으로 보면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도 들고 그만큼 서양의 힘에 대한 두려움에 다급했던 것일까 싶기도 하다. 이후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치를 때 전쟁을 수행하는 데 당시 일본의 경제규모로는 감당할 수 없어 국내 경제상황이 무척 좋지 않았고, 패전국으로 부터 전쟁 배상금을 기대한 만큼 받지 못해 국민의 원성이 컸었다고 알고 있다. 지금 일본의 경제력을 생각하면 패전 후 일본의 부활, 경제성장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궁금하다.
천황 신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 인간으로서 두려움이 있지만 천황폐하를 외치며 사라져간 많은 가미가제특공대원의 행위를 조금은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이나 국가나 축적의 시간없이 강박적 성장?에 매달리다보면 결국 그로 인한 폐해들이 드러나고 그 폐해들을 얼마나 잘 다스리느냐에따라 또 다른 개인이나 국가의 미래가 그려짐을 볼 수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