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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결산(마 25:14-30)
종말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 세 가지 중에 지난 주에 살펴본 것은 첫번째 비유인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 ‘깨어있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열 처녀가 신랑이 늦게 오니까 다 졸며 잘 때에 신랑이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그 때 놀랍게도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들과 그렇지 못한 다섯 처녀들로 나뉘어졌습니다. 신랑이 오기 전까지는 다 똑같았은 것같았는데 신랑이 오자 두 부류로 나뉘어졌습니다.
등과 기름을 준비한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혼인잔치에 들어갔지만 등은 있는데 기름이 떨어진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늦게 기름을 준비하여 왔지만 주인은 말합니다. 12-13절,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결국 문밖에 내어 쫓김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기름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름이 무엇입니까? 등이 신앙의 외형이라면 기름은 신앙의 동력입니다. 성령님이십니다. 성령충만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입니다. 뿐 만 아니라 기름은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을 넘어서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알아도 그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으면 그 말씀은 등에 불과한 것입니다. 등이 역할을 바로 하려면 기름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 능력은 우리가 하나님앞에 기도할 때 성령님이 주시는 성령의 은사요, 열매인 것입니다. 또 우리가 그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갈 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기름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지난 한 주간동안 얼마나 기름부음을 받으셨습니까?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긴밀한 교제를 이루시는 한 주간이었습니까? 생명의 샘가를 날마다 펴시고 묵상했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기름이 필요합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만 성령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사모하는 성도들에게 이 시간에 충만히 부어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권면은 그런즉 깨어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깨어있는 삶이 바로 기름이 준비하는 삶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 비유는 우리가 오늘 살펴볼 달란트 비유입니다. 달란트 비유를 우리가 잘 아는 비유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는 교훈을 내가 깨닫고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믿고 순종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 역시 오늘 종말을 준비하는 성도에게 대단히 중요한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지막 결산에 대한 비유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첫 번째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두번째 이 땅에 오시는 목적은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함입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결산하는 마지막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꼭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교훈이 이 비유속에 담겨 있습니다.
1.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는 하나님이 맡기신 것입니다(14-15).
14,15절,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가면서 자기 종들에게 자기 소유를 맡겼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의 가진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15절에 보면 주인이 자기 종들을 불러서 자기 재산을 맡기고 떠났다고 하였습니다. 소유권을 넘긴 것이 아니라 맡겼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착각을 합니다. 내게 속한 모든 것을 다 내 것인 줄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합니다. 언제 한 번 주님께 묻고 행동한 적이 없습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를 맡은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이 아닙니다. 맡은이일 뿐입니다. 그야말로 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시는 진리는 내 모든 소유가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날 때에 빈손으로 왔습니다. 벌거숭이로 왔습니다. 그래서 그 신실한 욥은 자기 모든 것을 다 잃고 몸마저 병들었을 때 그가 무엇이라고 고백했습니까?
욥 1:21,22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이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원래 빈손으로 왔는데 하나님께서 내게 맡겼다가 그저 가져가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것을 가져가셨는데 내가 뭐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욥의 주권사상입니다. 하나님이 주권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위대한 욥의 신앙고백입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내게 이 모든 것을 맡기셨습니다.
이것이 청지기 정신입니다. 이러한 청지기 정신을 바로 가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입술로 범죄하지 않고 찬양을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청지기 정신을 가지면 욕심낼 것도 없습니다. 짜증낼 것도 없습니다. 불평할 것도 없습니다. 그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알고 감사할 뿐입니다. 건강할 때는 건강이 소중한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모릅니다. 그러나 건강을 조금이라도 잃어보면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 하나님의 은혜인 것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인생이 내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어떤 병이 들어 고통하면 죽음을 생각하게 되고 그 때 생명도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생명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주인이 부르시면 어느 때라도 가야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사라지게 될 때에야 비로소 미련한 사람들이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당신의 소유를 우리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믿습니까? 오늘 본문을 다시 보십시다.
15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주인이 종들에게 달란트를 맡겨주실 때 그 재능대로 맡겨주셨습니다. 재능대로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그릇대로 맡겼다는 의미입니다. 영어성경에는 ‘그의 능력에 따라’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인은 그 종들의 능력에 따라 한 종에게는 금 다섯달란트, 다른 종에게는 금 두달란트, 또 다른 종에게는 금 한달란트를 맡겼습니다. 한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인데 당시 1데나리온은 노동자 하루의 품삯에 해당됩니다. 그러므로 1달란트는 노동자가 20년 동안 쓰지 않고 모아야만 되는 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에 10만원씩 계산해도 6억원이나 되는 큰 돈입니다. 더구나 5달란트는 한 사람의 노동자의 100년 동안의 품삯과 같은 것입니다. 일을 맡는데 있어서도 각각의 분량이 다릅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착각하여 자신의 은사를 알지 못한다거나 자신이 감당할 정도의 분량을 과소평가하거나 과대평가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 (롬 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엡4:7)“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라고 하므로 모든 성도들이 같은 분량의 사역을 감당할만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맡은 달란트는 무엇입니까? 그 달란트는 여러분의 책임을 의미합니다. 많이 가졌으면 그만큼 책임이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많이 가졌다고 자만해서는 안됩니다. 적게 가졌어도 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달란트입니다.
내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앞에 부끄러움없이 충성된 종으로 인정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주인이 맡기신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16-18).
오늘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 적게 주셨든지 많이 주셨든지 다 맡기신 하나님의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쓰라고 맡겨 주신 것이 아닙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어떻게 했습니까? 16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바로” 가서 장사하였습니다.
“바로”는 “하자마자”, “곧”이라는 뜻으로서 두 종들은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지체없이 주인의 맡긴 소유물을 활용하여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들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주인이 그 소유를 맡기기가 무섭게 일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충성된 종은 달란트로 자기 능력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뜻을 깨닫고 그 뜻대로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일이 맡겨지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종에게 주인이 자신의 소유를 많이 맡기지 않겠습니까?
종은 우선 자신의 능력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어디서, 어떤 품목으로,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언제부터 일을 시작할지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바로 가서 그 돈으로 장사하여 다섯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두달란트 받은 종은 다섯달란트 받은 자처럼 바로 가서 장사하여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두 달란트를 받은 종은 왜 자기한테는 다섯달란트를 맡기지 않느냐고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문하지 않았습니다. 그도 주인이 두 달란트를 맡기자마자 마치 자신이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처럼 바로 가서 장사하여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습니다. 그는 주인의 소유를 맡은 후 어떤 고민도 인내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에게 받은 돈 그대로 주인에게 돌려드리면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주인이 맡긴 것에 대하여 어떤 책임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것으로 머리 아프게 생각하고 뛰어다닐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주님께서 주신 은사와 능력으로 장사하는 성도들과 장사하지 않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성도들은 주님께서 맡겨주신 것을 잘 관리하는 성도들도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성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에게 충성하는 것은 얼마를 맡았느냐가 아닙니다. 주인은 이미 그들의 재능을 알고 그들이 활용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분량을 맡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인의 주관심사는 이윤을 얼마나 많이 남겼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다만 주인의 관심은 종이 주인의 뜻을 받들어 어떻게 충성하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인은 종들에게 더 맡기기 위하여 마치 그 능력을 시험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달란트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사용하여야 합니다. 지체하지 말고 충성되이 사용해야 합니다. 주인이 달란트를 종들에게 맡긴 것 같이 우리들에게 모든 것을 다 주신 하나님께서는 어떤 기대를 하시겠습니까? 그것을 가지고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최선을 다해 충성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각기 그 그릇대로 달란트를 맡겨주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직분도 맡겨주셨습니다.
지금 내게 갖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에서 아주 천하게 평가되는 직업일지라도 죄짓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달란트요, 사명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벧전4:10-11) "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우리는 하나님의 여러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섯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주인이 맡겨주신 달란트에 따른 책임을 깨닫고 그 책임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을 파고 돈을 감추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비교의식을 가지고 기분이 나빴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받은 것을 시시하게 여기고 주인의 뜻과는 관계없이 땅에 파묻어 두었습니다. 후에 결산할 때 주인은 이 종에게 악하고 게으은 종이라고 책망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순종하여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충성된 종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모든 것은 결산의 때가 있습니다(19-30).
(19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 종들을 불러 결산을 합니다. 주인이 이렇게 돌아온 이유는 종들에게 맡긴 것을 결산하기 위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의 사역을 마치고 하늘로 승천하실 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행 1: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주님이 다시 오실 그때 성도들이 그 행한 대로 갚아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이것이 마지막 결산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주인은 갑절을 남긴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를 받은 종에게 말씀하십니다.
(20-21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라고 주인은 동일하게 칭찬하였습니다.
“잘 하였도다”라고 칭찬한 것은 저들의 성실함에 대해 주인이 인정함과 동시에 주인의 만족감을 나타낸 것입니다. 종에 대한 주인의 칭찬은 장사를 해서 얼마나 벌었느냐가 아닌 얼마나 주인의 뜻에 충성을 다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착하고”라는 표현은 “옳다, 올바르다”는 것으로서 주인의 의도를 바로 알고 행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충성된”은 “신실하다”라는 말로서 주인이 맡긴 달란트로 주인의 뜻을 받들어 신실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너는 신뢰할 수 있는 종이다.”라는 뜻입니다. 신뢰할 수 있는 종으로 증명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엄청난 시험을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대로 이삭을 모리안 산 위에서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
그리고 주인은 이 종에게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다”라고 칭찬했습니다. 주인은 종이 얼마나 많은 이윤을 남겼느냐에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적은 일이라고 생각되더라도 맡겨진 일에 충성했다는데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인은 종들에게 칭찬과 아울러 상을 주십니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이것은 종으로서가 아닌 가족으로서 받아들여진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같이 우리 충성한 성도들은 주님이 재림하실 때 영원한 천국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성도들은 종이나 사역자가 아닌 하나님의 영원한 가족으로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주인은 그 종에게 더 많은 것을 맡길 수 있는 신뢰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2)고 권면하였습니다. 충성이라는 말은 “신뢰”를 의미합니다. 다섯 달란트 맡은 종과 두 달란트 맡은 종은 주인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충성스럽게 일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그 한 달란트를 땅속에 감추어 두었다가 주인에게 가지고 왔습니다. 그 종은 주인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 주인에 대해 맣은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24-25절)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한 달란트받은 종은 주인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는 결산의 장소에서 주인을 굳은 사람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굳은 사람”이라는 말은 “강퍅한 사람”, “박정하고 포악하며 거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주인은 노력하지 않고 수입을 올리는 포악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투자하는 데는 인색하다는 것입니다. 주인은 종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불로소득을 얻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또한 종은 주인에게 당신은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헤치지”라는 뜻은 추수한 곡식을 마당에서 키질을 하면서 짚과 겨를 헤치고 곡식을 모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주인은 그런 수고없이 돈을 모으는 불로소득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의 뜻과는 달리 “두려워하여” 그 돈으로 장사하지 못하고 땅에 묻어 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종의 경우를 보았을 때 이 종은 주인을 비판하고 자신의 불충성과 게으름을 변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 주인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26절)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라고 책망하였습니다. 주인은 주인에 대한 인식의 잘못된 것을 지적하며 오해받은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말은 주인을 불신하고 주인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충성스럽지 못하다고 책망한 것입니다. 이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을 잘 모르고 오해했습니다.
또 주인의 뜻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자기 멋대로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주인은 말하기를 그렇다면 그 돈을 당연히 취리하는 자들에게(은행) 맡겨 이자라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주인이 한달란트 받은 종에게 이렇게 심판합니다. (30절)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것을 받아 누린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생명이든, 시간이든, 물질이든, 재능이든지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 주셨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것을 땅에 묻어두면 안됩니다. 맡겨 주신 것을 활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직분을 받았고 은사를 받았으면 그것을 활용할 뿐만 아니라 충성해야 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갑절을 남겨야 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 재림하실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와 같습니다.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 준비가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달란트의 결산입니다. 나에게 맡겨 주신 달란트가 크든 작든 맡겨진 일에 충성하고 있느냐가 과제입니다. 교회안에는 아주 작은 달란트를 받은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열심히 봉사하고 사용하여서 그 은사를 빛나게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회안에 어느 분야든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재능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리고 생명을 살리는 생명사역을 위해서 귀하게 쓰임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