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화 시인의 사설시조집 『3D 렌티큘러』
약력
서울 출생.
경기대학교 한류문화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
졸업 및 최우수 논문상 받음.
2007년 백수 정완영 전국시조백일장 장원,
2007년 《나래시조》 신인상.
2018년 《서정시학》 신인문학상.
시집으로 현대시조 100인 선집 『숲 도서관』,
『서이치에 기대다』(2018년 아르코 문학나눔 선정),
『나무 무덤』(2015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이 있음.
2018년 경기문화재단 전문예술 문학창작기금 받음
202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창작기금 받음
2024년 수원문화재단 문학창작기금 받음.
시인의 말
나는 언어를 길들이기 위해 시를 썼는지도 모른다. 말도 되지 않는 말과 함께 언어의 들판을 횡단하면서 시 속에 한참 빠져 말무리 가까이에서 꿈을 꾸었다. 그러나 나의 시는 서툰 말 만큼 아직도 미숙한 것임을 깨달았다. 끝없이 펼쳐진 언어의 광야, 그 속에서 말과 시를 구분할 때까지 한그루 나무가 되고 싶었다. 언어의 뿌리를 내려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말의 나무. 그렇다. 나무의 무덤이 되길 바랐는지도
어려운 시기에 힘들 때마다 항상 응원을 해주신 가족과
시집이 나오기까지 도움을 주신 선생님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2024년 12월
서정화
3D 랜티큘러
유리벽에 안과 밖이 부풀어 올랐어요
눈부신 디테일의 볼륨은 투명해져요 세 개의 면이 돌출되는 입체감과 공간 사이 무한의 차원이 되어 새로운 길이 나더군요 보이는 세계와 불투명한 세계를 오가는 사이 루프탑이 솟아나고 시간은 파란색에서 초록색으로 편의점 간판처럼 변해가도 노랗게 내 마음의 풍경은 은행나무가 되어 기다렸어요 투명인간이 불투명한 인간들을 말하네요 재배열되는 건물 앞 피켓 들고 울분을 띠로 두른 사람들 농성 사이 의문의 시간 뒤에 미래를 여는 이유를 416 생명안전공원은 노란리본을 수놓았어요 사라진 그 아이들이 굳어가는 걸 보았어요 청록색 밤의 감정이 착시를 일으켜요 거대한 벽의 사막처럼 추인되지 않는 일들 바다를 증명하려던 불투명한 그 세계가 위험에 노출 되지 않게 회멸이 되지 않도록
오늘의 뒷면과 앞면을 이제 당신이 이어 주세요
날아가는 침대처럼
정말로 시끄럽죠. 날아가는 침대 밖은
구름 같은 머릿속 울렁거림이 잦아들고 현기증 나던 멀미도 멎었어요. 지형을 굽어보다 한없이 깊어지는 하늘 시야가 확장했지요. 세상에 온 시야는 회전하면 변화하나요? 정말로 사람들은 시위에 휩싸였나 봐요. 건너편 하늘과 통하는 열기구에 묶인 채 이동하는 침대 말이죠. 사람들의 행진을 도울 촛불을 준비해야겠어요. 시위는 세상을 들어 올리고 거리를 확장해서 피하기가 어렵지만, 이제 막 버스가 통과해 가네요. 아늑한 꽃잠을 자고 단꿈을 꾸겠어요? 더 이상 외치지 않는 사람들은 위험해요. 굉장히 시끄럽지만 시위가 무대를 확장시킬 때
우리가 동시적으로 보면서 보인다면,
헬조선 바로가기
머뭇대는 동안에 무럭무럭 늙은 봄
바닥 깨져 흔들리는 휠체어 덜컹거리며 무한히 늘려가는 생의 다리가 나아가고 있다 리프트 낙상사고 증거 잃은 무뇌아처럼 호흡보조기 빠져버린 의식불명은 편집증처럼 방지턱 점자 해독하는 거리에서 단차段差 넘나드는 호출을 한다 몸에 얽힌 쇠사슬 떠메고 징징 울릴 때마다 바닥을 드나들던 먼지바람만 휘돌았던, 쉼표 하나 없는 벽으로 무심히 들어선다 구간 즐비한 행렬 앞에 흐를 뿐 구별되지 않을 때 어려운 게 격리이다 레버 당겨 스크린 도어에 여닫히며 눈 속으로 기어든 오체투지 행진에도 견고한 벽들은 멍하니 두 눈만 껌벅거린다
누군가 붉고 하얘진 역사를 보았을 수도
어제가 입구 열고 오늘을 닫던 출구
1호선과 5호선 사이 자막같이 흐르는 말들 도마 위 목덜미가 길고 붉게 잘리는 비린 말들 끝도 없이 욕설을 그 앞에 늘어놓을 때 서로의 전염병처럼 흘러나와 떠오른다 밀려왔다 밀려가도 온몸으로 지하철 선로 선다 내선과 외선 사이 손바닥으로 무리지어 나아간다 차가운 한숨소리에 잠든 척 누운 침묵으로….
상행선 상처를 안고 하행선들 끌고 간다
공유 냉장고
햅쌀보다 부신 불빛에 몸 기대고 익어가
폐기되지 않으려 냉매가 흐르는 거야 바깥 안 버둥거리며 살아 있다는 노숙 매 끼니로 꺼낸 안부 적을수록 적요하고 비워내 채워지는 진열대에 둘러서지 거리에 떠도는 양심 부둥켜안고 서 있어 이겨내려 오래 견디며 악을 쓰고 살다가 삭고 썩고 상하고 문드러져 축 늘어진 허기에 위로가 되듯 양심에 문을 열지 속절없이 정곡 찌를 인연을 기다리며 요원한 정화 속에 나는 있어 내가 없는
사라진 내 시상들도 공손히 몸을 눕히네
25시 편의점
완력에 밀려 힘차게 QR코드로 지나가지
고밀도 비닐 포장에 한 번 갈린 길들은 어둠 겹겹 끌어올린 기름기임을 알아채시라 영원 속 또 다른 영원처럼 통과한 냉동식품들 이제 막 유통기한은 데이터 전송으로 맹렬하게 읽히고 있어 포인트가 쌓여가 초시간의 다발이지 한 움큼 바코드 면발을 포크로 잘 말아줘 투명한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도 좋아
그대의 턱없이 큰 입에 살살 녹아 흐른다면
추천사
시적 언어에 대한 형식의 관계는 사유에 대한 재현의 관계로 배치되기 마련이다. 시에서 사유가 분해되는 순간 형식은 상실되며 그 의미만 남는다. 이런 점에서 시조의 형식은 사유를 견인하는 선험적 약속에 의한 수단에 불과하다. 사설시조로 전편을 구축하고 있는, 서정화 시인의 이번 시집은 산문의 형식을 통한 사유의 출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거기에 폐기되어 가는 문명과 유통기한을 초과한 생태를 ‘서정적 디스토피아(Dystopia)’로 현전하면서 인류의 ‘QR코드’ (「25시 편의점」)를 스캔하고 있다.
여기서 불안한 미래를 향한 비극적인 정서는 사설 언어로 밖에 사유할 수 없는 생명성을 파고든다. 그녀의 연속적인 ‘데이터의 배치’로 실재를 ‘편집한 진술’에서 “공통되는 세계와 태어나는 전망들 세상과 동떨어진 시간 활활 타오른 안으로 영원을 꿈꾸며 갈피를 접는”(「물구나무종」) 행간 사이에서. “뭉친 구절 휘저으며 엉킨 음절 뒤집어서/젖은 기억의 안팎이 마르고 휘발되는 길”(「행복세탁소」)에서 새로운 가시성의 영역을 통해 사설시조 형식의 밀도가 생겨나기도 한다.
그녀의 시편이 종말적 세계관을 넘어 “폐기되지 않으려 냉매가 흐르는”「공유 냉장고」에서 보이듯 “비워내 채워지는 진열대”라는 ‘마음의 공동체’를 구성하며 “거리에 떠도는 양심 부둥켜안고 서 있”는 틈 사이 따뜻한 주체들의 온전한 ‘서정적 결로’를 통과하게 된다. 이 같은 서정적 결로는 그녀의 이번 시집 표제작에서 “오늘의 뒷면과 앞면을 이제 당신이 이어주세요”(「3D 렌티큘러」)라는 전언을 통해 이로써 회멸되어 가는 “보이는 세계와 불투명한 세계를 오가는 사이” 존재의 구원이 어디에 있는지 공구하게 만든다.
-권성훈 문학평론가, 경기대 교수
해설
올록볼록 시시각각 변하는 세계 직조하기
임지연 (문학평론가)
서정화의 시집 『3D 렌티큘러』는 언어를 통해 세계를 재배열하여 새롭게 직조하고자 한다. 시인 서정화의 시적 욕망은 크다. 서정화는 언어를 신뢰한다. 언어의 의미와 무의미(소리)는 서로 자의적이고 어긋나는 관계에 있을지라도 시인은 언어를 통해 세계를 새롭게 직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언어에 대한 그의 믿음이 정형시라는 미적 틀 안에서 올록볼록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세계를 직조하게 한다. 렌티큘러(lenticular)는 어떤 이미지를 무수히 등분하여 원통형 볼록렌즈(렌티큘)를 붙임으로써 보는 각도에 따라 이미지가 다르게 보이게 하는 시각적 장치이다. 시인은 언어를 통해 세계를 렌티큘러로 재조직한다. 즉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n등분하여 렌티큘러로 만들어, 보이는 세계에 깊이감과 입체감을 부여한다. 세계를 재직조하는 그의 기술은 참으로 개성적이다. 시적 화자는 유리벽 안과 밖이 부풀어 오르고 입체감이 생길 때, 무한의 차원이 새로 드러난다고 고백한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가 동시에 보이는 렌티큘화된 세계를 드러내려는 언어 장치를 세심하게 사용하고 있다.
서정화가 세계를 새롭게 직조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 중 하나는 아이러니이다. 아이러니는 이중의 말하기이며, 위장 말하기이다. 그것은 표면으로 드러난 것과 이면에 숨겨진 의미가 다를 때 효과적인 말하기 방식이다. 아이러니는 모호하면서 투명하다. 두 개를 동시에 말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스트에게 세계는 분명치 않으며 단일하지 않으며, 매끈하지 않다.
이 시집에서 서정화는 부조리한 세계를 지속적으로 호출한다. 근대의 진보가 가져온 편리하고 발전된 세계의 이면에는 부조리가 함께 있다. 서정화는 세계의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아이러니를 활용한다. 진보 속에 숨겨진 반진보, 생명 뒤에 숨겨진 반생명, 휴머니티 뒤에 가려진 폭력을 동시에 말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이중의 말하기를 통해 부조리한 세계를 비판하고자 한다.
서정화의 시에서 두드러진 정동은 슬픔과 분노인데, 그것은 왜 더 나은 세계가 아닌가에 대한 질문의 형식이기도 하다. 그러한 태도는 시인이 세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다. 시인이 보기에 보이는 세계는 부정성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부정성만으로 가득하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부정적 세계를 이중화함으로써 시인은 그 세계의 부조리와 슬픔을 포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