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과 엉덩이는 한계를 알 수 없다
두 세계가 만나서 삶을 건져 올린다
그 존엄,
저울질 말 것
맨눈으로 바라볼 것
-『아버지의 검은 상자』(2025년, 알토란북스)
아버지는 어린 딸의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셨다. 어린 딸은 아버지의 손에 들려 있던 검은 상자를 기억의 창고에 넣어두었다. 엄마는 버스로 다섯 시간 거리에 사는 딸에게 에미 보아라, 로 시작하는 장문의 편지를 보내시곤 했다. 그렇게…… 내 사진은 아버지에게서, 내 글은 엄마에게서 왔다. 두 분에게서 내가 왔다, 나는 왔다.
이상은 김제숙 시인이 사진으로 쓴 시조집 『아버지의 검은 상자』에서 들려주는 시인의 말이다. 뿌리에 대한 간절한 토로이기에 인상적이다. 흔히 요즘 말로 이르는 디카시가 아니라 사진으로 쓴 시, 라고 하니 더욱 새로운 느낌이다. 그 명명이 단순해서 도리어 좋아 보인다. 어릴 적 경험은 이토록 소중한 것이다. 그 무렵 보고 느끼고 생각한 그대로 지금 삶 속에서 부단히 실천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고맙고 값진 일인가?
수록된 사진도 요란스럽지가 않다. 물론 이채롭고 특별한 장면도 다수 제시되고 있다. 모든 작품에 삶의 진득함과 아픔과 쓰라림이 곳곳에 배어 있어 오래 눈길이 간다. 책의 어디를 펼쳐도 잔잔한 감동이다. 대부분 단시조인데 문학적 성취가 높다. 시조의 맛깔스러움과 정취와 고요한 숨결을 행복하게 읽는다. 미학적으로 잘 편집 제작된 작품집이어서 사진과 함께 작품을 대하노라면 줄곧 흥취를 느낄 수 있는 점이 한 특장이다.
「경건한 의식」은 시인의 시각이 얼마나 참신한지 여실히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진정 삶에서 바닥과 엉덩이는 한계를 알 수 없는 것이 맞다. 엉덩이와 바닥의 절묘한 대비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것은 두 세계가 만나서 삶을 건져 올리기 때문이다. 삶을 삶답게 하는 그 세계는 다르나 다르지가 않다. 바닥이 바닥을 견디는 일이나 엉덩이가 엉덩이로서의 몫을 다하는 일은 같다. 그것은 제목에서 보듯 경건한 의식이기 때문이다. 하여 화자는 그 시적 정황은 심히 존엄한 것이므로 저울질하지 말고, 그저 지극정성 맨눈으로 바라보라고 엄숙히 천명한다. 그 발언에 고개를 끄떡이게 된다.
다음은 「하지」다. 뜨거운 몸을 풀었다 할 일은 다했다. 이제 질긴 낮 동안 당신을 꿈꾸리라. 서러운 나이에 이르면 기어이 돌아서리라. 이렇듯 시인은 결연하고 치열하다. 앞으로 그의 줄기찬 작업은 어기차게 이어질 것이다. 크게 기대하여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그의 예술적 기량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한계가 없는 열망의 불꽃이 늘 활활 타오르기를 마음 깊이 희구한다.
이정환 시조 시인
출처 : 대구일보(https://www.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