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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가치를 존중하는 가정이 되십시오
20: 15
15. 도적질하지 말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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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4:28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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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평양 대부흥의 원인이 되었던 1904년 영국 웨일즈에 영적 부흥이 일어났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교회마다 사람들이 새로워지고 있고 교회에 큰 부흥이 임했다는 소문이 요란했습니다.
교회 안나가던 보석가게를 경영하던 한 상인이 이런 부흥의 소식을 듣고 처음으로 교회에 나가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들려온 소식과 달리 교인들이 예배시간에 좀 격한 감정으로 기도하고 울고 있다는 것외에 크게 그의 마음을 감동시킬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요란하게 알려진 ‘부흥’이라는 것이 별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부흥이라는 것은 기독교인들만의 ‘요란한 감정의 잔치’라고 생각하고 다시는 교회에 발을 안 들여놓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며칠후 자기 가게에 한 젊은이가 오더니 자기가 이 보석가게에서 보석을 훔친일이 있다고 보석을 내놓으며 용서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결심을 하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자기 마음이 성령이 임하고 부흥이 일어나서 자기가 회개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다음 주일 교회에 나가 자신도 영적 부흥을 체험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1907년 평양 대 부흥당시에도 유사한 사건들이 속출했다고 합니다. 당시의 평양 대 부흥운동을 목격하고 증언한 스왈른 선교사는 이런 기록을 남깁니다.
“교회에서 부흥을 체험한 성도들은 단순한 통회로만 끝내지 않았다. 다음날 사람들이 거리에서 마을에서 교회에서 죄를 고백하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 도둑맞은 물건들이 되돌아 왔다. 잃어버린 지갑도 돌아왔고 오래동안 갚지 않았던 빚도 청산되었으며 부정한 방법들도 시정되었다.”
진정한 부흥은 인생을 바로 잡습니다.
출20:15에 기록된 십계명의 제8계명은 “도둑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둑질하던 사람이 도둑질을 중단했다고 해서 이 말씀이 온전히 순종되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언제 다시 도둑질을 시작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신약성경의 엡4;28말씀은 어떤 의미에서 제8계명의 온전한 적용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사도는 도둑질하던 사람에게 구제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때 그는 더 이상 훔치는 자, 빼앗는 자가 아닌 나누는 자가 된 것입니다. 실제로 진정한 영적 부흥을 체험하고 회개한 사람들의 인생에서 이런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러면 여러분과 제가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이 어떻게 이 계명을 지켜 나눔의 가치를 존중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1. 노동의 가치를 존중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도둑의 유혹을 극복하려면 먼저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의식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본래 이 계명에서 ‘도둑질’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가나브’(ganab)로 “옆으로 제쳐 놓는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정상적인 아닌 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일체의 행위가 다 도둑질에 속하는 것입니다. 부당한 뇌물공여에 의한 챙기는 행위, 높은 이자로 부를 획득하는 행위, 빌리고 갚지 않는 행위(책도 포함됩니다.)허락 받지 않고 물건을 가져오는 행위, 고용주가 피고용인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행위, 피 고용인이 회사의 자원을 남용하는 행위, 부당한 속임수 거래등 일체의 바르지 못한 이익추구 행위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씨 조선 시대 배고픈 유생 선비가 남긴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너무나 배가 고픈데 선비 체면에 도둑질 할 수 없는 터에 마침 시장에 갔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습니다. 시장 한편에 좌판이 벌려져 있는데 잣이 수북히 쌓여 있기에 묻습니다. “이것이 무엇이요?”했더니 “잣이요”합니다. 그래서 한참 먹다가 다시 좌판 한쪽에 머리에 쓰는 갓들이 있는 것을 보고 “이것은 무엇이요?”묻습니다. “갓이요”하니까, 갔답니다.
상인이 돈 안내고 가느냐고 하니까, 아니 “자시오, 가시오”하지 않았느냐고 했답니다.
만든 유머일지 모르지만 도둑질의 정신은 허락된 승인없이 땀 흘리지 않고 무엇을 획득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이런 사람들을 불한당-곧 땀흘림없이 이익을 추구하는 무리라는 말을 사용해 왔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결국 불노소득인 것입니다. 오늘날의 정도를 넘어선 지나친 아파트 투기 행위, 도박심리도 넓은 의미로 보면 도둑 심리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행위로 진지한 행복을 누린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미국에서 거액의 복권 당첨자들의 당첨 이후의 인생을 추적하여 연구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결론은 그것으로 행복해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때 미국에서 이런 유머까지 유행한 일이 있습니다. 어떤 부인이 3백만불 복권이 당첨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남편이 심장병을 앓고 있어서 이 사실을 남편에게 알리면 심장마비로 죽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했습니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가 그 남편에게 충격이 안가도록 지혜롭게 통고해 주기로 했습니다. 의사가 이 남편과 아주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만일 당신에게 백만불의 복권이 당첨되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했더니 빙그레 웃으며 “제게 무슨 그런 행운이 찾아오겠습니까?” “그래도 그런 행운이 찾아 오신다면요?”하니까? “그럼, 세계 여행이나 한번 해보고 그래도 남으면 고생한 제 아내를 위하여 좋은 자동차나 사주지요”하더랍니다.
그래서 “만일 1백만불이나 2백만불도 아니고 3백만불이 당첨되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하니까 “주저 없이 ”그럼 선생님에게 절반을 드리지요“하더랍니다.
이 말을 듣자마자 정신과 의사가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었답니다.
요행을 바라지 말고 일하십시오.
땀흘려 일하고 일의 정당한 대가를 누리십시오. 바울은 오늘의 본문 엡4:28에서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말합니다.
시편기자는 시128편 1-2절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행복한 인생의 정체를 이렇게 증거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종교개혁의 중요한 기여의 하나는 직업의 귀천사상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개혁자들은 모든 직업이 소명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개혁자 루터는 자기 책상 앞에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는 말씀을 붙여 놓고 그는 성경번역을 하면서 틈틈히 땀을 흘려 노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인류사의 노동의 철학을 바꾸는 불후의 명언을 남기에 됩니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다“고.
그런 면에서 저는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유형의 투기를 조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그리스도인 재정 전문가들은 투자와 투기를 구별합니다.) 그릇된 투기는 성공할수록 노동의 의욕을 상실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일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은 도둑질의 유혹을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드림의 삶을 습관화해야 합니다.
성경은 도둑질의 근원을 하나님과의 바르지 못한 관계에서 설명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그릇 되이 소유하려는 욕망을 갖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물질의 주인이심을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모든 것의 주인이시고 우리의 필요를 신실하게 공급하시는 분이라면 우리는 일학천금을 노릴 필요도 없고 투기에 매달릴 필요도 없지 않겠습니까? 투기와 투자를 고민하는 대신 좀더 기도하고 좀 더 일상에 성실한 삶을 살고자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눈을 뜨든지 감든지 돈만 보인다면 우리는 이미 탐심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탐심은 언제라도 우리를 도둑으로 변신시킬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탐심에서 우리가 자유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것은 이미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소유할 모든 것도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임을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드림을 습관화해야 할 이유인 것입니다. 이 드림의 기본이 바로 십일조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십일조를 망각하는 순간 이미 우리는 하나님앞에서 도둑이 된다고 말합니다.
말3:8을 읽어보십시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이어서 3:10에서 그는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최근 우연히 참존 화장품 김광석 회장(장로)님의 간증 테잎을 들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본래 독실한 불교신자였는데 무허가 약품 제조로 도망 다니면서 양산 통도사 절간에서 범인인 자기를 찾는 신문 기사를 읽고 생전 처음 기도하기를“하나님, 구해 주시면 하나님 믿겠습니다.”고 기도했답니다. 그후 자수하고 8억 벌과금 처벌을 받은후 교회 나가기 시작했는데 믿은지 얼마 안되어 한 여성도가 이분에게 “사장님, 혹시 십일조 하십니까?”고 도전했다고 합니다. 국민으로 세금안내면 국민 자격이 없고 성도로서 십일조 안내면 성도 자격이 없다고 도전하면서 말3:8-10을 읽어 주었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듣고 김광석 회장님은“하나님, 그러면 꼭 한번만 시험하겠습니다. 십일조를 도둑질 안하고 드릴터이니 저를 구체적으로 한번만 축복해 주십시오”기도 했답니다. 그때 이분이 일년 매출이 1억이었는데 결단하고 십일조 드린후 놀랍게도 8억 매출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후 하나님은 이분의 모든 삶의 장에 문자 그대로 하늘 문을 열고 부어 주시는 것을 경험했다고 간증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십일조를 습관화해 보십시오. 자녀들에게도 십일조를 가르쳐 보십시오. 물질에서의 진정한 자유를 경험할 것입니다.
3. 나눔의 삶을 생활화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림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본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나눔을 생활화하는 일입니다.
세상에는 주는 자와 받는 자-두가지 유형의 인생이 있을 따름입니다. 우리가 어려서는 주로 받는 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숙해 가면서 우리는 조금씩 주는 것, 나누는 것의 중요성을 배워가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숙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사도도 친히 그가 전도하고 양육한 에베소 교회 지도자들에게 주는 마지막 말씀에서 행
전20:35에서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경험한 최대의 사건은 요한3:16에서의“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의 사건일 것입니다. 이 소중한 독생자까지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그들이 바로 여러분과 제가 아닙니까? 그런데 요한3:16을 경험하고 이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성도들이 얼마나 요일3:16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로날드 사이더(Ronald Sider)라는 신학자는 요한3:16을 체험한 모든 성도들이 요일 3:16에 순종하고 있지 않는 한 아직 그의 믿음의 삶은 온전하다고 할수 없다고 했습니다. 요일3:16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어지는 17절의 말씀을 보십시오.“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김광석 장로님의 간증을 들으면서 가장 은혜가 되었던 부분은 이런 대목이었습니다. 십일조 헌금을 실천하면서 하나님의 분에 넘치는 축복을 경험하자 두려운 생각까지 드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느날 기도중에 이렇게 주님께 물었다고 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물질만이 아닐 터인데 물질 말고 제가 무엇을 주께 드려야 하겠습니까?” 그때 마음속에 두 가지 결심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하나는, 아내와의 관계에서 결코 부끄럼이 없도록 “간음하지 않고 살겠습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 허락하신 물질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기뻐하시는 올바른 일에 쓰면서 살겠습니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 가지 일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하나는 자신의 아내를 너무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사랑하게 된 것이고,
또 하나는 자신에게 주신 물질을 사용 할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들, 선교사역, 장학 사역, 교회 개척 사역, 구제 사역들을 보여주시고 섬기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일에 순종하면 할수록 하나님은 더 풍성하게 자신의 삶을 축복으로 붙들어 주시는 것을 경험했다고 간증하십니다.
제가 너무 은혜를 받아서 제 아내에게 “당신도 앞으로 반드시 참존 화장품만 쓰라”고 했습니다.
십계명의 제 8계명은 “도둑질하지 말라”입니다.
그러나 이 명령에 대한 진정한 순종은 도둑질 안하겠다는 결심만으로 부족합니다. 중단했던 도둑질은 언제든지 다시 재개될수 있습니다. 오히려 도둑질하던 이 손으로 수고하여 일하고 그리고 이 땀의 결실로 이웃들과 적은 것이라도 나누기 시작할 때 우리는 더 이상 빼앗는자도, 훔치는 자도 아닌 나누는 자, 축복하는 자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축복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떼제 공동체에서는 성찬을 나눌 때마다 이런 찬송을 부릅니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Ubi caritas et amor Deus ibi est)고.
성찬의 떡은 물론 우리의 속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깨어진 주님의 몸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떡은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욕심을 깨고 지갑을 깨고 이웃을 위해 기꺼이 깨트려 지고 나누어 져야 할 우리의 희생과 사랑의 결단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설교 적용 질문>
1. 간접적인 도둑질의 유형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2. 도둑질의 원인들은 무엇입니까?
3. 어떻게 도둑질의 유혹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4. 우리 가정에서 나눔의 정신을 격려하고 실천할 수 있는 방안들을 나누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