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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 ‘울산 관아(蔚山官衙)‘ 한시(漢詩)편 9.> 총17편 中
울산도호부(蔚山都護部)는 학성읍성도호부(鶴城邑城都護部)라고도 불리는데 학성(鶴城)이 울산의 옛 별호이기 때문이다. 울산 동헌(蔚山東軒)은 옛 울산읍성 안의 중심 건물로 울산도호부의 공무를 처리하였던 곳이고, 내아(內衙)는 수령이 살았던 살림집이다. 동헌은 1681년(숙종 7년) 울산부사 김수오(金粹五)가 처음 지었고, 1763년(영조39년) 울산부사 홍익대(洪益大)가 다시 지어 반학헌(伴鶴軒)으로 불렀다. 읍성 내에는 울산도호부의 객사(客舍)였던 학성관의 남문루(南問樓), 이휴정(二休亭), 태화루(太和樓), 울산 동헌(蔚山東軒) 반학헌(伴鶴軒), 강해루(江海樓) 등이 있었다. 동헌은 일제 강점기 이후 군청 회의실로 사용되었다. 동헌은 정면 6칸, 측면 2칸, 겹처마 익공(翼工) 양식의 팔작지붕으로 좌우에 2칸씩의 방을 두고, 가운데에 2칸의 대청을 두었다. 왼쪽 방 주위에는 계자(鷄子) 난간을 둘렀다. 내아는 8칸 규모의 ㄱ자형 건물로 온돌방 3칸, 대청 2칸, 부엌과 누마루 각 1칸 씩을 두었다.
60) 울산 객관 즉사[蔚山客舘卽事] 조 순찰사에게 삼가 받들어 시를 짓다(賦詩奉呈趙廵相) 1709년(己丑) / 홍세태(洪世泰 1653∼1725)
澤鴈哀鳴公出廵 연못의 기러기 슬피 울 제 공무로 순행하는데
東風一路轉熊輪 온 길에 불던 봄바람이 화려한 수레에 맴도네.
四封率舞咨諏地 사방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춤추며 민정을 살피니
萬木平分蔽芾春 수많은 나무가 공히 무성하게 된 봄이로세.
新雨作恩能潤物 이른 봄비에 은혜 입어 만물이 촉촉이 젖으니
好山如約盡迎人 약속대로 좋은 산에서 모든 사람들을 환영하구나.
淸尊畫戟生高興 맑은 술동이에 화극(畫戟) 있어 고상한 흥취 생겨나는데
白髮堪誇入幕賓 백발이 장막 안에 들어가 손님되니 자랑스러우이.
[주] 화극(畫戟) : 화려하게 색칠한 목창(木槍)으로, 관부(官府)의 문을 지킬 때 병졸들이 쥐고 호위하는 것이다. 중당(中唐)의 시인인 위응물(韋應物)이 군재(郡齋)에서 문사(文士)들과 잔치를 벌이면서 지은 〈군재우중여제문사연집(郡齋雨中與諸文士燕集)〉 시에 나오는 “호위하는 병사들의 화려한 창 삼엄도 하고, 편히 쉬는 방에 어렸나니 맑은 그 향기.〔兵衛森畫戟 宴寢凝淸香〕”라는 명구가 회자된다.
61) 울산부에서 숙박하며[宿蔚山府] 부는 좌병사영 밑에 있다(府在左兵使營底) / 김홍욱(金弘郁 1602~1654)
邑在營門下 고을읍은 병영의 문 아래에 있는데
官居更寂寥 관아는 참으로 적막하다.
庭寒竹影薄 차가운 뜰에 대 그림자 옅고
簾捲海雲消 주렴 걷으니 바다구름 물러가네.
剝割軍情急 탐관오리의 횡포에 군대의 상황이 불안하고
艱危武士驕 무사들의 교만에 나라가 위태롭구나.
當年胡馬至 그해에도 오랑캐 말이 달려왔는데
金印謾懸腰 교활하게도 금인(金印)을 허리에 둘렀다네.
62) 울주 객관[蔚州客舘] 졸옹이 부쳐 보내준 시에 차운하다(次拙翁寄示韻) / 남유용(南有容 1698∼1773)
行窮滄海始言休 창해의 막다른 길은 예부터 조용한데
踏盡江南數十州 강남의 수십 고을을 모두 다 밟고 왔다네.
孤舘鷄鳴殘夢罷 외로운 객관에 닭이 울어 남은 꿈을 깨어보니
日華浮上枕邊樓 햇볕이 누각의 베갯머리로 떠오른다.
63) 울주 관사벽에 적다[題蔚州官舍壁] / 정포(鄭誧 1309∼1345)
極目丘園隔 눈 들어 멀리 바라니 내 고향은 어딘고
回頭歲月侵 머리를 돌이키니 세월 진정 빠르구나
關山千里夢 관산 천 리에 아득한 꿈이여
風雨五更心 풍우 오경에 서글픈 내 마음
處世身如寄 평생을 생각하니 인생은 나그네
居官力不任 벼슬을 살자니 힘겨워 어이하리
攻愁無過酒 시름을 물리침은 술 만한 것 없으니
擧酒莫停斟 잔 들자, 부어라 멈추지 말아라
64) 울산 강해루에 올라[登蔚山江海樓] / 김용한(金龍翰 1738~1806)
東南地盡處 동남쪽 땅 끝 울산에
江海有高樓 강해루라는 높은 누각이 있다.
雨竹橫天際 빗속의 대나무가 하늘 끝을 가로지르고
風帆簇水頭 돛단배가 물가에 모여 있네.
神淸炎卻爽 더위가 수그러져 시원하니 정신이 맑아지고
趣適閙還幽 시끌벅적한 풍취를 즐기다 보니 다시 조용해지네.
立馬斜陽岸 석양 속 언덕에 말을 세워두고
呼罇慰客愁 나그네 수심을 위로하려 술잔을 찾아본다.
65) 울산 객사 입으로 짓다[蔚山客舍口號] / 조태억(趙泰億 1675~1728)
行人向晩駐麾幢 저녁 햇살 속에 깃발은 오가는 행인들을 향해 펄럭이는데
竹籟荷香滿一窓 대숲 바람 소리와 연당의 꽃향기는 창가에 가득하여라
待得夜深殘暑退 밤이 깊으니 더위도 처서 절기에 물러가는데
小舠沿泝太和江 작은 배 물가에 제 홀로 떠있는 태화강이여
1711년 일본에 조선통신사로 다녀온 조태억(나중에 좌의정)은 그 사행 중, 일본 가는 길에 울산 동헌 객사(공사중인 현 울산시립미술관 자리)에 머물면서 지은 시이다.
66) 울산 동헌 시운에 차하다[次蔚山東軒韻] / 송순(宋純 1493∼1582)
天接滄溟地盡南 하늘이 바다에 닿아 땅이 끝나는 남쪽
西風木葉戰初酣 서풍에 날리는 낙엽이여, 가을이 한창이네.
登樓傑句難成一 루에 오르니 시판의 좋은 싯귀들, 따라잡기 힘들어
對月深杯漫送三 달을 마주 보며 석잔 째 마시노라
野把秋光如淨洗 들판에는 잡힐 듯 가을빛이 깨끗한데
江收山影正澄涵 태화강에 비친 산그림자, 정녕 맑기만 하여라.
久聞海路通霄漢 늘 듣던 바닷길, 수평선에서 하늘로 이어지네.
誰借追仙數幅帆 아, 누가 신선을 뒤쫓나? 몇 척의 범선들이 보이네.
[주] 울산 동헌 정문인 가학루(임진왜란 이전에는 다른 이름으로 추정)에서 달밤의 태화강 울산을 읊은 명시이다.
67) 울산헌에 차운[次蔚山軒韻] 이경서에게(贈李君景瑞) / 황준량(黃俊良 1517~1563)
想思千里夢江南 천리 먼 길에서 그리워하던 강남을 꿈꾸며 도착한 곳,
靑眼初回興正酣 만나자마자 반가운 눈빛 보내니 바로 흥겨워지네.
海國風煙秋已半 바닷가 고을의 안개바람 일고 가을은 이미 반이 지나갔는데
客燈談話夜將三 나그네 등불 속에 세 사람이 밤새 대화를 나누었다.
雲生彩筆銀光滑 붓으로 채색한 듯한 구름에서 은빛 광채가 나고
杯凸流霞玉色涵 술잔에 노을이 흘러 아름다운 색을 물들였네.
爲吏一行多俗態 아전의 일행들은 세속적인 모습이 많아도
共期携手挂張帆 공히 돛을 펼쳐 걸고는 손을 잡고 기약하누나.
68) 울산헌 시운에 차하다[次蔚山軒韻] / 황준량(黃俊良 1517~1563)
輕寒小雨結微陰 조금 찬 가랑비가 옅은 그늘 이루자
紅綠扶春上遠林 꽃과 풀이 봄 부축하여 먼 숲을 오르네
芳草渡頭魚店小 방초 돋은 나루터엔 어물전이 조그맣고
亂峯天際海門深 산이 험한 하늘가엔 바다 관문이 깊구나
乾坤有恨催年矢 천지는 세월을 재촉하여 한이 되고
山水無人解鼓琴 산수에는 거문고를 아는 이가 없구나
千古胸襟空磊磈 천고의 회포가 부질없이 응어리 져
一傾東海洗愁心 동해 바다 기울여 근심 씻어 보네
<울산광역시 ‘울산 병영(蔚山官衙)‘ 한시(漢詩)편 10.> 총17편 中
울산시 경상좌도병영성(사적 제320호)이 1417년 축성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는 병영성 내부에 동융루(董戎樓, 다른 읍지에는 동융각(董戎閣)이라고도 기록되어 있음), 선위각(宣威閣), 조련고(組練庫), 군창(軍倉) 등의 관아가 있다고 한다. 병영 관아의 중심 건물이 동헌과 객사임을 감안하고, 조련고(組練庫), 군창(軍倉) 등 창고 건물을 제외하면, 동융루(董戎樓), 선위각(宣威閣)이기 때문에 동융루는 동헌, 선위각은 객사와 관련된 건물일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임진왜란 이전의 상황이다. 이 같은 동헌은 정유재란 전후에 왕성히 활동한 문인(文人)들의 문집(文集) 중 <유천유고(柳川遺稿)>, <인재선생문집(訒齋先生文集)>, <벽오선생유고(碧梧先生遺稿)>, <낙서집(洛西集)> 등에서 울산 병영의 동헌이 ‘주변헌(籌邊軒)’으로 묘사된 것을 찾아 볼 수 있다. 1700년대 중반에 간행 된 <여지도서(輿地圖書)>의 ‘경상도, 좌도병마절도영’ 기록 부분과 ‘좌병영지지도(左兵營之地圖’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여지도서>의 기록에는 동헌을 체오헌(掣鰲軒), 매죽당(梅竹堂)이라 하고 지도(地圖)에는 체오헌과 매죽당을 별도의 건물로 그려두고 체오헌은 채색하지 않아 빈 공간을 표현한 공사(公事) 집무실, 매죽당은 채색하여 문을 둔 내부공간의 사랑채 영역을 표현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1894년에 편찬된 <영남영지, 좌병영부사례>에서 병영의 동헌이 운주헌(運籌軒)과 침과당(枕戈堂)으로 기록된 것을 볼 수 있다. 울산 병영의 동헌은 임진왜란 이전에는 주변헌과 동융루(각)였다가, 1700년대를 전후하여 체오헌과 매죽당, 1800년대에 다시 운주헌과 침과당으로 변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69) 울산병영[蔚山兵營] 한유천 시운에 차하다(次韓柳川韻) / 이현석(李玄錫 1647~1703)
堞壘干戈武略饒 성루의 창과 방패, 군사의 전략 넉넉하고
一城兵氣接天遙 한 성의 군사의 기세가 하늘 멀리 이어졌네.
煙氛指點知蠻近 안개 기운 가리키는 곳에 오랑캐가 가까움을 알리는데
溪壑奔趨認海朝 산골짜기 물 급히 흐르고 바다의 조수 출렁인다.
風外波濤聲自怒 바람 밖의 큰 파도 소리 절로 사납고
火餘松檜葉全凋 불탄 자리에 소나무 전나무 잎이 모두 시들었네.
那將十萬靑龍艦 어찌하면 십만의 군사를 푸른 전함에 싣고
直向江南縛老蕭 곧바로 강남을 향해가 오랑캐를 포박해 버릴까?
70) 울산 주변헌[蔚山籌邊軒] 병영객사, 김총병에게(贈金總兵) / 한준겸(韓浚謙 1557~1627) 경상도관찰사
東南形勢此中饒 동남의 형승이 이 안에 넉넉한데
節制開營海曲遙 아득히 굽은 바닷가에 절제사 영을 열었다.
千里山河遺賊壘 천 리 산하에 적이 보루를 남겼으니
二年兵馬自天朝 이년 동안 천자의 조정으로부터 병졸과 군마가 주둔했다.
將軍戮力心猶壯 장군이 힘을 모으니 마음 되레 꿋꿋해져
賤子驅馳鬢已凋 내가 말을 몰아 달리는데 머리털은 이미 쇠했구나.
偸得佳辰拚勝會 구차하게도 좋은 길일 선택해 성대한 모임 마련하니
不妨歸路雨蕭蕭 돌아가는 길에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싫지 않다네.
71) 울산 병영[蔚山兵營] / 오횡묵(吳宖默 1834~1906)
制勝堂高望裏雄 뛰어난 제승당의 웅장함을 바라보는데
軍牢吸唱快肩風 군뢰(軍牢)가 모여 노래하며 어깨를 들썩이고 기뻐하네.
山河壯勢樓臺出 산하의 웅장한 위세가 누대에서 나왔고
民物凞情雨露中 백성은 비와 이슬 속에서 화락한 마음 생겨난다.
地昔龍蛇過經理 옛날엔 용과 뱀이 이 땅 변방을 자주 지나갔지만
人今裘帶見元戎 사람들은 이제 갖옷과 띠를 두르고 대장군을 바라본다.
海晏天晴無戰氣 하늘 맑고 바다 잔잔하여 전쟁의 기운 없으니
鎭南門外夕陽紅 진남(鎭南) 진영의 문 너머 석양만 붉게 타네.
[주] 군뢰(軍牢) : 조선시대 군대에서 죄인을 다루는 일을 맡아보던 병졸. 지금의 헌병에 해당함
72) 울산 성루[蔚山城樓] 유주 시운에 차하다(次柳州韻) / 임수간(任守幹 1665∼1721)
層樓南眺接蠻荒 층루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니 오랑캐와 접해있고
漲海三千路杳茫 넓은 바다 삼천리 여정길이 아득하기만 할뿐.
潮送孤帆迷海口 조수 따라 가는 저 외론 돛배, 해구 속에 아득한데
風搖畫角隱城墻 바람소리에 실린 뿔나팔 소리는 성벽 위에 나리네.
平蕪極目供詩帳 끝없는 갈대밭은 시심을 돋우고
脆管多情攪客膓 처량한 피리소리는 나그네의 애를 끊는구나.
此去歸期難豫定 이곳을 떠난 뒤에 돌아올 기약키 어려우니
憑高遮莫望家鄕 고루의 기둥에 기댄 채 집 생각에 잠기게 되네.
73) 울산 선위각[蔚山宣威閣] 병영성 內/ 윤순지(尹順之 1591∼1666)
碧海蓬山路不迷 푸른 바다 봉래산 가는 길이 뚜렷한데
偶乘詩興躡仙梯 우연히 시흥(詩興)이 일어나 선경의 사다리로 올랐네.
城頭畫閣增新賞 성 위의 화려한 누각은 한층 더 새롭고 아름다워
壁裏紗籠撫舊題 벽 안의 사롱(紗籠)을 밝히고 옛날 제시(題詩)를 살펴보았다.
當檻穠花鸎恰恰 난간의 풍성한 꽃들 속에 꾀꼬리 지저귀고
映階遲日草萋萋 나른한 봄날 섬돌의 햇볕에 풀만 무성하네.
村家幸得官無事 시골집과 관아엔 다행히도 일이 없으니
處處農謳起野畦 가는 곳마다 들판의 둑길에서 농부가가 들려온다.
74) 좌병영 연정에서 숙박하며 느끼는 바가 있어[宿左兵營蓮亭有感 三首]
○방어사 신각(申恪 ?~1592)이 옛날 근무하던 곳이다. 병영에 이르러 살펴보다가 반갑게 서로 만났다. 내가 월성에 이따금 나아갔다. 1587년 7월14일이었다. 이날 밤 큰 비가 내렸다. 우연히 1절을 읊었다. 아침에도 그 운을 사용해 2수를 지었다. 울산 이언윤에게 적어 보였다. 언윤의 이름은 ‘형’이다. 나의 안사람 이모 사위이다.(防禦使申恪 有竹馬之舊 巡到兵營 邀與相見 余自月城往赴之 是歲丁亥七月十四日也 是夜大雨 偶吟一絶 朝又用其韻 作二首 錄示李蔚山彦潤 彦潤名瑩 卽余之內姨壻也) / 구사맹(具思孟 1531∼1604)
官池荷葉雨聲多 관청 연못의 연잎에 빗소리 요란하고
宿客無眠恨轉加 잠 못 이루는 나그네 한탄만 더해지네.
筭得百年成底事 헤아려보면, 백 년 동안 이룬 일이 무엇이더냐
宦情消盡白鷗波 벼슬살이 정(情)이 갈매기 노니는 물결 속에 사라진다.
池閣朝來爽氣多 못가의 누각에 아침이 되니 시원한 기운 넘치고
紅蕖香色雨中加 붉은 연꽃의 향기와 색채 빗속에서 더해지네.
韜戈設席眞堪慰 병기를 갈무리하고 마련한 자리 참으로 위로되는데
自是今秋海不波 올해 가을부터 바다의 물결도 잠잠하구나.
崇朝風雨旅情多 아침 내내 비바람이 몰아치니 길손의 시름 많아지는데
鬢上霜華覺又加 귀밑털에 고운 서릿발은 설상가상으로 밝게 빛나네.
唯有江妃不愁思 바라건대 강비(江妃)가 근심 걱정을 없애고
紅粧銷落尙凌波 붉은 화장으로 거센 파도를 다 사라지게 하소서.
[주1] 신각(申恪) : 1587년 경상도방어사,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수성대장(守城大將) 이양원(李陽元) 휘하의 중위대장(中衛大將)에 임명되었다. 도원수 김명원(金命元)이 싸우다 임진강으로 도망가자 유도대장(留都大將) 이양원과 함께 양주로 가서 흩어진 군사를 모았다. 이어 함경도 병마절도사 이혼(李渾)의 부대와 합세하여 양주 해유령(게너미고개)에서 왜군을 크게 무찔러 적의 머리 70급(級)을 베었다. 이것이 임진왜란 때 육지에서 최초로 승리한 전투였다. 김명원이 패전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신각이 명령을 듣지 않고 마음대로 다른 곳으로 갔다.”는 내용의 장계를 올려 우의정 유홍(兪泓)에 의하여 참형되었다. 같은 날 오후 양주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전령이 도착하자 임금은 급히 신각을 죽이지 말라는 전갈을 보냈으나 이미 처형된 뒤였다. 충직한 무인이었던 신각이 억울하게 죽자 모두가 애석해 하였고, 신각의 처 정씨는 남편을 장사 지낸 뒤 자결하였다. 이에 정조 때 열녀문을 세워 주었다.
[주2] 강비(江妃) : 전설 속에 나오는 신녀(神女)로, 한 나라 유향(劉向)이 지은 《열선전(列仙傳)》 강비이녀(江妃二女)에, “강비 두 여인은 어느 곳에 사는 사람인지 모른다. 강수(江水)와 한수(漢水) 가에 나와 놀다가 정교보(鄭交甫)를 만났는데 그들을 보고 기뻐하여 그들이 신인(神人)인지도 몰랐다.”하였다. 강비(江婓).
75) 좌병영에서 남 30리 넓은 바닷가에 임한 대(臺)가 있으니 해운대와 다툴만하다. [左兵營南三十里許有臺臨大洋 與海雲相甲乙]
○어느 날 병사 장세호와 수사 봉승종과 함께 배를 타고 울산 앞 포구에서 출발하여 염포 앞을 지나 이 대 아래에 이르렀다. 그 날, 날씨가 좋아 올라서 좌우에 물으니 이 대(臺)의 이름이 없다 하여 내가 망선대라 지었다. 이를 듣고 장세호 병사가 그 이름을 새겨 동헌에 걸고 그림을 그려 전하게 했다(一日 與兵使張公世豪 水使奉公承宗 乘舟於蔚山前浦 過鹽浦直抵臺下 是日風日適和 宜於登覽 左右咸以無佳號爲欠 余以望仙名之 因題兩絶 張公刊懸營軒 以圖永傳) / 송순(宋純 1493∼1582) 49세 1542년 경상도관찰사.
三山縹緲滄溟外 아득한 삼신산은 큰 바다 너머에 있는데
十二樓頭繫畫船 십이루(十二樓) 근처에 그림배가 매여 있네.
早晩東風應借我 머지않아 봄바람이 내게로 불어오면
月明臺上望來仙 달 밝은 누대 위로 신선이 오는 것을 바라보겠지.
大和樓下聯三袂 태화루 아래서 세 사람이 손을 맞잡고
鹽浦門前放一船 염포 앞바다에 한 척 배를 띄웠다네.
風日淸和天水闊 맑은 바람 화창한 날씨, 바다도 더 넓은데
登臺誰信我非仙 망선대 오른 사람들, 누가 우릴 신선이 아니라하나
[주1] 망선대(望仙名) : 일명 월명대, 현재의 울산대교 전망대 자리. 또는 매암동 양죽 본동 동북쪽에 동쪽을 향해 바다 속으로 우뚝하게 뻗어 있는 산을 <망제산(望帝山)> 또는 <범바우끝>이라고 하고 그 정상을 <망선대>의 위치로 추정하고 있다.
[주2] 십이루(十二樓) : 중국의 곤륜산(崑崙山) 선인(仙人)의 거처에 있다는 열두 채의 고루(高樓)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