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은 서걱서걱한 도시에도 봄 풍경이 살금살금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깔깔 웃는 아가씨들의 화사한 치마 위에, 꽃 시장에 '앞으로 나란히'를 하고 선 풋풋한 모종 사이에
무심코 틀어 놓은 텔레비전 화면 속에 봄들이 킥킥거리며 꿈틀대고 있습니다.
이제 머지 않아 동네 골목마다 개나리가 아우성을 치고 남산이 눈 시린 벚꽃의 분홍 빛으로 반짝이겠지요.
기다리면 봄이 곧 올 텐데 이런저런 봄 소식에 엄마가 생일 선물 숨겨둔 비밀 장소를 알아낸 아이마냥
참기 힘들어집니다.
남쪽 어느 고장에 벌써 피었다는 꽃을 찾아 먼먼 길을 가서 포근한 봄을
워워 서울로 몰아 오고 싶은 마음이라고나 할까요.
'꽃 릴레이'의 첫 주자는 매화입니다. 섬진강 따라 마주보고 있는
햇빛 가득한 전남 광양과 경남 하동이 예쁜 매화를 터뜨리며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그보다는 조금 늦게 시작했지만 월출산 자락 해남에도 매화가 한창입니다.
2번 국도를 따라 해남에서 광양으로 이어지는 강진, 보성, 벌교, 순천에도 매화가 곳곳에 총총 피었습니다.
매화 다음엔 복사꽃이, 그 다음엔 벚꽃이, 조금 지나면 배꽃이 차례차례 봄을 활짝 피우겠지요.
매화 품에 안겼다, 수줍은 어린애처럼
흰 꽃의 터널을 이룬 매화나무 아래 한 아저씨가 쭈그리고 앉아 초록빛 풀을 들여다보고 있다.
형광 빛으로 점점이 피어있는 꽃 이름을 묻자 "그건 모르겠는디.
이건 전라도말로 곰밤부리 나물(별꽃나물)이라 하는 건디…."
쑥이 싱싱하고 좋아서 바로 뜯어 쑥국을 끓여 먹고 있단다. 갓 잡아 올린 생선을
배에서 회 쳐 먹는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매화 농원에서 쑥국을 끓여 먹는다니 어쩐지 수상쩍다.
▲ 보해 매실농원 '연애소설' 촬영지 부근의 매화 터널
전남 해남 보해 매실농원 임순택 부장은 "저기…쑥을 마구 뜯어서 취사하는 분 있던데"라는 고자질에 허허 웃었다.
"여기는 3월 초부터 4월 초까지, 일년에 딱 한 달만 일반인에게 공개해요.
그래서 그동안은 꽃만 안 건드리면 무엇을 해도 안 막아요.
쑥 참 좋던데, 좀 뜯어가시지 그래요.
담엔 고기 사다 매화나무 아래서 좀 구워도 드시고."
▲ 경남 하동 녹차 밭에 핀 매화.
매취순으로 유명한 보해가 운영하는 이 농원은 전남 광양의 '홍쌍리 매실농원'보다 개화일이 일주일 정도 늦다.
그래도 규모(46만2800㎡·약 14만평)로 보나, 분위기로 보나 광양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지질을 높여준다고 해서 10여 년 전 자운영을 심었다는데
어느새 나무 아래 빼곡하게 번식해 걸음걸음을 푹신하게 해준다.
영화 '너는 내 운명'서 은하(전도연)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기 전
석중(황정민)과 보냈던 신혼 시절을 촬영한 곳이 바로 이 농원이다.
주차장에서 전망대를 지나 '너는 내 운명 촬영지'까지 이어지는 길이 가장 붐빈다.
묘하게도 이 지점을 지나면 사람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길을 따라 계속 걷는다.
한적해지니 매화가 뿜어내는 연한 향기 그리고 어찌 알고 몰려 들어 꽃 사이를 누비는
벌들이 내는 붕붕붕붕 소리가 훨씬 잘 느껴진다.
영화 '연애소설 촬영지'란 표지가 붙어 있는 곳까지는 10분쯤 걸어갔을까.
'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어'라고 말하는 듯한 깨끗한 매화 터널이 두 팔을 벌리고 있다.
▲ 해남 보해 매실농원에서 사진 찍기 삼매경에 빠진 아이
■ 이번 주말 1박2일 꽃 여행을 떠나려면
이번 주 꽃 구경을 하려면 지금 한창인 매화에 집중하는 게 좋다.
1박 정도 각오한다면 남도를 가로지르는 2번 국도를 따라 해남에서 광양까지 '매화 기행'에 나서도 좋겠다.
해남서 광양까지는 차로 3시간 정도 걸리는, 결코 짧지 않은 길이지만
강진 벌교 순천 등에 들러 꽃 구경하며 쉬엄쉬엄 가다 보면 결코 지루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남 강진
절벽으로 이뤄진 주작산 등산로 부근에 매화가 꽤 많다. 매실농원 만한 규모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지만
마을 사이사이 동네 어르신들이 심어 놓은 매실들을 숨은 그림 찾듯 기웃거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옛 물건 4000여 점을 전시한 '와보랑께 박물관' 주변엔 김성우 관장이 심은 250그루의 매화 나무가 정겹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이어지는 오솔길은 강진만을 내려다보는 흙 길로 유명하다.
강진군청 홍보팀 (061)430-3462
전남 벌교
꼬막 생각이 난다면 잠시 벌교에 들르자.
옹기 체험을 할 수 있는 '징광다원'엔 주인 차정금씨가 가꿔놓은 매화 밭이 있다.
징광다원 (061)857-5064
전남 광양·경남 하동
다압면 홍쌍리 청매실농원(061-772-4066)이 단일 농원으로는 가장 크지만 북적거린다는 단점이 있다.
다압면은 전체가 매화 농원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매화나무가 많으니
청매실농원에 집착하지 말고 느긋하게 마을을 둘러보자.
광양시청 문화홍보과 (061)797-2363
첫댓글 오 강진은 잇는데 장이 빠졌네요 장 토요시장 한우를 드시로 오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