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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사업전략 컨설팅회사 ‘베인&컴퍼니’의 이사인 크리스 주크는 성장하는 기업을 10년간 연구해서 “핵심에 집중하라”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가장 강력한 성과를 내는 기업은 1개 혹은 2개의 핵심 사업을 기반으로 새로운 고객, 경로, 제품, 또는 응용 분야로 이를 확장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업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기업가치와 기업이미지가 변질되지 않고 핵심을 잃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성장하는 기업은 기업이 추구하는 본질, 핵심을 잘 설명해야 지속적 성장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하신 일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면 첫째는 복음을 가르치는 일, 둘째는 복음을 전파하시는 일, 셋째는 영혼과 육신을 치유하시는 일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백성을 가르치시고 양육하신 것, 그리고 환자를 치유하신 세 가지 사역을 하셨는데 그럼에도 하나의 본질, 하나의 핵심으로 사역을 정의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복음이었습니다. 세상의 사람들, 예수님을 찾아온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께 지식과 재물, 건강을 요구하지만 결국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 가장 본질적인 것은 복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 예수님의 도움, 예수님의 치유를 원해서 찾아왔지만 결국 그 사람들이 그것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천국 복음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오늘 말씀뿐 아니라 우리가 성경말씀속에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놀라운 역사를 보면서 저와 여러분은 무엇을 갈망하고 있습니까? 오늘 시각장애인, 완전히 시력을 잃은 맹인은 예수님을 만나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제 그들의 삶은 예수님을 만난 이전과 이후로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기적이 오늘날 저와 여러분, 우리에게도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도우심을 사모하는 저와 여러분이 우리 일상속에서도 어떻게 기적이 상식이 될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하며 오늘 말씀을 들을 때 저와 여러분에게도 예수님의 도우심이 우리 일상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도우심이 우리의 일상이 되기 위해 첫째로, 예수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마태복음 9장 27,28절입니다.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마태복음 8장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님의 행하신 기적이 계속 서술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8장부터 9장에 기록된 10가지 사건 중 9번째 기적, 혹은 9번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는 두 맹인을 고치시는 사건입니다. 이 맹인치유의 사건은 마태복음 9장 27절에서 3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되살리는 기적 이후에 곧바로 이 기사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거기에서”라고 표현된 장소는 야이로의 집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이 맹인들도 야이로 딸의 부고를 듣고 이 집에 무슨 일이 생겼는 지 확인하기 위해 와있던 시각장애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이제 이 집을 떠나시려는 것을 느끼며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분명 예수님을 통해 누리게 될 복, 예수님께서 주실 은혜를 갈망하며 예수님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27절에 “두 맹인이 따라오며”라고 기록한 부분과 28절에서 “맹인이 그에게 나아오거늘”이라고 기록한 부분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어려움과 해결해야 할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이런 세상에서의 여러 가지 문제, 특히 우리가 도무지 해결하지 못할 것 같은 문제는 세상의 주관자, 이 땅의 통치자이신 예수님을 통해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까요? 오늘 본문에서 그 첫 단추를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문제를 들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께 나와야 합니다. 27절 상반절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 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28절 상반절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인생에서 우리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 줄 어떤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뭔가 도움을 주는 사람도 결국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생이기에 우리가 그들을 따라가며 그들의 도움을 의지하다가 오히려 더 큰 화를 당할 때가 많습니다. 문제해결을 위해 세상의 방식을 따라가고 문제해결을 위해 어떤 사람들을 따라가다가 결국 문제해결이 아닌 인생파탄이나 절망의 순간에 빠지게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따라간다고, 예수님을 찾아왔다고, 예수님에게 나아와 간절히 기도한다고 바로 즉각 응답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계속 문제에 짓눌려서 문제를 들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할 것....바로 지금 이 순간이 우리 하나님, 우리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연단시키시는 과정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간절히 예수님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은 반드시 응답하시며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맹인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언제 그들이 예수님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까? 언제 그들이 이렇게 예수님을 접촉할 기회가 있었겠습니까? 지금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동네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 예수님께서 찾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때다 싶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야이로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 곳에서 예수님을 멀찌감치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의 기적이, 그 곳에서의 사역이 끝이 났을 때 예수님께서 그 곳을 떠나신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이 맹인은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에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 부끄럽지만 자신의 이런 장애를 드러내는 것이 창피하지만 예수님앞에 담대히 나아갔습니다.
이사야 55장 6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우리는 하나님앞에 나와 우리를 솔직히 고백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시기를 기대하며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맹인이 예수님을 만나서 은혜를 받기를 갈망했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 예수님께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실 기회를 붙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주실 때가 되었다’ ‘예수님의 은혜를 받을 기회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 다시 찾아올지 알 수 없다’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간절히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당장 예수님을 우리 삶에 모시고 그 분께 우리의 모든 상황을 고백할 때 우리는 주님이 도우시는 은혜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49장 8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
히브리서 10장 38,39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믿음을 가진 사람,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항상 예수님 음성을 듣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계신 것을 느끼며 예수님앞에 나아와 예수님께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을 깨닫고 그 분이 나의 문제를 해결해주실 분임을 확신하며 담대히 예수님을 찾고 예수님앞에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어떤 일이든 내가 해결해야겠다, 내 방식대로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하지 말고 예수님께 들고나와 예수님께서 해결해 달라고 간절히 예수님을 붙잡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도우심이 우리의 일상이 되기 위해 둘째로, 은혜를 사모하며 긍휼을 기대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9장 27절입니다.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우리에게 놓인 절박한 문제들,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우리 일상에서의 여러 안타까운 기도 제목들을 해결하며 주님 역사로 기적이 상식이 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에서는 자신의 문제를 들고나온 맹인이 예수님의 긍휼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27절에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것은 자신의 모든 노력이 허사였고 자신의 인생은 자신들의 노력으로 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두 맹인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들의 무능을 철저하게 깨달았고 이제 자신의 인생은 예수님을 만나야만 해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간절히 예수님을 기다렸고 이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라고 소리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맹인인 자신은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눈을 뜰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눈을 뜬다는 것은 기적이고 그 기적은 예수님만이 허락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오늘 이런 기적을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은 바로 우리 인생의 눈, 인생의 목적을 제대로 분별하는 구원받은 사람의 영적 시력도 예수님의 기적이 아니고서는 절대 뜰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은 아닐까요? 인간이 해낼 수 없는 일, 절대 인생을 분별하며 살아갈 눈을 가질 수 없는 인간이 인생을 분별하는 눈을 가지게 만드는 기적은 예수님만 통해서 할 수 있다는 것을 저와 여러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이 자신이 무엇이건 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살아간다면 그들은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이 높아진 삶, 자신이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 되었을 때는 절대 예수님을 기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내 손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내가 내 삶에 모든 부족한 것을 나의 노력으로 채울 수 있다고 자신한다면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출세를 위해 주일성수도 미루고 예수님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도 미루고 자신이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고 자신의 모든 미래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예배도 뒤로 미루고 기도도 뒤로 미루고 신앙도 뒤로 미루면서 자신의 의지, 자신의 노력, 자신의 지식, 자신의 능력을 더 키우기 위해 살아갈 것입니다. 이런 인생은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삶같아 보이지만 결국 멸망의 삶, 실패의 삶, 좌절과 낙담의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내 노력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 주님께 우리의 인생을 맡겨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당면한 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이 누구인지 분명히 발견하며 인간적 방법을 버리고 예수님만 따라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문제해결의 방법을 찾은 사람은 주님앞에 나와 간절한 기도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9장 27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우리가 큰 소리를 지를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열정적으로 운동경기 응원을 할 때, 어떤 때는 노래방에서 열정적으로 열창을 할 때, 어떤 때는 절박한 위기의 순간에 살려달라는 외침을 할 때... 오늘 본문에서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찾은 사람 두 맹인은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며 소리지릅니다. 긴급하고 간절하게 호소하는 맹인을 우리는 봅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평소에 우리에게 놓인 문제가 이렇게 긴급하고 간절한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정말 긴급하고 절박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큰 소리로 우리를 도와달라고 외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의 기도시간이 바로 절박함을 호소하는 시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두 맹인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라고 외쳤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앞에 우리에게 예수님의 긍휼을 보여달라고 외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실 때 우리는 우리의 문제가 완전하게 해결된다는 확신이 있어야 할 것이고 그런 확신이 있는 사람만이 예수님앞에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예수님께 매달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삶의 고민,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인생의 비전, 우리가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는 우리 인생의 목적을 제대로 발견하기 위해서도 예수님앞에 우리는 간절함으로 매달려 기도해야 합니다. 그 기도의 첫 마디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 한 마디가 정말 그 모든 것을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이 한 마디에 우리가 해야 할 모든 기도의 내용이 다 담겨 있습니다.
누가복음 18장 13절을 보겠습니다. 같이 읽습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누가복음 18장을 보면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가 나옵니다. 바리새인은 여러 잡다한 자신의 신앙적 삶을 기도에 넣고 자신이 의롭게 살았다는 것을 자신하며 기도합니다. 온갖 신앙적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하지만, 세리는 자신의 죄가 너무나 막중하고 하나님앞에 의롭지 못한 것을 고백하며 말도 제대로 못하고 통곡하며 한 마디 기도만 합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신앙생활하며 우리의 모든 문제에 대해 어떤 해결방안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내 의를 내세우고 내 믿음을 내세우며 내 신앙생활을 자랑하며 그것이 내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참된 우리 인생의 문제는 내 자신을 먼저 깨달을 때 가능합니다.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먼저 자각하며 바르게 알게 될 때 예수님이 행하실 놀라운 일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실 놀라운 일의 첫 단계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처지를 알고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 지 알기에 예수님앞에 긍휼함을 기대하며 우리의 죄를 회개하며 나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한 불쌍한 영혼,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항상 긍휼을 기대하며 우리 주 예수님께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며 기도하는 것으로 예수님앞에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의 긍휼을 사모하며 불쌍히 여김받는 영혼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도우심이 우리의 일상이 되기 위해 셋째로, 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9장 28,29절입니다.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찾아온 맹인, 예수님앞에 나와 간절히 긍휼을 사모하며 믿음의 고백을 했던 맹인이 기적을 경험하며 눈이 보이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부름속에 어떤 신앙고백이 담겨 있을까요? 당시 모든 유대인들은 오래 전부터 자기들을 구원해 줄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야가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오랫동안 다윗의 자손을 목마르게 기다려 왔습니다. 그러기에 “다윗의 자손이여”라는 말은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 베드로에게도 이렇게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5절입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런 질문에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뭐라고 고백합니까? 마태복음 16장 16절에는 이렇게 답하고 있죠. 같이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6절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렇게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한 제자들이 예수님의 권세를 얻고 예수님의 귀한 사명을 감당하며 사도로써 주의 위대한 일에 동참하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제자 베드로의 이런 고백과 견줄만한 믿음의 고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9장 28절부터 그 내용이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풀 수 있을거라고 확신하냐”며 맹인들에게 물으시니 맹인들은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믿는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도무지 불가능한 현실,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일도 예수님이라면 가능하다”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죠. “네 믿음대로 되리라” 그리고 실제적으로 “그들의 눈이 밝아졌다”고 오늘 본문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문제들을 해결해 주실 것을 믿고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삶에 역사하시기 전에 우리의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역사하십니다.
마태복음 9장의 중풍병자의 기적을 우리가 몇 주전에 살펴볼 때에도 그 중풍병자의 치유 근거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그들의 믿음, 그 환자를 데려나온 사람들의 믿음이었습니다.
마태복음 9장 2절입니다.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은 왜 우리의 믿음을 요구하실까요? 믿음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신뢰이며 기도응답의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3,24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야고보서 1장 6,7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조금이라고 의심을 가지면서 하는 기도는 확신이 없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완전히 믿지 못하면서 구하는 기도는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때 ‘이거 아니면 안돼’ ‘이것밖에 방법이 없어’라고 생각되는 경우의 수를 만나게 될 때 간절해지지 않겠습니까? ‘정말 예수님밖에는 답이 없어’라고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예수님에게 올인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나도 “‘예수님만이 답’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완전한 믿음입니다. 우리가 살펴본 마태복음 8장, 9장의 여러 기적을 보십시오. 그 기적마다 응답의 전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믿음대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역사하실 때 전제된 기적의 과정은 “믿음을 보셨다”였습니다. 그러나 만일 믿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기도 응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9장 29절에서 30절 상반절에는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행하실 일에 대한 간절함이 있고 확신이 있습니까?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믿음이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 우리 마음에 조금의 의심이라도 찾아온다면 그 의심을 떨쳐버리시고 믿음으로 끝까지 기도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을 떨쳐버리고 우리의 모든 가능성을 내려놓고 주님만 바라보며 주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기대하며 예수님께 우리의 인생을 맡길 때 저와 여러분의 인생 문제가 해결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으면서 오늘 본문 제일 마지막 부분의 말씀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9장 30절, 3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 /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체험한 맹인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도저히 침묵할 수 없는 감격이 그들 가슴 속에서 솟아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소문을 퍼뜨려서 결국 온 땅에 이 놀라운 기적이야기가 알려지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이 맹인들은 예수님의 명령을 따른 사람인가? 예수님의 명령을 어긴 사람인가? 우리에겐 딜레마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 수 있는 결론이 있습니다. 이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명령은 어겼지만 결과는 예수님을 자랑하며 예수님을 따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명령은 따르지 않았는데 그 분을 따른 사람... 참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록 두 맹인은 예수님의 명령을 어겼지만, 누구도 어디에서도 그들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온 땅에 퍼진 것은 ‘예수의 소문’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권능이었습니다. 결국 복음이 세상에 전파되어지고 하나님의 역사가 알려지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맹인들이 경험한 것은 치유의 기적이지만 우리가 발견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이라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잘 먹고 건강하고 가족이 행복한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 복음의 역사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기 위해 예수님앞에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기도를 하고 우리의 삶의 문제를 맡겨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해결하시고 완전하게 은혜를 주실 것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 나라 선포, 천국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 삶의 회복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가 경험한 가장 큰 도우심이 바로 천국백성이 된 것이라는 사실에 감격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