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저녁이 가까워지면
해는 산을 넘으며 환호합니다.
그 울림은 한참이나 하늘을 채웁니다.
해가 환호하면
저는 화답하고 싶습니다.
종일 모아온 함성으로
자신 있게 답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생각은 계곡 물 같아
맑고 차갑지만
손에 잡을 수 없고
쉽게 더러워집니다.
차라리 활활 흘러
마음을 깨끗이 하면 좋겠습니다.
저녁이 가까워지면
해가 산을 넘으며 환호합니다.
맑고 차가운 함성으로
자신 있게 답하겠습니다.
-
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던 겨울 저녁, 아버지는 “신하루”라는 자신 이름의 뜻을 말씀해주셨다. 노을을 볼 때, 오늘 하루를 후회 없이 살았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차가운 창문 너머 해가 지고 있었고 그 대화는 내 마음 깊숙한 곳에 가라앉았다. 열심히 살고 싶은 지금, 아버지와의 대화가 떠오른다.
<내 친구들은 왜 친절할까?>
거울만 보던 저는 당신도 일그러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웃음, 가면으로는 닮을 수 없더군요.
당신은 뜨거운 다리미로 마음을 폈던 것입니다.
저도 마음을 반듯이 하고 싶습니다.
<안산 鞍山 >
아버지는 세상 전부를
뚜벅뚜벅 스치셨다.
그리고
땅이 하늘에 뿌리내리며
낙엽이 파도치는 곳에서
자신을 흩으라 하셨다
아버지는 세상 전부를
생각에 담그셨다.
그리고
가라앉은 것들을
나에게 주셨다.
아버지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리고 제 마음에 오세요.
저의 마음을 가을 안산으로 가꾸겠습니다.
-
2024년 11월 16일 아버지 어머니와 안산에 다녀왔다.
<권력자는 꿈을 가져야 한다>
20241207
꿈이 없는 정권은 설 수 없다. 고려의 무신정권이 그 예다. 무신들은 문벌 귀족들의 폐단에 반발해 1170년 무신정변을 일으켰고, 정권을 잡았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꿈 즉 반란을 통해 자신들이 이루고 싶은 나라에 대한 계획이 없었다. 정변 후, 무신들은 권력을 잡으려고 서로 싸웠다. 5번째 집권자 최충헌 때가 돼서야 봉사 10조라는 사회 개혁안이 제시되는데 이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무신들은 문벌 귀족들이 했던 농민 수탈을 그대로 일삼고 이는 농민들의 반란으로 이어진다. 이후 무신정권은 몽골의 침략에 무너지며, 이 과정에서 수많은 백성이 죽는다.
무신정권과 다르게 조선을 건국한 신진사대부들에게는 성리학이라는 꿈이 있었다. 권력을 잡고, 그 권력으로 만들고 싶은 나라가 있었다. 꿈을 품은 조선의 시작은 무신정권의 시작과 달랐고, 그 꿈은 500년 동안 나라를 지탱했다.
권력자에게는 욕망과 욕구를 넘어서는 꿈이 있어야 한다. 권력, 부, 명예, 나와 내 가족의 평안. 이런 욕구만을 따를 때 정권은 설 수 없다. 또한 사회에 해를 끼친다. 집권자가 장난감이 갖고 싶은 8살 아이처럼 행동할 때 국가의 피해는 엄청나다.
그렇다면 어떤 꿈을 가져야 할까? 가장 좋은 꿈들은 가장 알려진 꿈들이기도 하다. 모범 답안들은 선거철마다 거리에 울린다. 국민의 삶을 더 낳게 만드는 것을 우선시하며 자신의 가치관도 펼치겠다는, 멋지고 소신 있는 꿈들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꿈을 품었다면 이제 목숨 걸고 지켜야 한다. 꿈은 시험을 겪는다. 그리고 권력자의 꿈을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은 외부 세력이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욕구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것을 잘 보여준다. 그는 연설을 통해 “자유” “화합” “의료개혁” 등의 꿈을 외쳤다. 하지만 자신의 안위가 걸리자 그는 품었던, 그리고 국민에게 약속했던 꿈을 지키지 않았다. 계엄령을 선포한 순간 윤석열 대통령은 자기 욕구의 허수아비였고 그의 꿈은 미숙한 원망의 포장지였다.
권력자는 꿈을 가져야 하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설 수 없다. 이는 한 사람의 몰락으로 끝나지 않는다. 권력자는 거인과 같아 그가 날뛸 때 국민이 맞고 넘어질 때 국민이 깔린다.
정치인만이 권력자가 아니다. 우리는 가장으로, 형으로, 선배로, 상사로서 권력자이다. 우리가 욕구를 넘어서는 꿈을 품지 않을 때, 꿈을 지키지 못할 때, 우리의 가족과 동료가 고통받는다. “욕을 하지 않겠어” “직분이 낮은 사람을 괴롭히지 않겠어.” “청렴하게 일하겠어.” “가족을 생각하겠어.” 이런 꿈도 좋다. 꿈을 품고 지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