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we preach Christ crucified, unto the Jews a stumblingblock—고린도 전서 1:23. Barnes' Notes on the Bible But we - We who are Christian preachers make Christ crucified the grand subject of our instructions and our aims in contradistinction from the Jew and the Greek. They seek, the one miracles, the other wisdom, we glory only in the cross. Christ crucified - The word Christ, the anointed, is the same as the Hebrew name Messiah. The emphasis in this expression is on the word "crucified." The Jews would make the Messiah whom they expected no less an object of glorifying than the apostles, but they spurned the doctrine that he was to be crucified. Yet in that the apostles boasted; proclaiming him crucified, or "having been crucified" as the only hope of man. This must mean more than that Christ was distinguished for moral worth, more than that he died as a martyr; because if that were all, no reason could be given why the cross should be made so prominent an object. It must mean that Christ was crucified for the sins of people, as an atoning sacrifice in the place of sinners. "We proclaim a crucified. Messiah as the only redeemer of lost people." To the Jews a stumbling-block - The word "stumbling-block" (σκάνδαλον skandalon) means properly anything in the way over which one may fall; then anything that gives offence, or that causes one to fall into sin. Here it means that to the Jews, the doctrine that the Messiah was to be crucified gave great offence; excited, irritated, and exasperated them; that they could not endure the doctrine, and treated it with scorn. Compare the Romans 9:33 note; 1 Peter 2:8 note. It is well known that to the Jews no doctrine was more offensive than this, that the Messiah was to be put to death, and that there was to be salvation in no other way. It was so in the times of the apostles, and it has been so since. They have, therefore, usually called the Lord Jesus, by way of derision, "תלוי Tolwiy, the man that was hanged," that is, on a cross; and Christians they have usually denominated, for the same reason, צבדי תלוי 'Abday Tolwiy, servants of the man that was hanged." The reasons of this feeling are obvious: (1) They had looked for a magnificent temporal prince; but the doctrine that their Messiah was crucified, dashed all their expectations. And they regarded it with contempt and scorn, just in proportion as their hopes had been elevated, and these high expectations cherished. (2) they had the common feelings of all people, the native feelings of pride, and self-righteousness, by which they rejected the doctrine that we are dependent for salvation on one who was crucified. (3) they regarded Jesus as one given over by God for an enormous attempt at imposition, as having been justly put to death; and the object of the curse of the Almighty. Isaiah 53:4, "we did esteem him stricken, smitten of God." They endeavored to convince themselves that he was the object of the divine dereliction and abhorrence; and they, therefore, rejected the doctrine of the cross with the deepest feelings of detestation. 반즈의 성경 주석 그러나 우리 - 그리스도의 전파자인 우리는 유대인과 그리스인과 달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을 주제로 우리가 전해야 할 목표가 되게 한다. 그들은 기적이나, 지혜를 추구한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십자가 안에서만 영광을 얻는다.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 - "기름부음을 받은"이라는 뜻의 '그리스도' 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단어 메시아와 뜻이 같다. 이 표현에서 강조되는 것은 "십자가"라는 단어에 있다 유대인들은 사도들 못지않게 그들이 기대했던 메시아를 영광의 대상으로 삼으려 했지만, 그들은 메시아가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이라는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가 십자가에 못박히심을 선포했으며, 그것이 사람의 유일한 희망이 되었다고 자랑하였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도덕적인 교훈을 위해 구별되었다는 것이나, 또는 순교자로서 죽음 이상을 의미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전부라면 십자가가 왜 그렇게 탁월한 명분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죄인을 위한 속죄 제물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선포한다. 메시아는 잃어버린 사람들의 유일한 구원자이다." 유대인들에게는 장애물 - "장애물"이라는 단어는 사람이 넘어질 수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불쾌감을 주거나 죄에 빠지게 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그것은 유대인들에게 메시아가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이라는 교리가 큰 불쾌감을 주었고, 그들을 흥분 시키고 화나게 했으며, 그 교리를 견디지 못하고 경멸로 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로마서 9장 33절 , 베드로전서 1장 2장 8절의 주석을 비교하라. 유대인들에게는 이보다 더 모욕적인 교리는 없었으나, 메시아가 죽음에 처해야 했으며,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구원이 없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사도 시대에도 그랬고, 그 이후로도 그랬다. 그러므로 그들은 보통 조롱의 표시로 십자가에 매달린 주 예수와 같은 사람을 'תלוי, 톨비'라 불렀다. 또한 기독교인들을 보통 같은 이유로 교수형을 당한 사람의 종인 아브데이 톨비라고 명명했다 이러한 감정적 조롱의 이유는 명백하다: (1) 그들은 메시아를 웅장한 세속적 왕자로 기대했으므로, 메시아가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교리는 그들의 모든 기대를 저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높은 기대가 소중히 여겨졌던 것과 꼭 같이 비례하여 경멸과 조롱으로 그것을 받아들였다. (2) 그들의 모든 공통된 감정에는, 자존심과 독선이 있었으므로,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에게 구원이 있다는 교리를 그들은 거부했다. (3) 그들은 예수를 하나님에 의해 넘겨진 처벌의 대상으로 여겼다. 그들은 예수가이 엄청난 죄의 결과로 인해, 정당하게 사형에 처해진 것으로 여겼다. 그리고 전능하신 분의 저주의 대상으로 여겼다. 이사야 53장 4절,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라는 예언에 따라, 그들은 그가 신성한 유기와 혐오의 대상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그들은 매우 깊은 혐오감으로 십자가 교리를 거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