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 정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단편소설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제정 러시아 시대입니다.
시청의 서기가 잘못해서 시장의 장화를 밟았습니다.
그는 즉각 사과를 했지만 시장은 누군가와
열을 올리며 토론 중이어서 그를 보지 못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그는
"시장이 나를 용서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되면 나는 목이 달아나고
그럼 가족들은 어떻게 되나?"하는 걱정 끝에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다음날 시장을 찾아가 잘못을 빌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시장은 그를 본 척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아마 나를 용서하지 않을 모양이구나."
다음 날 그는 다시 시장을 찾아가 애원을 했습니다.
"한번만 봐 주십시요.
모르고 그랬습니다.
저는 처자식이 있는 몸입니다."
시장은 화가 났습니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매일 찾아와
알지도 못하는 소리를 늘어 놓는게 아닌가?
"이 녀석 너 미친 놈 아니냐?"고 소리쳤습니다.
동서기는 절망적인 상태가 되었습니다.
"시장은 끝까지 나를 용서하지 않는구나."
다음 날 아침 아내가 그를 깨우려고 흔들었을 때
그는 이미 빳빳한 시체로 변해 있었습니다.
사실 인간이 하는 근심 걱정 중 8,90%가
다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기 스스로 근심의 구렁텅이를 파고
그 속에 빠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는 걱정을 분석해 보면
우리의 지나친 염려를 알 수가 있습니다.
40%는 없는 일을 걱정하고,
30%는 지난 일을 걱정하고,
12%는 내가 걱정 안 해도 될 일을 걱정하고,
10%는 불확실한 일을 걱정하는 것이고,
8%만이 어쩔 수 없는 걱정이라는 것입니다.
걱정도 하면 할수록 눈덩이처럼 더 커진다고 합니다
"콜로라도주 한 봉우리에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 나무는 400여 년간 열네 번이나 벼락을 맞아도
쓰러지지 않았으며 수많은 눈사태와 폭풍우를
이겨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나무가 쓰러진 까닭은 바로 딱정벌레 떼가
나무속을 파먹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랜 세월에도 시들지 않고 폭풍과 벼락을 견뎌온
그 거목이, 작은 벌레들에게 쓰러지고 만 것입니다.
태산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걸려 넘어지는 것도 작은 돌부리입니다.
큰일만이 일이 아닙니다.
우리도 인생의 폭풍우와 눈사태와 벼락은
이겨내면서도,
'근심'이라는 벌레에게 우리의 심장을
갉아 먹히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만큼 걱정과 근심은 나를 파괴합니다
우리는 너무 쓸데없는 잡다한 근심을 많이 합니다.
이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오죽하면 티베트 속담에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말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애써도 이 근심을 없애기는
정말 힘든 일입니다.
더욱이 잦은 지진에 원전재해까지 겹친
일본의 경우라면 이 걱정을 떨치기란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닐지 모릅니다.
일본인들의 불면증 환자들 가운데 68퍼센트가
"일본이 물에 가라앉으면 어쩌지?"
"지진이 나면" "원전이 폭팔하면 어쩌지?"하는
걱정으로 인한 환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 오지 않은 것을
굳이 가불해서 걱정 해야 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나온 것 같습니다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