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성, 집안일(세탁) 22-3, 자기 옷이라 그런지
사무실에서 다른 일을 보는데, 이보성 씨가 슬쩍 옆으로 다가온다.
파티션에 한 팔을 걸치고 컴퓨터에 시선을 둔다.
뭘 하는지 궁금해 하는 것 같다.
마침 할 일이 있는데 이때다 싶어 이보성 씨에게 권한다.
“보성 씨, 지금 옷장 정리할까요? 안 그래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지금 어때요? 필요한 것 도와드릴게요.”
“옷장? 해야지. 해요, 쌤. 옷장 정리해요?”
싫은 기색을 보이거나 하겠다고 하더라도 영 내켜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얼른 그러겠다고 대답한다.
마침 무료한 참에 생긴 일이 반가운 모양이다.
더군다나 원래 자기 일인데 도와주겠다고 하니, 이보성 씨로서는 딱히 마다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옷장 열어 볼래요?”
“옷장이요? 읏챠!”
“서랍까지 다 열어 주세요.”
“여기요? 여기? 맞죠? 잘하네.”
이보성 씨가 옷장을 연다.
정리할 당시에는 순서에 맞춰 잘 걸려 있었으나 언젠가부터 사이사이 엉뚱한 옷이 걸려
배열이 뒤죽박죽인 행거와 옷이 너무 많아 제대로 닫히지 않는 서랍이 눈에 들어온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나 싶어 멍하니 서 있다가 이보성 씨와 눈이 마주친다.
이보성 씨도 무안했는지 마주한 눈을 피하지 않고 우리 둘 다 가만히 있을 따름이다.
“와, 이거 어디서부터 정리하죠? 막막하네요.”
“아니, 뭐라고요? 막막하다고요? 이거 안 되겠네, 정말. 큰일이네. 으이구.”
“일단 다 꺼내 볼까요? 다 꺼내고 비운 다음에 하나씩 해 봅시다.”
이보성 씨가 옷장 안 행거에서 옷걸이에 걸린 옷을 하나하나 꺼내 바닥으로 옮긴다.
어차피 다시 걸 테니 꺼낼 때는 한 번에 여러 벌을 들어다 날라도 괜찮을 것 같다고 제안한다.
‘읏챠, 아이구’와 같은 추임새를 연발하며 열심이다.
“정리해서 넣기 전에 한 번 닦아야겠어요. 보성 씨도 여기 먼지 보이죠?”
“쌤, 더러워요. ‘먼지’ 해 보세요. 먼, 지.”
“먼, 지.”
“아니, 먼지 말고 먼지. 먼, 지.”
암만 들어도 같은 발음인 것 같은데, 자꾸만 다시 해 보라며 재촉한다.
재미있어 하며 자기 일에 열심인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 이보성 씨에게 호응하며 따라해 본다.
“걸레 하나만 빨아서 가져올래요? 세탁실 알죠? 세탁실에 청소용 걸레 있을 거예요. 하나만 부탁해요.”
“네! 알겠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보성 씨가 후다닥 뛰어 나간다.
따라가 볼까 싶었는데, 부탁했으니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다른 데 관심 두지 않고 곧장 다녀왔는지 금세 돌아온다.
이보성 씨 손에 청소용 걸레가 들려있다.
물에 적셔져 있던 건지 이보성 씨가 직접 빨았는지 모르지만 적당한 물기를 머금은 걸레다.
“오, 딱 좋아요. 이거면 되겠는데요? 그럼 이제 옷장 닦아 줄래요?
여기 바닥면에 먼지가 많이 쌓여 있으니까 걸레로 깨끗하게 닦아 주세요. 할 수 있겠죠?”
“네!”
한 곳을 집중해서 닦기는 하는데, 잘 닿지 않은 쪽도 챙기면 좋겠다고 간단히 권하는 것만으로 수월하게 한다.
완벽하다.
“쌤, 됐어요? 다했어요. 가요?”
“와! 여기는 다 됐네요. 그럼 제가 옷을 하나씩 걸어 넣을 테니까, 보성 씨는 이것도 마저 닦아 주실래요?”
이보성 씨에게 권하며 운동화 상자를 가리킨다.
마라톤동호회 운동에 나갈 때 신겠다고 아껴 둔 새 운동화 박스인데, 그새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다.
“네!”
이번에는 방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아 운동화 상자를 닦는다.
두꺼운 종이 상자라 걸레질 몇 번 한다고 구멍이 날 것 같지는 않았지만,
혹시 그럴까 싶을 정도로 힘을 주어 박박 닦는다.
상징적인 순간인 것 같아 굳이 말리지 않고 다른 일을 한다.
“쌤, 다 했는데요? 이거 해요? 또 해요?”
이쪽은 아직 정리가 한창인데, 저쪽은 다 끝난 모양이다.
이번에는 이보성 씨가 먼저 다른 일을 찾아 묻는다.
부탁한다고 말하자 이보성 씨가 칫솔 상자며 잡동사니를 걸레로 박박 닦는다.
더 이상 먼지가 보이지 않을 만큼 이보성 씨 손길이 지나간 자리에 반짝반짝 윤이 흐른다.
얼굴이 비치겠다고 하면 과장일까?
그동안 계절이 바뀌고 옷장 정리할 때마다 잘 안 입는 옷, 낡아서 입지 못하는 옷,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옷을 꾸준히 정리해서 이번에는 솎아낼 게 많지 않다.
이보성 씨와 고심 끝에 앞으로도 손이 가지 않을 것 같은 옷 몇 벌을 추려 종량제 봉투에 담는다.
옷장 정리가 끝나고 청소기까지 돌리고 나니 얼추 두 시간이나 지났다.
어느 때보다 이보성 씨가 많은 몫을 감당해 수월했다.
자기 옷이라 그런지 열심히 정리하니, 돕는 사람까지 괜히 뿌듯하다.
청소를 끝낸 오후, 이보성 씨 집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아늑하게 느껴진다.
2022년 3월 23일 수요일, 정진호
옷장 정리하고 청소하는 모습에 봄이구나 싶었습니다. 적극적으로 정리와 청소를 도맡아 척척 해내는 모습이 반가웠고 고마웠습니다. 다른 때, 어떤 일이든 이렇게 도왔기에 이보성 씨의 마음과 행동이 비로소 오늘에 다다랐나 싶었습니다. 봄이네요. 덕분에 저도 옷장 정리하고 싶어집니다. 박현진
계절이 바뀌어 옷장을 정리하고 청소하니 감사합니다. 이보성 씨가 자기 옷장 자기 일로 여기며 신나게 감당하시니 감사, 감사합니다. 곁에서 ‘돕는’ 정진호 선생님도 덩달아 신이 난 듯! 두 시간이 훌쩍, 놀라워요. 월평
이보성, 집안일(세탁) 22-1, 따로 하면 어떨까요?
이보성, 집안일(세탁) 22-2, 보성 씨, 살림 잘하네요
첫댓글 걸레를 가지러 후다닥 뛰어갔다 오는 이보성 씨의 발걸음에서 느껴져요.
옷장 정리를 자신의 몫으로 여기고 감당하고 있구나 하는 것이요.
청소기를 밀고, 걸레를 닦는 이보성 씨, 즐거워 보입니다.
이보성 씨가 자신의 몫으로 여기고 감당함은 박현진 선생님 말씀처럼 정진호 선생님이 "다른 때, 어떤 일이든 이렇게 도왔기에"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옷장정리 기록을 읽으니 임우석 선생님께서 작성한 정석명 씨 지원 계획의 한 부분이 떠올랐어요. 올해 개인별 지원 계획서를 읽으며 잘 적용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부분입니다.
"SRV 이론에 따르면 당사자의 인상(이미지)를 좋게 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합니다. 당사자의 인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의복이라 생각하고 정석명 씨에게 어울리는 옷을 갖춰 입도록 도울 생각입니다.”
때마다 이보성 씨가 직접 옷장을 정리하고 정진호 선생님이 곁에서 거들었기 때문일까요, 이보성 씨가 입는 옷이 참 세련되다고 느껴요. 분위기와 나이에 잘 맞는 느낌. 당사자의 인상을 좋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진호 선생님은 이미 그렇게 돕고 계셨군요. 저도 제가 지원하는 입주자가 분위기와 나이에 잘 맞는 옷을 갖춰입으실 수 있도록 잘 돕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