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도 이야기다. 나는 그때 대양선박 소속으로 포항제철 석탄 전용선인 프로스퍼리티호
1등 기관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 당시 포철 원료 전용선은 대양선박 소속의 대양 프로스퍼리티,
대양 디스커버리 등 4척과 대한해운의 해당화호 등 7~8척이 있었다.
저 유명한 '해당화호'는 80년 여름에 남태평양에서 태풍을 만나 깊고 깊은 필리핀 해구에 침몰하고 말았다.
악명 높은 호주 부두노무자들의 스트라이크로 원료 공급에 차질이 있을 때는 부정기선이 투입되기도 했다.
내가 승선했던 프로스퍼리티호는 주로 호주 동부에 있는 울런공, 포트 켐블라, 뉴캐슬, 글레이드스톤
등지에서 석탄을 싣고 왔다. 한 항차가 빠르면 한 달, 호주에서 대기 기간이 길어지면 45일 정도 걸렸다.
항로가 좋고 정기선이다보니 보통 선원들은 한번 승선하면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앗다.
장기간 승선을 하다보니 결혼한 선원들은 한푼이라도 길바닥에 헛돈을 허비하지 않으려고
포항에 셋방을 얻어 마누라를 불려올렸다.
장기 승선으로 선원들의 분위기가 좋다보니 항해 중에는 하루 일과가 끝나면 저녁마다 맥주내기
탁구시합을해서 술판이 벌어졋다. 부식으로는 안주를 감당할 수 없어 출항할 때 저마다 형편대로 안주를 가져왔다.
양미리, 과메기, 마른멸치, 건오징어, 노가리, 쥐포, 강냉이박산 등등.
면세맥주라 맥주값은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았다. 휴게실에는 놋쇠 종이 하나 매달려 있었는데
누구나 기분 좋으면 그 종을 칠 수 있엇다. 종을 치는 사람은 맥주 한 박스 낸다는 뜻이엇다.
매일 밤 맥주를 마시며 바닥에 흘리다보니 바퀴벌레도 매일 밤 맥주파티를 했다.
아침에 갑판원이 청소를 하러가면 깡통에 남은 맥주를 마시고 취한 바퀴벌레들이 대취해서 도망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여섯 개의 발로도 중심을 못 잡고 비틀걸음 치며 '라 쿠카라차~ 라 쿠카라차~ (La cockroach) 춤을 추었다.
프로스퍼리티호에서 제일 복장 편한 놈들은 바로 그놈들이엇다. 매일 밤 공짜 술에 취해 새벽까지 비칠거려도
아무도 나무라는 사람이 없었다.
포항에 입항하면 한 항차에 공식적으로 허가된 휴대품은 커피 한 통, 3kg짜리 꿀 한통이었다.
물론 요령 좋은 고참선원들은 통선 선장과 짜고 양주 한 병 정도는 적당히 빼돌렸다.
포항 통선장에는 부산집, 포항집, 강릉집 세 곳의 술집이 있었는데 선원대기소였다.
날씨가 나빠 통선 운항이 중단되면 술집 마담들이 제일 좋아햇다.
뚱보 부산집 마담은 "바람아, 불어라. 석 달 열흘만 불어라!" 호박같이 펑퍼짐한 엉덩이를 흔들며 너스레를 떨었다.
요령 있는 선원들은 매 항차 가지고 온 휴대품을 이 술집 마담한테 맡기면 알아서 처분해주엇다.
그런데 포항에 살림을 차린 지 얼마 안되는 갑판원 마누라가 한 푼이라도 돈을 더 만들어보겟다고
신랑이 가져온 꿀을 들고 나갔다. 주택가를 돌아다니며 "꿀 사소오!"하고 소리질렀다.
그 소리를 듣고 어느 집에서 젊은 여자가 나왔다. "새댁, 그 꿀 진짜요!"하고 물엇다.
그러자 갑판원 마누라는 꿀 팔 욕심으로 "우리 실랑이 포철 배를 타는데 호주에서 갖고 온기라 진짜니더!"하며
포철 전용선 선원이 큰 벼슬이나 되는 것처럼 세관원 마누라한테 자랑을 했다.
젊은 여자는 신출내기 세관원 마누라엿다. 그 세관원은 승감으로 배에 올라오면 신문지에 바늘 구멍을 내고
선원들의 동태를 엿보는 악명 높은 친구엿다. 통선이 올 때 당직 선원이 일부러 "탁구 한 게임 합시다!"하고 유혹해도
절대 넘어가지 않앗다. 그 세관원에 그 마누라엿다.
꿀은 공식적으로 허가된 휴대품이엇지만 집에서 소비해야지 시중에서 매매하면 불법이엇다.
그 세관원은 큰 밀수꾼이라도 잡은 듯이 세관에 출근해서 의기양양 떠들었다.
그 사건 이후 포철 전용선 선원들의 공식 휴대품은 커피 한 통으로 줄어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