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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범회장님의 카톡에서]
️요양원 풍경!
며칠전 지인이 보낸 요양원 경험실태를 읽고 요즘 어디서 영면해야 하나!
걱정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가 해서 올립니다.
제가 지난2022년 9월과 10월에 걸쳐 요양원에서 40여일을 보내고 와서
요양원의 풍경을 누구보다 깊숙히 알고 있읍니다
한 마디로
'요양원 생활이 어떠하냐?'는 질문에 나는 '아무리 고달프다고 해도
요양원은 가지 않는게 좋다' 라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읍니다.
다시 표현 하자면 입소한 노인의 자식들이 원하는 바 대로
'서서히 죽어가도록 하는곳'이
바로 요양원의 실태입니다.
저는 짐도 있고 컴퓨터도 있어 처음부터 1인실에 입소
, 첫날부터 군사훈련 보다도 엄격한 통제속에 생활 기상이 5시30분.
조식이 6시 30분.
(조식도 겨우먹고 죽지않을 정도의 카로리. 3끼가 거의 똑 같다.)
간식이 한번 나오는데 빵 반 조각?.
운동이 너무나 중요한데 겨우 허락 된 장소가 거주하는 곳의 복도 뿐..,
제가 3층에 거주 하였는데 엘베를 비밀번호로 잠궈 놓아서 옥상이나 1층에 있는 운동실을 사용할 수가 없고.,
겨우 운동한다는 것이 복도끝에서 끝까지 왔다 갔다 하는것
그러니 종일 시간대부분을 침대에서 누위 지내는 수 밖에 없으니.,
몸은 자연히 더 악화 될 수 밖에 없도록 인위적으로 만들어 가는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였읍니다.
한번은 갓 입소한 노인이 제 방을 찾아와 살려 달라고 애원 하기에 무슨 일인가 물었더니...?
돈도. 폰도..카드도 없이 오늘 아들이 강제로 입소 시키는 바람에
몸은 아퍼서 죽겠으니 전화 좀 걸어 달라는 것이었읍니다.
다행히 며느리 전화번호를 알어와 제가 제폰으로 **분이 죽게 생겼으니 도와달라고 전화를 했는데....^
집안이 난리가 나고 원장한테 까지 저한테 전화를 왜 했냐고 하길래
..^ 사람이 살려 달라는데 전화 한통화 한것이 무슨 잘못인가 반문하였더니..,
그 이후부터는 제방 출입을 통제 하고..
CCTV로 보고 있다가 누가 들어오면 당장 요원이 달려와서 나가 달라고 요청하는등..
통제가 너무나 지나쳐
제가 노인들의 권리보장 문서를 가져와서 원장과 한바탕 하고서^^
여기는 사람이 사는곳이 아니라 철저한 통제속에 가둬놓은 상태로
최소한의 음식으로 서서히 죽어가도록 유도하는 곳이란 결론에 도달.
더 이상 내삶을 맡길 곳이 아님을 느끼고 40일만에 뛰쳐 나왔읍니다.
대부분 자식이 있어도 연락도 면회도.전화도 오지않는 외로운 삶의 현장속에 있다가 나오니
이렇듯 내맘대로 할수 있다는 것 하나만 이라도 충분히 사는 보람을 찾고 있다고 확신 합니다.
참고 하시라고 긴문자로 보냈읍니다.
*추신
요양원: 다시 생각 하기도 싫지만 한가지 정보를 말씀드리겠어요
통상 들어올 때는 자식하고 같이 와서 계약서를 작성합니다.
이때 통상 자식들이 대필한다며 계약을 하는데..
여기에 중요한 문구가 있읍니다.
즉 계약한 자식의 허락없이는 요양원 퇴소를 못하게 규정해 놓고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퇴소를 못하게 규정해놨다는 것
꼼짝없이 오고 가지도 못하게 계약을 했으니..
나중에 나가고 싶어도 나갈수가 없다는거 이거 명심해야 합니다.
계약시는 본인도 입회하에 이 항목을 삭제해야 만약 나오고 싶을때 나올 수가 있다는 것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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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의 국회의원
37% 줄이기 💙
멕시코의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좌파이다
좌파들은 세금 더 걷고
예산 더 쓰자는 족속이다
그런데
본인 월급 60% 삭감하고
대통령실 예산을
6분의 1수준으로 낮췄다
정부 조직도 줄이고
공직자 연봉도 깍았다
대신 최저임금은
20% 인상 한다고 한다
결정적인 것은
인구 1억2천만명의
상원 128석을 96석으로
하원 500석을 300석으로
상하원을 합쳐 37%
줄이겠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지지율은
70%에 이른다
이탈리아에서도
2020년 국민투표의
70% 찬성으로
국회의원석을
945석에서 345석을
줄였다
대한민국 역시
국회의원 300석을
200석으로 줄일
절호의 기회이다
대한민국 국회는
자신들의 보수를
1인당 GDP의 5배 수준으로
올렸다고 한다
반부패법은 김영란법의
대상에서 국회의원 만
쏙 뺀 부패집단?이 아닐까?
지금까지
아무도 하지않던
민주 노총과의 전쟁은
물론
국회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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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비타민🍎
따뜻해본 적
없는 마음은
따뜻함을
나눠줄 수도,
이야기해줄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자신의 것만을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그 무엇이
있어
상대방에게 줄 수
있는가 를 봅니다.
~~~🌷🌷🌷🌷🌷~~~
늘 건강과 행운이 함께 하시길^^
(딸기)
결명자차를 하루 2잔씩 매일 마시면 무슨 일이 생길까? [한의학박사 김순렬]
https://www.youtube.com/watch?v=Sr-E3YugD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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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할 길
멈추지 마라💕
"비가와도
가야할 곳이 있는 새는
하늘을 날고
"눈이 쌓여도
가야할 곳이 있는 사슴은
산을 오른다.
"길이 멀어도
가야할 곳이 있는 달팽이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길이 막혀도
가야할 곳이 있는 연어는
물결을 거슬러 오른다.
"인생이란 작은 배
그대, 가야할 곳이 있다면
태풍이 불어도 거친 바다로
힘차게 나아 가세요.
오늘 그리고
이 시간을 사랑하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오늘 하루도 스치는 인연의
소중함을 새기면서
멋진 하루로 출발하시고 건강하세요~~♡
(하트)청춘과 노화 는
쉬면 쉴수록 늙는다고
함니다. 모임이라도 열심히나갑시다.
받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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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말 할 수 있다♥
나는 결코 친일파가 아닙니다.
이제는 우리 국력이 일본을 능가한 시점이 되엇고,
그렇지 안타 할 지라도 사실을 사실대로 보아야
자유 대한민국을 역사속에 바로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국수적인 아집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엄정한 중용심으로 마음을 열고, 묵은 원한으로 원망과 저주만 쌓지말고 대승적 차원에서 지일극일(知日克日)하며, 진정한 선진 조국 대한민국 건설의 길을 모색해 나아 가고자 하는 염원에서 이 글을 올립니다.
#일본이 우리조국 조선왕국을 침략하고 못된 짓을 저질던 것을 지우고 그들을 미화하고자 하는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살이 국재관계란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며 오늘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된다,,
는 말을 사실이라
받아드리며 현대를
살아 가는 우리들
에게 좋은 미래가
설정되기를 재삼 기대하는 것입니다.
아래 글은 길지만, 고난의 길을 걸어 온 우리 민족의 여정을 총체적으로 통찰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세상을 넓은 시야에서 보도록 돕는 글이라 생각합니다.
♥<노예 제도와 한반도 수난 역사적 고찰>♥
1800년대 말 콩고가 벨기에의 식민지였을 때 있었던 실화입니다.
벨기에 식민지 시작 전에 2천만 명 이었던 콩고 인구가 식민지가 끝날 때 850만 명으로 줄었습니다.
전 인구의 60% 이상인 1,250만 명의 인구가 죽어야만 했던 이유는 벨기에 사람들이 양 손목을 잘라 버렸기 때문에 밥을 먹을 수가 없어 굶어 죽었습니다.
벨기에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많은 콩고 사람들의 손목을 잘랐을까요?
콩고에서 고무가 많이 났는데 벨기에 사람들은 콩고 사람을 노예로 부리면서 나무에 흠집을 내고 고무 채취를 시켰습니다. 고무 채취 양이 목표를 채우지 못하면 채찍으로 마구 때렸습니다.
채찍에 맞기 싫어서 콩고 사람들은 나무를 잘라서 목표했던 고무 채취양을 쉽게 늘렸습니다.
그런데, 고무 채취 양이 늘어서 좋기는 한데 벨기에 사람 눈에 숲 속의 고무 나무가 마구 잘라 없어져 버려서 조만간 고무 채취양이 대폭 쪼그라 들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그래서, 고무 나무를 자르는 콩고인들의 양 손목을 잘라 버리면서 그 아이들의 손목까지 다 잘랐습니다.
이 세상에서 식민지가 가장 많았기에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이 인도에서 목화를 재배하고 전 세계에 제일 많이 수출해서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습니다.
물론 인도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며 목화를 재배했고, 방적기로 실을 짜고 베틀로 면제품을 만들었지요.
영국이 인도에서 철수 할 때 베를 짜던 기계는 다 부수고 인도 사람들의 양 손목을 다 잘랐습니다. 식민지 때 노예 생활하면서 영국인에게 배운 기술로 면제품 만들어 수출하고 돈을 버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였지요.
그 당시에 실크와 양모 외 저렴하고 착용감이 좋은 천은 없었습니다. 면제품은 지금의 반도체처럼 최신 기술이고 첨단 산업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문익점이 붓뚜껑에 목화씨를 숨겨 밀수 했겠습니까.
1,250만 명을 죽인 벨기에 보다는 너그럽지만 인도인 면직공의 양 손목을 자른 영국도 잔혹하기는 그지 없습니다.
#식민지 착취를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 착취라고 부를 수 있고, 식민지 사람들 학대하고 잔인하게 죽이려면 이 정도는 해야겠지요. 식민지 착취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벨기에와 영국이 보여줍니다.
♥일본은 조선에서 착취해 갈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석유도 안 나고, 고무도 없고, 식량은 모자라서 굶어 죽는 조센진이 널려 있었습니다. 도박에 알콜 중독에 딸자식을 팔아 먹는 일은 다반사 였습니다.
산이란 산의 나무는 다 패서 난방용 땔깜과 밥 할 때의 불쏘시개로 사용했기 때문에 100여 년 전 사진에 조선의 산은 벌건 민둥산 이었습니다.
산에 나무가 없기에 비가 오면 나무 뿌리가 물을 머금지 못해 홍수가 나고, 산과 언덕의 황토가 하천에 쓸려 와서 강 바닥이 올라갔습니다. 조금만 비가 와도 넘쳐서 홍수에 사망자가 발생하고 굶어 죽는 일은 다반사 였습니다.
큰 비가 와도 굶어야 했고, 가뭄이 와도 굶어 죽었습니다. 치산치수는 간 곳 없고 오로지 농사지을 때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에서 무식하고, 못나고, 못되 처먹은 조선인에게 가난과 굶주림은 피할 수 없는 생지옥 이었습니다.
♥식민지 조선에 수 억 그루의 나무를 심은 것은 조센진이 아니라 일본인 이었습니다.
하수도 시설이 없어서 음식물 쓰레기는 담 밑에 구덩이를 파고 그냥 버렸기에 여름이 오면 파리가 들끓고 썩은 냄새가 온 마을에 퍼졌고, 태풍과 장마가 들면 썩은 음식물 국물이 우물로 흘러 들어 수인성 전염병이 창궐하여 떼죽음을 당하면서 죽었지만, 미개한 한방에서는 치료약도 없었고 병들어 죽는 이유도 몰랐습니다.
그냥 "역병이 돌았다!"입니다.
도로는 좁고 포장은 되어 있지 않았기에 비만 오면 뻘로 변해 신발이 푹푹 빠져서 마차도 못 다니고, 가마는 바퀴가 없습니다.
♥조선시대 가마에 바퀴 달려 있는 모습 보셨나요? 착취를 통해 잘 먹어서 무거운 양반을 나르면서 두 명 내지 네 명이 손으로 들고 날랐습니다. 바퀴가 있으면 편하게 끌고 다닐 수 있는 것을 알지만 도로는 도로가 아니었
습니다.
@그 당시 중국과 일본에도 손수레에 바퀴를 달고 사람을 날랐습니다.
양반 6-10% 중인 20% 상놈과 노비가 70%의 인구 구성이었던 조센진은 일자 무식이 전 인구의 70%가 넘었습니다.
훈민정음을 창시한 위대한 세종대왕은 어디로 갔나요?
1443년에 훈민정음을 창제했지만 상놈과 노비에게 가르쳤던 적이 없기에 사용되지 못했습니다. 양반가의 아녀자가 배운 정도였지요. 양반은 죽어도 천박한 언문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인이 무식한 조센진에게 한글을 보급했습니다. 양반은 서당에 가서 한자를 배웠지 한글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상놈과 노비는 서당 근처도 가 본 적이 없구요.
조선반도 전역에 국민학교를 만든 일본인 안 가겠다는 조센진의 손목을 이끌고 국민학교에 보내서 한글을 가르쳤습니다.
♥벨기에나 영국과는 달리 일본인은 식민지 조선사람의 손목을 전혀 자르지 않았습니다.
일본인이 조선에 초등학교만 지었나요?
저수지를 만들고, 상하수도를 건설했고, 철도를 놓고, 도로를 닦고, 병원을 짓고, 발전소를 짓고, 공장을 만들었습니다.
♥임진왜란 때도 조선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본군에게 물도 떠주고 밥도 지어주며 적극 협력했습니다. 이씨 조선 왕족과 양반의 가렴주구에 진절머리를 냈던 상놈과 노비는 차라리 일본의 지배가 더 낫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니, 왜군에게 친절했던 조센진의 기록이 남아 있겠지요.
♥1910년 일한 합방이 되기 전 150년 간 조선의 인구는 거의 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불과 35년 식민지 기간 동안 조선인구는 거의 두 배로 늘었습니다. 저수지와 상하수도의 보급, 잘 치료해 주는 의료와 양반의 착취가 없었기에 잘 먹고 잘 살았고, 아이 낳고 키우면 죽지도 않아 인구 증가는 폭발적이었습니다. 당연히 조선인의 평균 수명이 늘어 났지요.
저절로 조선인 평균 수명이 늘어 난 것이 아니라 일본인이 조선인의 병을 고쳐주고 수명을 늘려 주었습니다.
♥일본이 조선에 이렇게 투자한 것은 나중에 식민지에서 착취하기 위한 선투자라구요?
천만에 말씀 만만의 콩떡입니다.
일본은 조선을 일본사람 수준으로 올리고, 류큐왕국이었던 오키나와가 지금의 일본이 된 것처럼 조선을 일본의 일부로 만들려고 했던 것입니다.
#세계 5대 부국이었던 일본과 세계에서 가장 못살았고 무식했던 조선과의 격차는 너무나 컸습니다. 그래서, 조선 사람의 수준을 최대한 빨리 끌어 올리려고 작정했던 것입니다.
벨기에나 영국처럼 식민지 착취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선인들은 35년 간 일본의 지배에 거부감이 거의 없었습니다. 거부감만 없는 것이 아니라 일한합방은 인구 70%인 조선 상놈과 종놈, 노비에게는 축복 중에 축복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조센진 거의 대부분은 조선 독립에 대한 의지가 없었던 것은 물론이구요.
♥그러니, 1945년 8월15일 해방이 된 후 기쁨에 겨워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던 것이 아닙니다. 서울 시청에 걸렸던 일장기가 한 달 동안 아무도 내리지 않았던 것이지요.
조선의 독립을 바라며 독립자금을 댔던 저의 조상은 일본으로 부터 독립하여 양반이 지배하여 상놈과 노비를 착취하는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지요. 일본 때문에 빼앗긴 그 많은 재산을 되찾기 위해서요.
♥이씨 왕족과 양반은 위대한 지도자가 아니라 상놈, 종놈, 노비를 착취하고 조선을 말아 처먹은 당사자입니다. 일본 사람이 착취한 것 보다 양반이 착취한 것은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국사 책에서 이런 내용은 단 한 줄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동방예의지국, 살기 좋은 조선을 나쁜 일본놈이 마구 침략하고 빼앗고 죽였다. 끝!
받아 들이기 싫고, 자존심 상하고, 불편한 진실이지만 일.한.합방은 양반에게는 지독한 불행이었고, 70%의 조선인에게는 축복이었습니다.
성도 없었고 족보도 없었던 상놈과 노비는 글을 배울 기회도 없었고, 양반이 때리면 맞았고, 강간하면 당했고, 죽이면 죽었습니다. 양반으로의 신분상승은 절대 불가였구요.
♥노비종모법을 만들어 조선에 노비를 가장 많이 양산한 왕이 세종대왕입니다. 같은 민족인 조선인의 전 인구 40%까지 노비를 늘렸던 위대한 왕입니다. 천원짜리 지폐에 새겨진 퇴계 이황은 노비가 3백 명이란 설도 있을 정도입니다. 정말로 위대한 인물들입니다.
구한말 고종이 지금의 서울시장인 한성판윤을 44년 동안 2주에 한 번씩 갈아 치우면서 매관매직으로 수 천 명의 양반을 만들어 냈듯이 양반 족보를 사고 팔아 양반의 숫자가 늘기는 했지요.
그런데, 이씨 왕족과 양반이 상놈과 노비에게서 단물을 빨고 있는데 스스로 반상을 없애려고 했겠습니까? 종놈과 노비는 양반의 재산인데 아무 댓가 없이 놔 줄 것 같나요?
한국인 70%는 상놈이고 종놈 노비였는데 일본 사람이 해방시켜줬습니다.
이 정도면 일본 사람에게 고마와 해야 할 부분도 꽤 있지 않을까요?
♥대만 사람들을 만나면 한국 사람들 참 이상하다고 말합니다. 일본이 대만에 해 준 것은 한국에 해 준 것의 1/10도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대만사람들은 일본을 좋아하고 일본인에게 감사합니다.
은인의 등에 칼을 꽂고, 배신의 아이콘이 한국인입니다.
해방 시켜 줬고, 6. 25에서 구해줬고, 우유도 밀가루도 원조해 줬고, 기술을 가르쳐 줬고, 투자해 줬고, 시장을 열어 수출해서 부자로 만들어 준 미국을 배신하는 꼬라지를 보세요.
보기 싫은 곳을 보려고 노력해야 하고, 능력이 안 되기에 못 보는 곳도 공부하며 찾아 봐야 합니다. 보고 싶은 곳만 보면서 국뽕에 취해 반일반미하면 진보가 되고 똑똑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보 천치 병신이 됩니다.
♥저도 어릴 때는 거짓말 가득 찬 국사만 배웠고, 국뽕에 취해 일본을 미워하던 병신이었습니다.
나이 들어 역사를 공부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각도를 달리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을 보게 되었습니다.
벨기에와 영국 정도로 잔혹해야 식민지 착취를 논할 만 합니다. 고의였든 우연 이었건 일본의 지배는 조센진에게 손해보다 이익이 더 많았습니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세계 2위 선진국 일본인으로 일본 여권으로 일본 시스템에서 정직하게 법을 지키며 사는 편이 독립국 류큐국으로 사는 것보다 더 낫습니다.
일본의 일부가 아니라 독립국 류큐국으로 산다면 쿠테타에, 부정부패, 부정선거, 판사와 독재자가 나라를 경영하여 법치가 무너져서 오키나와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가난하고 한심하게 살고 있을 것입니다.
하와이도 마찬가지 입니다.
문자도 없이 미개한 하와이 왕국은 하와이를 근대화 시켜주던 제임스 쿡을 죽이고 껍질을 벗겼습니다. 만약 하와이가 지금 독립국이라면 쿠바처럼 지지리 궁상으로 비참하게 살고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 나라를 만들고 지도자를 뽑아 민주적으로 발전시킬 능력이 없는 민족입니다.
미국의 50번째 주가 되어 모래가 한 톨도 없던 와이키키 해변에 본토에서 모래를 실어 날라 아름다운 비치도 만들어 전세계 관광객을 유혹합니다. 하와이 원주민 능력으로 길을 닦고, 호텔, 쇼핑가, 식당, 골프장, 비치, 크루즈 등 관광시설을 갖출 길이 없습니다.
하와이 왕국이 지금도 존재한다면 왕족이야 풍요롭게 살겠지만, 가렴주구만 당하는 하와이 원주민은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겠지요.
미개한 하와이 원주민은 미국의 교육 의료 복지 시스템의 혜택을 입고 가장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 주는 미국 여권 들고 미국 국민으로 살아 가는 편이 하와이 왕국 신민으로 사는 것보다 수 백배 수 천배 더 좋습니다.
일본과 미국의 도움이 없다면 오키나와도 하와이도 알라스카도 자유를 잃고 가난과 질병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이 세상은 아는 만큼만 보입니다.
알려고 노력하고, 공부하고, 배워야 바보 병신이 되지 않습니다.
일본이 다 잘했고, 착하고, 좋은 면 만 부각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닙니다. 분명히 일본 사람이 조선인에게 잘못을 저지른 부분도 많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나쁜 면만 부각하여 역사가 왜곡되고, 자라 나는 아이들이 외눈박이가 되는 것이 두렵습니다. 왜곡된 역사 교육 때문에 저도 그런 외눈박이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같은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글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여러 면을 다각적으로 보면서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좀 더 현명해 집니다.
♥저는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은 무식하기 짝이 없는 사람입니다.
다만 국가와 민족을 사랑는 지름길은 진실을 찾는 것이지 거짓이 가득 찬 국뽕이 아닙니다.
<한국 근현대사 연구회>
♥《일본인들이 놓고 간 국내 기업들》♥
두산그룹, OB맥주, 하이트맥주, 한화그룹, 해태제과, 동양시멘트, SK그룹, 삼호방직, 신세계백화점, 미도파백ㅇ화점, LG화학, 쌍용그룹, 동국제강, 삼성화재, 제일제당, 대성그룹, 동양제과, 대한조선공사, 동양방직, 한국생사, 한국주택공사, 벽산그룹, 한국전력, 일신방직, 한진중공업, 대한통운, 한진그룹, 대한해운, 동양화재, 해상보험, 메리츠화재해상보험, 중외제약 등
귀속재산 (Vested Property)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금전적, 비금전적 손익계산서가 존재한다. 그 중에서 가장 으뜸이 바로귀속재산:Vested Property 이다.
<귀속재산> 이라는 명칭은 미군정이 지은 것이다. 일본이 조선에 쌓아놓은 재산을 미국이 모두 빼앗아 대한민국 정부에 소유권을 넘겨준 재산이라는 뜻이다. 한국민 중에서 이 금전적 항목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 귀속재산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 사람들은 금방이라도 미국과 일본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다. 2015년 10월, 성균관대 이대근 명예교수는 <귀속재산 연구; 식민지 유산과 한국경제의 진로>라는 700여 쪽의 저서를 냈다. 그 내용 일부를 요약한다.
1945년 해방직후, 일본은 그들이 36년 동안 조선 땅에 건설해 놓은 수풍댐, 철도, 도로, 항만, 전기, 광공업, 제조업 등 여러 분야의 사회간접자본을 고스란히 남겨둔 채 추방당했다.
아울러 일본인들이 조선에서 운영하던 기업재산과 개인재산 모두를 그대로 두고 몸만 빠져 나갔다.
미군은 퇴각하는 일본인들의 주머니를 뒤져 지폐까지도 압수했다. 북조선에는 29억 달러어치의 공공재산, 남한에는 23억 달러어치의 공공재산이 횡재로 굴러왔다. 남한에 쌓인 23억 달러어치의 일본재산은 미군정이 이승만 정부에 이양했다. 이는 당시 남한경제 규모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한마디로 이 귀속자산이 없었다면 당시 한국경제에는 실체가 없었다.
이로부터 만 20년 후인 1965년, 박정희 정부가 일본으로부터 무상으로 공여 받은 액수는 3억 달러, 위의 23억 달러는 이 3억 달러의 약 8배였다. 이 엄청난 자산을 미국이 일본으로부터 빼앗아 한국에 주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꼭 알아야 한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씨 조선 518년을 대대로 통치해 온 27명의 왕들이 이룩해 놓은 자산이 무엇이었는가를. 도로를 닦아 놓았는가? 철로를 건설해 놓았는가? 기업이 생겨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놓았는가? 한글 단어장 하나 마련해 놓았는가? 그 27명의 왕들은 길을 넓게 닦으면 오랑캐가 침입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있던 길도 없앴다.
선조는 임진왜란 내내 중국으로 망명할 생각만 했다. 27명의 왕들은 노예들의 골만 빼먹었다. 조선왕들이 518년 동안 쌓아올린 재산은 초가집, 도로 없는 서울, 똥오줌으로 수놓은 소로, 민둥산, 미신, 거짓과 음모를 일삼는 미개인들이 3공존하는 가두리 땅에 불과했다. 하지만 일본은 불과 36년 동안에 조선 땅에 52억 달러어치의 재산을 쌓아 올렸다.
이 엄청난 재산 중 남한지역의 23억달러를 미국이 빼앗아 보관했다가 대한민국 건국자 이승만에게 선물처럼 주었다.
♥미국은 스스로 지키지 못했던 땅도 빼앗아 주었고, 조선인들 서는 꿈조차 꾸지 못했던 천문학적 규모의 재산도 빼앗아 주었다. 이 두 가지 구체적 선물에 대해 우리는 미국과 일본 모두에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했다. 이 중요한 사실이 묻혀 왔기 때문에 우리는 배은망덕한 국민이 되었고, 그 배은망덕의 소치는 순전히 빨갱이들의 역사왜곡에 있었다.
♥미군정은 처음, 사유재산을 압류대상에서 제외했다가 매우 다행하게도 곧 이어 사유재산까지도 압류했다(군정법령 제8호, 1947.10.6.제정). 공적-사적 재산 목록이 170,605건, 이승만 정부에 넘겨줄 때까지 3년 동안 미군정은 고생을 했다. 엄청난 관리 인력과 재정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미군정에 인수되지 않고 농림부 등에 등록되어 있던 또 다른 일본인 재산이 121,304건에 이른다. 이 모두를 합한 총 재산은 291,909건이었다. 미국은 어느 정도로 일본인을 발가 벗겨 보냈는가? 귀국하는 일본인이 소지할 수 있는
돈의 액수를 극도로 제한했다. 민간인은 1,000엔, 군장교는 500엔, 사병은 250엔 이상 소지할 수 없었다. 미군은 부산항을 통해 귀국하는 일본인의 주머니를 검열했다.
1945년 말까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돌아간 민간인은 47만여 명이었다. 하지만 주한미군사령부 정보참모부가 1945년 11월 3일에 작성한 <정보일지>(G-2 Periodic Report) 54호에 의하면 일부의 일본인들이 150엔을 주고 밀항선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런 자료들은 국사편찬위 전자사료관에 보관돼 있다. 하지만 밀항선을 타고 탈출한 일본인 숫자가 과연 얼마였겠는가?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핵심은 미국이 일본인들을 무산계급으로 만들어 겨우 몸만 돌려보냈다는 사실이다. 조선반도에서 이렇게 빈손으로 본토로 돌아간 일본인들은 전후 일본의 큰 사회문제가 되었다.
♥일본인들이
남겨두고 간 그 많은 주식회사급 기업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는가? 대부분 그 회사 직원이거나 관련이 있던 조선 사람들에 헐값으로 불하되어 오늘의 대기업들로 성장했다. 오늘의 우리 대기업들은 거의 예외 없이 일본기업들이었다. 조선인들이 세운 업체는 ‘상회’라는 이름을 단 개인가게들이었다.
@아래의 사례들은 현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해방 이후 맨땅에 헤딩해서 창조한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웅변할 것이다.
'쇼와 기린맥주’는 당시 관리인이었던 박두병에게 불하되어 두산그룹의 계열사인 ‘OB맥주’가 되었다.
‘삿포로 맥주’는 명성황후의 인척인 민덕기에게 불하되어 ‘조선맥주’가 되었다(1998년에 하이트맥주로 상호 변경).
‘조선유지 인천공장 조선화약공판’은 당시 직원이었다가 관리인이 된 김종희에게 불하되어 ‘한화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선경직물’은 공장의 생산관리 책임자이던 최종건에게 불하되어 ‘SK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SK그룹은 1939년 조선의 일본인 포목상이 만든 조선에서 만주로 직물매매 하던 선만주단(鮮滿紬緞)과 일본의 교토직물이 합작해 만든 선경직물로부터 시작됐다. ‘선경’이란 이름은 선만주단의 ’鮮‘과 교토직물의 ’京‘를 따서 지은 것이다.
나가오카제과‘(永岡製菓)는 직원이던 박병규 불하되어 ’해태제과 합명회사‘가 되었다.
’오노다 시멘트 삼척공장’은 이양구에게 불하되어 ‘동양시멘트’가 되었다.
‘한국저축은행’은 정수장학회의 설립 멤버이기도 한 삼호방직의 정재호에게 불하되었다.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점’은 이병철에게 불하되어 ‘신세계 백화점’ 이 되었다.
‘조지아 백화점’이 ‘미도파 백화점’이 되었다.
‘조선제련’이 구인회에게 불하되어 ‘락희화학(LG화학)’이 되었다.
삼척의 ‘코레카와 제철소’가 해방 후 ‘삼화제철’로 상호 변경되어, 장경호에게 불하되어 ‘동국제강’이 되었다.
‘조선생명’이 이병철에게 불하 되었다,.
그렇다고 일본을 찬양할순 없다 고
본다 . 그렇다 고
일본을 언재까지나 원수지간으로만 볼수도 없는 현실이
아닌가 ?
이 글은 결코 일본을 칭송하자는 글이 아닙니다.
역사를 바로 알아야 우리가 바로 설 수 있고
역사를 바로 알아야 다시는 그 치욕의 나라가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나라가 나라 다운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답게살기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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