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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환경과 환난이 축복으로, 세계 3대 상인집단
세계 3대 상인으로 유대상인, 중국의 화상, 그리고 인도상인을 든다. 로스차일드(Rothschild), 모건(Morgan), 록펠러(Rockefeller) 등 인류 경제사에 그리고 현재도 유대 상인집단이 끼친 영향과 지배력은 부연 설명이 불요하다. 중국의 화상, 특히 화상중의 화상인 객가(客家, Hakka)는 ‘태양이 있는 곳에 중국인이 있고, 중국인이 있는 곳에 객가인이 있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G2 중국 부흥의 숨은 세력이다. G3로 부상한 인도 경제, 산업계의 중추는 3,000년 카스트(Caste) 역사로 다져진 인도 상인집단이다.
이 상인집단이 자고 나란 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의 땅도, 사시 사철 풍성한 과일과 채소가 보장된 정착 농경지도 아니다. 유대 상인의 역사는 기원전 6세기의 바빌론 유수, 15세기 정착지 이베리아 반도에서의 대학살과 추방 등 디아스포라(Diaspora) 반복의 역사다. 쑨원(Sun Wen), 덩샤오핑(Deng Xiaoping), 싱가폴의 리콴유(Lee Kuan Yew), 태국의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으로 대표되는 중국 화상의 본류 객가도 전란과 기근과 착취를 피하기 위한 이주와 고난과정에서 다져진 생존력과 유대화, 제도화의 결과다.
인도 상인집단의 본류 마르와리(Marwari)와 구자라티(Gujarati)는 풍요의 인도 아대륙 중에서도 가장 척박하고 황량한 북서부 타르(Thar)사막을 배경으로 한다. 인도 제 3의 상인집단으로 타타(Tata)로 대표되는 이란 계통의 파르시(Parsi)도 조로아스터교 전통을 지키기 위해 7~8세기 인도로 탈출한 소수민족의 생존 성공기다. 한국을 대표하는 개성상인, 송상(松商)도 려말선초의 격란기에서 살아남기 위한 구지배층의 변신과 생존·번영을 위한 노력의 결과물로, 꿈에서도 잊을 수 없는 환난과 수탈의 기억을 집단화·제도화하고, 대를 이어 전해 온 집단이다. 이는 척박하고 메마른 환경이, 핍박이 오히려 축복으로 연결되는 연마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밖에는 폐쇄적, 안으로는 각별하고 끈끈한 집단성
그래서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집단의 폐쇄성(Closed Community)이다. 여기에 종교적 요소가 가미되면 이 폐쇄성은 그 정도를 크게 더한다. 3,000년 유대교 전통을 지켜오는 유대 상인집단과 인류 최초의 일신교로 알려지고 있는 배화교(Joroastarism)를 신봉하는 인도의 파르시가 그 예다. 모계 혈통을 따르는 인도의 파르시는 집단내 결혼이 장려되고, 비(非)파르시 외부인과 결혼하는 여성은 집단에서 축출되고 예배당에의 입장도 거부된다.
반면, 집단내 친족에 대한 애정과 후원, 네트워크는 각별하고 끈끈하고 단단하다. 수천년 시련의 역사를 통해 동류, 동족간의 단결과 부조, 네트워크가 자신과 집단의 생존과 번영의 초석임이 DNA를 통해, 집안 교육을 통해 대대로 전수되었다. 미국 유수의 로펌과 투자은행 입사의 보증수표가 이들을 장악하고 있는 유대계 출신 여부임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미국내 가장 큰 한인 커뮤니티인 퀸스(Queens)의 최대 번화가를 지배하던 한국 재미 교포상인들이 그 자리를 중국인들에게 거의 내 준 이유도 수십명이 자금을 모아 상가를 하나둘 씩 사들여 온 중국 상인들에게 밀린 결과다. 인도상인 집단의 본류 마르와리는 정착지에 마르와리가 오면 그 지역 마르와리 상조회에서 사업자금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전통을 유지해 왔다.
이주한 곳에 터를 잡고 제도화하는 데 능숙한 상인 집단
뉴욕 맨하튼 한 복판에는 낮에도 들어가기가 꺼림직한 슬럼가 할렘이 있는데 이곳 건물의 임대인과 주요 상가 주인 대부분이 유대계다. 19세기 말 미 서부 개척기 각국에서 이주한 수많은 철도, 금광노동자중 저축과 교육에 성공한 유일한 집단이 중국계 화교임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인도 상인의 본류 마르와리는 현금 이동 없이 신용과 환어음을 기반으로 한 결제 및 대출 시스템 훈디(Hundi)를 제도화 했고, 고려시대 개성상인도 송도사개치부법이란 독특한 복식부기와 시변제, 송방을 발전시켰다.
인도 4대 상인집단 마르와리, 구자라티, 파르시, 자인
법적으로는 사라졌지만 인도인, 인도상인의 내면과 사회, 정치 밑바닥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도 카스트 시스템은 동전의 양면이다. 인도 카스트 제도는 지식과 제사를 담당하는 브라만(사제), 전쟁과 통치를 담당하는 크샤트리아(귀족), 상업과 농업에 특화된 바이샤(평민), 수공업 위주의 수드라(공인)의 4계급과 이에도 포함되지 못하는 불가촉천민 달리트로 크게 대별된다. 한국의 경우 경주 최씨, 파평 윤씨와 같이 성에 자신의 카스트가 내재화되어 있고, 이름과 성을 통해 서로 간의 카스트를 유추한다.
인도의 정치, 경제, 문화를 주도하는 계층은 4% 내외의 브라만과 바이샤 중에서도 돈을 알고 관리할 줄 아는 2% 전후의 바니아(상인)그룹이다. 돈을 버는 것에 인생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 받은 집단으로 일족내 유대와 협동이 DNA에 체화되어 있다.
인도의 첫 번째 상인 집단은 마르와리로 인도 북서부 라자스탄주의 마르와(Marwa) 사막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다. 척박한 타르 사막에서 자력으로 먹고 사는 것이 어려워 사막의 대상무역과 영주를 상대로 한 금융업에 종사하면서 일족간 유대와 훈디, 바사(Basa) 등 금융시스템을 발전시켰다.
19세기 중엽의 대기근과 고향의 정치적 무질서, 인도 아대륙의 새로운 지배자 영국이 제공하는 새로운 사업기회를 찾아 동부 콜카타(Kolkata)로, 서부 뭄바이(Mumbai)로, 또 남부로 이동했고 그동안 축적된 경쟁력과 일족간 유대를 통해 인도 전역을 지배해 갔다. 세계 1위의 철강기업 아르셀로 미탈(Arcello Mittal)의 락슈미 미탈(Rakshmi Mittal), 영국 제 1의 부자집단 힌두자(Hinduja), 원자재, 섬유분야의 대표 비를라(Birla)를 비롯 아가르왈(Aggarwal), 오스왈(Oswal), 미탈(Mittal), 반살(Bansal), 진달(Jindal) 성을 가진 그룹이 마르와리계 상인집단이다.
<그림 1> 인도 마르와리 상인의 라다스탄주 고택
자료: Tripoto
마르와리와 쌍벽을 이루는 인도 상인집단이 구자라티이다. 라자스탄주와 인접해 있고 인도양을 통해 파키스탄, 이란, 중동과 연결되는 구자라트주 출신 상인이라는 뜻이다. 수천년간 해안선을 통해 중동, 아프리카와의 해상무역, 그리고 내륙의 커치(Kutch) 사막 교역에 종사해 왔고, 인도 주식자금의 70%를 지배하는 인도의 비즈니스 사관학교로 알려져 있다. 아시아 제 1, 2의 부자인 무케시 암바니(Mukesh Ambani), 고탐 아다니(Gautam Adani)를 비롯, 인도 10대 기업중 5곳이 구자라티다.
또다른 인도 상인 집단인 파르시는 니체의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조로아스터(짜라투스트라)교를 믿는 인구 6만의 인도내 초일류 소수민족 집단이다. 8~10세기에 걸쳐 이슬람화된 이란 땅의 박해를 피해 인도 북서부 구자라트 해안가에 정착한 이래 인도 경제수도 뭄바이의 개발, 성장기에 주역으로 참여 현재 대부분의 파르시가 뭄바이에 산다. 파르시가 말하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수 있는 집단으로 신뢰를 받고 있고, 한집 건너 박사가 있다고 할 정도로 교육수준도 높다. 세계적인 지휘자 주빈 메타(Jubin Metha), 인도 원자력의 아버지 호미 바바(Homi Bhabba) 등의 명사는 물론, 인도 최대 기업집단 타타와 고드레지(Godrej), 와디야(Wadia) 그리고 세계 제 1의 백신 생산기업으로 코로나 백신 생산에 지대한 기여를 한 인도 세럼 인스티튜트(SII, Serun Institute of India)가 파르시계 기업이다.
자인(Jain) 상인집단은 불교보다도 불살생(아힘사, Ahimsa) 교리에 바탕을 둔 자인교를 믿는 상인집단이다. 전통적으로 교육 및 상업에 특화된 600만 인구로 인도 세금의 3분의 1을 납부하고 있고 특히 인도 서부, 서북부 및 북부 지역에 집중 분포되어 있다. 극도의 초식주의자(Vegan)로, 높은 신뢰도와 인도 국내외 네트워크의 중요성이 매우 큰 인도 상업계에서 대표적으로 신뢰받고 있는 상인집단이다.
인도 비즈니스, 파트너의 가문 · 상인집단 정보를 확인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카스트 전통이 깊은 인도에서는 아직도 기업명에 자신의 가문명, 성을 쓰는 게 일반적이고 자신의 가문에 대한 자부심은 하늘을 찌른다. 아가왈 로지스틱스(Aggarwal Logistics), 진달 스틸(Jindal Steel), 아다니 파워(Adani Power) 등이 예다.
따라서 인도 바이어, 기업인과 만나면서 제일 먼저 할 일은 이름 끝의 가문 명, 성을 확인하는 일이다. 잠시 틈을 내어 스마트폰 검색을 통해 상대방의 카스트내, 상인집단내 뿌리를 유추, 추적해 보는 일은 가성비가 높은 일이다. 만약 거래 상대방의 대략적인 카스트 내지 상인집단군(마르와리, 구자라티, 파르시, 자인 등)에 대해 1차 파악하고 좋은 말을 건넬 수 있고, 추가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면 그렇지 못한 경쟁자보다 훨씬 호의적인 반응과 예우를 받고 거래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이렇듯 인도 비즈니스의 출발은 파트너인 인도상인 계급의 존재 위치와 특징들을 하나 둘 씩 알아가는 과정부터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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