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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의 선봉에 섰던 것만 아니라 조국의 독립과 그의 소신이기도 했던 사회주의적 사회관에 대해 이론적으로도 완벽하게 무장한 이른바 문무를 겸비한 독립운동가였던 것이다.
김한은 1887년 11월 16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한제국 통신원 주사와 도지부 주사, 세무주사 등을 지냈다. 1905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법정대학 정치경제과를 마쳤다. 그가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선 것은 25살이었던 1912년 중국으로 망명하면서부터였다.
김한은 그러던 중 의열단에 가입, 이른바 '김상옥 사건'인 조선총독 암살을 계획하다 사전에 발각돼 1923년 1월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징역 7년을 선고받아 5년간 옥살이를 하고 출소한다.
출소한 이듬해인 1928년에는 고려공청 후계간부 결성에 참여했으며 1929년 조선공산당재조직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위원 겸 혁명자후원회(모쁠) 책임자가 되었고 6월에는 신간회 북대표대회에서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했다.
그러나 사회주의자였던 김한도 김태연(김단야)처럼 소련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1930년 2월 소련으로 건너가 활동하던 그는 1938년 일본 밀정이라는 혐의를 받아 소련비밀경찰에 체포돼 사형을 당하면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첫댓글 .....ㅠㅠ
...ㅜㅜ